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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형이 실력을 숨김 (6)화 (6/593)

‘장수야, 어제 가르쳐준 구결(口訣)을 아직 기억하느냐? 읊어보아라.’

‘이장수! 연기사가 어찌 비겁하게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야. 필사적으로 하지 않으면서 어찌 기연(機緣)을 얻겠어!’

쩝, 사부님도 참, 이리 태도를 빨리 바꾸시다니.

두 가지 기억은 아마 몇십 년의 격차가 있으리라. 갓 입문했을 때만 해도 사부님은 친절하셨는데, 수십 년이 지난 후에는······.

너무 사나워지셨어.

너털웃음을 터뜨린 이장수는 육신이 깊은 잠이 들어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전에 연속으로 수행했던 피로감이 남아 있었다.

이건······ 꿈인가?

얼마 만에 꾸는 꿈이던가. 수도의 경지가 높아진 후로 잠이 든 횟수도 많이 줄어들었다. 잠이 들어도 항상 이런 식이었다. 오랜 시간 고강도 수행으로 피로가 누적되면 법력(法力)이 충만하더라도 잠으로 영혼의 압박감을 풀어주어야 했다.

‘야, 전조광! 자는 척하지 마. 어서 일어나란 말이야! 전조광!’

또 그 자식이 목이 찢어지라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고 사이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아직도 이토록 선명하다니.

장수는 씁쓸하게 웃었다. 어둠 속에서 몸을 한 번 돌리자 연속으로 오는 기억을 직면하였다.

그는 말을 타고 꽃구경하듯 장면 하나하나를 빠르게 훑었다. 다른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구경하는 것 같았다.

이 이야기 속에는 하늘을 날고 땅으로 숨는 수사가 없고, 높은 자리에서 내려다보는 신도 없었다. 어쩌면 신은 존재하나 줄곧 남들은 모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고.

이야기의 주인공은 전조광이라고 하는 사람으로 지구라고 불리는 쪽빛 별에서 일어난 일이다.

전조광, 조상(祖)에게 광채(光)를 더해주길 바라는 작명가의 심정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이름이다.

그 또한 이름처럼 살고자 노력했었다. 스물여덟 살 전까지 순풍에 돛을 올린 양 순조로운 삶을 살았지만, 스물여덟 살에 돌연 불치병을 앓게 되었다······.

생명이 다하는 순간, 그는 휠체어에 앉아 미약하게 숨을 내쉬며 마지막 힘을 자신의 몸을 떨쳐내는 데 썼다. 의식은 끝없는 심연에 빠지려는 듯하였다.

불현듯 내키지 않아져서 생명의 불씨가 마지막으로 발악하는 것처럼 휠체어 손잡이를 잡고 온 기력을 써서 일어났다. 하지만 미처 앞으로 걸음을 내딛기도 전에 쿵, 하고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전생에서 가장 친했던 친구의 외침이 있었던 거다.

‘야, 전조광! 자는 척하지 마. 어서 일어나란 말이야! 전조광!’

기억은 여기서 뚝, 멈추었고 약간 공백이 생겼다.

이 공백은 대략 3년 동안 이어졌고, 그 후의 화면이 더욱 선명해졌다.

엉덩이에 구멍이 뚫린 바지를 입고 양 갈래로 삐삐 머리를 한 남자아이가 잔디에서 마구 뛰어놀았다. 그러다 빠르게 성장하여 일고여덟 살쯤 되던 해에 어느 노신선과 우연히 마주치면서 제자로 거두어졌다.

이 또한 악연이 아닐까.

이장수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기억들을 봉하여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넣어두었다.

세월에 천천히 마모된 흔적이 있긴 해도 그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이었다.

나태해선 안 되고 해이해져서도 안 된다. 주위 환경은 눈에 보이는 것만큼 그리 안온하지 않다.

그는 이 점을 고려하며 어둠 속에서 몸을 다시 돌렸다. 어느새 피로가 사라진 육신을 느끼며 영식(靈識. 수사가 체외로 퍼뜨리는 일종의 염력. 선인이 된 후에는 선식仙識이라 부른다)을 몸 주위로 퍼뜨렸다.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했는데도 한순간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타성이 나타난 게지.

두 번째 생을 살게 된 건 좋았다. 저를 위해 편의를 봐준, 진정 존재하는지도 모를 ‘신’께 감사한다. 하나······.

기왕 줄 거 현대의 삶을 줄 순 없었던 걸까?

현대로 돌아갈 수 없었대도 당나라, 명나라와 같은 고대로 보내줬으면 안온하게 나날을 보내며 즐겁게 일생을 살아갔을 것이다. 그 김에 수많은 처첩도 들이면서 말이다.

휙, 하고 수선 세계로 보내버리다니. 그것도 가장 냉혹하고 무정하고 거지 같은 상고(上古) 홍황으로!

