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화 〉두근두근 문예부 (14/73)



〈 14화 〉두근두근 문예부

"일찍 왔네?"

주홍빛으로 타오르는 해가 채 가라앉지 않은 시간, 현관. 신발을 벗고, 어딘가 불안정한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오는 언니, 어린 아이처럼 작은 등에 걸린 가방을 대신 받아주면서 나는 그렇게 물었다.

"응…오늘 학생회 일이 빨리 끝나서. 그보다 아침에 조퇴했다면서?"

"아, 조금 컨디션이  좋아서. 지금은 완전 괜찮아."

"그래?…하암, 그럼 좀 잘 테니까 저녁  되면 깨워줘."

그렇게 대답하는 언니의 어조는 평소보다 축 늘어져 있었다. 동시에 힘없이 늘어진 눈꼬리와 피곤으로 반쯤 덮여 있는 눈꺼풀. 인형 같이 정교한 얼굴도 지금은 한껏 풀어져 있다.

언니는  말이 정말로 맞는지  차례 이 쪽을 힐끔 보고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걸음이 한 발 앞으로 내딛을 때마다 비틀비틀 꺾였다.

의뭉스런 시선으로 언니의 뒷모습을 쫓는다. 이제 보니 학생회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언제나 깔끔하게 차려입던 교복도 이곳저곳 어지럽혀져 있다. 단정함이라는 단어를 판에 박고 살던 듯한 평소의 모습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 모습.

그만큼 피곤하다는 걸까? 언니의 저런 모습을 보는 것은 무척 오랜만이라, 잠시 동안 갈피를  잡은 채 방황한다.

그냥 넘기기에는 어쩐지 미안한 느낌이라, 언니의 방에 가 방문 앞에서 갈등하길 5분, 나는 드디어 마음을 다잡고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

문지방을 넘어서자마자 눈에 띤 것은 침대 위에서 교복도 벗지 않은 채 잠든 언니의 모습이었다. 심지어 이불조차 덮지 않고 나무늘보처럼 늘어진 모습. 하얀 셔츠가 위로 말려 올라가 귀여운 모양을 한 배꼽이훤히 드러나 있다.

곤히 잠든 언니를  자세히 보기 위해 침대 쪽으로 다가간다. 침대의 빈 자리에 슬쩍 엉덩이를 붙이자 색색거리는 잠꼬대가 조용하게 들려온다.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언니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향긋한 체향이 화악 풍겨오면서, 고등학생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운 얼굴이 시야 안에 가득 들어찬다. 아무리 대단한 미녀라도 3년이면 질린다고들 하지만, 정말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외모.

크고 처진 눈매, 너무 높지 않고 오똑한 코, 조금 짙은 눈썹, 모든 요소가 절묘하게 어울리며 미성숙한 미모를 극한까지 빚어낸다. 이런 사람과 내가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는 자매 관계라니, 지금껏 의심치 않았던 당연한 사실이 새삼 믿겨지지가 않는다.

"…흐음"

꿈속에서 뭐라도 먹고 있는지 오동통한 입술이 오물조물거리며 알 수 없는 문장들을 내뱉는다. 고개를 한층 더 낮게 숙이며 언니의 입술에 귀를 가까이 가져가자 명확하게 들려오는 문장의 의미.

"으응…시아의…OO…마시써…"

…대체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거야, 언니.

한순간 신변에 가해진 듯한 위협에 재빨리 언니로부터 떨어진다. 식은   줄기가 볼가를 타고 흘러 턱 끝에 대롱대롱 맺혔다.

"…저녁이나 미리 해놓을까."

굳이 깨워달라고 한 걸로 봐서는 아마 저녁도 언니가 만들 생각이겠지만, 모처럼 깊이 잠든 언니를깨우고 싶진 않았다. 게다가 나도 언니에는 못 미치지만 요리는 나름 자신 있는 편이고, 할 일도 없겠다 오늘 저녁 식사는내가 준비하도록 하자.

머릿속으로 냉장고 안의 풍경을 떠올리며 언니의 방을 나가려 한다. 하지만 그 순간 작고 보드라운 무언가가 침대 옆을 지나가는  손을 잡아챘다.


