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안도 덩달아 당황하였다.
“망정 상인께서 친히 저희를 찾으러 오신 겁니까?”
주변의 하얀 안개가 빠르게 걷히고, 세 사람의 선식, 영식이 곤진에서 벗어나 방해를 받지 않고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갔다.
동시에 멀리서 두 개의 인영이 날아와 주구의 앞에 떨어졌다.
검은 옷차림을 한 백발의 노인, 둘 다 원선의 경지였다. 중상으로 정신을 잃은 데다 몸에는 저마다 움푹 팬 손바닥 자국이 있었다.
왕기는 옆에서 흥분하여 소리쳤다.
“주 사숙, 저들입니다! 저와 안 사저를 기습한 이들이요!”
주구는 망설임 없이 두 다리를 굽혀 털썩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댄 채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부님, 계략에 걸려 세 명의 후배들과 연락이 끊겼습니다. 제자, 모든 벌을 달게 받을 것이니 사부님께서 속히 세 사람의 종적을 찾아 생사를 확인해주십시오!”
주변의 하얀 안개는 이미 사라졌고 몇 개의 인영이 멀리서 다가왔다.
가장 전방에 있는 도인은 키가 오 척이 되지 않았는데, 그는 주구가 이토록 진지하게 무릎을 꿇고 넙죽 엎드려 모습을 보고 조금 당황했다가 이내 고개를 숙여 헛기침을 하며 웃었다.
“사부님이 아니라 나다. 흐음. 지혜가 풍부하고, 영준하고 소탈한······ 다섯째 사형이란다.”
“뭐요?!”
죽었다!
키 작은 도인은 순간 부르르 떨며 도망가려고 했으나 삼베 옷을 입은 어린 사매는 벌써 발을 동동 구르며 확 날아들었다!
신궁이 활시위를 떠나기 직전처럼 충격파 폭음도 동반하였다!
키 작은 도인은 부어오른 뺨을 움켜쥔 채로 볼멘소리를 했다.
“농담으로 분위기 좀 풀려고 했더니 이리 거칠게 대해? 사형이 그간 고생해가며 너를 어찌 키웠는데······ 흐음, 그래, 본론을 얘기하자꾸나.”
키 작은 도인의 도호는 주오였다. 주구가 어린 시절 입문했을 당시, 망정 상인은 종종 폐관 수련에 들어갔었기에 그가 한 말대로 정말 주오가 그녀를 돌보고 키웠다.
사형, 사매 관계이긴 하나 부녀와 비슷한 감정을 품어 평소에도 장난을 치는 게 익숙하였다.
주구가 다시 날뛰려는 모습을 본 주오는 황급히 화제를 본론으로 가져와 뒤에 있는 몇 사람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아이들의 사부님들이 오셨다. 누가 실종되었어? 어디에서? 너희는 이곳에 얼마나 오래 갇혀 있었고?”
주구는 어두운 안색으로 뒤에 몇 사람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읍하였다. 한순간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고개를 아래로 드리운 채 입술만 잘근 깨물었다.
유안과 왕기는 화색이 돌았다. 뒤에서 날아와 연신 예를 행하고, ‘사부’, ‘사백’, ‘사숙’하고 불렀다.
주오 도사의 뒤에 있는 이들은, 일단 파천봉의 강경산이 있었다. 수련의 경지가 진선인 그녀는 유금현아의 스승이면서 현 도선문 장문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었다.
파천봉 임척, 역시 진선경이고 원청의 스승이었다.
그리고 주구와 같은 세대인 도림봉과 소령봉의 선인은 이미 각자의 제자를 찾은 터라 더 설명하지 않겠다.
주구의 시선이 제일 뒤에 서 있는, 백발이 희끗희끗한 도사에게 닿았다.
소경봉 제원, 바로 이장수의 스승이었다.
제원의 모습은 초췌하다고 형용할 수 있었다. 주구는 순간 그를 똑바로 응시하지 못하였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장수가 나이 든 도인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그의 기대와 자부심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주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원 사형, 마지막으로 장수를 보았을 때,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원청과 현아는 서북 방향으로 갔으며 현아 가문의 장군인 우문릉이라는 자가 수행했습니다.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번 사건은 현아를 겨냥한 모략이고요.”
제원 도사는 쓴웃음을 지으며 주구에게 공수하고 허리를 숙였다.
“생사는 천명으로 정해져 있고, 밖으로 나가는 시련이란 본디 이러한 법 아니겠나. 여러분, 저는 아직 신선이 되지 않아 북주에서 기량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하여······ 제자의 행방을 찾는데 도와주십시오. 소경봉 맥에서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옆에서 주오가 황급히 말했다.
“제원 사제, 한 식구끼리 예의 차리지 말게. 두 길로 나누어 찾아봅시다. 나와 주구는 사제와 함께 북쪽을 찾도록 하지. 사매도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정신 차려! 벌을 받기 전에 아이들부터 찾자고! 이 원선 둘이 대진 밖을 지키고 있더군. 내가 저들을 발견했을 땐, 계속 진법을 보충하고 있었으니 너희들을 해한 원흉 중 하나가 분명해. 우리가 양쪽에서 각자 심문해보면 무언가 알아낼 수 있겠지! 자, 일단 출발하자고!”
