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6화 〉Something About Us (66/73)



〈 66화 〉Something About Us

"아, 왔구나!"

"…"


시간에 맞춰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기다리고 있던 강선아가 반가운 얼굴로 팔을 붕붕 흔들어댄다. 마치 그간의일들은 전부 잊은 듯 주인을 반기는  마냥 화사하기만 한 표정에 구겨 들어가는 나의 표정. 지금이라도 당장 돌아가려는 발걸음을 간신히 멈춰 세운다.

"거기서 뭐해?"


차마 다가가지도 못하고 가만히 서있기만 하니 이윽고 강선아가 내게로 다가온다. 힘차게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푸들 꼬리처럼 팔랑거리는 순백의 원피스. 끝단에 달린 레이스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가녀린 몸매의 그녀에게 무척이나 어울리는 코디.

평소라면 어울린다는 한 마디 정도를 내뱉을 법도 한데, 지금 와서는 그저 거부감만 생길 뿐이다. 무심코 고개를 틀어버린다.


"또 후줄근한 차림이네? 모처럼인데 내가 사준 옷으로 입고 나오지."

"하아? 바보 아냐? 내가 왜?"

"하지만…"

"바보 같은 소리할 거면 이만  봐도 될까?"

"아, 아무 것도 아니야!"


마치 이전과 같이 이어지는 회화. 다른 점이 있다면 눈에 띠게 날카로워진 나의 태도.

아마 다른 사람들이 눈에는 내가 나쁜 인간이고, 이 녀석이 착한 인간인 것처럼 비치겠지. 그걸 생각하면 배알이 꼴리는데, 못 참을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래서, 왜 부른 거야?"

"아까 말했잖아. 데이트야 데이트."

"…데이트?"

무심코 실소를 흘린 게 내 탓은 아니겠지. 우리의 관계가 파탄 난 것은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 언니도 아는 사실. 이미 돌아오기엔 너무 먼 강을 건너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제 와서, 연인들이나 할 법한 짓을 하자니.

눈앞에 서있는 강선아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새하얀 원피스, 새하얀 살결. 모든 것이 비어있는 도화지처럼 새하얗지만 정작 환시되는 것은 피로 새빨갛게 얼룩진 모습이다.

애써 청순한 척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비릿한 모습이 더욱 어울린다. 선배를 죽이기 이전에도 숱하게 손에 피를 묻혀온 인간. 한때는 그 손으로 내 몸을 더듬거리기도 했었지. 그런 인간과 평화롭게 데이트를 할 수 있는 정신머리 따위, 내게는 없다.

"장난하니? 나한테 그 지랄들을 해놓고 감히─"

"미안해."


입을 이죽거리면서 강선아를 노려본다. 하지만 갑자기 사라지는 그녀의 얼굴. 시선을 아래로 내리니 한껏 허리를 굽히고 있는 그녀의 날개뼈가 보인다.

이윽고 단호하게 변한 목소리가 내 말을 끊었다.

"나도…내가 뻔뻔한  알고 있어. 하지만 이게 정말로 마지막이니까. 그러니까…"

그녀의 약한 모습에 어김없이 요동치기 시작하는 심장을 다잡는다. 이미 서로의 가장 어두운 부분까지 목격한 사이가 아닌가. 대체 무엇이 진정한 목적인지는 몰라도, 이제 와서 그런 가장에 놀랄 필요는 없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본성을 숨기고 나와 친해졌던 인간이니까.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응, 고마워."

그래,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하루만 참으면 더 이상 이 지긋지긋한 얼굴을  필요도 없다.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

"조 경위님, 도착했습니다."

"…응? 어, 수고 했다."

잠시 잠에 빠진 사이 도로변에 정차되어 있는 차. 운전석에 있는, 경찰 제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청년의 말에 남자는 차문을 벌컥 열어 제꼈다.

동시에 폐부를 간질이는 습한 공기. 지금 자신이 산소를 들이마시는 것인지 미세먼지를 들이마시는 것인지. 남자는 안 그래도 험악한 인상을 한껏 찌푸리면서 아스팔트 바닥 위에 발을 디뎠다. 이윽고 운전석의 청년 또한 남자를 따라 차에서 내렸다.


"저기 저거, 저 아파트 맞냐?"

"네."

"휘유, 아파트 한  죽이네."


