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3화 〉Something About Us (63/73)



〈 63화 〉Something About Us

그 날을 기점으로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평범함을 위장하던 소녀가 연쇄살인마로,  그래도 쓰레기 같던 인생이 더더욱 밑바닥으로.

처음에는 사람을 죽이고 환희하는 자신을 도저히 받아들일  없었다. 그 아이를 위해서 피를 손에 묻혔지만, 그 결과는 전혀 그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얼굴이 뭉개진 시체 앞에서 환히 웃는 자신. 단단히 아로새겨진 기억은 잊혀지지 않고, 새벽달이 찾아올 때마다 차오르는 충동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방구석에 처박혀 밀어닥치는 후회에 몸서리치며 눈물을 뚝뚝 흘리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다시 두 손을 알록달록 물들인 붉은 얼룩.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죄책감 어린 원망을 달뜬 음성으로 토하면 그제서야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들.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과 헤픈 웃음을 흘리는 나.

이건 아니야. 이건 잘못되었어. 그러나 부질없는 외침은 허망하게 지고, 충동을 제어할 수 없을 때가 되면 어김없이 밖을 거닐게 된다.

뉴스에서는 대대적으로  과오에 대해서 떠들어댄다. 저 새끼는 분명 사람 새끼도 아닐 거라며 손가락질하는 사람들. 맞아요. 저는 사람 새끼도 아니에요. 전부 다  잘못이죠.

시발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건데, 나보다 나은 처지의 인간을 죽이면서 행복을 느끼는  인간으로서 당연한 거 아니야? 따지고 보면 날 이렇게 낳은 부모의 잘못 아니야? 날 좆같이 기른 씹새끼와, 어린 날 두고 집을 나간 그 샹년 때문 아니냐고.

따지고 보면 너희들도 나빠. 왜 내 앞에서 자꾸 행복한 행세를 하는 건데. 내 인생은 씹창날 대로 씹창났는데, 이제 아무도 구원해주지 않는데, 왜 내 앞에서 미소 지으며 가만히 있는 나를 굳이 자극하는 거냐고.

기만질을 하는 개새끼들. 맞아, 내가 나쁜  아니야. 내가 너무 불행하고 너희들이 너무 행복한 게 나쁜 거야. 행복에도 총량제라는 게 있어야 된다고. 이미 행복한 너희들이 불행해진 만큼 내가 행복해진다면 그거야말로 평등한 세상 아니겠어? 칼을 들이대며 그렇게 물으니 덜덜 떨면서 고개를 끄덕이던 그 돼지새끼. 다섯 번째로 죽인 녀석.

사고방식이 그렇게 바뀌었을 때쯤, 신기하게도 더 이상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손바닥 안쪽에 덕지덕지 들러붙은 피를 봐도 거부감이 들지 않아. 정말이지 신기할 노릇. 어린 시절 배웠던 슬기로운 생활은 대체 어디로 가버린 건지. 그냥 웃는다. 소리 내어 웃는다. 망가져버린 자동인형처럼.

죽이고  죽여서,  이상 자신의 죄를 자신의 손으로 감당할  없게 되었을 때쯤, 아버지가직접 내 뒤를 봐주었다. 분명 번거로울 텐데도 이상하게도 아버지는 나를 말리지 않았다. 경찰청장이라는 양반이 말이지. 설마경찰청장의 취미가 어린 딸의 입에 자기 좆을 물리는 거라니!

그래도 그 쓰레기 덕에 계속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여전히 학교에서는 무시당하기 일쑤였지만, 어떻게든 겉으로는 평온한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학교에는 그 아이가 있었지.

'건마야! 그 동안 도서관에는 왜  온 거야? 걱정했었단 말이야! 혹시 내가 불편하게 한 거야?'

2주간 학교를 쉬다 오고, 도서관에 가니  아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아직 나를 기억하고 있구나.

비록 그 이름은 거짓이지만, 차오르는 기쁨에 절로 들썩거리는 입꼬리를 억지로 붙잡는다. 모두 다 구린내 나는 가면을 쓰고 있는 와중 오직  아이만이 내게 순수한 웃음을 보여준다. 한없이 순수하고 깨끗한 아이. 악마들의 유혹으로 한 시라도 머릿속이 시끄럽지 않을 때가 없는데 오직 이 아이의 웃음을 볼 때만큼은 어떠한 충동도 찾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거다. 혹시라도 내 피 묻은 손이 그녀를 더럽힐까봐. 그래서 나를 향해 다가오는 그 아이의 손을 있는 힘껏 뿌리치고 말았다.

