〈 33화 〉32화 타인의 삶
식당 한쪽 의자에 유리를 앉힌다. 아직도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다. 식당에 앉아 있는 사람이 많지만, 우리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일단 유리의 반대편에 앉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유리가 왜 우는지도 모르겠고. 무섭다고 했는데 뭐가 무서운지도 모르겠다.
펜으로 따뜻한 코코아를 만들어 낸다. 슬플 때는 단것. 그 정도의 상식은 있다. 만들어진 두 잔의 코코아. 흰색 잔에는 갈색의 음료가 가득 담겨 있다. 한 잔은 내 앞에, 한 잔은 유리 앞에 놓는다.
유리는 손을 뻗어 잔을 잡는다. 살짝 입가에 가져갔다가 다시 내려놓는다. 조금밖에 마시지 않은 것 같지만, 그 정도로 충분한지 눈물이 완전히 멎는다.
내가 먼저 말해야겠지.
"진정됐어?"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 말을 할 기운은 없는 건가?
"좀 더 마셔봐."
코코아를 더 권한다. 유리는 잔을 입에 가져다 댄다. 식탁에 내려놓은 잔에는 남은 음료가 없다. 다 마셨네.
"미안. 못 볼 꼴을 보여버렸네. 이제 괜찮아."
유리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눈은 웃고 있지 않지만. 전혀 괜찮지 않은 건 알겠다.
"말할 생각 없으면 질문은 하지 않을게. 요한 씨한테는 내가 말할 테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방까지 데려다줄게."
자리에서 일어나 펜을 쥔다. 걷는 건 귀찮으니 순간이동을 하자. 유리는 의자에 앉아서 나를 바라본다. 제기랄. 눈동자에 빛이 없다. 마치 죽은 사람처럼.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요한 씨한테 물어봐야 내가 뭘 할지 알 수 있겠지.
황금의 펜이 공중을 휘젓는다. 이야기를 덮어쓴다. 나는 이제 전투팀 팀장실 앞에 서 있는다.
나무문이 눈앞에 나타난다. 문을 두드린다.
"들어와."
내가 누구인지도 말하지 않았는데, 요한 씨가 들어오라고 한다. 살짝 당황했지만, 들어오라고 했으니 들어가야지.
문을 열고 들어간다. 요한 씨는 아까 봤던 그대로 책상에 앉아있다.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고 팔짱을 낀다.
"한유리 때문이지?"
알고 있었나? 고개를 끄덕인다. 요한 씨는 한숨을 쉬더니 가까이 오라고 손짓한다. 별수 있나 가야지.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요한 씨가 숙인 고개를 든다.
"처음 왔을 때부터 정신적으로 많이 불안했었다."
아마 유리에 관한 이야기겠지.
"사실 한유리는 사서가 되기에 접합하지 않았다."
에? 진짜? 내가 본 유리는 사서로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사실 이렇게 말해도 같이 일해본 사람이 유리밖에 없으니. 그래도 사서로서 자질이 모자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눈을 바라본 요한 씨는 그저 한숨만 내쉰다.
"언젠간 이럴 줄 알았어. 네 녀석이 해결해라."
"에?"
"에? 가 아니라 네가 해결하라고."
갑자기? 내가? 왜냐는 질문은 제쳐놓고 어떻게?
"만약 실패하면 유리는 사서 자격 박탈이다. 그 상태로는 사서 역할을 하지 못해."
요한 씨가 단호하게 말한다. 충격적인 선언. 사서 자격 박탈이라니. 식당에서 고참 사서한테 들은 적이 있다. 사서 자격 박탈. 사실 사서란 것은 천국으로 들어가지 못한 영혼이 머무는 연옥에 가깝단다. 그리고 충분한 정화를 거친다면 천국으로 올라가고. 만약 사서 자격이 박탈된다면, 영혼이 걸어갈 길은 지옥뿐.
