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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형이 실력을 숨김 (37)화 (37/593)

“장수 사형, 인솔의 책임을 지고 협심하여 우리 도선문의 명성을 지킵시다.”

“그래. 유금 사매의 말에 동의하네.”

“장로님께서 떠나기 전에 당부하시기를 문파 천선 어른들은 상석으로, 저희는 객석으로 갈 것이라 이 기간에 사고가 일어나기 쉬우니 조심히 잘 주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맞는 말이야.”

이장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유금 사매는 말이 참…… 많구나.

“사형, 근래에는 수행이 순조로웠습니까?”

“그래. 수행은, 나름 순조로웠다.”

이장수는 그리 대답하면서 속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유독 사매가 두문불출하며 반성한 덕이지.’

이 문답을 끝으로 유금현아는 얇은 입술을 앙다물었다. 한순간 새로운 대화거리를 찾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도 계속 대화를 이어나가려고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애석하게도 그녀의 인생 경험은 절대다수가 수행에 치우쳐져 있었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도경을 읊을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어쩌면 그녀가 고민하느라 힘겨워한다는 걸 눈치챈 걸까. 이장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선 정신을 수양합세. 이따가 유금 사매는 중책을 맡아야 하니 말이야.”

“예.”

유금현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장수의 말대로 눈을 감고 정신을 수양했다. 앙다문 입술에도 힘을 풀고, 한결같았던 차가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앞쪽에서 은근히 그들을 관찰하던 두 명의 젊은 제자는 ‘분수를 아는’ 이장수의 말에 상당히 기분이 좋아졌다…….

두 시진을 날아 동해지빈까지는 아직 많은 거리가 남았을 때, 도선문 일행은 일고여덟 조의 ‘선문 대표단’을 마주쳤다.

동해 용궁의 대회 초대에 응수하기 위해 초대장을 받은 각 선문은 몰래 여러 가지 사무를 상의했었다.

예컨대 이번 각 선문의 대오 규모는 제자 십여 명, 진선 십여 명, 전체 서른 명 남짓으로 구성하였다.

이는 인간족 연기사는 이번 요괴 소탕대회를 그다지 중시하지 않으나 용궁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꾸역꾸역 참여하는 것으로 보이게 했다.

더욱이 ‘겨루기’는 간단하게 건드렸다가 끝내서 최대한 피를 보는 일을 피하고, 용족에게 우스운 꼴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평소 선문끼리 쌓이고 쌓였던 원한은 잠시 눌러두기로 했다.

이런 식으로 정한 약속이 꽤 많았다.

선문끼리 약속을 정한 주요 목적은 인간족 연기사가 용족 앞에서 체면을 잃지 않고, 오늘날 천지 주인공의 기개가 얼마나 뛰어난지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살짝 이상한 약속도 있었다. 각 선문에서 보낸 젊은 제자는 반드시 150살 이하여야 했다.

왜 그럴까?

동행하는 젊은 제자는 대다수 이를 궁금해하면서도 감히 묻지 못하였지만, 이장수는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용족은 최저 150년은 있어야 알을 깨는데, 어린 용은 그간 알에서 계속 수행한 셈이다.

용궁의 어린 용은 막 알을 깨고 나왔지만, 비범한 실력을 지녀서 수행 백 년이면 신선이 될 수 있었다. 용왕의 혈통이라면 더더욱 대단한 신통력까지 동반한다.

앞선 몇 번 비슷한 대회를 치렀던 경험에 따르면, 용궁은 매번 어린 용을 보내 무용을 뽐내고 위세를 떨쳐 인간족 연기사를 비웃어주었다.

각 파의 젊은 제자가 150살 이하라면 어린 용을 상대해서 이겼을 땐, 당연히 스스로 뛰어나다고 여기면 되고 선문에서도 이를 기뻐할 것이고, 또 졌다고 한들 체면이 깎이지 않았다.

