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9화 〉두근두근 문예부 (19/73)



〈 19화 〉두근두근 문예부



"왼손은 거들 뿐이다!"

"축구하는데  쓰지마 미친놈아!!"

태양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정오, 어느덧 여름에 가까워지자 습습한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지금 내가 앉아 있는 곳은 스탠스 석. 팔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줄기를 바라보며 한창 열띤 경기가 펼쳐지고 있는 운동장 쪽을 멍하니 바라본다. 저 아이들은 이 무더위가 아무렇지도 않은 것인지. 돈도 걸리지 않은 축구 한 판이 뭐라도 된  마냥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며 쉴 새 없이 뛰어다닌다.

아, 하지만 수비수를 맡은 애들의 표정은  좋지 않아보였는데, 아마도 억지로 불려나온 것이겠지. 축구 같은 팀 스포츠에는 많은 인원이 필요하니까.

여자가 됐기 때문인가 어딘가 멀게만 느껴지는 광경. 체육복 반바지 아래 드러난 무릎 위로 얼굴을 파묻는다.  클라시코도 아니건만 나는 왜 이렇게 열심히 지켜보고 있던 걸까.

딱히 체육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 체육 좋지. 단, 그게 사춘기 여자애들과 함께라면 끔찍한 시간이 된다.

XX염색체라고 해서 수수깡으로 만들어진 생물도 아닐 텐데 뭐 그리 엄살들이 심한지, 지난 경기들을 돌이켜보면 기가 찰 지경이다.

공으로 사람  맞췄다고 울고, 떼거지로 날 비난하고……아니, 피구니까 당연히 사람을 맞추지. 그럼 너희들은 이때까지 피구가 뭐하는 게임이라고 생각한 거야? 피구공 가지고 당구라도 쳐야 되나? 빌어먹을 쓰리쿠션,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무료함에 다리를 좌우로 번갈아가며 흔들어 보지만, 그렇다고 남자애들 노는데 가서 끼는 것도  부담스럽다. 고등학생이 아니라 중학생 정도만 되어도 이상과의 어울림에 거리를 두는 편이니까.내가 가봤자 어색한분위기만 생기겠지.

결국 체육시간만 되면 이렇게 어디 구석에 박혀서 혼자 있는 편이다. 매번 심심하기는 하지만, 어차피 체육 실기는 연습을 안 해도 만점이라 굳이 상관은 없다.

원래대로라면 선아가 내 곁에서 재잘대고 있을 텐데, 선아는 오늘 심한 감기로 병결을 하고 말았다. 그럭저럭 괜찮아보였던 어제의 모습은 정말로 일시적인 것이었나. 내가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아무튼, 꽤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고독감이란 녀석의 맛이 씁쓸하기 그지없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거의 매 시간을 선아와 함께 있었던지라 그 빈 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졌다.

"…심심하네."

할 것도 없겠다 혼자서 줄넘기라도 뛸까. 이대로 앉아만 있는 것도 엄청 쓰잘데기 없는 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엉덩이 쪽에 묻은 흙먼지를 탁탁 털어낸다.

오랫동안 앉아있어서 그런지 무릎 언저리가  쑤셔온다. 담배나 피러 나온 중년아저씨처럼느릿느릿 다리를 움직여 스탠드를 올라간다. 이내 창고 치고는 쓸데없이 화려한 건물 앞에 도착한 뒤 문고리를 잡아 돌린다.

"…"


…대체 왜,  인간이 여기에 있는 거지.

검푸른 색의 머리카락과 그와 대조되는 하얀 피부. 날 보고 놀라서 크게 떠진  눈. 독서 중이었는지  손에 들린 책. 묘사를 여기까지만 하면 뭔가 문학소녀 같은 느낌인데, 설마 그럴 리가. 저 떡 벌어진 어깨를 보라. 벌크업한 문학소녀라면 모를까.

뭐, 신경 끄도록 하자. 어제 일도 있고 여러모로 꺼려지는 남자. 그냥 무시하고 지나친다. 여기서 그와 얽혀봤자 좋을 일 하나 없으니.

비록 이 쪽을 향해 쏘아지는 시선은 따갑기 그지없으나, 애써 무시한 채 창고의 안 쪽으로 들어간다.

내가 찾던 줄넘기 줄은 먼지 쌓인 매트 위에 고이 놓여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집어 들고 창고를 나오려는 순간, 돌연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어?"

뭐야 이건. 문고리를 잡은 채 세게 당긴다. 하지만 덜컹덜컹거리는 잡음만이 일어날 뿐, 밖에서부터 닫힌 문은 열릴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이상 사태에 살짝 정지한 뇌. 같은 행동을 몇 번이고 반복하다 포기하고서 뒤로 물러난다.

