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0화 〉Something About Us (60/73)



〈 60화 〉Something About Us

'뭐 읽고 있어?'


단적으로 말해, 첫인상은 최악이었다.

가지런히 내린 세미롱. 화장기 없이도 깨끗한 얼굴. 검고 짙은 눈동자는 렌즈를 낀 것처럼 짙고, 잡티 하나 없는 살결에는 연분홍색의 핏기가 은은하게 감돈다. 그리고 딱 보기 좋을 만큼 봉긋 솟아오른 가슴께. 수수한 교복으로도 차마 가려지지 않는 여성으로서의 매력.

그에 반해 자신은 어땠더라. 맨날 헝클어진 곱슬머리에, 두꺼운 뿔떼 안경. 플라스틱 렌즈 너머로 보이는 적갈색 눈빛은 섬짓하기 그지없었고, 병적으로 하얀 피부와 삐쩍 마른 몸매는 시체를 연상시켰다.

덕분에 거울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감상.  여자는  이리도 음침한 표정을짓고 있는 거지. 저 스스로도 모자라 주변 풍경까지 음울한 잿빛으로 물들이는 여자.

아무튼 물과 기름, 혹은 자석의 양극처럼 지독하리만치 어울리지 않았던 우리 둘. 시대착오적일 정도로  치마 길이 하나만이 유일하게 다를  없었지만, 겨우 치마 길이 따위가 인간의 격을 재단할 리가 없잖은가. 애초에 관상 자체가 자신이 사는 세계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고개를 쳐든 의심. 아마 장난칠 거리라도 찾아 말을  것이겠지, 그렇게 지레짐작했다. 원래 인싸들은 흔히 찐따들을 자기네 장난감처럼 여기고는 하니까. 상큼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이 여자도 그와 별반 다를 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해맑은 그 얼굴이 참을  없으리만치 음울하게 느껴졌다. 뻔한 수작. 그토록 뻔한데, 어째선지 한껏 당황하고 말았다.

사실, 누군가 그렇게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준 것은 엄마가 떠난 이후로 처음이었다.

'어, 어…응?'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거네?'

'으, 응…'


도서관 구석에서 자살 찬양 소설을 읽는 음침한 여자라니. 이보다 더 기분 나쁠 수가 있나 싶지만, 여자의 미소는 일그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좀 전보다 한층 밝아진 것 같기도. 뒤편의 창틈 너머로 새어 들어오는 햇살이 겹쳐지면서 마치 성모처럼 보인다. 마리아는 사실 동양인이었던 건가.

'에드거 앨런 포는 어때? 왠지 이 사람 작품도 좋아할 것 같은데.'


그 이후에도 떨어지지 않고 쉴 새 없이 재잘대는 여자. 너 무슨 작가 좋아해? 나는  작가 좋아해.  작가는 어때? 머리 나빠 보이는 외관과는 달리 여자는 제법 교양이 있었다. 어쩌면 나보다도 더. 외모도 딸리는데 교양까지 딸리면 문학소녀를 자처하는 나의 존재가치는 대체 뭐지.

어느 새 화끈 달아오른  뺨. 바로 귓가 근처에서 소곤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니 어쩐지 19금 ASMR을 듣는 것 같다. 그런 건 이상성욕 변태들이나 듣는 거라 생각했는데, 왠지 조금은 이해가 가는 기분. 물론 구독 버튼은 누르지 않는다.

고작 말 몇 번 나누는 것뿐인데, 등골을 타고 흐르는 식은 땀. 어쩔 줄 몰라 하는 손가락은 책의 귀퉁이를 하염없이 어루만지고 있다. 그리고 속으로 주절주절.

자꾸  옆에서 왜 이러는 거야. 난 사실 문학 따위 뭣도 모른단 말이야. 평소에 문학소녀 코스프레를 하며 살긴 하지만,그거야 뭐라도 하는 '척'하는 것뿐이고, 도서관에  것도 그냥 조용히 점심시간을 때우고 싶어서 그랬을 뿐이야. 인싸면 인싸답게 인싸 무리에 가서 놀라고.

