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9화 〉Something About Us (69/73)



〈 69화 〉Something About Us



"시아야? 어디 가는 거야?"

굴러 떨어지듯이 현관문을 거칠게 열어제낀다.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벽에 부딪히는 철문. 차디찬 밤바람에 비틀거리는 걸음걸이가 밖으로 나선다. 낡은 캔버스화  쌍이 절로 이끄는 걸음. 한껏 달아오른 폐부는 짐승 같은 숨을 잇달아 토해낸다.


"잠깐, 어디 가는 거야!"


검은 하늘에는 어젯밤 보았던 달이 외롭게 떠있다. 바닥에는 검은 아스팔트 바닥이 늘어서 있다. 천편일률적이네, 라고 생각하는 순간 펼쳐지는 레드 카펫. 카메라 플래쉬가 번쩍이고, 양 옆에 늘어선 유명인사들은 누군가를 향해 환호성을 내지른다. 흑인 여자의 허리를 껴안고 있는 니콜라스 케이지. 개고기를 게걸스럽게 입에 물고 있는 브리짓 바르도.

이사카가 주었던 약은 진즉에 다 먹어치웠는데, 취기가 한가득 올라 정상이 아닌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가느다란 검푸른색 모발들이 이리저리 흩날리고, 이마선을 따라 주륵 흘러내리는 핏줄기. 콧대를 타고 내려와 마른 입술을 적신다.

그래도 아직은 정신이라고 부를 게 남아있는데 눈알이 자꾸 위로 돌아가서 어지럽다. 벽이고 바닥이고 하늘이고 죄다 구분이 안 되는 지경. 자연스레 취객의 걸음처럼 꺾이는 발목.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생각한 순간 그대로 고꾸라지고 만다.


"괘, 괜찮아!"

시대착오적인 슬랩스틱을 시전하는 나를 보고서 관객들의 환호성이 더욱 짙어진다. 나도 그들을 따라서 방긋 웃고,  몸에 와닿는 누군가의 손길을 뿌리쳐낸다. 그렇게 코피가 흐르는 얼굴로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한다.

'멋진 메이크업이네요! 패션만으로도 오스카상은 따놓은 당상이겠어요!'


니에미.

직진, 오로지 직진, 사실 가끔은 좌회전, 혹은 우회전. 그저 본능이 나를 이끈다. 깔깔깔, 경박한 웃음소리는 더욱  짙어지고, 지긋지긋해져서 그들의 입가를 잡아 찢고 싶다.  입이라도 그렇게 만들면 평생 웃으며 살 수 있을까.

북을 치고 나팔을 부는 장난감 병정들이 등을 떠민다. 제발 나를 가만히 놔둬줘. 실은 이렇게라도 내 등을 떠밀어주는 그들이 고맙다. 그들의 조롱과 조소가 내게 일어날 용기를 선사한다. 딱  번 눈감고 아픈 꼴을 당할 용기 말이다.

휘황찬란한 빵빠레와 함께 폭죽이 내가 가는 길을 수놓는다. 찢어진 종잇조각들이 하늘에서 내려오네요. 이건 지폐조각인 건가요 벚꽃잎인 건가요. 아리까리한 그때 내 팔을 억세게 붙들어 매는 손길.

"그만해! 대체 뭐하는 거야 지금!"

내 팔을 강하게 붙잡고 있는 불쾌한 손. 천천히 시선을 옮긴다. 불쾌한 팔. 불쾌한 어깨. 불쾌한 목. 불쾌한 목젖. 불쾌한 얼굴. 불쾌한 표정. 불쾌한 입술. 불쾌한 속눈썹. 불쾌한 눈물. 불쾌한, 그 외 이것저것.

 웃고 떠들고 즐기는 와중에 이 인간 혼자 뭐가 마려운 듯 인상을 한껏 찌푸리고 있다. 묘한 기시감이 뇌리를 엄습하는데, 그 정체를 추궁하기도 전에 나보다 작은 형체가 흉측하게 일그러진다.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늘어났다 줄어든다.

이내 초등학생 시절 마구 갖고 놀다가 버린 찰흙처럼 검게 일그러지는 그거. 검은 물이 레드카펫 위로 뚝뚝 떨어진다. 뭐가 됐건 예쁜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아서, 말없이 손을 뻗는다.

"뭐─커흑"

감히 누구의 앞길을 막는 거야? 괘씸한 그것의 목을 들어 조른다. 뭍에 올라온 물고기처럼 바둥거리는  다리. 그제서야 유쾌해지는 기분. 소리 내어 웃을 기분은 아니건만 일부러 소리 내어 웃는다.