인간족의 기운은 남섬부주에 운집해있고, 인간족 연기사 고수는 중신주에 모여 있었다.

동승신주의 선문이 용궁 앞에서 고개도 들지 못하게 되면 중신주에 있는 큰 종문들은 책임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동주의 선문들이 체면이라는 두 글자를 이토록 신경 쓰는 것이다.

동해지빈에 가까워졌을 때, 하늘에는 선광을 휘감는 하얀 구름으로 가득하였다.

동승신주에 있는 선문은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으나 용궁의 초대를 받을 자격이 있는 곳은 백 곳이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용궁은 이번에 동해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 도선문처럼 소양을 두텁게 쌓은 삼교 선종뿐만 아니라 동해 변방에 멀고 협소한 구역에 있는 크고 작은 선문까지 초대하였다.

각 선문에서 서른 명만 보냈을지라도 연회에 참석하는 이의 수는 여전히 많았고, 대회 장소의 상공에 접근하니 약간…….

구름 체증이 일었다.

도선문의 모든 문인 제자는 일어섰고, 유금현아도 제일 처음 있던 자리로 돌아가 수시로 앞에 있는 사숙, 사백의 지령을 들었다.

이장수는 주위를 둘러보지 않고, 조용히 구석에 서서 눈을 내리깔고 귀로 소리만을 들으며 주위를 살폈다.

앞에 어느 제자가 감탄하였다.

“과연 용궁에서 개최하는 요괴 소탕대회구나. 많은 선인이 참석해서 그런가. 기개가 넘쳐.”

“아무래도 용궁의 체면을 세워줘야 하니까 그렇지. 어쨌거나 상고 3대 종족이잖아.”

어느 선인이 뒤돌아 질책했다.

“말을 삼가라! 남의 집에서 이런저런 평가를 하지 마라. 괜히 비위를 건드리기 쉬워!”

“제자, 실언하였습니다.”

또 다른 제자가 별안간 입을 열었다.

“저기가 이번 대회 장소입니까?”

모두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보았다가 일순 감탄을 내뱉었다.

이장수도 하늘 끝을 내다보았다가 저도 모르게 눈썹을 씰룩거렸다.

대단한 기개.

엄청난 진법!

동남쪽, 그들에게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모를 해수면에 더할 나위 없이 거대한 용오름이 우뚝 솟아 있었다.

용오름은 연꽃 줄기처럼 엄청난 양의 해수를 공중으로 옮기더니 상단에 거대한 연화대(蓮花臺)를 펼쳤다.

용오름은 선력으로 고정되어 요지부동이었으며, 위의 연화대는 안정적이고 넓었으며 주위 운무가 잔뜩 펼쳐져서 흡사 해상 위 선경 같았다.

바로 이번 요괴 소탕대회의 주요 장소였다.

문파의 한 진선이 비웃듯이 농담을 던졌다.

“용궁은 이런 성대한 장면을 연출하면서 단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단다.”

이장수는 그 말에 따라 웃으며 여선인들 옆에 서 있는 주구 사숙을 곁눈질하였다…….

이번 여정에 주구 사숙은 딴사람으로 변한 것처럼 더할 나위 없이 우아하고 얌전하였다. 허리춤의 표주박을 건드리지도 않고 입도 잘 열지 않았다.

이런 모습의 사숙은 진정 깜찍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주 사숙과 몇 년 동안 ‘협력’하여 단약을 정제하고 진법을 배치하느라 오랫동안 함께해보니, 사숙은 ‘말을 하면 좀 깬다’는 사실을 충분히 실감한 상황이었다.

물론 이는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용오름 연화대는 가까워질수록 장관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고, 동행한 이들도 용궁의 걸작에 끊임없이 감탄하였다.

해수면 위에는 용왕의 장병들이 시꺼멓게 서 있었다. 장병들은 이전의 남령아가 죽였던 요괴들과는 절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하나하나 기식이 탄탄했다.

