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0화 〉Something About Us (70/73)



〈 70화 〉Something About Us

"켁! 케흑! 쿠헉!"

의식이 각성하자마자 거꾸로 솟아오르는 위액을 헛기침으로 다스린다. 마치 칼로 난도질이라도 당한 듯 엉망이 된 머릿속, 밧줄이라도 칭칭 감긴  아릿하게 조여 오는 목덜미를 부여잡는다. 그리고 그 순간 손끝에 닿는 뭉툭한무언가. 흔히들 목젖이라고 부르는 그거.

"십…뭐야, 이거."

말하다가도  목소리에 놀라 눈을 크게 치뜬다. 그야 그것은 자신의 목소리라기에는 너무나도 낯설었으니까. 차마 형용키 어려운 이질감에 애꿎은 목젖을 살살 쓰다듬는다. 어딘가 기시감을 포함한 이질감.

"남자…?"


그제서야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자신의 몸을 알아차린다. 이전보다 눈에띠게 굵어진 종아리에 팔뚝, 그리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가슴께의 동산. 청바지에  감싸인 가랑이 사이에서는 미묘한 불편함이 느껴진다.


"…돌아온 거야?"

어째선지 바지 주머니에 꽂혀있던 휴대폰을 꺼내 검은 액정에 제 모습을 비춰본다. 정리 안 된 짧은 머리카락에 살짝 날카로운 눈초리. 제법 매서운 인상이지만 그래봤자 아직 수염자국도 풋풋한 애송이. 이제 다시는  없을 거라 단념했던 그 얼굴.


"시발! 돌아왔어! 진짜로 돌아왔다고!"

기쁨이 차올라 발정난 원숭이처럼 미친 듯이 소리 지른다. 꼴불견인 것은 알지만 그야 이럴 수밖에, 실행한 나조차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여겼던 도박이 보기 좋게 성공한 것이다.

한동안 난리를 피우다가, 이내 정신을 붙잡고 주변을 둘러본다. 어딘가 익숙한 향취가 감도는 낡은 아파트의 복도에 나는 서있었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나서야 남자일 적의 내가 살던 아파트라는 것을 깨닫는다.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문패는 '707호',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우리 집 번호.

그래, 진짜 우리 집. 현관문 아래쪽에 달린 우유투입구까지 내가 기억하던 그대로다.

"…"

침을 꿀꺽 삼키며 문에 다가간다. 떨리는 손으로 도어락을 열고 버튼을 누른다. '1982'.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가 발매된 연도.

혹시 비밀번호가 틀리면 어떡하지, 그런 불안은 순식간에 종식되었다. 곧 바로 경쾌한 전자음과 함께 문이 열렸으니까.

벌컥 문을 열자 현관을 통해 낯익은 거실의 모습이 보인다. 저 다이얼 달린 TV, 아직도 쓰고 있구나. 제일처음 떠오른 감상.


"누구세요?"

마치 꿈의 장소를거닐고 있는 것 같아. 잠시 동안 감흥에 젖은  가만히 서있자 들려오는 여자 목소리. 때마침 발을 떼려던 나는 그 자세 그대로 굳고 말았다.

분명 낯익은, 그러나 낯설기도 한, 아무튼 다시  더 듣고 싶었던 목소리에 정신까지 마비.

"…오빠?"

"수연아!"


이내 벽 너머로 빼꼼 고개를 들이미는 그녀의, 하나뿐인 동생의 이름을 부르면서그녀를 강하게 끌어안는다. 기쁨으로 벅차오르는 가슴. 이전에는 원수 같다고 생각하던 얼굴도 17년 만에 보니 마냥 반가워서, 그녀의 정수리를 격하게 쓰다듬는다.

실로 오랜만의 만남이지만 얼굴을 알아보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완만한 경사를 그리는 콧대와 엄마를 닮아 동글동글한 눈매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습과 똑같았으니까. 비록 이전보다 다소 여성스러워지기는 했지만 변함없이 순진해 보이는 강아지상.

허나 그저 기쁨에 겨운 나와는 달리 동생의 얼굴은 뭔지 모를 충격에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마치 못 볼  보기라도 한 듯 크게 치떠진 두 눈. 각종 액세서리로 화려하게 장식된 손톱이 나의 뺨을 더듬는다.

"오, 오빠? 오빠가 어떻게…?"

"왜? 오빠가 어때서? 혹시 이 오빠가 너무 좋아서 그러니?"

