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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화 〉99화 성냥 불꽃 너머 (100/144)



〈 100화 〉99화 성냥 불꽃 너머

골목길 담벼락에 몸을 기댄 소녀는 힘없이 또 하나의 성냥에 불을 붙인다. 작은 불꽃이 일어나고 소녀는 그 불꽃을 뚫어지라 바라본다.


"어?"

소녀가 손에 들고 있는 성냥불 너머로 거대한 벽난로가 나타난다. 따뜻한 온기를 내뿜는 벽난로는 소녀의 몸을 녹인다. 소녀가 눈을 비벼봤지만, 벽난로는 불꽃 너머로 타오르고 있다.

 바람이 골목을 쏘다닌다. 성냥의 작은 불꽃은 바람에 힘없이 사라진다. 불꽃이 사라지자 소녀의 눈에 보였던 벽난로도 사라진다.


"안돼. 안돼."


소녀는 바구니를 뒤적여 성냥을 꺼내 든다. 아까 보았던 환상을 다시 보기를 간절히 바라며 성냥에 불을 붙인다. 성냥이 작은 불꽃을 일렁이며 타오른다. 불꽃 너머에는 풍성하게 차려진 식탁이 나타난다.


노릇하게 익은 칠면조. 갓 구웠는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빵. 고기가 들어있는 수프. 달콤한 소스로 버무려진 샐러드. 소녀는 불꽃 너머의 식탁을 보고 침을 삼킨다.

"맛있겠다."


성냥은 계속 타들어 간다. 불꽃 너머의 광경을 보고 있던 소녀는 타들어 가는 성냥의 불꽃이 자신의 손가락에 닿는 것을 느끼고 화들짝 놀란다. 소녀가 떨어트린 성냥은 눈 속에 파묻혀 꺼진다.


소녀는 눈 속에 손을 파묻어 손가락을 식힌다. 그러면서 반대손으로 바구니에서 성냥을 찾아 꺼낸다. 또 성냥에 불이 붙는다.

이번에 나타나는 것은 크리스마스트리. 곱게 포장된 선물 상자들이 알록달록하게 빛난다. 소녀는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고 눈시울을 붉힌다. 흘러내리는 눈물은 옷 소매로 닦아낸다.


"좋아. 잘 돼 가고 있어."

골목에 숨어 소녀의 행동을 보고 있던 한유리가 말한다. 김유빈은 눈을 감고 집중이기에 소녀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오직 한유리가 전달해주는 상황으로 마법을 사용할 뿐. 할 일이 없는 이청하는 주변의 눈을 끌어다가 눈사람을 만들고 있다.

소녀가 들고 있는 성냥의 불꽃이 사라진다. 크리스마스트리도 불꽃과 함께 사라진다. 소녀는 성냥을 또 하나 꺼내 들어 불을 붙인다. 이번에 불꽃 너머로 보인 것은 소녀의 할머니.

"할머니?"


불꽃 너머에서는 인자한 미소의 노인이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불꽃 너머의 할머니를 바라본다. 바람이 불어온다. 불꽃이 꺼질 듯이 흔들린다. 불꽃 너머에 보이는 할머니의 모습도 흔들린다.


"안돼!"

소녀는 소리 지르며 바구니에서 성냥을 무더기로 꺼낸다. 할머니가 보이는 성냥의 불이 꺼지기 전에 성냥을 이어 불을 유지한다. 할머니의 모습이 계속 불꽃 너머로 떠오른다. 소녀는 성냥의 불꽃의 작은 온기를 느끼며 할머니를 바라본다.

성냥의 수가 점점 줄어든다. 소녀는 떨리는 손으로 계속 성냥의 불을 이어붙인다. 할머니의 모습을 계속 볼 수 있도록.


결국, 마지막 성냥에 불이 붙는다. 자그마한 불꽃이 일렁인다. 소녀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할머니의 모습을 바라본다. 밤바람이 불어와 성냥의 불을 끈다. 할머니의 모습이 사라진다. 소녀는 한참이나 재가 되어버린 성냥 무덤을 바라본다.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뒤쪽에 작은 눈사람을 만들어 놓은 이청하가 소녀의 행동을 바라보며 말한다. 한유리는 고개를 돌려 이청하를 바라본다.


