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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화 〉109화 출발점 귀환 (110/144)



〈 110화 〉109화 출발점 귀환

"좋아! 그럼 시작!"

유리가 기타를 연주한다. 나와 유리는 음표를 타고 위로 날아오른다. 청하는 악마의 발밑에서 검을 들고 준비한다.  검이 악마의 몸을 벨  있을지는 미지수. 그래도  번 시도는 해봐야지.

악마의 주위를 뱅글뱅글 날아다니며 마법을 준비한다. 칼라모일과 들어갔던 다른 차원의 이야기의 악마와 비슷한 크기. 하지만 풍겨오는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이쪽이 훨씬 약하다. 그냥 덩치만 클 뿐.


내 입에서 나온 마법의 언어가 실체화되어 세상에 영향을 끼친다. 맑게 빛나던 하늘은 검게 변한다. 검은 먹구름 사이로는 번쩍이는 섬광이 지나간다.


"어이. 여기  보라고!"

유리가 소리치며 악마의 주의를 끈다. 악마는 거대한 얼굴을 돌려 나와 유리를 바라본다.  거대한 팔을 들어 올려 음표를 향해 내려친다.

기타가 거친 선율을 내뿜는다. 음표는 옆으로 강하게 움직이며 악마의 팔을 피한다. 흔들림 때문에 집중을 놓칠 뻔했지만, 간신히 마법을 유지했다.

"내리쳐라."


먹구름이 우르릉거리며 번개를 내뱉는다. 백색의 섬광은 악마의 머리를 내리친다. 악마의 피부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나온다. 그러나 악마는 계속 움직인다.


악마의 손이 유리를 잡기 위해 뻗어나 온다. 유리는 기타를 연주하며 음표를 움직여 악마의 팔을 피해낸다. 계속 아가의 주위를 뱅글뱅글 돌며 번개를 떨어트린다.


"생각보다 단단한데?"


십수 발의 번개가 내리꽂혔지만, 악마는 계속 움직이며 우리를 추격한다. 유리의 조종 실력이라면 악마의 공격에 맞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무의미하지.


"청하야!"

"갑니다!"


이름을 부르자 곧바로 대답이 돌아온다. 밑에 청하가 조그마하게 보인다. 검을 들어 올리고 악마의 발목을 향해 휘두른다. 검이 악마를 베고 지나간다. 악마가 균형을 잃고 무너져 내린다.


 틈을 노려 마법의 주문을 읊는다. 땅에서 나무 덩굴이 솟아오르며 악마를 휘감아 움직임을 봉쇄한다.

"내려가자."


내 말에 유리가 기타를 연주해 음표를 땅에 닿게 한다. 음표에서 내려와 청하와 합류한다. 유리도 음표를 지우고 땅에 발을 딛는다.

"빨리 처리하고 돌아가자."

황금의 펜을 휘둘러 거대한 검을 만들어낸다. 나보다도 더 큰 검. 보기에는 무겁지만, 실제로 들면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거대한 악마의 목을 베어내기에는 안성맞춤인 그런 검. 높이 들어 올린 검을 그대로 내리친다. 악마의 머리가 몸에서 떨어져 나와 데굴데굴 굴러간다.

"윽."


약간 잔혹한 장면에 청하가 얼굴을 찌푸린다. 검투장에서만 해도 신나서 칼 휘두르고 다녔으면서. 유리도 얼굴이 약간 굳는다.
굴러가던 악마의 머리도, 머리를 잃은 악마의 몸도 연기처럼 사라져 간다. 땅에 홀로 박혀 있는 검을 펜의 힘으로 지워버린다.

"으아! 끝났다!"


유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땅이 흔들리더니 쩍 하고 갈라졌다. 그리고  갈라진 틈에서 검고 거대한 팔이 올라왔다.  팔은 땅을 붙잡는다. 몸통이 솟아오른다. 아까보다  커진 악마.


"저건  뭔가요."

