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강대국 14화
“네? 바로에게 포자를 뿌리라고 명령하라고요?”
아무것도 모르고 바로의 방문 앞까지 끌려온 재배수는
여왕의 말에 크게 당황했다.
“바로의 포자가 뿌려지면 동물들은 모두 죽는다고요.”
“당연히 알고 있지 하지만 지금은 그 동물을 죽이지 않으면
우리 쉬머쉬국이 모두 불타서 죽을게 뻔하잖아”
여왕은 스피족들이 같이 참인왕국을 선제공격하자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여서 출진을 명령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부대가 괴멸상태라는 소식을 접하고는
비밀로만 숨겨두었던 바로의 포자를 뿌릴 계획이었다.
“포자를 뿌리면 바로는 죽잖아요!”
날카로운 창을 들이밀면서 재촉하자 재배수는 할 수 없이
바로의 방문 손잡이를 잡으면서 여왕에게 말했다.
“여왕의 자식은 바로뿐만이 아니지, 모든 국민들이라고”
여왕은 어떠한 비난이라도 달게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이미 확고한 다짐이 끝난 뒤로
쉽게 설득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국민들을 위해서 여왕이 아닌 바로의 어머니를 포기하고
희생해야지, 물론 바로도 말이야”
결국 재배수는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바로야 잘 지냈어? 배수 형이야 기억해? 이쪽은 카냔”
상냥하게 인사말을 주고받을 때가 아니었다.
여왕은 한두 번 좋게 말로해서 바로가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면 이미 고문을 통해서라도 강제로 바로의
포자를 뜯어낼 생각이었다.
“예전에 했던 약속 기억하지?”
재배수는 슬쩍 본론을 말했지만 바로는 등을 돌린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미 늦었어, 뭐해 강제로 뜯어내!”
여왕은 약간의 쉬는 시간을 주면서 바로를 기다렸지만
그래도 무시가 계속되자 병사들을 시켜서 강제로
바로의 몸에 붙어있는 포자를 긁어내 뜯어냈다.
숨이 끊긴 바로는 축 힘없이 바닥에 나풀거리는
말라비틀어진 버섯이 되어 처량하게 초점을 잃은 눈빛으로
재배수를 바라보았다.
“준비되는 대로 빨리 뿌려, 도착한 뒷면 늦어”
여왕은 빠르게 준비하여 포자를 뿌리라며 명령하였고
병사들은 바짝 긴장을 하며 포자를 들고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다.
“여왕님, 지금 포자가 뿌려지는 저희들은 죽어요.”
수리가 슬쩍 상황을 파악하고는 돌아갈려는 쉬머쉬국의
여왕을 붙잡았다.
“칫, 그래도 동맹국이었으니 옛정으로 도와주지”
여왕은 신하 한명을 부르더니 귓속말로 명령을 하고는
가마를 타고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방호복을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신하의 안내를 받고 도착한 곳에는 전신을 보호할
방호복과 함께 외부의 산소를 공급받을 산소통까지
빠짐 없이 준비되어있었다.
“이만 제 역할은 끝났습니다. 갈아입으시고 편하게
돌아가시면 됩니다.”
“고맙습니다.”
재배수는 서둘러서 방호복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포자가 언제 뿌려질지는 모르겠지만 여왕의 확고한 명령이
내려졌으니 포자가 뿌려진다는 것은 확정시 되었으니
최대한 빠르게 안전한 지역으로 대피해야한다.
“수리야 불편하겠지만 꼼꼼하게 빈틈없이 입어야 해”
재배수는 그래도 일단 군대에서 MOPP 상황 훈련을
했을 때 낡아빠진 천조가리를 방호복이라고 입으라는 것을
신속하게 입었던 생각을 하면서 주섬주섬 챙겨 입었지만
수리 혼자서 이렇게 크고 무거운 방호복을 입기는 힘들어
보였다.
“오빠 카냔의 꼬리는 어디로 넣어야 해?”
수리는 일단 카냔이 방호복을 입는 것을 도와주었지만
꼬리를 어디로 넣어야 하는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며
재배수에게 도움을 청했다,
“급하니 일단 바지 속으로 넣어야지, 밖으로만 빼지마”
“꼬리가 꺾이니 아프다냥 ㅠㅠ”
카냔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등 뒤로 들려왔지만
그래도 착용하고 나온 모습을 보니 꼼꼼하게 잘 입은 것
같았다.
“산소통 한 개가 20분이니 빨리 가야겠어.”
쉬머쉬국에서 지하2층 까지는 걸어서 30분이 걸리는
거리로 이미 시간상으로는 촉박했다.
“오빠 저기서 연기가!”