"원래 성냥을  쓰기 전에 성냥팔이 소녀가 죽지 않아요? 별똥별도 떨어지지 않고."


이청하의 말에 한유리의 시선이 소녀에게 집중된다. 소녀는 아직 타버린 성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한유리는 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불안감을 느낀다.

불타버린 성냥을 보고 있던 소녀는 일어선다. 맨발로 눈을 밟고 하늘을 바라본다. 별이 총총히 박혀있는 광활한 우주를.


"할머니. 전 여기서 지지 않겠어요!"


소녀는 주먹을 쥐어 들어 올린다.

"헐."

한유리는 짧게 한 마디를 내뱉고 머리를 붙잡는다. 마법의 사용을 끝낸 김유빈도 소녀의 모습을 보고 머리를 긁적인다. 이청하는 골목을 힘차게 걸어가는 소녀의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쉰다.

"어떡하지?"


"일단 오늘 내로 끝내기는 글렀네."

"어차피 성냥팔이 소녀는 밤이 배경이니 시간을 돌리죠."


이청하의 의견에 따라 김유빈이 마법서를 펼친다. 김유빈의 입에서 흘러나온 언어는 마법이 된다. 곧 그의 손에 회중시계가 나타난다.

"어느 정도로 돌리지?"

"일단 아침."

한유리의 말에 김유빈이 시계의 시침을 건드린다. 시침이 시계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인다. 그에 따라 하늘이 변화한다. 달이 회전하고, 별이 회전한다. 멀리서 태양이 떠오른다.

아침이 된 것을 확인한 김유빈은 시계에서 손을 뗀다. 이제 다시 시간은 정상적으로 흐른다.


"좋아. 준비는 됐고. 주인공을 찾아볼까!"


"질문 하나만 해도 돼요?"


김유빈이 손뼉을 치며 움직이려  때 이청하가 손을 든다. 김유빈은 이청하를 바라본다.


"왜 거꾸로 안 돌려요?"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대답은 한유리가 한다. 이청하는 김유빈에게서 시선을 돌려 한유리를 바라본다.

"악마가 영향을 끼친 것은 밤 이후. 그렇다면 그전으로 돌릴 필요는 없지."


한유리의 대답에 이청하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저기 성냥팔이 소녀다."


김유빈이 골목 저편을 가리킨다. 한유리와 이청하의 시선이 김유빈의 손가락을 따라간다.


금발 소녀의 얼굴은 말 그대로 가관이다. 왼쪽 눈은 부어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다. 입술은 찢어져서 아물고 있다. 양 뺨은 파란색으로 물들었다. 옷 사이로 빠져나온 손에는 찢어진 상처가 보인다.

"으으."

소녀의 처참한 모습을 본 이청하가 작게 신음을 흘린다. 김유빈과 한유리도 눈살을 찌푸린다.


성냥을 팔지 못해 아버지에게 맞은 소녀의 발걸음은 무겁지 않다. 어제 맹세한 대로 소녀는 주저앉지 않는다. 눈은 어느새 그쳤다.

"따라가자."


투명해진 사서들을 보지 못한 소녀는 골목을 나아간다. 김유빈은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소녀의 뒤를 따라 걷는다. 한유리와 이청하는 서로 눈짓을 주고받고 김유빈의 뒤를 쫓는다.


소녀는 골목을 나와 거리를 걷는다. 사람들은 소녀의 얼굴에 잠시 눈길을 주지만, 이내 발걸음을 옮긴다. 소녀는 사람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계속 걸어간다.

"어디 가는 거지?"

"이야기에는 안 나오는 곳."


김유빈은 짧게 대꾸한  소녀의 뒤를 따라간다. 질문한 한유리는 짧게 혀를 차고 빠르게 걸음을 옮긴다. 이청하는 두 선배의 행동에 한숨을 쉰다.


소녀는 다시 골목으로 들어간다. 골목의 어두운 길을 따라 걷던 소녀는 중간에 난 나무문으로 들어간다. 사서들은 시선을 짧게 나누고 문을 소리 나지 않게 연다. 재빠르게 건물 안으로 들어간 사서들은 소녀의 위치를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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