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화 〉두근두근 문예부 (6/73)



〈 6화 〉두근두근 문예부

"흐응…"

"아무리 그래도 졸면서 밥 먹는 건 좀 아니지 않아?"


밥을 먹다가도 꾸벅이며 졸기 시작하는 선아의 어깨를 아프지 않게 두드려준다. 아무래도 선아는 잠이  많은 타입인 듯, 이렇게 조는 것도 일상다반사일 뿐 더러, 첫날에 지각한 것도 그만 늦잠을 잤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면증 같은 게 아닐까 싶어 걱정은 되지만, 성적은 그리 나쁘지 않다고 하니 괜찮을 것이다.

입학식으로부터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선생님이나 같은 반 애들의 면면도 익히고, 교과서를 전부 예습하느라 제법 바빴다. 다만 친구는…그다지 사귈 수 없었다. 이유는 몰라도 여자애들이 나를 기피하는 느낌이랄까. 선아에게 물어보면 그녀도 곤란한 얼굴로 어색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뭐, 선아 한 명이라도 친구가 있으니 다행이지만은.

급식을 먹고 있는 지금도 내 옆에는 오직 선아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은 그 선아마저도 조느라 말이 없어져서, 조금 외로운 기분.

아, 여담으로 급식은 급식이라 부르기엔 지나칠 정도로 호화스러웠다. 서민의 안목으로 예상컨대 급식비 자체도 꽤 비싸지 않을까. 빈곤한 나로선 장학 지원 목록 안에 급식비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누릴  있는 사치였다.

"잠깐 옆에 앉아도 될까?"

"응? 어어…"

그때 누군가가 돌연 비어있는 나의 옆에 자리를 잡고 식판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그 누군가는 활기찬 목소리로 양해를 구해왔다. 내가 여기 전세 낸 것도 아니고, 다른 곳에 빈자리가 많은데도 굳이 내 옆에 착석한 건 의외였지만 대충 수긍한다. 하지만 이윽고 흘깃 옆을 보았을 때, 나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작지만 탄탄한 몸매의 남학생이었다. 구릿빛 피부에 서글서글한 미소가 매력적이고, 찰랑거리는 은빛 머릿결이 깨끗한 미소년.

어느 순정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비현실적인생김새. 실제로 만화는 아니었지만, 비슷한 장르의 게임에 출현하기도 했고.

하필이면 여기서 게임의 공략 대상과 만나게 될 줄이야.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이 녀석의 이름은 최형곤, 게임 안에서는 누구에게나 친근한 성격과 곱상한 외양으로 인기를 끌던 녀석이다. 한편 게임 속의 선아가 사랑하는 인물이기도 하고.

정작 내 옆의 선아는 딱히 그에게 관심이 없어 보이지만 말이지. 지금 그가 말하려는 순간에도 선아는 그를 살짝 흘겨볼 뿐, 고개를 꾸벅이며 졸고 있었다. 아마 어지간히도 졸린가 보다.

뭐, 나 역시도 그에게  관심은 없었다. 오히려 조금은 기피하고 있다 해야 할까. 같은 반이니 만큼 그의 얼굴이야 입학식 날부터 익히고 있었지만, 지금껏 혹시라도 게임과 같이 플래그가 박힐까 싶어 의도적으로 접점을 만들지 않고 있었다. 여자라면 모를까, 남자와 얽히는 것은 아직도 꺼려지니까.

"반장 선거 오늘 하는 거 알고 있어?"

"응…"

선생님이 말한  바로 오늘 아침이니까. 별로 관심은 없다 해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분명 오늘 담임 선생님의 교과 시간에 한다고 했었지. 그건 그렇고 갑자기 이런 일을 나에게 물어오는 저의가 뭘까.


"슬슬 준비하고 있길 바래."

대체  준비하라는 것인지, 주어도 두서도 없는 문장. 그의 속을 떠보기 위해 그의 얼굴을 노려보지만, 그는 다만 미소 짓고 있을 뿐이다.

곧 그는 빠른 속도로 식사를 마치기 시작했고,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미약한 의문만을 남긴 채 어색하고 찝찝했던 점심시간이 끝났다.


