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122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히익!"
김유빈이 만들어낸 두꺼비를 처음 본 팥쥐는 그대로 땅에 엎어진다. 팥쥐가 부은 물에 흠뻑 젖은 흙은 팥쥐의 옷에 흔적을 남긴다.
"널 도와주러 왔어."
두꺼비의 말에 팥쥐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다. 넘어진 팥쥐는 침을 삼키고 주위를 둘러본다. 그 눈에는 도움을 요청하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내가 도와줄게."
팥쥐를 경악하게 한 두꺼비는 다시 팥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팥쥐는 두꺼비가 말하는 내용보다, 말한다는 그 사실 자체에 경악 중이다.
"어이고야."
자신이 만들어낸 두꺼비를 바라보며 김유빈은 깊게 한숨을 쉰다. 두꺼비가 못생기긴 했지만, 저렇게까지 반응할 줄은 몰랐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한유리는 김유빈에게 나무라는 듯이 말을 뱉는다. 김유빈은 혀를 한 번 차고 마법서를 꺼내 든다.
"두꺼비 말고 다른 거로 하자."
"원래 이야기에서는 두꺼비 아닌가요?"
"어차피 팥쥐가 대상인 이상 이야기에 맞춰갈 필요는 없겠지."
마법서를 펼쳐 든 김유빈이 중얼거리자, 팥쥐 앞의 두꺼비가 땅속으로 들어간다. 팥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난다.
팥쥐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는지 몇 번의 심호흡을 한 뒤 다시 두레박을 끌어올린다. 진흙이 잔뜩 묻은 옷을 입은 팥쥐가 물을 독에 들이붓는다. 당연히 물은 흙으로 쏟아진다.
"에휴. 한 시간만 더 하고 들어가자."
한숨을 내쉰 팥쥐는 다시 두레박을 우물로 내린다. 그리고 팥쥐가 우물을 바라보는 동안 밑 빠진 독에서 빛이 난다.
물을 끌어올린 팥쥐는 다시 독에 물을 붓는다. 차오를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물이 독으로 쏟아진다. 팥쥐는 독 안에 조금 차오른 물을 보고 한숨을 쉰다.
"차올랐다고?"
팥쥐는 다시 독을 들여다본다. 물이 차올랐다. 분명 밑이 빠져 있는 상태는 그대로인데. 독이 차올랐다.
"이게 뭐야."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뭔가를 중얼거리던 팥쥐는 독을 들어 올려본다. 밑이 빠져 있어 독 건너편의 모습이 보인다. 동시에 물은 독 안에 담겨 있다.
"하?"
팥쥐는 다시 독을 내려놓고 고민에 잠긴다. 도대체 이것이 어찌 된 일인지. 조금 시간이 흐르고, 팥쥐는 다시 우물 밑으로 두레박을 내린다.
"방금 그거 뭐였어요?"
이청하의 질문에 김유빈은 머리를 긁적인다.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는 건 김유빈도 마찬가지.
"그냥 마법."
한유리는 김유빈의 대답에 한숨을 쉰다. 어찌 되었건, 팥쥐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어 채우고 있다. 스무 번 정도 두레박을 옮기자 독 입구에 물이 찰랑거린다.
"그런데 저걸 어떻게 들고가지?"
김유빈의 의문은 금방 해결되었다. 팥쥐는 물이 가득 들어찬 독을 두 손으로 안아 들어 올린다.
"헐."
사서들의 입에서 경악과 감탄이 섞인 말이 튀어나온다. 팥쥐는 물이 가득 찬 독을 들고 집으로 걸어간다. 그 무거운 독을 들은 팥쥐의 걸음걸이에 힘겨움은 나타나지 않는다.
"팥쥐가 저렇게 힘이 좋았나?"
"그런 장면은 못 봤던 거 같은데."
독을 들고 걸어가는 팥쥐의 뒤를 사서들이 따라간다. 팥쥐가 가진 힘이 놀랍지만,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니 신경 쓰지 않고.
집에 도착한 팥쥐는 물이 가득 찬 독을 마당에 내려놓고 콩쥐의 방으로 들어간다.