제일 약한 새우 병사의 기식 파동이 귀도경 연기사와 맞먹었으니 이곳에 포진한 건 용궁 수군의 정예 병사임이 명백했다.

현재 천정은 빈궁하고 은하에도 아직 병사가 없는지라 천정 수군 사령관 직책은 형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고로 세상에서 제일 강한 수군 세력은 바로 사해 용궁이었다.

하얀 구름이 연꽃에 가까워지자 직경 십 리나 되는 용오름 속에서 용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수십 마리의 다양한 창룡이 용오름 속에서 솟구쳐 나와 용오름을 둘러싸고 위아래로 날았다!

위편 연화대 가장자리에 물의 장막이 겹겹이 내려오고, 밝게 비추는 햇빛 아래 한 줄기 또 한 줄기 무지개가 걸렸다…….

다시 연화대를 쳐다보면 인영들이 하늘을 가르고 나오는 데, 그 수가 족히 3천은 되었다.

이들은 은백색 갑옷을 입은 용족의 이무기 병사들로 대다수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피부는 까무잡잡했으며 머리 위에는 뿔이 나 있었다.

그들의 실체는 용족 혈통과 가까운 이무기로 용궁의 주요 전력이며 상고 때부터 명성이 자자했다.

3천 명의 이무기는 연화대를 둘러싸고 골고루 분포하였다. 그들은 이번 요괴 소탕대회의 질서 유지를 담당하였다.

이무기 병사들은 공중에 선 후, 각자 기운을 흩뜨렸다. 하나같이 진선경이라 장면은 순식간에 더욱더 장관을 이루어 인간족 연기사에게도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부자는 망해도 삼 년은 먹을 것이 있다고 하던데…….

서로 미워하지 않는다고 꼭 사귈 필요는 없다. 가능한 그들과 인과를 묻지 않는 게 제일 좋겠어…….

이장수가 이리 생각하고 있을 때, 앞에 있는 사저의 목소리가 들렸다.

“용궁은 이번 대회를 왜 이토록 중시하는 겁니까?”

앞의 문파 여진선이 픽 웃더니 대답했다.

“용족은 이런 식으로 허세 부리는 걸 좋아한다. 사실 지금 용족의 어려움을 누가 몰라?”

어려움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이장수는 생각이 더욱더 많아졌다.

오늘날 용족의 태도를 보면, 과거 천지를 제패했던 용족은 조용하게 지내는 게 썩 달갑지 않은 모양이었다.

지금 이토록 승벽을 부리는 걸 보아서는 여전히 강성한 용족이라고 불릴 만하였다…….

봉신 이후, 천정의 비를 내리는 수단을 생각해보자…….

천정이 강성해진 후, 용족은 천상의 법률을 거스르고 비를 잘못 내려서 몰살되었고, 용의 간과 봉황의 골수는 옥황상제가 즐겨 먹는 고기가 되었다…….

상고의 3대 종족은 봉신 전후로 어떠한 비극을 겪었는가?

속으로 감개에 젖어있던 이장수는 대라에 이르지 않으면 밖으로 떠돌지 않겠다며 도심을 확고히 하였다!

봉신대겁은 아직 멀었지만, 반드시 지금부터 미리 준비를 해야 했다.

이장수는 구름 위에 서서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도선문의 구름은 다른 수십 개의 구름을 제치고 제일 먼저 연화대 근처에 도착했다…….

연화대에서 곧바로 금빛 찬란한 남생이가 날아올랐다.

남생이는 등에 ‘거북이 승상’ 둘을 이고 있었다. 모두 붉은 금포를 입고 등에 껍질을 두르고 있었으며 목덜미 끝에는 작은 머리가 있어서 약간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왼쪽에 있는 거북이가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는 들고 있던 작은 접선을 흔들면서 부드러우면서도 수컷의 매력을 물씬 풍기는 중저음의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각 선문의 천선, 장로는 위편 품선대(品仙臺)로 오시오.”

어디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도 될 정도로 매력적인 목소리였다.