방호복을 맞게 잘 입었나 확인하던 중 쉬머쉬국의 공장에서
초록색의 뿌연 연기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20분이야 모두 잘 기억해둬”
재배수는 빠른 걸음으로 앞장서며 걸어 나갔고
대로변에 도착하니 버섯주민들이 최후의 승리는 버섯이라며
환호하며 전장으로 나가는 군인들을 향해서
꽃다발을 나눠주고 있었다.
“뛰면 호흡이 빨라져 산소를 더 많이 쓰니, 호흡에 의식해”
머리까지 방호복으로 덮여있어 내쉬는 입김으로 시야가
차단되어 잘 보이지 않았고 방호복만 해도 무거운데
등 뒤로는 산소통까지 짊어지고 나가니
땀이 미친 듯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흘린 땀은 다시 뚝 뚝 떨어져 발쪽으로
조금씩 쌓여가기만 했다.
“힘들게 뭘 그런 걸 뒤집어쓰고 다녀! 빨리 타”
힘겹게 지하 통로까지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던 중
불쌍한 눈빛으로 바라본 상인이 자신의 마차를 타라며
앞에서 멈추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뭐 하는 사람인데 불편하게 그러고 다녀?”
상인은 이상한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재배수들을 측은하게
바라보며 물이라도 마시라고 병을 건네주었지만
방호복을 벗을 수 없어서 웃으며 거절하였다.
“전쟁이 좋다 나쁘다 라고는 말 못하겠지만
나 같은 행상인들은 이럴 때 물건을 팔아야 대박으로
벌 수 있어서 말이야”
상인은 전쟁 특수를 노리고 무기나 다른 원자재를
팔기 위해 스피족들의 본거지인 지하3층으로 내려간다고
말했다.
“통로까지 데려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휴 참 마음 같아서는 목적지까지 태워주는 건데
마차랑 사람이랑 통로가 달라서 말이지”
“아닙니다. 장사 대박 나세요~!”
30분이 걸릴 거리였지만 운 좋게 마차를 얻어 타
절반인 15분 만에 도착했다.
통로를 내려가기 전에 잠시 검문을 했지만
전쟁 상황에서 자국을 벗어나려는 국민들만 걸러내었고
외국인들은 신속하게 내보내는 것이 외교적인 마찰을
피하려는 수법 같았다.
“흐냣! 귀다 다 젖어서 내려앉았다냥”
짜증났던 방호복의 머리 부분을 벗자
후끈후끈한 열기가 드디어 자유를 찾아서 하늘로 날아가며
뿌연 연기를 내뿜었다.
머리카락은 모두 땀으로 흠뻑 젖어
보기만 해도 끈적거리고 무척 불쾌한 느낌을 주었다.
“일단 한층 내려왔으니 방호복은 벗을까?”
재배수는 답답하고 짜증났는지 방호복을 벗으며 말했다.
“네? 벗는다고요? 아무리 그래도 노출취향은 없어서,,,”
주섬주섬 방호복 바지를 벗는 재배수의 모습을 보고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돌렸다.
고수리와 카냔은 방호복을 입을 땐 아무것도 입지 않고
맨 살로 입어야하는 줄 알았던 것이었다.
“억울하다냐아! 수리가 다 벗으라고 했다냥”
귀랑 꼬리가 젖은 카냔은 옷을 벗지 못한다는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재배수의 눈을 손으로 가리고는 방호복을
벗었다.
“하아, 얼굴에 땀투성인데 이래도 돼?”
재배수는 귀여운 카냔이 아니라 다른 남자 친구였으면
땀 때문에 짜증나서 바로 후려쳤을 것이다.
“킁! 킁 이상한 냄새가 난다냐아”
카냔은 코를 킁킁거리면서 주변의 냄새를 맡기 시작하더니
금방 코를 찡그리면서 방호복을 챙겨 입었다.
“야 카냔! 내 몸에서 나는 냄새가 아니라고
여기 지하 2층은 쓰레기가 많아서 그래”
지하 2층은 수많은 쓰레기 산으로 가득하여
썩는 악취로 가득했지만 밀폐된 방호복 안에서 지독한
땀 냄새로 코가 마비되었고 코가 회복되어 적응되자
황급히 방호복으로 피한 것이다.
“옷도 그렇고 일단 3층까지는 방호복을 입고 내려가자”
알몸으로 이동 할 수는 없었기에 답답하지만 방호복을
입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산소통이라도 벗으니 한결 가벼워요.”
등은 가벼워졌지만 그래도 무겁고 밀폐된 환경으로
땀은 주륵 주륵 멀출 생각이 없어보였다.
“거기 앞에 3명!”