 정신세계에서 일어난 일을  나한테 묻니. 우리는 전부 거대한 악마를 보고 깊은 한숨을 내쉰다. 아직 악마는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 듯 멍하니 한 곳을 바라본다. 전에 있던 악마도 한 곳을 바라봤지.

시선을 옮겨 악마의 얼굴 정면이 바라보는 곳을 본다. 그곳에는 청하가 앉아 있던 병원이 보인다. 뭔갈 원하는  같은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저거 또 잡아야 할까?`

유리가  어깨를 두드리며 물어본다. 고개를 돌려 유리의 얼굴을 바라본다. 시야 한구석에 청하의 모습이 보인다.

"어차피 또 다른  나올걸? 다른 방식을 찾아야지."

"어떤 방법이요?"


"나름대로 생각해 둔 게 있어. 유리 음표 만들어줘."

내 말에 유리는 바로 기타를 연주한다. 나와 유리는 음표에 올라타 청하를 바라본다.


"어……. 그러니까……. 꼭 타야 해요?"


청하는 눈을 이리저리 돌리며 말을 이어가지 못한다.

"꼭 타야 해."

단호한 말에 청하는 울상을 지으며 음표에 올라탄다. 모두 올라타자 유리가 기타를 연주하여 음표를 공중에 띄운다.

"히익!"


음표가 떠오르자마자 청하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는다. 이런 애가 어떻게 놀이기구는 탔을까. 진짜 의문이다.


"어디로 가?"


"병원으로."

기타의 연주에 음표가 움직인다. 청하는 내 뒤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다. 맨 처음 진동이 울렸을 때 병원의 구조가 변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랬을  같지는 않단 말이지.

빠른 박자의 곡을 따라 음표는 금세 병원 입구에 멈춰 섰다. 원래는 창문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전부 벽으로 막혀 있다.

"조…. 조금만 쉬었다……. 가요……."

청하는 돌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숨을 몰아쉰다. 청하가 회복하는 동안 나는 마법으로 병원 안쪽을 살펴본다. 특별히 느껴지는 것은 없다. 악마의 흔적도 다른 생명체의 흔적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병원에는 무언가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건 마법이 아니라 사서의 감이다. 꾸준히 책을 읽어온 사람으로서. 꾸준히 글을 써온 사람으로서.

"준비됐어요."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청하가 일어난다. 안색이 창백하다. 그래도 움직일 수는 있나 보다.

"그럼 들어간다?"


창문이 하나도 없는 병원의 회색 벽에는 불투명한 유리로 된 현관이 있다. 유리와 시선을 잠깐 마주하고 힘차게 열어젖힌다.

건물은 하나의 복도로 되어 있다. 약품 냄새가 코를 찌른다. 껌뻑이는 유백색 등이 새하얀 복도를 밝힌다. 우리가 걸어가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적막. 고요가 건물 내부를 휘감으며 지나간다.

"뭔가 불안한데."

 옆을 걷고 있는 유리가 말한다. 나도 동감이다. 걸을 때마다 복도에 울려 퍼지는 발소리가 기이하게 느껴진다. 뒤에서 따라오는 청하도 불안한지 눈을 이리저리 돌린다.

복도의 끝에는 엘리베이터가 1층에 내려와 있다. 마치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잠시 엘리베이터 문 앞에 멈춰 서서 서로의 눈치를 본다.


"들어가야겠지?"

"그렇지 않을까요?"


한숨을  쉬고 엘리베이터 옆의 버튼을 누른다. 올라가는 버튼밖에 없다. 금속 문이 열리고 안쪽의 모습이 보인다. 하얀 등과 금속 빛의 손잡이. 거울은 존재하지 않는다.


침을 삼키고 안으로 들어간다. 특별히 수상쩍은 점이 있다. 버튼이 하나다. 그것도 4444층. 이런 미친. 4가 네 개라니. 그것도 병원에서. 어쩔 수 없다. 누르는 수밖에.

버튼이 빨갛게 빛나고 엘리베이터가 움직인다. 기계음이 공간을 채운다. 우리는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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