"저기요!"

목을 가다듬고 힘껏 도움을 요청해보지만 되돌아오는 메아리가 싸하기 그지없다. 체육 창고는 넓은 학교 부지 내에서도 외딴 구석에 있으니까, 당연한 것이겠지. 정작 이런 상황에 처한 나에겐 별로 당연하지 않지만.

"문이 안 열리는 건가?"

"아, 예."

"흐음"

뒤편에서 중저음의 미성이 들려온다. 그것의 주인은 내 앞으로 나서더니 나처럼 문고리를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지간히도 굳게 잠긴 것인지. 길쭉하고 커다란 손에 핏줄까지 돋아났지만 고작 잡음만 발생할 뿐, 철문은 꼼짝도 않는다. 나는  광경을 망연히 지켜보다가 두툼히 쌓인 매트의 위에 주저앉았다.

…아무래도, 갇혀버린 것 같다.


"젠장…"


급기야 문을 쾅쾅 두드리던 그도 이내 포기하고선 내가 앉은 매트의 비어있는 자리에 앉았다. 다른 곳에도  자리는 많은데 왜 하필  옆인지 의문이 들었지만, 뭐라 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도 아니라서 침묵한다. 대신 고개를 돌리고 애먼 벽을 바라본다.

“…”


어색한 사이, 어색한 분위기, 모든 것이 어색하다. 차라리 혼자 갇혔더라면이렇게 불편하지는 않았겠지. 그런데 하필 둘, 그것도 썩 좋지 않은 사이의 사람들끼리 갇혀서 이 꼴이다.

이런 시간에 창고에 처박혀 있던 그가 내심 원망스러웠지만 까고 보면 나 역시 잘한 일은 없었다.


"…저번 일은, 그, 죄송합니다."

창고 특유의 텁텁한 공기가 폐부에 가득히 찼을 때 나는 그렇게 운을 뗐다. 아무리 불편하더라도 끝없는 침묵보다는 나을  같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바로 앞까지 다가온 푸른 눈동자가 똑바로  얼굴을 직시하고 있다.


“케흑! 뭐…뭐에요!”

순간 숨이 턱 막혀서 헛기침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남자, 김성현은 여전히 나에게 부담스런 시선을 부딪쳐오고 있었다.


"뭐가 말이지?"

"…저번에 욕한 거요. 아무리 화가 났다고 해도 선배인데, 제가 경솔했습니다."

남한테 그렇게 깔보인 적이 오랜만이라 그만 과잉 반응을 해버리고 말았다. 좀 더 좋은 말을 쓰거나, 하다못해 말을 순화시켰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필이면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것 중에서 제일 자극적인 단어를 쓰다니….

하여튼 전부  이 욱하는 성질 때문이다. 부담스럽게 바라보는 얼굴 앞에 고개를  숙이며 웅얼거리듯 사과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멀어질 기색을 보이지 않는 남자.

"그럼 내가 다시 고백하면 어떻게 할 거지?"

"뭐겠어요?"

"그렇군."

개인적으로 그가 꺼려지는 것도 있지만, 아직까지 남자와 사귄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무리다. 생리적인 영역의 거부랄까.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자 그는 수긍한 듯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이야 충분히 했지만, 그는 역시 진심이 아니었나 보다.


"그나저나 여기엔 왜 혼자 찾아온 거지?"

"줄넘기 줄이나 찾아서 뛰게요."

"친구가 없나보군."

"이, 있거든요! 그러는 선배야말로 친구 없지 않나요!?"

한 명 뿐이긴 하지만, 분명히 있다. 그것도 무척이나 귀여운 아이가! 순간적으로 욱하고 터져 나오는 억울함에 그만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당연하다. 친구란 대등한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니까 말이지. 나한테 친구가 있을 리 없지 않나."

그 말은즉슨, 너무너무 우월한 자기와 수준이 맞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렸다. 이 정도로 뻔뻔스럽게 나온다면나도 할 말이 없어진다. 아니 뭐…지가 그렇다는데 어떡해.

굳이 그에게 따지기 보다는 입에 지퍼를 걸어 잠근다. 뭐라 떠들어봤자 그저 피곤한 일 하나가  늘어날 뿐이니까. 때로는이해를 포기하는 것도 존중이 된다.

하지만 표정까지는 어쩔 수 없었는지, 형태 좋은 눈썹을 꿈틀거리는 남자.

"불만인 모양이군."

"예, 당연히 불만이죠.  말은 선배 외의 다른 인간들은 모두 하등하단 거니까요."

"잘 이해했다. 너는 그나마 나은 인간이로군."

이걸 좋아해야할지 말아야할지. 떠들기를 포기한 것도 잊고서 불퉁스레 입을 이죽거린다.