'…미안, 주제넘게 참견하고 말았네.'

살짝 먹먹해진목소리로 말하는 그 아이. 그 처량한 표정에 가혹하게 먹기로 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그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허나 갈라진 성대에서는 새된 신음만이 애처롭게 흘러나올 뿐이다.

결국 등을 돌리고 떠나가는 그 아이. 무심코 손을 뻗어보았지만, 붙잡을 수가 없었다. 왜냐면 그럴 자격이 내게는 없었으니까.  아이와 친구도 뭣도 아닌 나에게는.

'어머, 손님 너무 예쁘세요.'

'…'


예뻐졌구나. 아버지는 붉은 색이 나에게 어울린다고 말했다. 그래서 머리를 새빨갛게 염색하고, 평생 손도 안 대던 화장을 배우고, 무릎까지 오던 교복 치마를 짧게 줄였다. 이렇게라도 하면 무언가 바뀔까 싶어서, 그 아이가 더 이상 나를 알아보지 못할까 싶어서.

다 부질없는 짓거리. 아버지는 이전보다 빈번하게 나를 강간해왔고, 나는 여전히 참을 수 없게 되면 거리에 나가 사람을 죽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더 이상 도서관에 찾아오지 않았다.

이런 생활이 계속되다 보면, 나도 언젠가 붙잡혀서 처벌을 받게 되겠지. 아무리 뒷배가 있다 하더라도 죄로부터 영원히 도망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영원이란 없으니까.

하지만 하잘것없는 인생을 영위하는 데는 짧은 쾌락만으로도 족했다. 애당초 그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던 생이었으니까. 차게 식어버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언젠가 내 손목에 수갑이 채워지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내가 나를 죽여버리지 뭐. 내일의 해는 내일 일어나서 보자는 식.

'안녕?'


그렇게 반쯤 포기하며 살던 내 앞에 그 아이가 다시 나타났다. 너무 바뀌어버린 나와 달리 이전과 똑같은 그 얼굴, 그 목소리. 다소 무르익은 것을 제외하면 지난 세월 한 시라도 잊은 적 없는 그 모습 그대로.

다가가면 안 되는데, 다가가면 안 되는데, 아무런 소용도 없는 되뇌임. 그 아이가 아무렇지 않게 흘린 웃음에 요란스럽게 쿵쾅대는 심장.

'고마워. 하지만  생각엔 네가 더 예쁜 걸.'

다시 만난  아이는 다행스럽게도 바뀐 내 모습을 알아보지 못 했다. 태연스럽게 건넨 칭찬. 그 한 마디에 지금까지의 부질없는 노력들이 한꺼번에 보답 받은 기분이라고 하면 알까. 아버지의 기분 나쁜 칭찬과는 다르다.

아무리 다잡으려 해도 또 요동치고 마는 가슴.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 새  아이에게 전한 이름. 이번에야말로 전할 수 있었던, 진짜 이름.


'강선아…강선아…음, 좋은 이름이네.'

아마  말을 듣는 순간 이성의 끈이고 뭐고 죄다 끊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래, 좀 더럽히면 어때. 좀 더러워지면 어때.  아이는, 여전히 내게 웃어주는데. 잘못이 있다면 나를 유혹한 이 아이에게 있으리.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웃고, 여기까지가 이야기의 끝. 아무튼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아끼는 친구가 되어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잘 됐구나 잘 됐어.


'─그러니까 네가 싫다는 거야.'

하지만 고장  녹음기는 기어코 다음 영상의 재생 버튼을 눌러버린다. 잔뜩 낀 노이즈에, 불투명한 화면. 그러나 그 말, 그 한마디만큼은 또렷하게 흘러나온다. 두 눈이 시릴 만큼, 한없이.

감았던 눈을 떠보니,  아이의 환한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뚱뚱한 중년 남자의 나체가.


"이…개 같은 년이…감히…키워준 은혜도 모르고…"


목에 뚫린 구멍으로 피가래를 뱉으면서 남자가 말한다. 누구야 저거. 머리는 고민에 빠지지만, 총을 든 손이 저절로 움직여 남자의 벗겨진 머리통을 겨눈다.

"나, 사실 총은 싫어해. 왜냐면 죽인다는 실감이 안 나잖아. 멀찍이 떨어져서 한 발 탕 쏘는게 대체 뭔 재미인데. 모처럼 저지르는 살인이니 만큼 정성을 다 해야지. 안 그래?"

"개년…두고 보자…내 결코…"

"하지만 당신만큼은 이렇게 죽여버리고 싶네."


탕.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