꺽꺽거리며 신음하는 그것을 한동안 즐겁게 바라보다가 냅다 던진다. 쿵, 안타깝지만 지금은 너에게 상관할 시간이 없어.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자 이내 목적지가 보여 온다. 커다란 백색 나무가 휘감고 있는 순백의 왕성. 골라인 앞에서 커팅식을 하고 있는 양복쟁이들이 보인다.


내가 도착하자 축포가 터진다. 영국 왕족 일본 왕족 누구 하나 가릴 없이 나의 완주를 축하해준다.

그러나 팔을 번쩍 쳐들고서 골라인을 통과하자마자 뒤바뀌는 주변 풍경. 나의 도착을 축하해주던 이들은 온데간데없고, 아름다운백색의 성은 고리타분한 학교 건물로 바뀐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변을 바라본다. 파티의 주인공이 도착했는데 죄다 어디로 가버린 거야, 부질없는 부르짖음. 놀이동산의 CM송처럼 흥겹게 연주되던 BGM도 끊긴지 오래.

사실은 나도 알아. 이상하다는 것은 말이지. 머저리가 아닌 이상 이상 누가 지금의 나를 웃으며 바라볼까? 알코올은 들이키지도 않았으니 취한 척도 작작 해야지. 그냥 언제나의 현실도피, 단지 그게 너무 지나쳐서 취한 것처럼 보였을 뿐.

아니, 현실도피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 현실로 도피하는 중.


"잠깐…시, 시아야!"

계단을 오른다. 한 층계씩 밟아오를 때마다 울리는 종소리. 성당의 것인 듯한데, 과연 이건 결혼식의 축가일까 장례식의 진혼곡일까.

뭐가 됐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 그냥 한 발씩 무덤덤하게 내딛을 뿐. 그렇게 옥상 앞에 도착.

쾅쾅, 가지고있던 스패너로 문고리를 거세게 내리친다. 처음엔 꿈쩍 않다가도 계속해서 내리치자 곧 떨어져 나가는 문고리. 처녀도 아닌 주제에 존나 튕기네 시발년. 한순간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쾌감에 문짝을 발로 뻥 찬다. 시원하게 나가떨어지는 문짝. 맞은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잠옷자락이 흔들거린다.

"허억…허억…, 기다리라니까!"


결국 여기까지 끈질기게 쫓아왔구나. 심드렁한 얼굴로 언니, 아니 언니였던 것을 돌아본다. 16년, 정말로 긴 시간 동안 나의 인생을 망친 빌어먹을 존재. 순진무구한 내 눈에 안대를 드리운 자.


"위험하게 거기서 뭐하는 거야. 진짜 화내기 전에 빨리 돌아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목덜미가 보인다. 하얀 살결 위에 꽃핀푸른 멍자욱. 앞으로 나아가던 몸이 한순간 움찔하지만,  이상 죄책감은 들지 않는다. 그야 그래봤자 게임 캐릭터일 뿐이잖아. 내 램수면이 빚어낸 한낱 허상.

돌이켜보면 정말이지 우습다. 저리 허술한 모습을 어찌 나와 같은 사람으로 여기고 그로부터 이 맛간 세계가 현실이라는 결론을 냈을까. 나대신 차에 치이는 모습을 보니 동정심이 극에 달해서 나 또한 맛이 가버렸나.

땀에 젖어 번들거리는 이마도, 빨갛게 상기된 뺨도, 색색거릴 때마다 들썩거리는 가슴도, 모든 것이 허술하기 그지없다. 그렇게 단정 지을 구체적인 근거 따위는 없지만 그냥 그렇게 보이는  어쩌라고 시발.

그것이 서서히 내게로 다가온다. 정말로 화가 났다는 얼굴, 그 속에 섞인 미약한 걱정. 누가 봐도 가족의 얼굴을 하고 있네. 하지만 이제는 속지 않아. 인간의 상상력만큼 가증스러운 여우는 없는 법이기에, 한 번 교훈을 깨달은 나는  이상 바보 같이 굴지 않는다.

"그 이상 다가오면 떨어질 거야."

말을 내뱉자 움찔하고 멈추는 걸음.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고서 쌩한 바람이 제일 잘 느껴지는 옥상 난간에 등을 기댄다.

나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대체  이러는 거야…혹시 강선아  때문에 이러는 거니? 정 힘들었으면 언니한테 말을 하─"

"──시발  너 때문이잖아!!"

"…뭐?"


나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나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나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네가  나를 살리지만 않았어도…시발 내가 그 날 뒤지기만 했어도 이렇게 싸그리 다  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이시아."

"그, 이름으로, 나를 부르지 마!!"

오늘을 열심히 살자. 아침은 뜨겁게 달군 우유 한 잔, 점심은 패스트푸드, 저녁은 맥주와 싸구려 안주. 빌딩 같은 나무 나무 같은 빌딩으로 가득 찬 같은 도시 도시 같은 숲을 거닌다. 한 손에는 비어있는 서류 가방, 한 손에는 가죽지갑.

