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40화 푸로스퍼로
푸로스퍼로는 밀라노의 적합한 대공이다. 대공이었다. 시민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던 그는 마법이라는 학문에 빠져 정사를 자신의 동생에게 맡기었다. 그리고 푸로스퍼로의 동생인 앤토니오는 형의 신하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조금씩, 조금씩. 푸로스퍼로가 모르게.
앤토니오는 그렇게 푸로스퍼로의 눈과 귀를 막았다. 나폴리의 왕이 가지고 있는 군대는 푸로스퍼로를 밀어내기 좋은 도구였다. 앤토니오와 나폴리의 왕 알론조는 푸로스퍼로를 밀어냈다. 시민들의 눈이 무서워 푸로스퍼로는 죽일 수 없었던 찬탈자들은 푸로스퍼로와 그의 딸 미랜더를 쪽배에 실어 바다로 밀어냈다.
신의 도움인지, 운명의 장난인지 푸로스퍼로와 미랜더는 안전하게 섬에 도착했다. 그 섬의 주인이었던 마녀를 물리치고 자신의 딸과 함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래. 그것이 너희가 나에게 한 일들이지."
공포에 질려 있는 앤토니오와 알로조를 바라보며 푸로스퍼로는 쓴웃음을 짓는다. 약간 떨어진 곳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사서들은 혀를 찬다.
"방법은 있어?"
한유리가 조그맣게 김유빈에게 속삭인다. 떠오르는 생각이 없는지 김유빈은 고개를 젓는다. 당장은 푸로스퍼로가 다른 사람을 죽일 것 같지는 않지만, 이대로 가면 위험해질 것이다.
푸로스퍼로의 앞에 쓰러진 알로조와 앤토니오는 공포의 비명을 지른다. 푸로스퍼로는 그런 자들을 바라보며 손을 높이 올린다.
하늘이 검게 물든다. 평온하던 하늘에 구름이 가득해진다. 섬 주변에 몰아치던 폭풍이 한곳으로 뭉친다. 태양이 가려진다. 비가 쏟아진다. 푸로스퍼로는 빗방울을 맞으며 자신의 원수들을 바라본다.
올라간 손이 내려간다. 구름이 밝게 빛나고, 벼락이 떨어진다.
내리 꽂힌 번개는 먼지 구름을 일으킨다. 푸로스퍼로는 먼지 구름 너머에서 들려오는 숨소리를 느끼고 매서운 눈으로 노려본다.
"우와. 진짜 죽을 뻔했어."
"어차피 사서는 안 죽으니까 걱정하지 마."
먼지 구름이 걷히고 푸른 보호막 뒤에 서 있는 김유빈과 한유리의 모습이 보인다. 앤토니오와 알론조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푸로스퍼로는 사라진 둘의 모습을 찾기 위해 눈을 이리저리 돌린다.
"두 사람은 어디 갔나?"
"비밀입니다."
김유빈의 등 뒤에 숨은 한유리가 혀를 살짝 내민다. 김유빈은 푸로스퍼로의 눈총을 맞으며 그저 웃을 뿐이다.
푸로스퍼로는 말을 하지 않고 다시 손을 올린다. 김유빈은 온몸이 저릴 정도의 살기를 느끼고 푸로스퍼로의 손짓에 집중한다. 손이 아래를 향하고, 다시 한 번 거대한 번개가 땅으로 내리꽂는다.
그리고 번개는 김유빈이 만들어 낸 강철 창을 타고 땅으로 스며든다. 자신의 마법이 막히자 불쾌해진 푸로스퍼로는 얼굴을 찌푸린다.
"귀찮군."
김유빈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푸로스퍼로의 움직임을 주시한다. 김유빈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왼손을 들어 올린다. 그 손에서 거대한 광풍이 흘러나온다. 김유빈은 본능적으로 방어막을 발동했지만, 조금씩 뒤로 밀리기 시작한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무슨 방법!"
한유리가 되물었지만, 김유빈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한다. 머리가 그렇게 좋지 않을뿐더러, 푸로스퍼로의 마법을 막아내느라 생각에 집중하지 못한다. 광풍에 김유빈과 한유리는 조금씩 뒤로 밀려 나간다. 주변의 나무는 이미 뿌리째 뽑혀 하늘을 날아오른다. 방어막도 금이 가기 시작하고, 몸도 바람의 힘에 들썩인다.
"얼른 생각해 내!"
