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7화 〉두근두근 문예부 (27/73)



〈 27화 〉두근두근 문예부

"왔구나, 드디어."

"…"

등교하기에는 아직 이른 아침. 교실문을 걸치게 열어제끼고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다가오는 그녀를 환영한다. 황랑한 교실에는 오직 둘 뿐, 바로 그녀와 나.

책상에 등을 누인  애교가 섞인 눈초리로 그녀를 올려다본다. 요 사이에 통 먹지 못한 것인지 수척해진 볼이 안쓰럽다. 창백한 살결과 눈가 아래로 짙게 드리운 검은 색조, 가히 병자라고 해도 믿을 정도.

그렇지만, 그래도 역시 사랑스럽다. 시들어가는  모습조차도, 이렇게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 아아, 이미 미쳤지만 서도, 정말 또 한 번 미쳐버릴 듯이 사랑스럽다.

바싹 마른 혀로 입술을 훑는다. 아직 완치되지 않은 그날의 상처, 검은 피딱지가 앉은 입술에서 쓰라린 고통이 밀려온다. 매저키즘은 아니지만 허나 지금은 그런 고통조차 쾌락으로 열띤 꽃을 피운다. 어느 새 축축하게 젖어 들어가고 있는 아래쪽을 애써 무시하고서 손을 흔든다.


"안녕? 좋은 아침이네."

"…어째서야."

"어째서라니, 그때와 똑같은 질문을 하네?"

"똑바로 대답해!"


쾅하고 책상을 내려치는 모습이 묘하게 박력 있다. 생긴 건 천상 여자인 주제에, 의외로 남성스럽달까. 뭐 애초에 그 점 때문에 반한 거지만. 어느 정도로 반했냐고 하면, 이런 난폭한 회화까지도 즐거울 만큼 반해있었다. 생글생글 웃으며 느릿하게 입술을 연다.


"주말 동안…주변 경찰서란 경찰서는 다 돌아다녔어."

"응응, 이미 알고 있어."

"처음에는 헛소리 취급당했지만…팔의 상처와 손에 묻은 피를 보고선 모두 내가 습격당했다고 인정해줬어. 선배의 피도 증거물로 채택되어서, 경찰관이 가져갔어."

"그런데?"

"그래서 잡을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검사 결과에선 그게  피라고만 나오고…분명 선배의 피였다고! 분명, 분명히…그런데 모두들 믿어주지 않고, 내가 자해 공갈을 해서 소동을 벌인다고 오해하고…"

"흐응, 그거 참  됐네."

"왜인 거냐고! 대체 왜 너 같은 걸 잡아넣을  없는 건데!!"

"글쎄…"


그렇게 서서히 운을 띄우면서 그녀에게로 슬며시 몸을 밀착한다. 서로의 숨결이 닿는 거리, 손을 뻗으면 상대의 심장을 어루만질 수도 있다.

가까워진 얼굴, 토끼처럼 동그랗게 떠진 검푸른 눈동자가 놀라서 이 쪽을 바라본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맘만 같아서는 눈알을 뽑은 다음 포르말린용액에 담아놓고 두고두고 보고 싶을 정도이다. 왠지 매드 사이언티스트 같은 발상이라 킥킥 새어나오는 웃음.


"이 사회는 부조리하거든. 뒤를 봐주는 사람, 그러니까 스폰서가 있어. 원래는 내가  알아서 처리하지만 그래도 가끔 작은 실수를 저지르곤 할 때, 그 사람이 뒤처리를 나대신 해주고 있어. 아, 살인마한테 스폰서란 존재는 별로 어울리지 않으려나?"

"…스폰서?"

"즉,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가 잡힐 일은 없단 뜻이야.  사람은 나보다도 썩은 쓰레기지만, 손에  권력만큼은 대단하거든. 설령 네 언니가 발악해도 마찬가지. 내가 확실한 증거를 남길 만큼 무른 성격도 아니고 말이지.
꽤나 노력했는데, 안 됐네. 너의 수사는 완전 실패야, 시아 경관."

