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48화 대기록원의 기록실
백설공주의 이야기에서 돌아오자마자 내가 본 것은 나와 유리를 향해 들이밀어 진 펜대였다. 대부분 이런 상황에서는 총대가 들이밀어 져야 하는데, 누가 사서들 아니랄까 봐.
사실상 전투팀의 모든 사람이 자기 황금의 펜을 들이밀고 있다. 위압감이 상당하다. 팀장인 요한 씨도 저 무리에 포함되어 있다. 유리도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눈을 크게 뜨고 두리번거릴 뿐이다.
"저기."
"움직이지 마!"
손을 들고 질문을 하려는데 험상궂은 남자가 소리 지른다. 이름이 나카무라였나? 펜대를 앞으로 들이미는 것을 보아 움직이면 뭔가 할 생각이다. 손을 다시 내린다. 또 무슨 상황이야 이건.
"비켜봐라."
뒤쪽에 있던 요한 씨가 인파를 헤치고 앞으로 나온다. 표정을 보니 화가 많이 나 있다. 펜을 앞으로 새워 바닥에 떨어져 있는 「Schneewittchen」을 가져간다. 책을 펼쳐 들고 유심히 살펴본다.
"악마는 없다. 해산."
요한 씨의 말에 펜대를 들이밀던 사서들이 흩어진다. 남은 것은 바닥에 앉은 나와 유리, 그리고 매서운 눈동자의 요한 씨.
"너희는 잠깐 나 좀 보자."
별로 따라가고 싶지 않다. 표정이 무서워. 유리와 나는 서로 눈치를 보다 요한 씨의 뒤를 따라간다.
도착한 곳은 역시나 팀장실. 요한 씨는 자기 자리에 앉고 우리는 그 앞에 서서 뒷짐을 지고 고개를 숙인다. 요한 씨가 먼저 입을 연다.
"너희가 뭘 잘못했는지 알아?"
나와 유리는 눈동자를 잠깐 마주치고 요한 씨를 보고 고개를 흔든다. 모르겠다. 잘 처리한 거 같은데. 요한 씨가 한숨을 내쉰다. 머리를 붙잡고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또 한숨.
"악마를 꺼냈지?"
그게 꺼낸 건가? 마법을 이용해 백설에게 깃든 악마를 보긴 했지. 그걸 꺼냈다고 하는 건가? 일단 고개를 끄덕이자. 요한 씨는 한숨을 또 쉰다. 처량해 보이기까지 한다.
"왜 악마를 꺼냈지?"
"최선의 방법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리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없다. 솔직히 이런 상황에서 자신 있게 말하는 게 더 이상할 거다. 요한 씨는 우리를 똑바로 바라본다. 부담스러운 눈빛이다.
"악마를 꺼내는 것은 최후의 방법이다. 왜인지 알아?"
알면 꺼냈겠는가. 고개를 젓는 수밖에.
"악마의 공격은 영혼에 상처를 남긴다. 악마의 손에 직접 죽으면 너희는 살아나질 못해."
엄청 심각한 사실을 알아버렸다. 위험한 거였구나. 전투팀 전원이 모여서 우리를 주시한 이유도 알겠다. 목숨이 달려있었으니.
"그럼 왜 안 알려주셨나요?"
궁금한 것을 못 참는지 유리가 손을 들고 질문한다. 저건 뻔뻔한 거 아닌가? 요한 씨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머리를 감싸고 한숨을 쉰다. 팀장이라는 자리는 힘든 거군.
"일반 사서가 악마를 꺼낸 적은 대기록원의 역사 어딜 봐서도 없다. 상상도 한 적 없는 일이었지."
우리가 엄청난 일을 해낸 거로군. 아무도 해본 적 없는 일을 해본 선구자! 이렇게 말하면 맞겠지. 유리는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지 팔짱을 끼고 아니꼽다는 시선을 보낸다.
"뭐. 왜 그렇게 보냐?"
요한 씨와 유리가 눈싸움을 시작한다. 에휴. 내가 어떻게 할 방법은 없으니 간만이 두고 보자. 끝은 요한 씨의 한숨으로 맺어진다.
"어쨌든, 너희 둘은 근신이다."
"엑?"
그래. 그런 소리가 나올 법도 하지.
"둘 다 기록실로 가서 이틀만 있다가 와."
더 이상의 질문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태도. 유리도 한숨을 쉬고 요한 씨에게 묵례하고 방을 나선다. 나도 얼른 뒤를 따라가고.