뒤이어 우측에 있는 거북이는 날카롭고 귀를 찌르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각 선문의 문인 제자는 입장하시오! 객석에 과일과 맛 좋은 음식, 훌륭한 술을 준비했습니다. 동승신주에서 서열이 앞선 선문은 팻말이 있으니 자세히 확인하고! 글자를 모르면 시녀들에게 물어도 좋소! 서열이 뒤인 선문은 팻말이 없으니 뒤에 아무 데나 가서 앉으면 됩니다!”

인간 속세 기루에서 일하는 종업원과 상당히 비슷한 말투였다.

“풉…….”

내내 조용했던 주구는 끝내 참지 못하고 입을 가린 채 웃음을 터뜨렸고, 도선문에서 온 이들도 모두 두 거북 신선으로 인해 즐거워했다.

거북이들이 연극을 참 재밌게 잘하는구나.

도선문 사람들은 자리가 없을 일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리는 제일 앞줄이었다.

현재 망정 상인과 천선, 장로들은 공중의 높은 대로 날아갔다.

문파의 진선 열여섯 명은 자연히 제자들의 곁을 지키느라 구름을 포기하고 도선문 구역으로 날아갔다.

인솔자 이장수와 유금현아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각 산문이 사전에 서른 명씩 파견하기로 의논해두었던 걸 미리 알았는지, 용궁은 선문 구역에 각각 25개의 방석과 앉은뱅이책상을 준비하였다.

과일과 간식 또한 25인분만 준비하였다.

하나 별로 큰일은 아니었다. 제자 몇몇이 방석을 가져오고 책상을 붙이면서 어영부영 넘어가게 되었다.

오히려 작은 선문에게 하는 대우가 퍽 초라하였다. 좌석은 돌이 놓여 있고 앉은뱅이책상도 없었으니 맛 좋은 술과 신선한 과일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장수는 도선문 구역에서도 구석 자리에 앉았다. 곁에는 시중들 조개 시녀 한 명이 서 있었다.

앞에 있는 과일과 술을 눈으로 훑은 그는 속으로 의심을 하면서 수정 포도를 들고 눈앞에서 몇 차례 살펴보더니 대충 입안에 집어넣었다.

용모가 제법 아리따운 조개 시녀가 입을 가리고 싱긋 웃더니 말없이 이장수의 반응을 훔쳐보았다.

이장수는 곧바로 입을 벌려 트림을 하였다. 그러면서 어떤 음식인지 확신하였다.

용궁은 사람을 놀릴 때도 스케일이 크군. 도선문에 각각 ‘후천적 영근(靈根)’이라 불리는 빙응선(氷凝仙) 포도를 나눠주다니 말이야.

주변의 다른 문파 구역을 자세히 살펴보니 다른 품종의 포도가 놓여 있었다.

빙응선은 좋은 음식이긴 하나 소량 복용해야 연기사 원신을 편안하게 해주고, 연기사의 기식을 조절하여 다친 이에게 몸조리 효과를 줄 수 있다. 맛도 최상이고, 값도 비싼 편에 속했다.

단점이라면…… 많이 먹으면 방귀가 잘 나온다……. 그러니까 괄약근에 힘을 잃어 기식이 밖으로 쉴 새 없이 넘실댈 수 있다.

게다가 뒷심이 엄청나서 참기 힘들다. 이건 선인이라도 마찬가지였다.

이장수는 고민하다가 유금현아에게 일깨워주기로 하였다…….

“유금 사매, 음식을 먹기 전에 사숙과 사백들께 가서 문제가 없는지 여쭈어보아. 동문들은 이미 먹기 시작한 것 같아서 말이야. 내가 말했다고 하지 말고, 사매가 보기에 약간 수상한 것 같다고 말하고.”

유금현아는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돌려 이장수를 보았다. 껍질을 벗긴 동그란 포도를 집은 손가락은 이미 입안에 넣은 채로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

그래, 없던 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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