제자가 된 후 15년이 되던 해, 도선문 내부 고서 및 사부님이 설명해주신 각종 견문 이야기를 통해 제가 몸담은 환경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날부터 그는 ‘폐쇄’라는 녹색 스위치를 켰다.

그렇다. 후세에서 ‘상고’라고 불리는, 신화 이야기 속 홍황에 떨어진 두 번의 대겁(大劫) 중 한 시대에 온 것이었다.

홍황 역사 궤도를 따라 앞날을 바라본다면 무요 전쟁의 영향이 계속 남아 있었고, 인간족은 크게 흥하긴 했으나 요족의 잔당 세력이 상당히 횡포하게 굴었다.

인간족 성모이자 여섯 성인(聖人) 중 하나인 여와가 담보하는 가운데, 요족은 오주 대륙의 각 지역과 인접한 지리적 조건에 기대 중흥의 단꿈을 꾸며 인간족 연기사와 여러 해 계속 전쟁을 치르는 중이었다.

여섯 성인이 일찍이 제자리로 돌아가자, 서로 음모를 꾸미며 얼마 안 되는 체면을 위해 무수한 생명을 죽이고 또 죽였다.

서방교(西方敎)의 천존(天尊)인 접인과 준제는 영맥이 척박한 서우하주(西牛賀洲. 수미산 서쪽에 있는 대륙)를 통제하여 곳곳에 서방교 교리를 퍼뜨리며 끊임없이 도문의 귀퉁이를 팠다.

도교의 삼교인 인교, 천교(闡敎), 절교(截敎)는 일찌감치 흥하였고, 천교 십이금선(十二金仙)이 명성을 막 크게 떨치면서 근래 몇천 년 동안 연기사들의 토론 쟁점이 되었다.

절교 만선래조(萬仙來朝)의 기세 또한 만만치 않았다. 각지 출신의 강자들은 통천교주(通天敎主)의 좌하에 집합하여 천교를 따라 매일 싸우고 야단법석을 떨어댔으나 다행히도 진짜 마찰을 일으키진 않았다.

도교가 가장 호황이었던 시대로 삼교가 크게 흥하여 삼교를 보호하고 유지하는 인간족도 흥하였다. 중신주 각지는 도교의 산문이었고, 삼천 대세계 어디를 가도 삼교 제자의 발자취였으며 도교의 이념이 삼계로 두루 퍼져 원신도(元神道)와 인간족 연기사가 홍황의 주류가 되었다.

동시에 평범한 연기사가 가장 악했던 시대로 상승하려는 경쟁이 상당히 치열했다. 천정(天庭)이 세워진 지 얼마 지나지 않을 땐, 순전히 삼교 선인들의 눈치를 보며 행동했고, 오주 대륙, 삼천 세계는 아예 질서가 없었으니 연기사가 성장하려면 스스로 필사적으로 싸우면서 운에 맡겨야만 했다.

그리고 그 운이 막대한 비중을 차지했다!

이장수가 유일하게 다행이라 여겼던 건 모시는 사부님이 강하지 않다는 점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강하지 않지만, 뒤에 인교의 배경이 약간 있었다.

물론 이장수는 도선문의 개산조사가 어쩌면 도액진인의 기명 제자일 뿐이라고 심하게 의심하는 중이긴 했지만 말이다.

서곤륜 도액진인에 관하여 그가 유일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이란 봉신(封神) 대전 중에 제자를 거두었고, 그가 형합이장(哼哈二將) 중 형장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다른 건 뚱딴지같은 뜬소문이었다.

십중팔구, 도액진인도 태청(太淸)성인의 기명 제자겠지. 신선 순위가 전연 높지 않은······.

다시 내 이야기로 돌아와서.

배경도, 신통력도, 운수도 없는 자신이 이 세계에서 성과를 낸다고?

장난하나.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제법인 셈이다.

따라서 그해부터 이장수는 목표를 세웠다. 바로 ‘살아남는 것’. 최대한 오래 살아야 한다. 열심히 각종 화를 피하고 어렵사리 찾아온 두 번째 삶을 무사히 보내는 것.

두각을 나타내고 명망을 쌓아 유명해지는 것과는 절연한다.

열심히 수행해봤자 삼교 천존을 이길 수 있겠는가?

위험을 무릅써가며 기연을 찾는다고 한들 액운이라고 하는 녀석들을 막을 수 있겠는가?

다음 대겁은 봉신 대전이다. 이 대겁은 멀리할수록 좋다. 봉신에 가서 천정의 신선이 되느니 차라리 빨리 수련하여 천정이 쇠미해졌을 때, 적극적으로 빌붙어 원로가 되는 편이 낫다······.

홍황의 공무원?

그것도 있을 순 있지.

