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진엔딩
-끼이익
썩어 문드러지기 직전의 고목들과 자욱하게 낀 안개, 무성하고 무질서하게 자라난 잡초밭과 고약한 시체의 냄새. 마른 바람이 시든 가지를 춤추게 한다. 수북하게 쌓인 수풀더미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낸다.
마치 마이클 잭슨이 당장이라도 스릴러를 추면서 걸어 나올 듯한 공동묘지. 그 누구의 인기척도 없는 가운데, 그저 어느날에 죽은 아무개들의 이름과 생몰년도가 적힌 비석들만이 매표소 앞의 관객처럼 일렬로 늘어서 있다.
그렇게 죽음에 물든 땅과 조화를 이루듯 하늘에서는 둥글게 차오른 만월이 어둠을 뚫고 마성적인 광채를 발하고 있다. 그리고 그 달이 정확히 하늘의 꼭대기에 이른 순간, 유달리 커다란 비석 하나가 돌연 흔들리기 시작했다.
-끼이익
-끼이익끼이익끼이익
-끼이익끼이익끼이익끼이익끼이익끼이익끼이익끼이익끼이익끼이익끼이익끼이익끼이익끼이익끼이익끼이익끼이익끼이익끼이익끼이익끼이익끼이익끼이익끼이익끼이익끼이익끼이익끼이익끼이익끼이익끼이익끼이익끼이익끼이익끼이익끼이익끼이익끼이익끼이익끼이익
미약하게 흔들거리다가, 차츰 그 크기를 더해가는 진동. 바람 한 점 없는 날씨건만, 흔들림은 멈추지 않고 오히려 더욱 커져만 간다. 흡사 굴착기로 땅을 파헤치는 듯한 굉음.
누가 이 광경을 봤으면 경악을 금치 못 했겠지.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심야의 묘지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렇게 누구의 경악도 없이 흔들림이 극에 달했을 때, 비석 아래에 놓인 자갈 몇 개가 튀어오르면서 앙상한 팔 하나가 땅바닥에서 불쑥 솟아올랐다.
"구워…"
탁한 신음과 함께 뭍에 올라온 물고기처럼 마구 바닥을 헤집는 팔. 사람의 것이 아닌 듯 창백한 손이 흙을 사방에 흩뿌리면서 구멍의 크기를 넓혀간다. 고작 팔 하나가 들락날락거릴 수 있는 크기에서 사람이 통과할 수 있는 크기까지.
그리고 '그것'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구워어…!"
떡진 검은 머리카락과 흐리멍텅한 벽안. 엉망인 몰골이지만 적재적소에 뚜렷하게 자리잡은 이목구비는 소년이 한때 가졌던 미모를 짐작케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때'에 머무르는 이야기. 지금의 소년을 보고서도 홀릴 여자는 없으리라.
머리는 듬성듬성 빠져있고, 썩어문드러진 입술은 희뿌연하게 변한 잇몸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얼굴 아래의 목은 꼭 한 번 떨어졌다 다시 붙인 것 마냥 촘촘한 실선이 빙 둘러져 있다.
비록 군데군데 흙으로 덮여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소름 끼치는 외관이 완전히 가려지지는 않는다. 이윽고 느릿하게 눈을 깜빡인 그것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똑같은 신음소리가 역시 느릿하게 흘러나왔다.
"구워어, 구워(여기는 어디지?)…"
소년, 이었던 것은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이내 저가 뿌리뽑은 비석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무릎을 꺾으면서─동시에 무릎뼈가 살을 뚫고 튀어나왔다─어딘가 익숙한 이름이 적혀있는 비석을 바들바들 떨리는 손가락으로로 훑었다.
[김성현
1999-2016]
"구워어(이게 뭔)…"
──왜 내 묘비가 여기에 있는 거지?
의문이 떠오른 순간, 그날밤의 기억이 떠오른다. 어쩌면 인생의 첫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몰랐던 그 소녀를 기다리던 그날밤, 자신을 덮치고 잔혹하게 찢어죽인 그 붉은 살인마.
"쿠워어(그 빌어먹을 년)…!"
고통스러운 기억. 손톱도 다 떨어져나간 손을 으스러질듯이 쥐면서 증오스런 기억을 되새긴다. 검고 질척거리는 피가 바닥에 뚝뚝 떨어진다.
"구워어어엉(죽여버리겠어)!!"
차오르는 분노, 성현은 고개를 치켜들고 있는 힘껏 소리쳤다.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울음소리가 한적한 묘지 안에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그렇게 좀비로 변한 소년의 복수가 시작되었다.
(시작 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