=



이제는 나의 지정석이 된 창가 쪽의 맨 뒷자리에 앉아 잠든 선아의 머릿결을 쓰다듬는다. 보드라운 머리카락이  올 한 올 스쳐지나가며 손가락을 간지럽혀온다. 그 소소한 쾌감을 음미하며 반쯤열은 창틈 사이로 불어오는 미풍을 맞는다. 저번 시간이 워낙 지루한 생명과학 시간이었기에, 이번에는 비단 선아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학생들이 책상 위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자, 이제 슬슬 일어나자 애들아."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담임을 맡은 여교사가 그렇게 말하며 들어오자 자고 있던 애들의 눈이 번쩍 뜨였다. 특히 남자애들이 더더욱 그랬는데,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시선을 선생님에게고정한 채로 아직도 비몽사몽한 선아의 등을 살살 어루만졌다.

내가 만약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선생님과 말죽거리잔혹사를 찍을 수도 있었을 텐데……나란 놈은 수업시간에 대체 무슨 상상을 하고 있는 거야.


"오늘은 수업 안할 거니까. 빨리들 정신 차리렴."

"그럼 뭐하는 데요?"

"자습?"

"아니, 반장 선거해야지. 내 시간에 반장 선거한다고 바로 오늘 아침에 말했잖니. 일주일 동안 서로가 누군지 대충은 파악했지?"


반장 선거라는 말에 교실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들렸다. 겨우 반장 하나 뽑는데 대체 왜들 저렇게 기뻐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뭐 일단 앞으로의 학급 생활을 이끌어갈 사람을 뽑는 만큼 집중해야겠지. 기껏 일어나놓고 다시금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선아의 등을 아프지 않을 정도로 탁탁 두들긴다.

"그럼 먼저 후보자를 결정하자. 추천도 받을 테니 부담 없이 손들렴."

부담 없이 손들란 말에 일순간 손을 들어볼까? 라는 욕망이 들었지만 이내 관뒀다. 생기부에 스펙 한 줄 추가하기엔 좋지만 딱히 리더 자리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남들을 이끄는 자리에 서는 것은 영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친구도 없는 내가 입후보해봤자 결과는 어떨지 뻔한 것이리라.

그렇게 침묵하는 나를 두고 우후죽순으로 손을 들기 시작하는 아이들. 장난으로 친구를 추천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진지하게 입후보하는 아이도 있었다. 꽤나 활발한 녀석들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그들을다소 어딘가 먼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저기, 저도 한 명 추천하고 싶은데요."


툭하고 위로 치켜 올라가는 갈색 팔 하나. 씩씩한 목소리에 반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또한 살짝 움찔해선  손의 주인을 바라본다. 교실의 앞자리에서는 은발의 더벅머리 미소년이 천진난만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최형곤, 바로 그 녀석.

"장난은 더 이상 받지 않는 단다?"

"장난이 아니에요."

"그래…최형곤이었지? 그럼 누굴 추천하는 거니?"

"제가 추천하고자 하는 인물은…"

그렇게 운을 뗀 그는 팔의 방향을 바꿔 뒤를 가리켰다. 모두의 시선이 그를 따라 뒤를 향했고, 나 또한 반사적으로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러나 맨 뒷자리인 나의 뒤에 누가 있을리가.

…응?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린다. 그러자 어째선지 날 쳐다보고 있는 모두들.

"…바로 이시아 양입니다."


응? 왜 하필나야? 혹 장난인가 싶어 그를 찌릿하고째려본다. 하지만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웃고 있긴 해도 제법 진중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그녀라면 성적도 우수하고 품행도 바르니 타의 모범이  만하고, 신입생 대표였던 만큼 리더로서 충분한 자질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칠판에다 적는다?"


뭐랄까, 나는 네가 말하는 것처럼 대단한 인종이 아닌데 말이지. 그렇게까지 띄워주니 반박할 기운도 없어진다.

어차피 진짜로 뽑힐 일도 없을 테고, 어쩌다 뽑히게 되더라도 수시를 고려하면 마냥 나쁘지 않은 일. 고개를 끄덕이며 대충 수긍한다. 하지만 그 순간 옆자리의 선아가 벌떡하고 일어섰다. 이내 평소의 그녀라고는 볼 수 없을 만큼 성난 얼굴로 힘찬 목소리를 발하는 선아. 너는 대체 언제 깬 거니.


"잠깐만요! 입후보하기 전에 먼저 본인에게 의사를 물어봐야하는 거 아닌가요? 본인이 싫다는데 반장을 강요할 순 없잖아요!"

"응?…뭐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시아 너는 어때? 반장하고 싶니?"


딱히 나만 이러했던 것도 아닌데 선아는 왜 태클을 거는 것일까. 살짝 흥분한 그녀를 의뭉스레 쳐다본다.