장생과(長生果)를 따지 못한대도 평온하게 주어진 수명을 다한다면 새로 태어난 생에 떳떳한 셈이다!

따라서 그날부터 이장수의 최종 목표란 바로 죽을 때까지 사는 것이 되었다!

이 목표를 위해 그는······.

“사형?”

“사형!”

“사형, 어찌 예서 주무십니까? 주봉에 집합을 시작했어요. 지금 가지 않으면 지각이라고요!”

귓가에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장수는 생각을 멈추고 천천히 눈을 떴다.

시야에 들어온 건 오밀조밀한 소녀의 얼굴이었다. 맑은 눈동자, 버들잎 같은 눈썹, 옥처럼 반들반들한 코, 앙증맞은 귀, 얇은 분홍 입술. 출중한 오관이 살굿빛 얼굴에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길고 가느다란 눈썹을 살짝 찡그리니 예뻐하고 싶은 마음이 일었고, 떼굴떼굴 구르는 물기를 머금은 눈에는 영기가 흘러넘쳤다.

“아가씨는 누구죠?”

“사형!”

소녀는 손을 뻗어 이장수의 코를 쥐고 살짝 비틀었다.

“또 잠에 취했군요!”

“오, 령아구나. 눈 깜짝할 사이에 이리 컸단 말인가!”

장수는 하하 웃고는 풀더미로 날아가더니 석 장 너머에서 몸을 바로 세웠다.

“산에 오른 지 10년이나 되었다고요!”

남령아는 발을 구르며 볼을 살짝 부풀렸다. 그 모습이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어여뻤다.

비단, 미인형의 얼굴뿐만 아니라 몸매도 성장하여 가녀린 허리와 다리가 균형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입고 있는 치마가 매혹적인 곡선을 더 부각해주었고, 매끄러운 피부와 보드라운 머리카락까지 더하여 보는 이를 취하게 했다.

땡—

구름 사이로 종소리가 들려오자 령아가 재촉하기 시작했다.

“사형, 어서 구름을 몰아요! 진짜로 늦겠어요!”

장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젠 너도 할 줄 알지 않으냐?”

령아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당당하게 받아쳤다.

“아직 그 정도로 안 빠르잖아요!”

“알겠다.”

장수는 떨떠름하게 구름을 불러와 뛰어올랐다.

령아의 눈빛에 다소 교활함이 드러났다. 분홍색 신이 풀더미에 가볍게 닿았다가 이장수의 곁으로 떠올랐다. 손을 뻗어 사형의 팔을 붙잡으려고 하자, 이장수가 티 나지 않게 이를 피했다.

그는 정색하고 말했다.

“약법삼장(約法三章). 잊지 말아라.”

“알겠어요! 사형은 정말, 좀생이예요!”

령아는 불만이라는 듯 씩씩거리며 옆으로 반보 물러났다.

“사람끼리는 삼 척의 거리를 유지해야 해. 게다가 넌 도선문의 떠오르는 별이라 무수한 남제자들이 연모하는 령아 선자(仙子)가 아니냐. 사형은 그들의 저주술에 죽고 싶지 않단 말이다.”

장수는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고 고개를 돌려 초가집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사부님께선 아직 폐관 수련 중이시냐?”

“네. 사부님께선 마음을 가라앉히고 폐관 수련 중입니다. 언제 신선이 되는 천겁을 맞을지 몰라요! 저희가 돌아왔을 땐, 이미 신선이 되었을 수도 있다고요!”

남령아는 싱긋 웃으며 대꾸하였다. 커다란 눈망울에 일말의 기대가 담겨 있었다. 이어서 사형을 쳐다보며 넋을 놓느라 홍조가 오른 얼굴로 조용히 말했다.

“원래 문파에서 제자들이 나가서 시련을 겪는 대회에 사형은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다면서요. 이번에는 혹시······ 제가 걱정······ 돼서 참여하는 건가요?”

커다란 손 하나가 별안간 그녀의 얼굴 앞에 나타났다. 이어서 이장수의 ‘목석’ 같은 얼굴과 경쾌하고 분명한 대답이 빠르게 이어졌다.

“아니. 그런 건 아니다. 확실히 너는 좋은 여인이지만, 나는 널 친동생으로 여기고 있단다.”

“쳇. 저도 아무 말 안 했거든요! 짜증 나! 저도 관심 없어요!”

령아의 이마에 주름이 잔뜩 걸렸고, 양 볼을 만두처럼 부풀렸다. 그녀는 사형에게 씩씩거리는 뒷모습을 보여주며 작은 주먹을 꽉 쥐었다.

장수는 무덤덤하게 웃으며 하늘 끝자락의 구름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자신과 사매가 집합할 시간과 각도를 계산하였다.

하지만 계산해도 딱히 소용이 없었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사매가 곁에 있으니 존재감을 낮추는 일이란······.

갈수록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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