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5화 〉두근두근 문예부 (25/73)



〈 25화 〉두근두근 문예부

"뭘 멋대로 죽인다는 거니? 역겨운 쓰레기가."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미성. 익숙한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나를 노리던 그녀의 몸이 골프공처럼 날아가 벽면에 처박힌다.

굉음이 고막을 강타하고 이어지는 비루한 신음. 감고 있던 눈을 조심스레 치켜뜬다. 어느 새인가 내 앞에는, 작은 등이 나를 지키듯 버티고 서있었다.


"괜찮…지는 않아 보이는구나. 상처는 집에 돌아가면 치료하자. 일단 대충이나마 지혈하고 있어."

사락, 검은 비단 같은 머리카락이 빙글 회전하며 그 속에 파묻힌 어여쁜 얼굴이 드러난다. 아무리 정신이 없다고 해도 못 알아볼 리가 없는, 이 세상 무엇보다도 가장 소중한 사람. 나의 하나뿐인 언니.

멍청하게 입을 벌리고 있는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서겠지. 언제나의 옅은 미소를 입가에 띤 언니는 시선을 여전히 앞에다 고정한 채 내 쪽으로 손수건을 던졌다. 동시에 언니의 왼손에 들린, 은색으로 빛나는 알류미늄 배트가 빙빙 돌아갔다. 아마도 저 방망이로 선아를, 강선아를 때려 날린 것이겠지. 어찌나 강한 힘으로 쳤는지 본디 볼록했을 부분이 형편없이 찌그러져 들어가 있다.

그보다 언니가 어째서 여기에? 평소라면 곧 바로 감사를 느꼈을 상황이라지만, 아직 머리가 정리되지 않은 탓인지 그저 얼떨떨하기만 하다. 언니조차 어딘가 낯선 느낌. 익숙한 모습인데, 동시에 익숙하지 않다.

마치 소설 속에 들어온 것처럼 모든 요소가 지극히 이질적이다. 온몸에 피를 덕지덕지 묻힌 선아, 그리고 알맞은 타이밍에 등장한 언니. 지금 내게 닥친 상황 자체가 현실이 아니라 엉터리로 짜여진 하나의  같았다.

…빈혈 때문일까, 아니면 미쳐 돌아가는 상황 때문일까. 아까부터 머리가 너무 어질어질하다. 우선은 언니의 말마따나 상처를 지혈해두는 편이 나으리라.

눈을 질끈 감고서 부들부들 떨리는 손길로 팔뚝에 박힌 칼날을 뽑아낸다. 한순간 커다란 망치가 뒤통수를 치고 간  눈앞이 새까매지지만, 어금니를 악물고 피가 줄줄 흐르는 곳에 언니가 건넨 손수건을 돌돌 묶는다. 찢겨진 부위가  조이자 저도 모르게 짧은 비명이 튀어나왔다.

"너어, 너어어!!"

그 순간 악에 찬 괴성이 밤의 정적을 무참히 찢는다. 피를 한 웅큼 토하며 엉망이  그녀가 몸을 일으키자 부서진 돌벽의 파편이 후두두 떨어진다. 산발이 된 적갈색 머리카락의 틈에서는 다홍색의 안광이 섬뜩한 광채를 발하고 있다.

"아프잖아아아아!!! 죽여버리겠어!!“

"할  있다면, 해보던지."

야구방망이에 정통으로 맞았건만, 그깟 타격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재빠르게 돌진해오는 강선아. 비록 준비 자세도 제대로 취하지 못한 직진이었지만 그 속도와 기세만큼은 여전히 위압적이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 살의의 끝에 있는 것은 언니.

내가 막아야 하는데, 후들거리는 두 손은 주먹조차 쥐지 못한다. 두 다리는 위태롭게 흔들리고,  새 없이 쿵쾅대는 심장은 본래의 주기를 잊어버린 듯하다.

그렇게 제 크기를 키워가는 두려움이란 녀석을 애써 패죽이며 눈앞의 것을 똑바로 직시한다. 지금은 마냥 두려움에 떨 때가 아니었다. 나 혼자라면 모를까, 지금은 바로 앞에 언니가 있었다. 나야  다쳐도 문제없는 몸이라지만, 언니만큼은  돼. 언니만큼은.

물론 언니는 나 같은 것보다 훨씬 우수하다. 그렇지만 저 미친 여자를 상대하는데, 과연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언니를 믿으면서도 불안한 마음이고개를 치민다.

그러니 내가 나선다면 적어도 고기방패쯤은  수 있겠지. 바닥에 떨어진 단도를 단단히 움켜쥔다.

하지만 언니는 내가 나서는 것보다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

"멍청하긴."

좌락-하고 언니의 앞에 펼쳐지는 교복의 마이 자락. 앞뒤 안 가리고 언니에게 돌진하던 강선아가 그것을 피할  있을 리도 만무하고, 이내 두터운 천자락에 상반신이 갇힌 강선아의 위로 곧장 방망이가 내려쳐진다.