누구는 갑자기 치솟은 전세값에 죽어나가는데 서울 한복판에 저렇게 으리으리한 아파트를 짓다니. 그저 보기만 해도 배알이 꼴리는 느낌. 이래서 한때 빨갱이 놈들이 득세를 한 건가. 휘파람을 경쾌하게 불면서도 남자는 거친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문득 담배  대가 땡겨서 자켓 겉주머니를 뒤져보지만, 있는 것이라고는 빈 종이갑뿐. 주머니 안을 탈탈 털어 봐도 갈색의 필터 부스러기만 흘러나온다.

"씨이~발, 야, 너 담배 없냐?"

"예? 없습니다…"

"그래? 뒤져서 나오면 어쩔래?"

"지, 진짜로 없습니다!"

"그러냐."

정말로 없나 보네. 뻣뻣한 차렷 자세로 대답하는 청년을 거들떠도 보지 않으며 남자는 성큼성큼 발을 내딛었다. 물론 어딘가 설렁설렁한 그 걸음이 향하는 곳은 초라한 그의 행색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고급 아파트 단지의 입구였다.

"저기, 무슨 용무이십니까?"

"예예, 저희는 이런 사람입니다."


깔끔하게 조성된 정문에 다다르자 푸른 제복을 차려입은 경비원이 앞길을 가로막는다. 강남 안에서도 노른자위에 박힌 수십억짜리 아파트는 과연 보안도 철통같다는 것인지. 살짝 굳은 경비원의 표정에 남자는 곧 바로 주머니에 처박혀 있던 경찰신분증을 꺼내들었다.

"아, 형사님이셨습니까? 여긴 어쩐 일로?"

"신고가 들어와서 말입죠. 잠시 둘러보고 가겠습니다."

"예, 지나가십쇼. 문은 경비실로 연락주시면 제가 열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원만히 경비원을 통과한 뒤, 웬만한 자연공원 수준으로 조성된 단지 내 정원을 거쳐 목적지로 향한다.

거침없이 발을 앞으로 옮기던 그는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뻣뻣하게 굳어버린 채 기계처럼 두 다리를 움직이는 청년이 있었다.


"새끼, 긴장했냐?"

"아, 아닙니다!"

"후까시 잡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봐."

"사, 사실 조금은…"

"뭐, 그럴 수도 있지."

바로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술 취한 꽐라들에게 빨대나 불라고 종용하던 청년이다. 오히려 의연한 자세를 유지했다면 남자는 그를 이상하게 보았으리라.

그도 그럴게, 그들은 지금 살인 신고를 받고 현장으로 향하는 중이었으니까.

그것도 현재 세간을 들썩이게 만들고 있는 연쇄살인마의자진 신고를 말이다.


"걱정하지마, 임마. 시체라고 해서 살아있는 사람하고 별 다를  없다. 그냥 특수 분장 좀 한 거라고 생각해."

"하, 하지만 그 연쇄살인마라구요?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만 21명을 죽였다는…"

"그러니까 더더욱 걱정하지 말란 거야. 범죄에 도취하는 미친연놈들이 세상에 한 둘인 아냐? 애초에 신고지가 이런 부자 동네만 아니었다면 굳이 출동도  했을 거야."

아직은 어리숙한 후배 녀석을 가벼이 달래자 때마침 열리는 아파트 현관의 자동문. 안으로 들어간 남자는 옅게 털이  손가락을 들어 승강기의 상승 버튼을 눌렀다. 사람을 죽였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으로 향하고 있음에도 심드렁한 남자의 표정.

최초로 확인된 사건은 1년 전쯤이었던가. 해변에서 두 눈알이 파이고 두개골이 으스러진 채 발견된 커플 한 쌍.  이후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만 21명을 죽였으면서 아직까지도 그 행적이 묘연한 살인 범죄. 그리고 현재의 경찰청이 욕을 먹는 가장 큰 이유이자 최대 골칫거리.

얼마 전에는 죽여도 하필 대기업의 후계자를 죽여서 한창 시끄러웠더랬지.남자 또한 형사 나부랭이로서 익히 알고 있는 사건이다. 아니, 지나가는 아이를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모르는 아이가 없으리라.

중하게 임해야  사건임은 안다. 그렇지만 범죄란 것은 유명한 만큼 멍청한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쉬운 법이다. 보나마나 진짜그 연쇄살인마가 자신해서 신고했을 리는 없고,  어느 미친년의 장난이겠지. 남자의 털 난 가슴 속에는 이딴 일이랑 얼른 해치우고 경찰서로 돌아가 농땡이 피우고 싶은 맘 밖에 없었다.

이내 지정한 층에 도착하는 승강기. 신고가 들어온 호 수의 문 앞에 선 남자는 초인종 버튼을 꾹 눌렀다.