"헛소리─"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


갑자기 소리치면서 물기를  눈동자로 그녀를 올려다본다. 그러자 저도 모르게 위축되었는지, 목울대를 꿀렁이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는 그녀.

그 순간 손을 뻗어 붕대로 칭칭 감긴 팔뚝을 낚아채듯이 붙잡는다. 큿하고, 꼴리는 신음소리를 내는 그녀. 상처가 터지면서 그 위로 덧댄 하얀 거즈가 붉게 염색되어간다. 핏방울이 뚝뚝, 교실 바닥에 떨어지며 엉망진창인 그림을 그린다.

"저기? 우리 둘 있잖아. 아직 친구 맞지. 가장 절친한 친구, 맞지?"

"…개 같은 소리하지 마. 역겨운 괴물이.“

"괴물? 히히, 나 같은 소녀한테는 너무 심한 말이잖아. 응? 그렇다고 생각 안 해?
네가 날 정 그렇게 여긴다면, 좋아. 오늘 가장 처음으로 너에게말을 거는 녀석을 죽이겠어."

"뭐?"

"모르겠어? 그럼 천천히 말해줄게. 오늘, 가장, 처음으로, 너에게, 말을, 거는, 녀석을, 죽이겠어."

정의로운 성격의 너는 이쯤에서 분노하겠지. 극악무도한 살인마의 만행을 너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테니. 두려움에 파들파들 떨면서도 용감하게 이 쪽에 대항해오겠지.

실제로 교제한 것은 몇 달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에 불과하지만, 1년도 더 넘은 전부터 쭉 너를 그려온 만큼 너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일이 없다. 그 순진한 정의관도, 은근히 외로움을 잘 타는 성격도, 나를 욕하면서도 끝내 증오하지는 못하는 무른 성격도.


"장난은 작작 쳐!"

"장난이 아닌 걸. 이래봬도 진심이야? 누군지는 몰라도 그 녀석에게 가장 끔찍한 죽음을 선사해줄게."

"그러니까 그만하라고 했잖아!

"어째서 내가 네 말을 들어야 해. 우리둘은 친구도 뭣도 아니잖아."

"그건…"


이런 쓰레기와 친하게 지낼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지만, 또 다른 사람을 희생시킬 수도 없다. 그런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 꽤나 볼만하다. 잔뜩 고뇌하는 얼굴. 고운 미간이 좁혀진다.

팔뚝을 틀어쥔 손의 힘을 풀며 그녀의 매끈한 볼가를 쓰다듬는다. 축축한 피가 새하얀 볼가에 선명한 자국을 남기었다.


"네가 정 그렇다면, 우리 거래할래?"

"거래?"


사랑스럽다. 지독히도 사랑스럽다. 절망이 번져가는 그 표정도, 절박한 희망에 애타게 매달리는 그 모습도 사랑스럽다. 그녀의 모든 것이, 그녀라는 존재 자체에 끔찍한 규모의 사랑을 느끼고 만다. 이것이야말로 틀림없는 사랑.

이런 여자를 만나고, 결국엔 이 손에 쥐게 되다니. 아아, 역시 나는 최고의 행운아야. 손 안의 가녀린 팔뚝을 더욱 세게 틀어쥐며, 광소하고 환희한다. 미묘하게 차가운 인간의 온도가 사실은 뜨거운 사랑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기에, 비로소 자신은 행복해진다. 또한 완전해진다. 드디어, 마침내, 이제서야!


"앞으론 사람을 죽이지 않을게.  대신, 너는 나의, 나는 너의, 서로가 서로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는 거야."

"…"

"어때? 나는 성격이 급하니까. 대답은 되도록 빨리 돌려줄래?"

뭐, 답이야 뻔하지만서도.

무거운 침묵이 흐르지만, 딜레마고 뭐고, 결국 일방적인 선택을 강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이윽고 열린 '친구'의 입에 선아는 미친 듯이 웃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