"콩쥐야. 물 다 떠놨어."
팥쥐의 말에 바닥에 누워 눈을 감고 있던 콩쥐가 눈을 뜬다. 그 눈에는 의문이 담겨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떴다고?"
콩쥐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당으로 나간다. 마당 가운데에는 물이 가득 담겨 있는 독이 있다. 콩쥐는 신을 신고 마당으로 내려가 독을 들여다본다.
"이건 또 뭐야?"
밑 빠진 독에 차 있는 물을 보고 콩쥐가 놀라 중얼거린다.
"뭐. 일단 하기는 했네. 오늘은 수고했고. 내일 또 와."
"알았어."
할 말을 다한 콩쥐는 다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팥쥐는 물이 가득 찬 독을 보며 한숨을 쉰다. 고생해가며 한 일에 의미가 없다. 다니 콩쥐가 시켰기에 한 일일 뿐.
팥쥐는 독을 다시 집 밖으로 옮겨 적당히 곳에 물을 쏟는다. 독은 다시 광으로 들고 가 안에 집어넣는다.
"팥쥐야."
팥쥐가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본다. 마루에는 아버지가 팥쥐를 내려다보며 서 있다.
"네. 아버님."
"다시 이 집에 와서 살지 않겠느냐?"
아버지의 말에 팥쥐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해간다. 어깨가 조금씩 떨리며 눈동자도 흔들린다.
"아…. 아니. 저…. 저기 그게."
팥쥐의 흔들리는 눈동자에 콩쥐의 모습이 들어온다. 콩쥐는 장지문을 살짝 열고 아버지와 팥쥐의 모습을 지켜본다. 콩쥐와 눈이 마주치자 팥쥐는 뒤로 한걸음 물러난다.
"아닙니다! 저와 제 어미는 따로 살겠습니다!"
"팥쥐야! 잠깐만 멈춰 보아라!"
팥쥐는 거의 도망치다시피 집 밖으로 뛰쳐나간다. 아버지는 달려가는 팥쥐를 쫓지 못하고 바라만 본다. 장지문 틈으로 보이는 콩쥐는 비웃음을 흘리고 방문을 닫는다.
".... 이야. 콩쥐 무섭네."
"그러게요."
사서들은 달려가는 팥쥐의 뒤를 따라 달려가며 대화를 주고받는다. 집을 뛰쳐나온 팥쥐는 자신이 살고 있다고 가리켰던 초가집을 향해 달려간다.
콩쥐가 살고 있던 기와집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초가집. 팥쥐는 얼른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여기가 팥쥐의 집인가?"
한유리는 팥쥐가 들어간 집을 둘러본다. 팥쥐가 사는 초가집은 그렇게 추레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거다. 기둥이나 벽이나 새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지어진 거 같은데?"
"콩쥐가 팥쥐와 계모를 내쫓을 때 지었겠지. 아마 콩쥐의 아버지는 팥쥐와 계모가 자진해서 나간 거로 알고 있을 테니."
김유빈은 한유리의 질문에 대답하며 집을 한 바퀴 둘러본다.
"그나저나 콩쥐는 왜 그랬을까요?"
한유리의 질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한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슬슬 작업 시작하자."
"방법은 생각해냈어?"
"고전 영화 하나가 떠올랐어."
김유빈의 말에 이청하와 한유리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고."
그렇게 말한 김유빈은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낸다.
"시간은 밤으로."
시계의 시침이 시계방향으로 빠르게 돌아간다.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고 달이 동쪽에서 떠오른다. 검은 하늘은 별이 가득 채우고 있다.
"그리고 시간 정지."
시침이 멈춘다. 시끄럽던 밤벌레들의 소리가 멈춘다. 바람에 흔들리던 풀잎이 멈춘다. 시간이 얼어붙으며 사서들만이 움직인다.
"좋아. 이제 콩쥐를 데려와."
김유빈은 이청하와 한유리를 바라본다. 한유리는 한숨을 쉰다. 멍청하게 서 있던 이청하를 끌고 콩쥐가 사는 집으로 걸어간다. 김유빈은 팥쥐가 있는 초가집을 바라보고 방 안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