"그치만…오빠는 3년 전에 죽었잖아."

"응?"

 말에 나도 뻣뻣하게 굳는다. 그러자 조용히 내 몸을 떼어내며 천천히 입을 여는 동생.


"기억 안나? 3년 전에, 갑자기 급성 관동맥 증후군으로 쓰러졌잖아."

"뭐, 뭐…그거 정말이야?"

"정말이야! 장례식도 치룬지 이미 한참이나 지났는데…"

"…부모님은?"

내가 이미 죽은 몸이라는 데서 오는 충격은 잠시. 문득 집안이 비정상적으로 조용하다는 것을 깨닫고 묻는다.

그러나 침묵하는 동생. 혹시 외출 중이셔? 다시 묻자 잠시 우물쭈물거리다가 이윽고 고개를 내젓는다. 그럼 어디로, 라고 물으려 했지만, 슬픔에 잠긴 그 표정이 나의 얼마  되는 희망을 산산조각 쳐부쉈다.


"제작년에 두 분  함께 돌아가셨어. 교통사고로…"

"어떤 씹새끼가─"

"아빠가 술 먹고 운전하다 일어난 사고였어."

"…"


…시발, 할 말이 없네.


"…일단 안으로 들어올래?"

"그래…"

여동생의 제안에 신발을 벗고 거실 안으로 들어온다. 동시에 저절로 두리번두리번 돌아가는 고개. 여전히 그때  자리에 짱 박혀있는 낡고 헤진 소파와 TV, 식탁과 벽  켠에 걸린  어릴 적의 사진. 태권도 품띠를 허리에 맨 채 정권을 내지르는 모습.

어느덧 17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기억은 아직도 마모되지않은 건지. 무심결에 기억 속의 풍경과 눈앞의 광경을 대조하고 만다. 여전히 익숙한 향취를 느끼지만 조금은 달라진 풍경. 일례로 아버지가 즐겨 키우시던 분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 빈자리에서 다시 한 번 느끼는 부재. 슬픔이 차오르기 전에 재빨리 입을 연다.

"그동안…어떻게 지냈어?"

"그냥 그렇게 지냈지 뭐."

"학교는?"

"옛적에 관두고 일 시작한지 오래야."

"…그래"


쓸쓸한 얼굴로 학교는 자퇴했다 말하는 동생. 뭐라 따지려다가, 이내 관둔다. 그 동안 사라져있던 부외자인 내가 왈가왈부해봤자 그저 추할뿐이겠지. 분명 동생에게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을 터다.

"무슨 일하는데?"

"그냥…BJ"

"BJ? 정말? 무슨 방송인데?"

"그냥 게임 방송이야."

그렇게 대화를 이어나가면서 친정에라도 온 듯 집 안을 구석구석 뒤져본다. 괜히 TV 아래의 선반을 열어보기도 하고, 냉장고에는 뭐가 있나 살펴보고, 안방문을 열어 보고,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싸한 냉기에 잠시 침묵한다. 등 뒤에서 지켜보는 여동생도 마찬가지.

말없이 문을 닫고 다른 방으로 향한다. 내방…나와 여동생의 방.


"후후, 이런 말하면  되지만, 처음 오빠가 없어졌을 때는 살짝좋기도 했어. 이 방을 드디어 나 혼자 쓸 수 있게 됐으니까."

"뭐임마?"

"그래도…그래도 외로운 기분이 훨씬 더 컸으니까. 옛날에는 정말 많이 싸웠었는데, 막상 사라지니까. 정말 허전한  있지."

"…미안"


유일한 버팀목이라 할 수 있는 부모님마저 사라지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슬쩍 흘러나오려는 눈물을 참기위해 고개를 숙인다.그러고도 성에 차지 않아 주먹에 피가 배이도록 꽉 쥔다.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

정작 가장 힘들었을 동생도 울지 않는데, 나 같은  울 자격 따위는 없다. 어쩌면 이미 흘러나왔을 지도 모르는 눈물을 애써 삼킨다.

"오빠가 미안해할 필요 없어. 오빠 잘못이 아닌 걸."

"…응"

"자, 자, 빨리 문 열어봐.  구경이나 더하자."


말없이 문을 연다. 그러자 과연 BJ라는 건지, 책상 주변에 설치된 방송장비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띤다. 방송 규모가 제법 되는지 카메라나 조명 등, 어느 것 하나 싸 보이는 게 없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방안에 나의 자취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키보드와 마우스도 바뀌었고, 있는 것이라고는 책상 한구석에 놓인가족사진  내 모습뿐.