그런 의미를 담아 여자를 쳐다보았지만, 이내 금방 시선을 거두었다. 딱히 저 반짝이는 눈동자를 감당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목소리 내어 말할 용기가 있었다면, 애초부터 이렇게 살지도 않았겠지.

그러니 그저 바랬다. 이 불편한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지나가기를.

'시간 됐네. 나는 이만 가볼게.'

'아, 안녕…'

수업시간 예종이 울리자 가볍게 서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다. 그제서야 한숨과 함께 읽고 있던 책을 탁 소리 나게 덮는다. 엉덩이에 묻은 먼지를 훌훌 털고 뻐근한 몸을 일으킨다. 어쩐지 뻐근한 어깨를 가볍게 풀고서 나 또한 교실로 걸음을 옮긴다.

교실로 돌아와 무심코 주변을 둘러보지만, 아마도 다른 반인 듯 그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하긴, 같은 반이었으면 그 눈부신 얼굴을 기억 못할 리가 없지.

아무튼  작은 만남이 인연의 끝일 거라생각했다. 왜냐면 사는 세계가 달라도 너무 다르니까. 더 이상 만날 일은 없을 거라고, 정말 그걸로 끝일 거라 생각했는데, 설마 이리도 질기고 질긴 인연이 될 줄은.

그때의 자신은 몰랐었다. 그리고 지금의 자신 또한, 과연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를 잘 모르겠다. 그저 운명, 그저 운명이라고 밖에는.


'안녕!  보네.'

해가 지고 달이뜨고 달이 지고 해가 떠서 다음날 점심시간. 도서관의 구석. 푸석한 먼지가 어중간하게  구석자리. 거의 아무도 찾지 않는 장소이지만, 여자는 기어코  다시 찾아왔다. 정오의 해님처럼 싱그러운 활기를 사방에 흩뿌리면서.


'옆에 앉아도 되지?'

아니, 꺼져줘, 제발──감히 그리 말할 수 있을 리가. 찐따의 정석이라도 되는 듯이 고개를 덜덜덜 끄덕이고선, 다급히 시선을 내리깐다. 맞지 않기 위해서 몸에 익힌 행동양식 중 하나.

부모님이 이 한심한 모습을 보면 과연 뭐라 하실런지. 그렇게 자책하다 저에게 부모님이라 부를만한 존재가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을 때, 이미  여자는 바로 옆자리까지 와있었다.

나의 당황에도 아랑곳 않고 엉덩이를 땅바닥에 붙이는 여자. 그리고 흐트러진 치맛단을 툭툭 정리한다. 언뜻 보면 털털한 그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외모 때문인지 묘하게 여성스러워 보였다.

'그러고 보니 어제 이름을 못 들었네. 다른 반이지? 난 이시아야.'

'나, 나는 강ㅅ…건마야.'

'응?'

'가,강건마라고.'


저도 모르게 본명을 꺼내려다가, 말았다. 왜냐면 그다지 친해지고 싶지 않았으니까. 대신 급하게 대고 말아버린 어느 만화 주인공의 이름. 그것도 바보 같이 남자 캐릭터의 이름을 대고 말았다.

하지만 여자는 비웃지 않았다. 물론 웃고 있긴 했지만, 꺼림칙한 조소랑은 다르다. 여자는 그저 해맑게, 화사하게, 따스하게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마치 뭣도 아닌 교감이라도 하려는 듯이.

'좋은 이름이네.'

그러면서슬며시 올라가는 양쪽 입꼬리, 부드럽게 접히는 눈꺼풀. 대체  헤픈 여자의 헤픈 미소 하나 가지고 같은 서술을 몇 번이나 반복하는 거야.

그런데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빛바랜 추억이 자꾸만, 자꾸만 멋대로 상상 속의 펜을 움직인다. 그때는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던  같은데, 아니 오히려 싫다는 쪽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는데.

뭐라 해도 그때의 그 미소만큼은, 묘하게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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