"뭐야, 깨어있었던 거야?"

"아니…방금 깼어. 그보다 가지마. 옆에서 무릎베개 해줘."

"무릎베개?"

"응…"

아직 잠에 취한 목소리가 알아듣기 힘들게 웅얼거린다. 언니는 실눈을 뜬 채 배시시 웃으며  손을 잡고 흔들었다. 그 모습은 영락없이 부모에게 조르는 아이와 같았다.

평소의 조숙함 따윈 갖다버리고 맘껏 응석부리는 모습. 어쩌다 언니가 한 번 보이는, 극도로 피곤해지거나 잠에 취했을 가끔 보이는 모습이다.

제때 저녁을 먹으려면 지금 준비해야 하는데,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얌전히 침대 위에 다시 올라간다. 이 상태의 언니는 정말로 아이 같아서 꽤나 다루기 힘들었다. 마치 부모가 돼서 응석받이 하나를 기르는 기분이랄까. 그런 행동거지가 무척이나 어울리는 외견의 언니이지만서도.

"…됐어?"

"응…시아 무릎 부드럽네. 솜인형 같아…"


종아리를 옆으로 빼며 침대 위에 자리를 잡자 꼭 애벌레처럼 꾸물꾸물 움직이면서 작은 머리를 내 무릎에다 걸치는 언니. 동시에 언니의 긴 머리카락이 폭포수처럼 펼쳐지며 치마 아래로 드러난  맨다리를 가렸다. 허벅지를간지럽히는 간지러운 무게감. 저도 모르게 옅은 미소를 짓는다.

"그나저나 그렇게 피곤한 거야?"

"어제 학생회 일이 좀 늦게 끝나서, 집에 엄청 늦게 돌아왔어."


생각해보니 어저께 언니를  적이 없었지. 내가 잠에 들 때까지 보이지 않은  보면 아마도 꽤나 밤늦게 돌아왔으리라. 게다가 학생회장인 만큼 오늘 아침도 남들보다 일찍 등교했으니, 어지간히도 피곤했겠지. 평소 규칙적인 삶을 사는 언니인 만큼  후유증은 보다 컸을 거다.


"그래…그럼 피곤하니까, 좀 자둬. 계속 무릎베개하고 있어줄게."

"고마워…"

말랑한 정수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자 끔뻑이던 두 눈이 천천히 감겨들어간다. 금세 잠들어버린 언니를 보면서 나 또한 벽에다 등을 기댄다. 갑자기 비라도 내리는 건지 창문 바깥에서 쏴아아 거리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온다.

그렇게 두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언니는 잠에서 깨어났다. 제정신을 차리고서 현자타임이라도 온 건지 언니는 토마토처럼 빨개진 얼굴로 저녁 준비를 하겠다며 방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나는 정좌 두 시간을 한 덕택에 다리가 저려서 한동안 일어서지 조차 못했다.

"…음"

저녁 준비, 본래 내가 하려던 일이었지만 아직도 다리가 부들부들 떨린다. 전기라도 통한 듯 찌릿찌릿한 허벅지를 주무르며 힘겹게 일어선다.

그 대신 언니가 급하게 나가느라 흐트러진 이부자리라도 정리해두면 되겠지. 느릿느릿 일어나 두꺼운 솜이불을 들춘다. 그 순간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네모난 무언가.

"이게 뭐지?"


침대 위에 놓인 그것을 주워들어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 네모 번듯한 무언가는 누군가의 사진이었다. 어디서나 볼 법한 디자인의 병실을 바탕으로 침대에누워있는 소녀의 모습. 수술 때문인지 빡빡 깎은 머리카락과, 지나칠 만큼 새하얀 피부가 병약해 보이는 아이였다. 본디 귀여웠을 터인 얼굴은 한껏 수척해진 탓에 안쓰러움만을 유발했다.

어째서 언니가 이런 사진을 가지고 있는 걸까. 사진을 뒤집어가며 이곳저곳 확인해보지만, 어느 소녀의 모습을 제외하고는 딱히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없다.

뭐, 입원한 친구라도 되나 보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사진을 옆에다 치워놓은 다음, 나는 이불을 쫙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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