잠시 동안 그 모습을 아련하게 쫓다가 손을 펼쳐 책상 위에 들러붙은 먼지를 훑는다. 그러자 돌연 손에 잡히는 물컹한 무언가.

"응?"

"어, 어, 그, 그거!"

"이게…뭐야?"

"아무것도 아니니까 빨리 내려놔!"

핑크색의, 오돌토돌하고 길쭉한, 남성기의 모양을 본뜬 그것에 말을 잃는다. 그러자 재빠르게 달려와서 내 손에 들려있는 물건……딜도를 빼앗아가는 동생.

…뭐,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3년이나 지났으면 여동생도 어엿한 성인이 되었을 테니까.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성인이 자유롭게 성생활을 즐기는 데 누가 뭐라 하겠어.

그나저나 이런 물건이 어째서 카메라 바로 앞에 놓여있는 건지……의문을 뒤로 한 채 이번에는 장롱문을 열어제낀다.


"…이건 뭐야?"

"어…그, 그냥, 혼자서 사진 찍고  때 입는 것들."

"혼자서?"

"…응, 혼자서."

장롱문짝을 당기자 드러나는 무수한 옷가지들. 역시 진짜 여자는 다르다는 건지. 꿈속에서의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헌데 위칸에는 일반적으로 입고 다닐 법한 캐쥬얼복들이 걸려 있는 반면, 어째선지 아래칸에는 코스프레 의상 같은 것들이 잔뜩 걸려 있다. 그러니까, 바깥에서는 절대 못 입을, 노출도가 상당히 높은, 야시시한 복장들.

배꼽이 다 드러나는 상의는 기본에 속옷이  보일만큼 짧은 치마, 그리고 안 입는 것만 못한 끈팬티. 심지어 가슴의 중앙 부분이 훤히 뚫려있는브래지어도 있다. 마치 성인용품점에 온 듯 원색적인 풍경에 절로 달아오르는 얼굴.

내가 없는 사이에 유행이 이렇게 진보한 걸까? 당황하며 뒤를 돌아보자 내 얼굴과 같은 색으로물든 동생의 얼굴.

…뭐,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이해 못할 취미는 아니다. 콩깍지를 제외하더라도 내 여동생은 충분히 예쁜 편이니까. 이런 야시시한 옷들을 걸쳐 입으며 자기 몸매에 자아도취에 빠질 만도 하지. 나도 꿈속에서는 여자의 몸이었으니까. 어느 정도는 이해해.

"그, 그렇지! 빠다 볼래, 빠다?"

"오,  녀석 아직도 살아있어?"

"아직 다섯 살도  됐는데 당연히 살아있지! 빠다야 이리와!"


여동생이 크게 외치자 곧 바로 힘차게 멍하는 울음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려온다. 이윽고 열린 방문 사이로 숨을 헐떡이면서 뛰어오는 초콜릿색 털의 푸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들여서정성껏 기른 우리집 유일의 애완동물. 나는 무릎을 굽히며 간만에 만나는 녀석을 반길 준비를 했다.

"하하, 오랜만─"

그러나 오랜만에 만난 빠다는, 정작 나는 거들떠도 보지 않고서 곧장 여동생에게로 직진한다.

그리고 여동생의 바짓가랑이에 얼굴을 들이밀고 코를 킁킁대는 빠다. 뭐가 그리도 좋은 건지 자꾸 게걸스럽게 혀를 날름거린다. 침으로 범벅이 되면서 점점 군청색이 되어가는 여동생의 파란색 돌핀팬츠.

"어, 어머, 애가  이래.아이 참, 그만해. 지금은 방송 시간 아니라니까."


여동생이 손사래를 치며 말려보지만 빠다는 멈추지 않는다. 아예 가랑이 사이로 파고 들어가 민망한 부위에 고개를 처박고 킁킁거린다.

그 일련의 행동거지가 묘하게 익숙해 보여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아니, 다물었다고 생각했지만 턱이 빠진  크게 벌어진 주둥아리가 다물어지지 않는다. 모처럼 가족과 재회했는데, 나는 왜 이런 바보 같은 얼굴을.

…뭐, 시야를 넓게 가지면 이해 못할 건 아니──미럴 이해를 하긴 개뿔이.

"시발"

저도 모르게 샹소리를 뱉어내자 어느  내 관자놀이를 겨누고 있는 권총 한 자루.

나는 군말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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