닦달하는 한유리의 목소리에 김유빈이 눈을 감고 이야기의 내용을 기억해 낸다. 머릿속에서 책을 훑어 읽는다. 정독을 한 게 아니라 드문드문 기억이 비지만 필요한 부분은 찾았다.
"미랜더! 아까 봤던 그 여자랑 남자를 데려와!"
바람에 묻혀 푸로스퍼로에게는 둘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 한유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기타를 연주해 음표를 불러낸다. 그 음표 위에 올라탔지만, 푸로스퍼로가 불러내는 광풍 때문에 김유빈의 방어막을 벗어나지 못한다.
김유빈은 혀를 한 번 차고 이 광풍을 멈출 방법을 찾는다. 평범하게 마법을 쏘아내도 바람에 튕겨 나갈 것이다.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김유빈은 방어막을 유지하며 왼손을 푸로스퍼로를 향해 뻗는다. 김유빈이 주문을 읊조린다. 그 뻗은 손에서 바람이 흘러나온다.
푸로스퍼로와 같은 광풍은 아니다. 누군가가 맞는다면 선선한 미풍이라고 말할 바람. 그 약한 바람은 광풍을 향해 나아갔고, 광풍은 자그마한 방해물에 의해 기류가 뒤틀린다. 바람의 길이 꼬인다. 뒤틀리고 소용돌이친다. 지상에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생겨난다.
"어. 이런 걸 원한 건 아니었는데."
한유리는 위험을 감지하고 이미 도망친 상태고, 회오리바람을 만들어낸 장본인인 김유빈은 입을 벌리고 실소를 내뱉는다. 푸로스퍼로도 이 상태로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마법을 중지한다.
회오리바람은 주변의 바람을 끌어들이며 점차 성장해간다. 피하는 것은 늦었다는 것을 직감한 두 마법사는 자신의 주변에 방어막을 친다. 회오리바람은 주변의 모든 것을 끌고 올라간다. 나무, 흙, 바위. 그 모든 것을.
10여 분이 지나자 회오리바람이 잠잠해진다. 푸른색의 방어막 뒤에서 서로를 노려보던 마법사들도 방어막을 해제한다. 시간은 충분히 끌었다. 김유빈은 한유리가 어서 오기만을 기다린다.
먼저 움직인 것은 푸로스퍼로. 그는 오른손을 뻗어 김유빈에게로 향한다. 손끝에서 불꽃이 튀어 나간다. 김유빈이 손을 한번 휘젓자 바닥에서 치솟은 물줄기가 불꽃을 집어삼킨다. 푸로스퍼로가 손을 뻗고 다시 광풍이 김유빈을 덮친다. 김유빈은 방어막을 사용하지 않고 손을 땅 위에 올린다. 거대한 바위가 올라오며 바람으로부터 김유빈을 보호한다.
제 뜻대로 되지 않자 푸로스퍼로가 이를 갈기 시작한다. 김유빈은 제발 한유리가 빨리 오기를 빈다. 몇 번의 마법이 더 오고 갔지만 김유빈은 모든 마법을 막아낸다.
"김유빈!"
멀리서 음표를 타고 한유리가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그녀의 뒤에는 미랜더와 퍼디넌드가 보인다. 푸로스퍼로는 자신에게 오는 딸의 모습을 보고 김유빈을 향해있던 손을 늘어트린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푸로스퍼로는 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한유리가 음표를 땅에 내려놓자마자 미랜더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달려간다.
"아버지!"
딸을 안은 푸로스퍼로는 가볍게 웃으며 미랜더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리고 김유빈과 한유리를 노려본다.
"자네들이 원하는 대로 그들을 용서하겠네."
아직 상황을 모르는 미랜더와 퍼디넌드는 어리둥절해 하고, 사서 둘은 안도의 한숨을 몰아쉰다.
김유빈이 마법서를 펼치고 마법의 언어를 읊조리자 수풀 속에서 알론조와 앤토니오, 그리고 그들을 보좌하던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푸로스퍼로를 보고 엎드리지만, 푸로스퍼로는 그저 허허 웃는다.
이야기가 어떻게든 마무리된 것을 확인한 한유리는 김유빈에게 손을 뻗는다. 김유빈이 그 손을 잡자 한유리가 든 황금의 펜이 춤을 춘다. 위로 아래로 이야기를 덮어쓰며.
그리고 사서는 그곳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