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Something About Us
'시아야…?'
대체 몇 시간 동안 눈을 감은 채로 깨어 있었던 걸까. 금방이라도 꺼질 듯 희미한 목소리에 침잠 속에서 부상하는 의식. 피곤에 찌들어 있는 머리가 욱신거리지만, 애써 숙이고 있던 고개를 쳐든다.
그러자 보이는 어린 얼굴. 한 병실에 거의 살다시피 하면서 익숙해진 얼굴이 멍한 표정을 지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다.
매일 같이 보던 얼굴인데, 조금 더 창백해진 기색. 꼬맹이답게 통통한 뺨이 하얀 습포로 덮여져 있다. 그리고 그 위로 피어난,열꽃 같은 붉은 얼룩.
편히 내린 손등 또한 붕대로 칭칭 감겨져 있다. 큰 상처를 입은 소녀의 참혹한 모습이 리플레이 되고, 편치 않은 마음. 결국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왜 날 구한 거야.'
'그야…시아는 내 동생이니까.'
몸은 괜찮아──라는 물음을 먼저 던지려 했는데, 막상 입을뚫고 튀어나오는 것은 그런 퉁명스런 말씨. 이마 위로 드리운 머리카락 사이로 그녀를 노려보면서, 어린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왜 그런 바보짓을 한 거냐고!'
'…미안.'
'왜…대체 왜…'
정말로 꼬마아이가 된 것처럼,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발악하듯이 소리를 질렀다.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까. 세상에 하나뿐인 언니라지만, 그동안 언니는커녕 찬밥 취급하던 인간인데, 왜 자기 목숨까지 무릅써가면서 나를 구한 것일까.
그 질문 하나를 그녀가 병실에 누워있는 이 며칠 동안 끊임없이 고민했다. 하지만 그녀가 눈을 뜬 지금까지도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어서, 엉망이 된 머릿속과 산발이 된 머릿결. 그녀는 이런내가 좋다고 말해주었지만, 나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데, 왜, 대체 왜.
계속 고민을 하다 보니 되려 화가 치밀어 오르더라. 그때 차에 치인 게 나였더라면, 너만 아니었다면, 나는 진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을 텐데, 최소한 이 지긋지긋한 세상에서 벗어날 수는 있었을 텐데.
어차피 죽으려고 차도에 뛰어든 것은 나였다.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선택이었다. 그것이 부질없는 희망의 품앗이였다는 것은 나도 알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분노를 풀려고 나는 손을 쳐들었다. 저 순진한 얼굴에 싸대기라도 한 방 먹여줄 요량으로.
하지만 짜증보다도, 걱정보다도, 두려움보다도, 불안보다도, 분노보다도──슬픔이 앞서서, 이내 나는 들고 있던 손을 힘없이 내렸다.
'다시는 그런 짓하지 마.'
그때는, 이 한 마디 말고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
…어쩐지, 빛이 바랜 과거의 영상을 들여다 본 듯하다. 천근만근 무거운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올린다.
"아아아아아아앗!!?"
눈을 뜨자마자 보인 것은 커다란 주사기를 한손에 들고 있는 여의사였다. 커피 크림 같이 부드러운 연갈색 머리칼에, 흰 가운을 걸친 작은 몸집의 여의사.
어째선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기겁한 그녀는 주사기를 든 손을 황급히 등 뒤로 숨겼다.
"일어나셨습니까아아아아아아!! 몸은 괜찮으십니까아아아아!?"
"지금…뭐하려고…"
"그, 그냥곤히 자시길래 무허가 신약을 좀 투여한 뒤 경과를 지켜보려고─"
"뭐라구요?"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아아아아아아아아!!!!!"
"…우으, 시끄러워요."
"죄송합니다아아아앗!! 주로 귀가 안 좋으신 노인 분들을 상대하다 보니이이!
앗! 여기서 상대란 건 침대 위에서의 상대가 아니라 단순한 진료를 말한 겁니다아아아아!!"
안 그래도 어지러운데 저 시끄러운 고성을 계속 듣고 있으려니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다. 눈앞에 드리운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면서 주위를 둘러본다. 몸을 덮은 얇은 부직포 침대와 근처에 놓인 링거, 하얀 타일과 벽지까지 전형적인 병실의 풍경.
무심코 팔을 쳐드니 잔상처 하나 없이 깔끔한 손이 보인다. 이불을 걷은 다음 다리도 들어보지만, 역시 깨끗한 그대로. 그 높이에서 떨어진 것 치고는 너무 멀쩡하다.
"제가…어떻게 살아있는 거죠?"
"운 좋게 정원 위에 떨어져서 큰 상처는 없었습니다아아아!! 허벅지 쪽에 나뭇가지에 꿰뚫린 관통상이 있긴 하지만 금방 나을 겁니다아아아! 다음부터는 걱정하는 가족 분들을 위해서라도 자살은 하면 안 됩니다아아아아아아아!!!!!"
"알겠으니까 좀 조용히 말해주세요…"
"…앗, 네, 그럼 괜찮으신 것 같으니 저는 이만 가볼게요."
그렇게 귀신 같이 목소리가 작아진 여의사를 떠나보낸 후, 병원 특유의 얇은 매트릭스 위에 다시금 몸을 눕힌다.
"…푸핫"
가만히 누운 채로 눈만 뻐끔거리고 있으니 저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온다. 아닌 밤중에 나는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려고 했던 걸까. 저 혼자 내뱉는 자조. 그러다 기대와 달리 멀쩡한 손아귀를 괜히 쥐락펴락하고, 또 다시 내뱉는 자조. 자살도 똑바로 못하는 멍청이.