한 대, 두 대, 세 대, 손속 없는 연타가 시야가 차단된 강선아의 몸을 맘껏 두들겼다. 한 발  발, 맞으면 적어도 골절당할 위력을 품고서 말이다.

"────!"

상처 입은 짐승의 포효처럼 절규하는 강선아. 문자화할 수도 없는 그 비명은 처절하기 짝이 없었다.

마이를 뒤집어 소녀의 몸이 마구 발버둥을 친다. 그러나 그 몸짓도 잠시, 쉴 새 없이 계속되는 몽둥이질에 멎고 만다. 이윽고 구깃구깃해진 종이학처럼 바닥에 풀썩 엎어지는 강선아. 몸 위에 뒤덮인 마이의 틈새로 핏물이흥건하게 흘러나왔다.


"후아, 드디어 끝났네. 큰 상처 없이 끝나서 다행이야. 그치?"

"어, 언니…?"

손을 탁탁 털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몸을 돌리며 띄우는, 언제나의 그 따스한 미소가 지금은 어째선지 섬뜩하기 그지없다.

그에 뭐라 한 소리를 하려던 찰나, 그것이 다시금 움직였다.


"언니, 뒤!"

"응?"

"멍청한  네년이겠지. 등신 같은 년아."


언니가 등을 돌리자마자, 뒤덮고 있던 마이를 벗어던지고 달려드는 강선아. 내 외침에 언니는 뒤늦게 몸을 돌렸고, 그때는 너무 늦었다.

허공을 향해 허망히 뻗어진 나의 팔, 날카로운 은빛의 궤적이 밤의 어둠과 고요를 한꺼번에 찢었다.


"너…정말 인간 맞니?"


어이없다는 듯한 감탄. 가느다란 핏줄기가 언니의 매끄러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곧장 방망이를 횡으로 휘두르며 반격하는 언니. 강선아는 고양이 같이 유연한 움직임으로 그것을 피했다.

다시 거리를 벌리고 대치하는 둘을 멍하니 바라본다. 심장이 그대로 떨어질 뻔했던 순간. 다행이 언니는 칼날이 얼굴에 닿기 직전 고개를 틀었고, 덕분에 칼날은 백자 같은 볼가를 겨우 스친 것에 그쳤다.

“어떻게 그렇게 맞고도 멀쩡하게 서있을 수 있는 거야? 괴물?”

“멀쩡?…시발, 넌 지금 내가 멀쩡해 보이냐?”

보라는 듯이 한쪽팔을 흔드는 강선아. 피가 덕지덕지 묻어있는 것은 이전과 같지만,  아래를 차지한 검은 반점들이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 무심코 고개를 돌려버릴 정도로 심한 상처. 보통 사람이라면 조금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새된 비명을 지르겠지.

"그보다 괴물이라니? 내가 괴물이라고? 풉, 그게 네가  말이야? 너도 나랑 똑같은 족속이면서."

"똑같아?"

웃음 섞인 그 단어에 언니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곧 언니는 눈을 부라리면서 강선아를 노려보았다. 언제나 그녀의 상냥한 얼굴만을 보았던 내게 있어서는 익숙지 못한 모습.

"너 같은 쓰레기와 동류가 된 기억은 없는데 말이지."

“아니, 같아. 너도  아이를위해서라면 나 같은 짓도 얼마든지  거잖아? 늑대가 양털을 뒤집어쓴다고 해서, 본성을 숨길  있겠어?”

"…"

"맘만 같아서는 여기서 네년을 묻어버리고 싶지만…짭새도 거기까지 병신은 아니니까. 어쩌면 벌써 신고를 접수받고 이 쪽으로 달려오고 있을 지도 모를 노릇이지. 나는 이만 돌아가겠어."

짧지만 치열했던 싸움의 결말은  허망한 것이었다. 강선아는 어제 헤어졌을 때와 별반 다를  없는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털래털래 흔들었다. 그러고선 조금씩 절뚝거리는 모양새로 골목가의 비탈길을 올라갔다.


"아, 그리고 시아야."

"…"

"오늘 일은 미안해. 정말로 널 죽일 생각은 없었어. 단지 나도 조금 흥분해버려서 그만……사죄의 의미로 조언을 하나 하자면, 네 언니를 조심하는 게 좋아."


언니를 조심하라고? 그게 무슨 의미야? 돌연 뒤를 돌아보면서 그렇게 말하는 강선아. 한순간 왈칵 차오르는 분노. 네가 뭐라고 남의언니에 대해서 멋대로 지껄이는 건데.

주먹을  틀어쥐지만, 그에 대한 답을 따지기도 전에, 언니의 작은 손이 나의 팔을 붙잡고 당겼다.

"돌아가자, 시아야."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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