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93화 악마 사냥
한유리와 김유빈은 음표를 타고 거대한 악마의 주위를 돌아다닌다. 이청하는 악마의 발 근처에서 검을 내려칠 준비를 하고 있다. 초월자들은,
"상당히 재밌게 흘러가는군요."
"저들이 실제로 능력을 쓰는 건 처음 봅니다."
"엄청 특이하게 사용하네?"
평범하게 사서들의 활동을 평가하고 있다.
"뭔가 바라보는 시선이 기분 나빠."
"동감."
음표를 탄 채 초월자들을 바라보는 김유빈과 한유리가 대화를 나눈다.
"선배! 언니! 언제 시작할 거예요!"
밑에서 대기하고 있는 이청하가 소리친다.
"이제 할 거야!"
김유빈이 소리치며 마법서를 펼친다. 오른손을 뻗어 악마의 머리를 겨눈다. 김유빈의 입에서 마법의 언어가 흘러나온다. 언어는 마법이 된다. 김유빈의 손끝에서 붉게 타오르는 화염이 나타난다. 김유빈의 입에서 흘러나오던 마법의 언어가 멈춘다. 화염은 정확히 악마의 머리로 날아간다.
손가락에서 날아간 화염은 작은 폭음과 함께 악마의 머리에 적중한다. 악마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음표에 타고 있는 김유빈을 바라본다. 눈이 없지만, 분명히 바라본다.
"어. 예상 밖인데?"
악마가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다. 그리고 내려친다.
"유리!"
"으아악!"
한유리는 비명을 지르며 음표를 움직인다. 악마의 팔은 마치 번개 같은 속도로 내려쳐 진다. 한유리의 필사의 연주로 음표는 아슬아슬하게 악마의 팔을 피해갔다.
"우와."
음표를 지나쳐 땅에 박힌 악마의 팔은 거대한 균열을 만들어냈다. 그것을 바라본 김유빈이 감탄을 내뱉는다.
"지금이 그럴 때냐!"
한유리가 소리치며 기타를 연주한다. 악마는 땅을 내려친 팔을 다시 들어 올린다. 한유리는 악마의 팔을 바라보고 음표를 더욱 빠르게 움직인다.
악마의 얼굴은 자신을 빙빙 돌고 있는 음표를 따라간다. 들어 올려진 팔은 아직은 내려쳐 지지 않는다.
"야! 어떻게 해봐!"
한유리의 외침에 김유빈이 다시 주문을 읊는다. 김유빈이 주문을 읊는 동안 다시 악마의 팔이 쇄도한다. 또 한 번의 아슬아슬한 회피. 거대한 팔은 강한 풍압을 일으키며 음표에 타고 있는 두 사서의 머리카락을 휘날리게 한다.
김유빈이 손을 하늘로 뻗는다. 그의 손에서 강한 빛이 번뜩인다. 김유빈의 입이 멈추고 손바닥은 악마의 얼굴이 있을 곳으로 뻗어진다. 손바닥에서 강한 번개가 터져나간다.
번개의 창은 악마의 머리를 관통하며 지나간다. 악마의 머리에 큼지막한 구멍이 생겨난다. 악마는 움직임을 멈춘다.
"된 건가?"
한유리가 음표의 움직임을 멈추고 악마를 바라본다. 뚫린 구멍에는 검은 것이 넘실거린다. 구멍 가장자리에서 검은 실 같은 것이 생겨난다. 검은 실은 반대편으로 쏘아진다. 그렇게 수십 개의 실이 구멍을 덮고, 김유빈이 만든 구멍은 메꾸어진다.
"하아."
김유빈은 얼굴을 두 손으로 덮고 깊은 한숨을 내쉰다. 악마는 머리를 돌려 음표를 향한다. 두 팔을 들어 올린다.
"제기랄."
한유리가 작게 중얼거리고 음표를 움직인다. 악마는 들어 올린 두 팔을 마구잡이로 휘두른다. 음표에 스치지도 않고 있지만, 풍압만으로 음표가 균형을 잃고 흔들린다.
"이청하! 막아봐!"
"네!"
악마의 발밑에 자리 잡은 이청하가 검을 들어 올린다. 검을 잡은 양손에 힘을 싣고 악마의 발을 향해 내려친다.
"어?"
