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2화 〉환상은 어저께 밤중녘에 (42/73)



〈 42화 〉환상은 어저께 밤중녘에

"하…그런다고 맞출  있을 거나 같아? 너 따위가?"

"네, 왜냐면 전 이퀼리브리엄을 30번이나 돌려봤으니까요! 그러니까 그냥 얌전히 맞고 뒤져요!"

"잠─"


번쩍이는 불똥, 억눌린 총성이 잇달아 울려 퍼지고, 매캐한 냄새, 미약하게 피어오르는 연기.

총구를 쥔 손이 정면을 향했다. 총구를 겨누는 눈이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것처럼 나 또한 정면을 바라보고, 맞은편의 선아 역시 멀쩡한 얼굴로 정면을,  쪽을 바라본다.

몇 번의 파도가 지나갔건만,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은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얼이 빠진표정을 짓는 선아.


"뭐야?"

"…쪼오금 빗나갔나?"

"조금이 아니잖아 조금이!"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상황인데 무심코 태클을 걸고 만 나는 분명 나쁘지 않겠지. 족히 여섯 번은   같은데, 어떻게 한 발도 못 맞출 수가 있는 거야? 고작 10미터도  되는 거리에 있는 목표를?

딱히 총알이 선아에게 맞기를 바란 것은 아니지만, 이 다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하면 끔찍하기 그지없다. 생각만으로도 온 뇌하수체가 헝클어지는 기분. 다급한 얼굴로 이자나를 돌아보지만, 그녀는 혀를 살짝 내밀며 주먹으로 제 머리를 콩 때릴 뿐이다.

지금 무책임하게 그럴 때냐고 젠장──다급하게 이자나의 앞을 가로막고 선다. 느릿느릿 총을 재장전하는 이자나. 마찬가지로 느릿느릿 다가오는 선아. 한 손에 들린 시퍼런 날이 천장의 인조광을 반사하고 있다.

"비켜주지 않을래, 시아야?"

"…미안, 방금  실수였어. 부디 잊어주지 않을래?"

"실수로 사람한테 여섯 발이나 총을 쏘는 인간이 있다고?"

그야 있을 리가 없지. 말을 꺼낸 나 스스로도 말이 안 되는 변명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리를 비킬 수는 없다. 내가 비키면,  뒤의 이자나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으니까. 어설플지언정나를 지켜주기 위해서 나선 그녀를 죽게 놔둘 수는 없다.

허나 그렇게 마음먹어도 엄습하는 공포에는 어쩔 도리가 없다. 예리하게 신경을 자극하는 두려움. 나도 모르게 붉은 광경을 환시하고 만다. 이미 나았을 터인 오른쪽 팔뚝이 쑤셔온다.

남이 지금 내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한심스러울까. 꼿꼿이 편 두 다리는 갓 태어난 새끼사슴처럼 덜덜 떨리고, 반쯤 정신이 나간 머리는 몸에게 어서 움직이라 재촉하지만──다행이 아직은 버티고 있는 몸뚱아리.

"…그래?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 조금 다쳐도 날 원망하진 마?"

서서히 쳐들리는 짧은 단도. 천장의 조명을 반사하여 눈부시게 퍼지는 역광. 순간적으로 전신의 근육이 단단하게 긴장된다. 무언가 반항이라도 해보려 오른손을  움켜쥐지만, 겨우 그 뿐. 호랑이 앞에 놓인 토끼 마냥, 한계를 넘어선 공포에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어느 새인가 저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한순간에 닥쳐온 어둠 속에서 공기가 갈라지는 소리가 나른하게 울려퍼지고, 무거울  자를 붙이기에는 다소 옅은중량이, 내게로 다가왔다.

"뭣…뭐야 당신은…"

길로틴 앞에 선 사형수는 조용히 선고를 기다린다. 그러나 기다리고 기다려도 내려오지 않는 처형대.

눈을 감고 얼마나 지났을까.체감상은 오래이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겠지. 기다리고 있었던 고통은 끝내 찾아오지 않는다.

당황한 듯한 선아의 목소리가 신호라도 된 듯 살며시 두 눈을 뜨자, 눈앞에 있는 것은 그저 검고 그저 커다란 누군가의 등이었다.


"익…이거 놔!!"

"…"

깍듯이 다림질한 검은 정장을 차려입고, 머리를 짧게 깎은 남자. 기색조차 없이 나타난 그는 어느 새부터인가 나의 앞에 서있다.