팔을 아래로 내린다. 말랑한 허벅지를 더듬더듬, 붕대에 감싸인 부분을 찾아 지그시 누른다.
"아아…"
비릿한 신경통이 허벅지에서부터 피어오르고, 허탈함으로부터 신음이 우러나온다. 하얀 붕대는 점차 붉게 물들어간다.
그 뭣 같은 개꿈에서 총으로 머리를 쐈을 때와는 달리 생생히 느껴지는 아픔. 꿰뚫린 구멍을 찾아 손가락을 쑤셔 넣는다. 당연하게도 짙어지는 고통의 농도. 울기에는 눈물샘이 다 말라버려서, 그냥 허탈하게 웃는다.
차가움 속에 섞인 미열. 헤집으면 헤집을수록 눈앞이 더욱 뚜렷해진다. 동시에 자각하게 된 사실 한 가지, 이것이 꿈이건 뭐건 나는 깰 수 없다는 거.
그래,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를 아직도 확정짓지 못하겠다. 어쩌면 단순히 아픔을 느끼기도 전에 죽어버리고 다시 이 세계로 온 걸지도, 나는 지금도 그 뭣 같은 꿈의 연장선 속에 있는 걸지도.
그러나 뭐가 됐건 눈앞의 풍경에서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렇다면 그것은 이제 현실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으리라. 설령 그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칠흑 같은 어둠 아니면 더더욱 깊은 나락뿐이겠지. 아무리 개꿈이라지만 애완견과 떡을 치는 여동생이라니, 정말 웃기지도 않아.
"후우…"
지극히 당연한 진리. 그러나 새삼 떠올리려니 이사카의 침대에서 피웠던 담배가 떠오른다. 한 개비라도 있을까, 싶어 침대 옆에 놓인 선반을 뒤져보지만, 병원에서 그런 물건을 구비해두고 있을 리가.
대신 누가 보낸 건지 모를 과일바구니에 담겨 있던 사과를 손에 쥔다. 그 순간 벌컥하고 열리는 병실 문.
"…!"
"…언니"
긴 머리를 어지럽게 휘날리면서, 작은 인형이 병실 안으로 뛰어 들어온다. 급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깨어있는 나를 보자 크게 확장되는 동공.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듯 입술을 우물거리지만 완성되지 않은 문장은 공기 중에 산산조각 흩어지고, 나는 나즈막히 그녀를 불렀다.
"왜…왜 그런 짓을 한 거야?"
"…"
"왜 그런 짓을 한 거냐고…!"
다가오려던 걸음도 이내 멈추고, 그저 먼 발치에 서서 슬픈 듯이 이쪽을 흘겨오는 시선. 아무런 말도 못 꺼내는 나를 원망스럽다는 듯이 노려보지만 큰 눈망울에는 이미 물기가 그렁그렁 맺혀있다.
허울뿐인 위협. 나도 알고 아마 본인도 아는 사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허상도 뭣도 아닌 진실임을 알기에, 내 무덤덤한 감성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그녀의 가느다란 목을 졸랐던 이손을 갈기갈기 찢어발기고 싶어진다.
"만약 이 세계가 게임이었다고 한다면 언니는 믿을래?"
"뭐?"
하지만 진짜로 그럴 수는 없잖아. 어차피 다 겉치레뿐인 표현들.
무상함의 여운에 잠긴 채 다소 뜬금없는 물음을 던지자, 황당하다는 듯이 변하는 언니의 표정.
"…그냥, 괜히 그럴 때 있잖아. 새벽이 되면 지나치게 감성적이 되어서, 이 세계가 혹시 가짜는 아닐까 하는 망상."
"…"
"그러니까…그냥, 멀쩡하던 사람도, 가끔 맛탱이가 갈 때가 있잖아."
"지금 겨우 그딴 이유로─"
판사 앞에 선 범죄자 마냥 횡설수설하는 내 변명에 언니의 목소리가 거칠어진다. 이윽고 성큼성큼 내 쪽으로 다가오는 언니, 고등학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작고 보드라운 손이 번쩍 쳐들린다. 그 작고 여린 손이 천장의 조명을 가린다.
아마 분노한 것이겠지. 그야 분노할 수밖에 없겠지. 나에게 있어서는 겨우 그딴 이유가 아니지만, 언니가 보기에는 별 시덥잖은 이유일 테니까.
눈을 질끈 감고서 다가올 충격에 대비한다. 몇 대를 맞아도 싸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럴만한 짓을 했으니까. 한순간 헤까닥 돌아버린 정신머리가 원인이라지만, 결국 그때의 나는 약에도 알코올에도 의존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정말로 얼굴이 퉁퉁 불 때까지 맞아도싸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나는 쓰레기니까. 그렇게 해서 언니의 기분이 풀린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기다리고 기다려도 찾아오지 않는 충격. 이윽고 살며시 눈을 뜨자,금방이라도 울 것 같지만 울고 있지 않은 얼굴을 한 언니가 보였다.
다음 순간, 언니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됐어. 그냥 이 한 마디만 해줘."
앞으로 다시는 그런 짓 안하겠다고, 약속해줘.
"…응"
희미하게 요동치는 눈동자와 힘없이 사그라드는 목소리. 두 손으로 싹싹 빌지도, 무릎을 꿇지도 않았지만, 무엇보다 간절한 부탁.
그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