연신 좋다고 대꾸하는 강경산과 임척을 보니 그들이 지금 얼마나 초조한지 알 수 있었다.
키 작은 도인 주오가 소매를 한 번 휘젓자 혼절한 원선 둘이 순식간에 허공으로 끌려와 임척의 손에 던져졌다.
제자를 찾아 구해내는 게 급선무였기에 그들은 달리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전서할 빈도와 각자 수색 범위를 정하고 난 후, 결국 세 갈래로 나누어 움직였다.
왕기의 사부는 왕기와 유안을 데리고 바깥 마을로 가 소식을 알아보기로 했다.
유안의 사부는 강경산, 임척과 함께 서북 방향을 찾기로 했다.
주오는 제원, 주구를 데리고 북쪽으로 가 수색하기로 했다.
도선문에서 온 선인들은 기세등등하고 바쁘게 제자를 수색하는 여정에 올랐다.
그리고 같은 시간,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은 꽃미남은 북쪽 천 리 너머, 열린 지 얼마 되지 않은 바위 동굴에 숨어있었다.
모닥불을 피우고, 죽간을 들어 조용히 그들의 강력한 원조를 기다렸다.
그는 일말의 당황한 기색도 없었다. 아니, 심지어 약간······ 흡족해 보였다.
유금현아는 바위 동굴 가장 안쪽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눈을 감고 호흡을 고르며 이따금 눈을 떠 동굴 입구 쪽의 인영을 힐끔거렸다.
그녀는 매번 대화거리를 찾으려 했으나 현재 이장수가 누군가와 대화할 생각이 없다는 걸 눈치챘다.
원청을 죽인 후, 그녀는 사흘 동안 혼절했다가 반나절 전에야 일어났다. 몸은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만, 두피가 화끈거렸다.
“장수 사형, 그냥 이곳에서 기다리는 겁니까?”
“그래.”
이장수는 대꾸하였다.
“삼백 리 이내에 이미 도선문만의 은밀한 표식을 여러 곳에 남겼다. 이곳 동굴 밖에도 종적을 숨기는 진법을 설치해두었으니 한동안은 안전할 거야. 사매 말대로 원청의 공범이 아직 남아있다면, 우리가 남쪽으로 움직였다간 그들에게 걸려들기 쉬워. 날을 계산해보니 주구 사숙이 풀려났는지는 모르나 아무튼 문파에서 우리를 구조하러 올 선인들이 이미 북주로 들어왔을 거야.”
이장수는 말을 잠깐 멈추고, 고개를 들어 유금현아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면, 삼만 리 정도를 돌아가도 된다. 하나 그곳도 그들과 부딪힐 위험은 있어.”
“걱정 안 됩니다······.”
유금현아는 조용히 대답하고 고개를 들어 이장수를 보았다. 마침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평소 늘 떳떳하고, 조금의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었다고 여겨왔던 그녀는 지금은 왠지 모르게 고개를 숙여 시선을 피했다.
마음이 약간 공허했고, 자그마한 고양이 발톱에 살짝 할퀸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조금의 불안과 약간의 부정.
아마, 사형 덕분에 두 번이나 살아났기 때문이겠지?
유금현아는 그리 생각하며 어떻게든 보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장수 사형의 비호를 받고 있지만······.
“사형, 제가 도울 일이 있습니까?”
“음, 쉽사리 영식을 방출하지 말아다오.”
“예.”
유금현아는 퍽 진지하게 대답했지만, 내심 실망스러웠다.
짐 덩어리가 된 것만 같은 기분.
치직!
횃불이 가벼운 소리를 내며 화력이 잦아들었다.
이장수는 소매에서 회색의 마른 나무를 꺼내 불더미에 놓고 화력을 올렸다.
유금현아는 이 화염이 특이하다고 생각하였다. 조금의 연기도 일지 않는 건 고사하고 담담하고 상쾌한 향까지 났다.
“사형, 이 불은 무엇입니까?”
이장수는 모닥불을 보며 무심하게 말했다.
“그다지 진귀하지 않은 목재다. 북원의 한송에서 취하여 온 것으로 북해 남쪽에서 자란다. 이 소나무는 무슨 영근은 아니고, 상고 시대에도 평범한 소나무였지. 그저 추위를 견딜 수 있다는 게 특징이지. 북구로주가 장기에 뒤덮인 후, 이 소나무도 거의 멸종하였으나 마지막에 다시 무성해지기 시작했다. 그 이후, 북원 한송에 신기한 효과가 생겼는데, 장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어떠한 기운을 뿜어내서 독충과 독수들이 무의식중에 피하고 숨게 했구나. 자그마한 모닥불이 우리 주변 삼백 장 이내에 독물이 없도록 하는 것이지. 오늘날 무족의 집거지에 가면 북원 한송이 펼쳐져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어. 그러나 영석 몇 개의 가치도 없는 터라 사람들이 잘 이용하질 않는다.”