팀장실 밖으로 나온 유리는 머리를 마구 흐트러트린다.
"으아아아!"
소리까지 지른다. 그대로 주저앉아 한숨을 쉬며 하늘을 바라본다.
"망했다. 기록실이라니."
뭐야. 뭔데. 나 엄청 불안해진다고. 목덜미로 흐르는 땀이 느껴진다. 유리는 우리가 가야 할 기록실에 대해 알고 있는 듯한데. 도대체 요한 씨가 무엇을 시킨 것인지 나는 짐작도 못 하겠다.
유리는 다시 한숨을 푹 내쉬고 나를 바라본다. 그 눈에는 무언가 단호한 결의가 보인다.
"가자."
끄덕이는 고개는 마치 역전의 용사와 같다. 아. 더 불안해졌어. 유리는 죽음을 받아들인 전사처럼 책장들 사이를 걸어나간다. 동상들의 홀을 지나 플라톤의 동상이 서 있는 기록실 앞에 선다. 기록실의 문에는 `recording room`이라 적혀 있다. 녹음실, 또는 기록실. 유리는 문 앞에서 침을 삼키고 문을 연다.
그러고 보니 기록실에는 들어가 본 적이 없네. 유리가 왜 저렇게 무서워하는지 잘 모르겠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어둡고 거대한 방. 천장에 등이 달렸지만, 빛이 약하다. 눈이 어둠에 적응하고 눈에 들어온 것은 전투팀 사무실의 책장 수와 버금가는 책상과 사람들이었다.
다들 책상에 앉아서 손을 열심히 움직인다. 펜으로 무언가를 적는 사람, 컴퓨터로 무언가를 치는 사람. 저 사람들이 기록실의 사서들이구나.
유리가 또 한숨을 쉬고 기록실로 들어간다. 걸음걸이에 힘이 없다. 비척이며 걷는 유리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간다.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오래된 고서의 냄새.
책상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들어온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자기 할 일에 집중한다. 확실히 분위기가 약간 기괴하다. 뭔 일이 일어나도 놀랍지 않을 분위기. 유리가 무서워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너희가 요한이 보낸 사서들?"
걸어가는 유리 앞에 사람이 한 명 나타난다. 파이프 담배를 물고 있는 짧은 머리의 여성. 입고 있는 옷은 운동복. 고등학교 때 입었던 학교 체육복과 디자인이 똑같다.
"난 기록실장 장 마리 르페이다."
르페이 씨라고 부르면 되겠지? 르페이 씨는 유리에게 악수를 건넨다. 유리는 떨리는 손으로 르페이 씨의 손을 잡는다.
"한유리 맞지? 넌 저번에도 왔다고 했으니 알아서 하고, 김유빈은 날 따라와라."
유리는 한숨을 쉬고 어딘가로 걸어간다. 유리의 위치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르페이 씨가 빠르게 걸어가서 포기. 르페이 씨를 따라 도착한 곳은 책상. 다른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책상. 차이점이라면 아무것도 없다는 것.
"일단 앉아."
르페이 씨가 의자를 빼준다. 약간 불안하지만 앉아야지.
"좋아. 그럼 기록실에서 하는 일을 알려주마."
황금의 펜을 꺼내 든 르페이 씨는 공중에 무언가를 적어 내려간다. 이야기가 덮어 써지고, 내 앞에 수정 구슬 같은 게 나타난다. 그 수정 구슬에는 영상이 흘러간다. 사람 한 명에게 집중된 것 같은데.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의 모습이 나타난다.
"간단하다. 모든 것을 기록해라. 일거수일투족, 숨 쉬고 물 마시는 그 모든 것을 기록해라. 그것이 기록실의 임무다."
네? 잘못 들은 거 같은데요? 르페이 씨는 질문을 받지도 않고 어딘가로 사라진다. 저 사람의 모든 것을 기록하라고? 어떻게?
의자에서 일어나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멀리 유리의 모습이 보인다. 유리는 펜을 잡은 채로 무언가 열심히 써내러 간다. 나와 같이 수정 구슬을 앞에 두고서.
다시 의자에 앉는다. 망했군. 기록실은 무서운 곳이구나. 내 황금의 펜을 꺼내 든다. 기록하려면 장비가 필요하지. 공중에 황금의 펜이 춤춘다. 이야기를 덮어쓰고, 내 앞에 컴퓨터가 나타난다. 한숨을 쉬고 키보드에 손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