속에서 욕지거리가 치솟는다. 요한 씨의 눈동자는 오롯하다. 뜻을 꺾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되지. 제기랄. 유리를 구하는 건 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황금의 펜이 공중에서 이야기를 써내러 간다. 내가 사라지기 직전 요한 씨의 입가에 미소가 걸려있었다.
다시 식당. 유리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다. 눈은 여전히 죽어있다. 확실히 심각하군. 내가 요한 씨를 만나러 가기 전보다 상태가 안 좋아졌다.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식당에 있던 사람들은 이제 다 사라졌다. 남은 건 나와 유리뿐.
이럴 때 적당한 사람이 있지. 유리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펜을 휘두른다. 이야기는 덮어써 지고, 우리는 다른 곳으로 간다.
"거기 멀쩡한 인간은 얼른 나가!"
고함이 나를 마중해준다. 대기록원의 의사 세실라 모리슨. 다른 환자들을 보고 있어서 우리가 들어온 지 모르는 듯하다. 일단 유리를 침대에 눕힌다.
세실라 박사는 매우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혼자서 침대에 누운 사서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적당한 약을 준다. 죽음 사람한테 약이 작용하는 것도 신기하다.
"세실라 박사님."
"앙?"
윽. 나를 노려보는 눈빛이 날카롭다. 베일 것 같은 느낌. 세실라 박사의 눈이 침대에 누워있는 유리에게 향하더니 기세가 누그러든다. 세실라 박사는 유리에게 걸어온다. 유리의 눈꺼풀을 열어 동공을 확인하고 입가에 귀를 가져다 댄다.
"왜 이러냐?"
그러게 말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모른다. 아는 선에서만 말해 주는 수밖에.
"뷔힌을 만난 다음부터 약간 이상하더니 결국에는……."
칫. 세실라 박사가 혀를 찬다. 뭔가 알고 있는 것 같다.
"처음 왔을 때랑 비슷하네."
처음 왔을 때? 요한 씨도 유리가 처음부터 정신적으로 불안하다고 했다. 아마 그거랑 관련 있겠지.
"원래 사서가 살아있을 때의 이야기는 개인사라 자기가 말해주는 거 아니면 알려주는 게 아닌데. 때가 때이니 별수 없지."
세실라 박사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중요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유리의 생사와 관련된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유리는 살해당했어."
"에?"
"말 그대로. 강도 살인이었지."
어째선지 들으면 안 되는 것을 들은 기분이다. 남의 비밀을 들어버린 느낌이다. 세실라 박사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원래는 영혼이 상해있어서 사서가 될 수 없었어. 요한 씨가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게 했지만, 악의 총체와 만나면서 그 때의 기억이 되살아 난 거 같아."
으. 그거 위험한 것이었구나. 다음에 또 만나자고 했는데, 안 만나길 빌어야겠군.
"되돌릴 방법이 있나요?"
"사서 뒀다 어디다 써먹냐? 이야기를 바꿔야지."
"누가요?"
"당연히 너."
세실라 박사의 손가락이 나를 가리킨다. 이럴 줄 알았어. 당연한 걸 물어본 내가 잘못이지. 한숨을 내쉰다. 그래도 어쩌겠냐.
"방법은요?"
"기록탐색실에서 유리에 관한 기록을 찾아. 그리고 바꿔봐. 방식은 너의 멋대로."
"혼자서 가나요?"
"그럼 둘이서 가냐?"
세실라 박사는 할 말은 다 했다는 듯 다시 환자들을 살핀다. 히익. 혼자라니. 혼자 해본 적 없는데. 잘 할 수 있으려나. 그것보다 일어났던 이야기를 수정해도 괜찮은 거야?
내가 해야 할 행동에 강한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해야지. 펜을 꺼내 들고 이야기를 적어 내려간다. 이번 목표는 기록탐색실. 가자. 이야기를 고쳐 쓰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