한유리가 만들어준 검이 뚝 부러진다. 이청하는 부러진 검을 보고 고개를 들어 한유리를 바라본다. 공중에서 자신이 만든 검이 부러진 것을 본 한유리도 입을 열고 다물지를 못한다.
"정신 차려!"
"어? 어!"
김유빈의 호통에 한유리가 정신을 차리고 음표를 조종한다. 악마는 발에 가해진 충격은 인식조차 못 했는지 계속 김유빈과 한유리를 노리고 두 팔을 휘두른다. 이청하는 부러진 검을 들고 악마의 발밑에서 멍하니 서 있다.
"유리! 일단 도망치자."
악마의 공격에 대응하지 못하고 피하기만 하는 상황을 타파하고자 김유빈이 말한다. 한유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음표를 움직인다. 악마는 자신에게서 멀어져 가는 음표를 따라 걸음을 옮긴다.
"청하야! 넌 말 타고 따라와!"
김유빈은 재빠르게 주문을 외운다. 이청하가 서 있던 땅이 갈라지고 해골로 만들어진 말이 솟아난다. 이청하는 침을 한 번 삼키고 말에 올라탄다. 하늘을 보고 음표가 멀어져 가는 방향으로 말을 몰아 달려간다.
"우리도 가자!"
소을이 손을 뻗으며 외친다. 초월자들은 권능으로 자신의 몸을 공중으로 들어 올린다. 악마가 걸어간 방향으로 몸을 움직인다.
악마가 걸어가는 곳마다 큰 피해가 나타난다. 발로 밟은 곳은 땅이 꺼지고, 숲을 지나가면 나무들이 쓰러진다. 김유빈은 음표 위에서 쫓아오는 악마를 보고 이를 간다.
"더 빨리는 못 움직여?"
"이게 최고 속도야."
거리가 벌려지지 않는다. 악마가 손을 뻗어 닿을 거리는 아니지만, 작전을 짜기에는 가깝다. 한유리는 기타를 빠르게 연주하며 음표를 움직이지만, 역시 거리는 그대로다.
김유빈은 마법서를 펼치고 적혀 있는 마법들을 훑어본다. 악마의 속도를 늦출 마법이 필요하다.
"있다."
"찾았으면 뭐든 해!"
손가락이 저린 한유리가 김유빈을 독촉한다. 김유빈은 고개를 끄덕이고 밑을 내려다본다. 악마의 발에 바싹 붙어서 이청하가 음표를 탄 둘을 쫓아오고 있다.
"이청하! 거기서 피해!"
이청하에게 경고한 김유빈은 주문을 노래하기 시작한다. 이청하는 뭔가 일어날 걸 짐작하고 악마에게서 떨어져 숲으로 해골 말을 몬다.
김유빈의 노래가 끝이 난다. 갑작스레 땅이 진동한다. 하늘에 떠 있는 김유빈과 한유리는 제대로 느끼지 못하지만, 땅에 있는 이청하는 몸을 가누지도 못한다.
땅이 갈라진다. 악마가 발을 디딜 곳에. 악마의 발이 땅에 박혀 들어간다. 사람으로 치면 무릎 높이까지 땅에 삼켜진 악마는 움직임을 멈춘다.
"됐다!"
한유리는 뒤로 고개를 돌려 김유빈이 일으킨 자연재해를 보고 한숨을 쉰다. 악마는 움직이지 못한다. 음표를 향해 손을 뻗어보지만 닿지 않는다.
"일단 어디 숨자."
고개를 끄덕인 한유리는 기타를 연주한다. 여유가 생겼기에 그렇게 빠른 연주는 아니다.
한참을 날아간 음표가 땅에 내려선다. 김유빈과 한유리가 음표에서 내려 땅을 밟는다. 숲에서는 해골 말을 탄 이청하가 나타난다.
세 명의 사서가 모였다. 사서들이 모여 처음 한 일은 한숨을 쉬는 것이다.
"뭘 그렇게 한숨을 쉬십니까."
칼라모일이 땅에 내려오며 사서들에게 말을 한다. 양옆의 고을과 소을도 땅에 내려앉는다. 사서들의 시선이 칼라모일에게 집중된다.
"조금 도와드릴까요?"
"방법이 있으면 진작 말씀하시죠!"
결국, 김유빈이 고함을 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