유금현아는 이야기를 들으며 약간 넋을 잃었다. 두 눈에 이장수의 옆모습을 비추며 나직이 말했다.
“사형은 진정 식견이 넓으시군요······.”
“산문 전적에 기록이 있다.”
이장수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고 계속 독서를 시작할 뿐, 대화를 이어갈 뜻을 내비치지 않았다.
유금현아는 입술을 앙다물고 무언가를 고민했다.
그러다 조금 지나서 또······.
“사형, 찾으시려던 약초는 찾으셨습니까?”
“운이 좋았지. 찾았다.”
이장수는 빙그레 웃었다. 이 일을 떠올리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이대로 대화를 끝마치고 싶지 않은 유금현아는 또 말을 꺼냈다.
“사형께선 이번에 준비를 꽤 하신 듯합니다.”
“그렇지.”
이장수는 고개도 들지 않고 대꾸했다.
“15년 전부터 이번 북주행을 준비했지, 하여 평소 자질구레하게 독을 피할 물품들을 모았고.”
15년이라고?
유금현아는 눈을 깜빡거리며 물었다.
“그······ 우문릉과 악인들은 어찌 되었습니까?”
“그들은 신선을 앞둔 삼안 물결무늬 뱀과 함께 희생되었다. 우리도 운이 좋았던 셈이지. 그 뱀의 독은 정말 무시무시하거든.”
“그런 나쁜 놈들에겐 당연히 좋은 말로란 없겠지만, 그래도 이리 빨리 업보를 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장수는 말하는 김에 덧붙였다.
“그, 유독, 아니, 유금 사매. 부탁할 일이 있네.”
“말씀하십시오!”
유금현아는 곧바로 정신을 다잡았고, 형형하게 빛나는 두 눈으로 이장수를 응시하였다.
“구해주신 은혜에 보답할 수 있다면, 목숨을 버려도 괜찮습니다!”
“그리 심각할 일은 아니고. 우리가 이번에 밖에서 만난 풍파가 예사롭지 않아 산으로 돌아가면 사부님들이 분명 자세히 물을 것이야. 내 평소에 성가신 일을 싫어하고, 주목받는 것도 좋아하지 않으며 풍파가 닥치는 건 더더욱 싫어해. 하여 사매는 돌아가서 보고할 때 나와 관련된 일은 많이 언급하지 않았으면 해. 나는 수련의 경지가 높지 않고, 토둔술밖에 할 줄 모르는데, 말이 새어나가면 괜히 웃음거리만 될 뿐이야.”
“사형······.”
유금현아는 살짝 움찔하더니 마음에 작은 번개가 획 하고 스쳤다.
은혜를 베풀되 보답을 바라지 않으며 헛된 속세의 명예에 손대지 않는다.
일심으로 선도를 추구하니 겸손하고 단정한 군자의 품격이로다.
만감이 교차하였다. 눈에서 물기를 머금은 빛이 일렁이며 감개가 솟구쳤다.
‘장수 사형은 진정한 군자구나. 이러한 도량과 기개는 따라잡기가 힘든 데다 원청과는 더더욱 함께 논할 수가 없어. 유금현아, 넌 평소 얼마나 허황되고 오만함에 둘러싸인 사람이었니. 같은 세대 연기사는 다 거기서 거기라고 여겼거늘, 우리 동문, 같은 세대에 이런 인물이 숨어 있을 줄이야. 장수 사형과 서로 참된 벗이 될 수 있다면 진정 선문의 길로 들어선 게 헛되지 않겠어······.’
유금현아는 단호하게 말했다.
“사형, 염려 마십시오. 무슨 말인지 이해하였으니 마음에 새겨두겠습니다.”
이장수는 눈을 깜빡였다. 정말 이해한 걸까?
혹 남은 독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게 아닐까······.
됐어. 돌아간 후 소경봉에서 두문불출하면, 작은 풍파가 일더라도 몇 달 안 가서 잠잠해질 테지.
몸을 낮추어야 인과를 피할 수 있다.
뒤이어 예상치 못한 일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번 북구로주행은 완벽하게 마무리 짓는 셈이다.
문득 이장수의 표정이 바뀌었다. 바깥에 쳐두었던 삼두 쌍안 거미의 거미줄이 갑자기 어느 화면을 포착했다.
몇 개의 인영이 백 리 너머에서 다급히 날아왔다. 가장 바깥쪽의 사람은 삼베옷을 입고 있었으며 자태가 퍽 고왔다.
몹시 빠르게 나는 터라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삼베 단삼을 팽팽하게 잡아당긴 정도와 바람을 맞을 때, 나타나는 곡선으로 판단하건대······.
주구 사숙이었다!
“나갈 준비를 하자.”
이장수는 웃었다. 마침내 마음속에 있던 돌덩이를 무사히 내려놓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