입을 크게 벌리고 멍하니 남자를 올려다본다. 여자치고는 큰 편인 나조차 얼굴을 보려면 고개를 높이 들어야 하는 거한. 산에서 불곰과 마주친다면 이런 기분일까 싶을 정도의 위압감이 온몸을 짓누른다.

남자는 선아의 손목을 한 손으로 가볍게 틀어쥔 채 아무런 말도 내뱉지 않는다. 석상처럼 굳게 다문 입술. 눈에 띄게 당황한 선아는 다급히 반대편 손으로 다른 칼을 꺼내려들지만, 그 전에 남자의 반대편 손이 앞으로 내질러졌다.

인간이 발한 주먹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커다란 파공성과 함께.


-파앙!

"커허억!!"

기습적으로 명치에 발해진 주먹. 분명 뚫어져라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감히 시인할 수조차 없었다. 그저 그 잔상을 더듬는 것이 고작.

조금 전의 총성보다도 훨씬 커다란 소리가 방음벽으로 둘러쳐진 음악실 안에 메아리친다. 야구방망이로 두들겨 맞아도 벌떡 일어나던 선아가, 겨우 그 타격 하나에 허수아비처럼 벽면에 쳐박힌다. 이윽고 찌부러져 죽기 직전의 벌레 마냥 축 늘어진 몸을 파르르 떠는 선아.

자연스레 두 눈이 휘둥그레 해진다. 선아는 강하다. 나도 운동신경이 뛰어나다는 말은 자주 듣는 편이지만, 그런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육체 능력 하나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뛰어나다. 대체 저 깡마른 소녀의 몸 어디서 그런 대단한 힘이 솟아나는지는 몰라도, 허세로 20여명의 인간을죽여 온 것은 아니니까.

그런 선아가 형편없는 모습으로 나동그라져 있다. 겨우 주먹 한 방에, 쓰고 버린 걸레짝처럼 너덜너덜 해졌다.

새빨간 타액이 살짝 벌려진 입가 밖으로 흘러나오고, 의식을 잃은 듯 갈색 동공에는 초점이 사라져있다. 어떤 수를 쓰더라도 쓰러질 것 같지 않던 살인마가 허무하게 쓰러졌다.

상상조차 하지 못 했기에 지극히도 비현실적인 광경. 전원 오프 버튼을 누른 것 같이 움직임이 멈춘다. 그런 나를 슬며시 옆으로 밀어내고 이자나의 몸을 꼼꼼히 살펴보는 남자.

"상처는 없으십니까 아가씨?"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 물음 이전에 제가 당신의 머리통에 총을 겨누고 있었겠지요."

"그건 참 다행이군요."

이자나는 그제서야 장전을 마친 총을 남자에게 건네고, 남자는  총을 받아 안전장치를  보다 작은 사이즈의, 다른 권총과 새하얀 베개 하나를 이자나에게 건넨다.

그러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한 존재인 것처럼 대화를 나누는 둘. 나는 떨리는 눈으로 이자나를 쳐다보았다.

"이자나…?"

"무서워하실 거 없어요. 비록 이런 남자라지만, 일단은 제 전담 경호원이니까요."

"반갑습니다, 저는 아가씨의 경호원인─"

"이름 따윈 필요 없으니 그냥 '흑곰'이라고 부르시면 된답니다."

"…그럼 그렇게 부르시죠."

…그러고 보면 게임 속에서도 이자나의 경호원으로 불리는 존재가 있었다. 등장은 거의 없어서 비중은 공기나 마찬가지였지만, 아무튼 이 사람이 바로  사람인 걸까. 실례인 걸 알면서도 다시 한  남자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본다.

2미터는 족히 넘을 듯한 체구에 양복 너머로도 전해져오는 단단한 체구. 옆으로  벌어진 어깨와 두드러지게 발달한 승모근. 얼어붙은 듯 굳어버린 무표정은 삼엄하게 느껴진다. 마치 야생의 거대한 짐승을 보는 듯한 느낌.

'몬스터'. 압도적인 존재감에 그런 유치한 단어 말고는 달리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건 그렇고, 당신을 대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쿠헉!"

"이걸 죽이자니 학교에다 시체를 숨기는  문제고, 그렇다고 가만 놔두자니 나중에 귀찮아질 것 같고. 흠…아하!"

힘없이 널부러져 있는 선아에게 다가간 이자나가 그녀의 복부를 신발굽으로 살며시 짓누른다. 그러자 선아의 입가에서 검은 핏방울들이 몽글몽글 터져 나왔다. 아까 내상을 입은 것이겠지.

터져나오는 핏물을 가볍게 고개를 틀어 피한 이자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권총의 안전장치를 해제했다. 그런 그녀의 다른 손에는 두꺼운 베개 쿠션이 들려있다.