불도저불도저, 눈에 거슬리는 것들을 싸그리 다 치워버린다. 왜 나는 계획적인 인간이 되어야 하는 거지? 그냥 좀 즉흥적으로 살면 안 돼? 꽝꽝, 애먼 철제 난간에다 대고 화풀이를 한다.   주먹에서 폐식용유 같은 혈액이 튀어 오른다.

"왜…왜 그때 나를 살린 거야…?"

"바보짓 그만하고 돌아와, 이시아."

"엄마가 보고 싶어…아빠도…여동생도…"

"여동생? 그게 무슨─"

"다가오지 마!!"


그래, 다 저 년 때문이다. 왜 나를 살린 거야. 심지어 나조차 지금 내 꼬락서니가 존나 추하다는 것을 알아. 대체 왜 이런 인간을 살린 거냐고, 그 시발놈의 사랑이 대체 뭐길래.

사랑, 시발, 섹스, 죄다 지겹기 짝이 없다. 고리타분한 것들. 늘상 똑같은 감정을 기계처럼 환기시키지. 지금의 내게는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 주머니 속에 처박혀 있던 백원짜리 동전  닢을 꺼내든다.

어째서? 그냥, 무심결에.


"…앞면."

"뭐?"

"…앞면, 뒷면, 정해. 네가 고른 면이 나오면 나는 사는 거고, 아니라면 나는 죽는 거야."

"바보 같은 짓─"

"나한테 소리 지르지 마!"

"이시아!"

끝내 어린 얼굴이 눈물방울을 그렁그렁 매단 채로 내게 외친다. 아니, 내게로가 아니지. 저건  이름이 아니니까.


“네가 강선아 일로 충격 받았다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이럴 필요까지는 없잖아. 그 녀석이 친구였건 뭐건, 결국 그 녀석은 너와의 우정을 배신했잖아. 왜 그딴 녀석 때문에 네가 죽으려 하는 건데.”

"…"

"네가 이런 일을 한다고 해서 대체 누가 만족한다는 건데? 도대체 누가 좋은 꼴을 보는 거냐고?
그러니 이제 이런 위험한 짓은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자. 어려울 거 없어. 그냥 거기서 살살 발을 떼는 거야."

"…집에 돌아가면?"

“집에 돌아가면, 그래, 내가 있잖아. 지금은 부재중이지만 어머니도 있고, 응? 우선 집에 돌아가서, 편히 쉬자. 마침 배도 고프지 않아? 그, 그래 돌아가면 네가 좋아하는 요리도 얼마든지 해줄게.”


하, 차마 참지 못한 비웃음이 새어나온다.

집에 돌아가도 그건 내 집이 아니고, 가족들과 만나도 그건 내 가족이 아닌데, 그럼 나는 대체 어디로 돌아가라는 거지. 전부 다 겉만 그럴 듯  보이는 가짜들.

이제는 속지 않는다. 이제는 절대로 속지 않을 거다. 바보짓에 어울리는 것은  번으로 족해.


"그러니까 당신은 나를 이해 못 한다는 거야."

"아니야. 나는─"

"시끄럽고, 얼른 정해. 그냥 이대로 떨어져버리기 전에."

"너 정말…!"

"왜, 못 정하겠어? 그럼 내가 정하지. 뒷면이 나오면 나는 죽고, 앞면이 나오면, 나는 이대로 사는 거야."


어차피 몽중의 헛소리, 더 이상의 군말을 듣기는 싫다. 발치 아래로 끝없이 펼쳐진 듯한 풍경을 흘깃 내려다본다. 사람 하나 떨어져 죽기에는 충분한 높이. 보통이라면 공포감에 벌벌  광경도 지금으로서는 마냥 기쁘기만 하다.

이 뒤로 한 발만, 딱  발만 더 내딛으면 드디어 현실로 돌아갈  있다. 이 기나긴 꿈의 끝자락에 이를 수 있다. 이 지긋지긋한 개짓거리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

그러니 당연히 공포보다 환희가 더 앞설 수밖에, 미치도록 기쁠 수밖에, 실제로  어느 때보다 환히 웃으며 동전을 하늘 높이 던진다.


"…"

그 녀석이 죽었을 때랑 같네. 이번에도 슬로우 모션 따위는 없이 순식간에 손등 위로 착지하는 동전. 실실거리며 손등을 가린 다른 손을 치운다.

다음 순간, 확대된 시야 안으로 가득히 들어차는 숫자 100.

"앞면…"

언니가 그리 중얼거림과 동시에, 나는 난간 너머로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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