애초에 반장이라는 직위가 내가 원한다고 해서 맘대로 얻어지는 게 아닐 텐데, 어째선지 선아는 입후보만 하면 반장은 내가 될 거라는 듯이 말하고 있다. 허나 그에 의문을 품기도 전, 나를 향해오는 누군가의 뜨거운 시선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따듯한 색조의 브라운 컬러눈동자가 유리구슬처럼 초롱초롱 반짝인다. 슬쩍 앞을 훔쳐보자 대체무슨 수작인 건지, 방금 전 나를 추천한 그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 그래, 저건 그거구나.


"…저는 괜찮아요."

"시아야…"

"걱정 마. 정말로 괜찮으니까."


뭐 좋아. 네 녀석이 정 그렇게 바란다면 까짓 거 입후보 해주지. 어차피 나 같은 게 진짜로 뽑힐 일도 없을 테니. 칠판의 명단에 적혀가는 내 이름 석 자를 보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팔짱을 낀다.

이러다 진짜 반장이 된다고 한들, 그리 나쁜 일은 아니리라.  투철한 경쟁 사회 속에서 무엇보다도 증명한 것은 자신을 증명할 스펙뿐이니까. 그리고 생활기록부에 적힌 한 줄짜리 반장 경험은 분명 나중에 도움이 될 것이다. 리더쉽이니 뭐니 해서 말이지.

뭐, 설마 나 같은 게 되겠어? 이때의 나는, 마냥 쉽게만 생각했었다.

=

그래, 설마 했던  설마가 나를 잡았다.

우선 처음부터 뭔가가 이상하게 돌아갔다. 대체 무슨 신종 이지메인지는 몰라도, 내가 입후보하자마자 다른 후보자들이 스스로 떨어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진지하게 입후보했던 애들마저도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중도포기를 선언했다. 선생님이 짤막하게 그 이유를 물어보자 그 아이들은 하나같이 가망성이 없다고만 답하였다.

그렇게 후보가 단발의 보이쉬한 여학생과 나,  둘로 좁혀지고 투표에 앞서 짧은 공약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더 이상한 일이 이 다음에 일어났다. 개표가 시작되고, 다른 후보자인 여학생을─심지어 그녀는 아싸인 나조차 이름을 알 정도의 인기인이었는데도─, 내가 이겨버렸다. 그것도 거의 두 배 가까운 표 차이로. 결국 반장은 나로 확정되어버렸다.

나, 윈스턴 처칠 급으로 대단한 연설이라도 한 걸까? 아니 겨우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 한 마디 한 것뿐인데? 혹시 짧음의 미학이라는 건가?

"…학급을 위해서 성심성의껏 노력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자기 자리로 돌아가렴."


선생님의 선언이 끝나자 우렁찬 박수갈채가 들려왔다. 아직 얼떨떨한 상태로 교탁에서  자리까지 걸어 돌아간다.

선아는 무언가 탐탁지 않은 듯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만큼 내가 반장이 된 것이 맘에 들지 않는 걸까. 조심스런 손길로 그녀의 옆얼굴을 툭 친다. 그러자 휙하고 돌아가는 고개.

"선아는, 내가 반장된 게 싫은 거야?"

"응. 싫어."

곧장 매섭게 치고 들어오는 부정. 아무리 변했다지만 선아는 그다지 솔직하지 못한 아이인 이렇게 대놓고 싫다는 말을 하다니.

"…어째서?"

"네가 반장이 되면,나하고 있는 시간이 줄어들잖아."


…뭐야, 이 귀여운 생물은.


"자, 잠깐! 뭐하는 거야…!"

"잠깐만! 잠깐만 이렇게 있자!"

"이거 숨 막히는…"

선아의 얼굴을 내 가슴팍에다 끌어안은 채 마구 정수리를 쓰다듬는다. 그러자 부끄러운지 빨간 얼굴로 거친 숨을 색색 대는대, 그 모습마저도 몹시 귀엽다.

답답한 건지 선아는 솜방망이 같은 주먹으로 나의 등을 퍽퍽 치며 내 품 안에서 마구 아우성쳤다. 아, 역시 이런 격렬한 애정 표현은 부끄러운 걸까. 결국 선아의 가느다란 몸을 한참 만끽하고 나서야 나는 그녀를 풀어주었다. 그러자 살짝 눈물 젖은 얼굴로 '바보!'라고 소리치는 선아. 아직 진정되지 않은 듯 두 어깨가 파르르 떨린다.

그런데 여러모로 시끄러운 우리 둘을 쳐다보고 있던 남자애들의 얼굴이, 아니 여자애들의 얼굴마저 하나 같이 빨개져있었다. 대체 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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