지하 3층에 도착하여 답답한 마음으로 방호복을
벗어 던질 생각으로 쉬면서 누워있었는데 스피족 병사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네? 무슨 일인가요”
“근처에서 인간 냄새가 나는데 인간을 봤나 해서”
병사들이 킁킁거리면서 인간의 냄새가 바로 근처라며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끝내 재배수를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는 다른 곳으로 수색하며 떠났다,
“아마도 방호복 때문에 다른 종으로 착각했을 거야”
처음보는 특이한 복장으로 스피족이 보기에는
다른 층에서 살고 있는 새로운 종족으로 보였을 것이다.
“더 이상은 무리다냥! 수리도 탈진해서 죽을지도 모른다냥”
결국 카냔이 답답하다며 소리치기 시작했고
수리도 숨소리가 거친 것이 이대로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는
힘들 것 같았다.
“알겠으니 제발 그만 벗어, 냄새로 들킨다고”
재배수는 옷을 벗으려는 카냔을 최대한 어르고 달래어
옷을 찾아오겠다며 잠시 기다리라고 말했다.
“이런 황무지에서 옷을 찾을 수 있을까?”
재배수는 일단 근처를 돌아보면서 옷을 대신한 만한
거적대기라도 가져갈 생각으로 바위틈에서 내려가자
밑에서는 수많은 인간들을이 학살되어 구덩이에
버려져있었다.
“너무해”
재배수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구덩이 속에서
초점 잃은 눈빛으로 멍하니 누워있는 것에 공포감과 분노를
느끼며 다가가는 것에 살짝 거부감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좋은 곳으로 가세요.”
옷을 벗기기 전에 손을 모아 정중하게 기도를 올렸다.
“많이 기다렸지? 여기 옷을 가져왔어”
재배수가 옷을 높이 흔들면서 다가오자 카냔은 망설임 없이
바로 방호복을 벗기 시작했다.
“야 그래도 냄새가 퍼지면 큰일이니 조그만 더 참아봐”
근처에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였지만 방금처럼 순찰을 도는
병사들이 있을 지도 모르니 안전하게 지하 4층으로
내려가는 통로가 보이면 옷을 갈아입고 뛸 작전이었다.
“생각보다 많이 없네?”
바위 뒤로 숨어서 본 지하 4층으로 내려가는 통로는
사실상 경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있었다.
대부분의 병력은 참인 왕국과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하여
후방의 병력은 최소한으로 두고는 모두 이동시킨
결과였다.
“수리는 내가 도와주겠다냥”
지켜서 몸에 힘이 없는 수리는 카냔이 옷을 갈아입히고는
등에 업고 뛸 준비를 끝내었다.
“야 부사수 뭔가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 점심 메뉴 뭐야?”
스피족들은 후각이 그리 크게 발달한 편은 아니었지만
땀에 쩔은 인간과 수인의 냄새 정도는 금방 알 수 있었다.
“더 빨리 뛰어!”
“흐냣!”
재배수는 찰나의 틈을 노리고는 전력 질주를 하며
병사들 사이를 뚫고 통로로 들어왔다.
“야 그냥 보내! 안으로 들어가면 너도 위험해”
스피족들은 이미 통로로 들어간 재배수를 그냥 바라만 보며
굳이 추격하여 따라 들어올 생각은 없어 보였다.
“카냔 잘 따라오고,,,”
재배수는 등 뒤로 카냔의 인기척이 사라지자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자 그리운 냄새로 가득한
지하철이 보였다.
향긋한 델리만쥬의 냄새가 코를 자극하였고
무의식적으로 평소 자주가던 방향으로 발을 옮기니
1호선 급행열차가 정겹던 음악소리와 함께 들어왔으며
뭔가 계속 맡고 싶은 쇠가 타는 향에 정신이 멍해졌다.
“어째서 내가 이곳에 있는 거지?”
재배수는 당연히 환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급행열차를 놓치기 싫어서
밀며 열차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재배수도 등쌀에 밀려 전철 칸 안으로 몸을 실었다.
덜컹 덜컹 규칙적인 흔들림
에티켓을 지킨다고 착용한 이어폰에서 큰 소리로
세어 나오는 음악소리
다음 역을 안내하는 방송소리까지 모든 것이 현실과
너무나도 유사했다.
아니 현실 그 자체였다.
“어 엄마, 알바 면접은 합격했어.”
재배수는 재수하는 동안 생활비를 부모님께 의존하며
생활했었지만 더 이상 손을 벌리기는 부담되어
전철로 2정거장인 거리였지만 주말 야간 편의점 알바에
합격한 것이다.
“응, 새벽에 손님도 없겠다 조용하게 공부나 하려고”
그렇게 재배수는 알바에 합격한 24시 편의점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