"사격술은  꽝인 저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 거리에서라면 충분히 맞출 수 있겠죠?"

"이자나 잠─"


총구 바로 앞에 베개를 갖다놓은 이자나가 선아의 어깻죽지를 향해방아쇠를 당긴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내가 채 만류하기도 전에 작은 총성이  한  울려 퍼지고, 빗방울처럼 바닥에 후드득 떨어지는 탄피 한 조각.

그러나 이번에도 피는 떨어지지 않았다.

"이익!! 또 빗나간 거에요! 흑곰!"

"예, 아가씨."


신경질적으로 던져진 권총과 베개를 남자, 흑곰이 가볍게 캐치한다. 다음 순간 아직도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선아를 향해 걸어가는 그. 이번에는 제때 남자의앞을 가로막는다.

"그, 그만하세요! 이제 됐잖아요!"

"저….이러시면 곤란합니다만."

보기만 해도 두려움이 생겨나는 남자지만, 그가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쯤은 쉬이 알 수 있다. 곤란한 듯 그저 무뚝뚝한얼굴을 살짝 흐리는 그를 보며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보다 어째서 나는 그의 앞을 가로막는 것인지. 슬쩍 뒤를 돌아보면아직까지도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선아가 보인다. 그녀를,  더러운 살인마를 죽이려면 바로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인데.

차갑게 식은 머리가 고한다. 저것은 선배를 죽이고, 나의 언니를 죽이려 했던 여자라고.  외에도 희생당한 목숨은 여럿이고, 이런 쓰레기는 죽어 마땅하다고, 아니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고. 네가 받은 그동안의 고통은 전부 잊은 거냐고.

"그만해주세요…제발…."

머리로는 알아. 알고 있는데──하지만 싫단 말이야.

억지라고 해도 좋다. 어리광이라고 해도 좋다. 왜냐면 다 사실이니까. 언제는 직접 죽이려고까지  주제에 대체 무슨 위선이냐고.

허나 지금도 눈을 감으면 피에 잠긴 선배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유난 떠는 도련님 마냥 깔끔하기 그지없던 얼굴인데, 아니 그날 아침까지만 해도 그러했는데, 평소의 잘난 체와 여유라고는 온데간데없이 고통과 공포로 일그러진 그 얼굴이 생생히 떠오른다.

잊지 못할 기억. 약을 먹어도 늘 꿈의 형태로나타난다. 선배의 그 모습을 아직 잊지 않은 만큼, 아니 잊지 못한 만큼  또한 강선아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더 이상 눈앞에서 누군가 죽는 모습을 보는 것은 지긋지긋하다. 피칠갑을  몸, 피칠갑을 한 날, 피칠갑을 한 나. 그딴 경험은 한번이면 족하다. 한번이면족하니까. 이제 더는 싫다.

…이딴 거, 역시 어린애도 안할 어리광이겠지. 면목이 없어 고개를 떨군 나를 향해 또각거리는 발소리가 가까워진다. 고급스러운 광택을 뽐내는 검은색 단화, 이자나의 것이다.

"안심해요. 죽이려는 것은 아니니까. 어차피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시체를 처리하는 것은 저희로서도 곤란한 걸요."

"그럼─"

"하지만 최소한 그 몸을 걸레짝으로 만들어줘야 성에 차겠네요."

"이자나!"

이자나의 이름을 소리치며 그녀를 노려보지만, 싸늘하게 변한 푸른 눈은 나를 가만히 응시한다. 거기서 풍겨져 나오는 뭔지 모를 위압감에 나는 내뱉으려던 반대의 말을 도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시아 씨는 바보인 건가요? 시아 씨를 상처 입히고 저를 죽이려던 여자라구요? 오히려 가만히 놔두는 게  이상하잖아요."

"그, 그렇지만…"

"도를 넘은 무름은 선함이 아니라 그저 바보짓일 뿐이에요. 알아들었으면 얼른 거기서 비켜요. 저는 당신을 지켜준다고 약속한 사람으로서, 마땅히 그래야  의무가 있답니다."

"…"


끝내 비키지 않자 나를 밀치는 손길. 힘은 그다지 담겨있지 않았지만,내 몸은 저항  번 못해보고 힘없이 허물어졌다.  손길이 아닌 그녀의 말에.

이윽고 적막 속에서  발의 총성이 고요하게 울려 퍼졌다. 나는 차마 뒤를 돌아볼 수 없었고, 흑곰은  역할을마친 권총을 다시 집어넣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