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4화 〉133화 죽은 자를 위하여 (134/144)



〈 134화 〉133화 죽은 자를 위하여

"커헉!"

로미오는 병에 담긴 검은 액체를 마시고 목을 부여잡는다. 로미오의 몸에 독이 퍼져 나간다.

"으. 별로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네요."

"그러게 말이다."

사서들은 죽어가는 로미오를 보며 얼굴을 찌푸린다. 로미오는 돌로 만들어진 바닥에 엎어져서 온몸을 비튼다. 로미오는 단말마만을 남기고 모든 움직임을 멈춘다.

"좀 씁쓸하네."

한유리는 로미오의 죽음을 보고 가상을 말한다. 김유빈은 별다른 말 없이 로미오의 시신을 바라본다.

로미오와 파리스 백작의 시신이 식어간다. 그리고  속의 줄리엣이 신음을 흘린다. 눈을  줄리엣은 관에서 몸을 일으킨다.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에 부닥쳐있는지 확인하고자 주위를 둘러본다.

줄리엣의 눈이 커지고 표정이 경악으로 물든다. 그럴 수밖에. 깨어났더니 시체가  구가 있다면 누구든 놀라리라.

"로미오?"

 옆에 쓰러져 있는 로미오를 본 줄리엣이 관에서 나온다. 줄리엣은 쓰러져 있는 로미오의 어깨를 흔든다. 로미오는 아무런 미동도 없이 인형처럼 흔들린다.

"로미오! 제발 일어나세요! 로미오!"

줄리엣은 로미오의 이름을 외친다. 하지만 로미오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로미오가 죽었다는 것을 받아들인 줄리엣은 로미오의 가슴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차갑게 식은 로미오의 가슴은 줄리엣의 뜨거운 눈물로 적셔진다. 그렇다고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지는 않는다. 이것이 현실이었다면.

"으으"

로미오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온다.

"하아."

김유빈의 입에서는 한숨을 흘러나온다. 이청하와 한유리의 표정도 썩 좋지 않다.

"일단 시간을 돌릴게."

마법서를 펼쳐 들며 김유빈이 말한다. 되살아난 로미오와 줄리엣이 기적적인 재회를 하는 동안 김유빈은 주문을 읊기 시작한다. 한유리는 두 사람의 기적적인 재회를 바라본다.

김유빈의 손에 회중시계가 나타난다. 김유빈은 서로를 끌어안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바라보고 시침을 반시계방향으로 돌린다.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 로미오가 다시 죽어간다. 줄리엣은 관으로 들어간다. 다시 시간이 흐르기 시작할 때, 로미오는 약병의 뚜껑을 열고 있다.

"일단 멈추고."

김유빈이 시침을 건드리자 이야기의 모든 것이 멈춘다. 이야기 바깥의 존재인 사서들만이 움직임을 유지한다.

"좋아. 로미오를 확실히 죽일 방법을 생각해보자."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위해서라면 내뱉어서는 안 될 말. 하지만 이들은 사서다. 이야기를 수호하는 자들. 사서들은 돌무덤에 자리를 잡고 로미오를 죽일 방법에 대해 토의한다.

"목을 조르면?"

"독을 먹이는 방법만 써야 해."

"마법으로는 해결 못 해요?"

"어울리는 마법이 없어."

"양이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으니 더 먹여보자."

"좋은 거 같아요."

"나쁘지는 않겠다."

한유리의 의견이 받아들여지고 그에 따라 사서들은 움직임을 시작한다. 김유빈은 멈춰 있던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한다. 로미오는 병 안에 담겨 있는 검은 액체를 유심히 바라보고 병을 들어 올린다.
로미오의 목으로 독이 넘어간다. 충분히 마셨다고 생각한 로미오가 병을 입에서 떼려 하지만, 무언가에 의해 막힌다. 투명한 상태인 이청하와 한유리가 로미오의 손을 잡는다. 입에서 병을 때지 못한 로미오는 계속 액체를 들이켠다.