"XX경찰서의 조동혁 경위입니다. 신고를 받고 왔습니다. 지금 조사 가능하십니까?"

그러나 들려오지 않는 응답. 초인종을   더 눌러도 집주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설마 부재중인 건가? 주먹  손으로 문을 쾅쾅 두들겨 보지만 역시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에이 샹──이게 뭐야."

성질을 못 이기고 문고리를 억세게 잡아당기자 덜컥, 저절로 열리는 문. 남자는 물론 그의 등 뒤에 서있던 후배 또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일단 들어가 볼까."

"마음대로 들어가도 됩니까?"

"그럼 계속 이 밖에 죽치고 있을래?"

"아닙니다."


아무래도 남의 집이다 보니 괜히 조심스러워지는 행동거지. 최대한 살살 현관문을 열어 제낀 남자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깔끔하게 정돈된 신발장이 우선적으로 보이고, 그 다음으로 넓게 펼쳐진 거실이 보였다. 양쪽에 위치한 궤짝 스피커 1조와 벽면의 대부분을 차지한 대형 브라운관. 어딘가 으스스한 기운이 감도는 상아빛의 토르소.


"아무도 없는 거 아닙니까?"

"쉿"


입을 꾹 닫고 귀를 기울여 보지만 사람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 시발 신고해놓고 신나라도 불러 간 건가? 끝내 샹 소리를 내뱉고 마는 남자. 그러나  순간 알 수 없는 섬뜩함이 남자의 등골을 타고 흘렀다.

"…야 시발, 잠깐만."


가만히멈춰선 채,남자는 개처럼 코를 킁킁거린다. 그러자 아까보다 확실하게 맡아지는 비릿한 냄새. 마치 오랜 장롱 속을 뒤지는 것처럼 퀘퀘묵은 냄새다. 그러니까, 흔히들 기시감이라고 부르는 감정.

비록 옅기는 하지만, 이 냄새는 분명 그거다.

"조 경위님?"

"닥쳐봐."

발소리를 최대한 죽인 채 살금살금, 품에서 슬쩍 총을 꺼내들면서 남자는 현관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자 점점 더 짙어지는 냄새.

냄새가 풍겨오는 곳을 따라 저절로 걸음이 움직인다. 조경이 아름다운 거실을 지나쳐 어느 앞에 서자,아예 비강 근처를 기웃거리기 시작하는 비린내. 청년 또한 무언가 이상하다는  알아차렸는지 얼굴을 굳혔다.

제발 착각이길 바랬지만, 이쯤 되면 더 이상 의문을 품을 수도 없다. 남자는 구둣발로 방문을 걷어차고서 정면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시발"


불길한 예감은 그대로 사실이 된다. 아마 서재로 보이는 방의 중앙, 구멍 난 머리통에서 우윳빛의 뇌수를 질질 흘리고 있는 중년의 남성.

"경위님? 아…우욱─"


뒤늦게 참사를 목격한 청년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그러나 손가락의 틈새 사이로 흘러나오는 위액. 사뭇 더러운 광경이었지만, 남자 또한 그런 청년을 탓할 겨를이 없긴 매한가지였다.

벌집이 된 머리통이나 주변에 널린 탄피들을 보건대 흉기는 총이겠지. 대체 얼마나 쏴갈긴 것인지,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해진 사체의 얼굴. 남자는 허리를 숙이고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이건…"


사체의 벌려진 입가에 꽂혀있는 네모난 종이 한 장. 남자는 조심스레 그것을 잡아 당겼다. 그러자 풀썩 꺾이는 사체의 고개. 한순간 움찔거린심장을 애써 진정시킨다.

그것은 어느 소녀의 얼굴을 담고 있는 사진이었다. 염색한 듯 보이는 붉은 머리칼과그와 대비되는 새하얀 피부가 인상적인 소녀.

제법 예쁘장한  웬만한 아이돌 싸다구는 후려갈길 수 있을 것 같이 생겼다. 아마 상황이 이렇지만 않았더라면 남자 또한 예쁘게 자란 딸을 보는 기분으로 훈훈하게 소녀를 바라볼 수 있었겠지. 그 소녀가 눈앞에 보이는 사체의 얼굴을 가슴팍에 끌어안고 있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소녀는 햇볕을 받은 해바라기처럼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푸르게 변색된 시체의 얼굴을  끌어안고 있었다. 그리고  아래로 붉게 휘갈겨져 있는 문자열.


[방해하지 말아주세요. 지금 근처에서 데이트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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