"…솔직히 말해서,  한심스럽네요."

"뭐?"


살짝 일그러지는 그의 인상. 저래도 잘나기만  모습에 괜히 짜증이 차오르지만, 최대한 차분하게 말을 이어간다.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그런 말을 하시는 건지, 초등학생 때 배운 사회 교과서는 어디 날로 드셨나요?"

"하, 현대 사회는 평등 사회라 이거냐? 그런  어디까지나 보기 좋은 거짓말에 불과해. 조금 전의 칭찬은 취소하도록 하지."

"물론 선배의 말마따나 지금 시대에도 인간의 급이란 건 나뉘어져 있을 지도 몰라요. 가령 흙수저니 금수저니, 여러 말들이 많죠.
그렇다고 그걸 공공연히 떠들어대며 남을 무시하는 게 정녕 올바르다고 생각하시나요? 인간은커녕 개나 고양이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즐비한 판국에?"

“도덕,  놈의 도덕 얘기인가? 강한 것이 약한 것을 억압한다, 자연에서도 지극히 당연한 이 논리의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거냐.”

그의 말마따나 모든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 본질적으로는 평등할지언정 실질적으로는 평등하지 못하다.

정치가들은  평등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지만, 사실 진정한 평등이라는  이상에 가까운 가치다. 인간이 모이면 그중에서 필히 차이가 생겨나고, 차이가 생겨나면 필히 차별이 낳아진다.

완벽한 사회주의 국가라도 되지 않는 이상  악순환의 해소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완벽한 사회주의 국가의 성립이 불가능한 것은 역사적으로 몇 번이고 증명되어왔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 라는 그의 과격한 주장에 태클을 걸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다만 그의 잘난 우월감을 비꼬고 싶을 뿐이다.


“선배는 자기가 다른 모든 인간들보다 뛰어나다고 말했죠. 하지만 정말로 선배가  사회에서 '제일' 뛰어난 사람인가요? 개별적인 분야에서 선배보다 뛰어난 사람은, 이 나라는커녕 이 학교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있을 걸요? 가령 체육부라든지, 가수지망생이라든지.”

“하, 그럼 내가 평범한 학생보다 못하다는 말이냐? 다른 사람이 들으면 코웃음을  헛소리로군.”

“그러니까, 오직 당신만이 특출 난 인간은 아니라는 뜻이에요. 거기다가 2학년의 수석 자리는 언제나 제 언니가 도맡고 있잖아요. 마찬가지로 학생회장도 언니고요. 만약 언니가 선배를 무시하고 얕본다면, 선배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실 건가요?”

사실 게임 속에서 학년 수석과 학생회장은 그의 차지였지만, 그건 아마도 그를 사랑하는 언니가 봐준 것이겠지. 내가 아는 언니의 능력은 그를 훌쩍 넘으면 넘었지 절대 못하지는 않았다. 외모, 학업, 인격,  모든 면에서 말이다.

"…그녀는 예외다."

"예외라, 벌써 그런 예외를 설정하는 것부터가 선배가 가진 논리의 결함성을 증명하는 셈이네요. 그렇다면 선배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대체 얼마나 많은 '예외'를 마주칠 거라 생각하나요? 그럼 그때마다 그저 예외로 치부하면서, 그래도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고 계속 주장할 셈인가요?"

"…"

“…알아들었으면 성격 좀 죽이세요. 사람한테 급 메기는 짓도  그만하고.”


입술을 꾹 다무는 그. 원래도 냉엄했던 얼굴이 딱딱하게 굳고, 날카로운 안광은 매섭게 빛나기 시작한다. 어릴 때부터 교육 받은 엉터리 제왕학 덕분인지.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아우라 비슷한 위압감이 나를 짓누른다.

물론, 그래봤자 고등학생 수준. 인생 2회차를 사는 나에게도 먹힐 정도는 아니라, 당당하게 고개를 쳐들고 그를 마주 본다.

이 녀석과 이렇게 엮이는 것도 짜증나지만, 그렇다고 꽁무니 빼고 물러서는 것은 절대로 싫어.


"…"

"…"

그도, 나도, 더 이상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저 흘러가는 어색한 기류 속에서 우리는 서로 짜기라도 한 듯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게임에서도, 그와 주인공은 숱하게 이런 식의 말싸움을 한다. 그때마다 지는 쪽은 논리보다 감정이 우선인 주인공이었지만, 나는 일부러 멍청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딱히 내가 똑똑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내가 그의 입을 다물게 할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그의 논리가 하염없이 멍청했기 때문이니까.

그렇게 비좁고  막히는 창고에서 말없이 갇혀있기를 30분 즈음, 우리는 체육 시간이 끝나고 마침 공을 반납하러 온 어느 남학생에 의해 구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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