한유리와 이청하는 병이 비게 되자 손을 뗀다. 로미오는 그대로 병을 떨어트리고 쓰러진다. 임무를 마친 한유리와 이청하는 김유빈이 서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확실히 죽었겠지?"

"맥박을 재볼까?"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요?"

김유빈은 이청하의 말에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일단 지켜보자고."

로미오가 쓰러진 관에서 줄리엣이 일어난다. 줄리엣은 아까와 같이 로미오를 바라보고 그의 가슴에 엎드린다. 다시 줄리엣이 로미오의 이름을 외치지만 로미오는 눈을 뜨지 않는다.

"죽었네."

"죽었네요."

"죽어버렸네."

세 명의 사서는 로미오의 죽음을 무미건조하게 서술한다. 줄리엣은 그런 단조로운 서술과 달린 온몸의 물을 쏟아내듯 눈물을 흘린다.

한참을 눈물을 흘린 줄리엣이 로미오의 가슴에서 얼굴을 들어 올린다. 퉁퉁 부은 줄리엣의 얼굴에는 결연한 의지가 드러난다.

"이제 자살하는 건가?"

"그럼 좋겠는데……."

김유빈은 한유리의 질문에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한다. 아직 수정할 부분이 남아있다는 것을 김유빈은 직감한다.

줄리엣은 한참이나 로미오를 내려다본다. 로미오는 그저 고요하게 누워있을 뿐. 줄리엣이 돌 바닥에서 일어난다. 줄리엣은 불타는 눈동자로 하늘, 정확히는 무덤의 천장을 바라본다.

"로미오 당신의 사랑은 영원히 기억될 거에요."

"어…. 불안한 느낌이 드는  저만은 아니죠?"

"나도 불안해."

한유리와 이청하는 줄리엣의 행동에 강한 불안을 표현한다. 줄리엣의 행동은 곧 자살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살아갈 힘을 새로 얻은 사람의 모습.

"전 이렇게 무너지지 않아요! 당신의 사랑을 기억하며 끝까지 살아보겠어요!"

"미치겠네."

줄리엣의 당당한 선포에 김유빈은 한숨을 내쉰다. 이청하와 한유리도 깊은 한숨을 내쉰다.

"일단 멈추고."

김유빈이 회중시계를 건드리자, 시간이 멈추어 버린다. 줄리엣은 삶에 새로운 용기를 얻었던 그 자세 그대로 움직임을 멈춘다. 그런 줄리엣의 모습을 보고 다시 한 번 한숨을 쉰 사서들은 적당히 자리를 잡고 주저앉는다.

돌 바닥이 뿜어대는 특유의 냉기를 느끼며 사서들은 줄리엣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토의를 시작한다.

"도대체 어디가 문제인 걸까."

김유빈이 던진 질문에 선뜻 답하는 사람은 없다. 한유리와 이청하는 김유빈의 눈을 피한다. 사실 김유빈도 별다른 방법이 없기는 매한가지.

"첫 만남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까요?"

"그건 아닐 거야. 아예 이야기의 장면이 바뀌었으면 그 장면 내부에 문제가 있는 거야."

"유리 말이 맞아. 이 장면 내부에서 처리해야 해."

이청하의 질문 이후로 한동안 말이 사라진다. 사서들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고민한다.

"사랑이 부족한가…."

"응? 뭐라고 했어?"

김유빈의 흘러 지나가는 말을 한유리가 듣는다.

"어? 아. 사랑이 부족하냐고 생각해봤어."

"무슨 의미에요?"

"줄리엣이 로미오를 따라 죽은 건 사랑해서라고 할 수 있잖아? 그래서 혹시 사랑이 모자란 건가 생각했지."

한유리는 김유빈과 이청하의 문답을 듣고 눈을 반짝인다.

"해보자."

"뭘요?"

"사랑을 불어넣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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