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청년은 즐겁게 만찬을 즐겼다.
만림균은 이장수가 가져온 술을 조금만 입에 대고는 두 단지를 전부 남겨두었다.
그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 데다 음식에도 딱히 큰 흥미가 없었고, 이장수와 먹으면서 독경과 독 이론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데만 열중했다. 물론 아주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했다.
단정봉에서 길을 나설 때 이장수는 만림균 장로에게 약초 한 더미를 또 받았다.
이젠 약간 민망해졌다. 단순히 찾아뵈고 인사를 드리러 간 것뿐이었는데, 장로께선······ 너무나도 친절하셨다.
문파 내에서 독에 흥미가 있는 연기사는 드물었다.
거기다 이장수의 독법은 장로와 대화가 통할 정도로 수준이 높은 편이었다.
‘단정봉에 자주 가면 괜히 남들의 이목을 끌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겠어. 2년쯤 지난 후에 다시 가자.’
이장수는 이리 생각하면서 소경봉 단방 앞에 내려왔다.
흔들의자에 앉아서 장기간 보존할 수 있도록 선법으로 처리한 죽간 한 권을 들고 오늘의 깨달음 및 독서를 시작했다.
단방 주위 대진이 풀린 걸 느낀 령아는 침울한 얼굴로 날아와서는 한참을 입만 달싹였다······.
‘찬합을 터뜨린’ 일로 칭찬받고 싶었으나 한편으로는 사형을 헛고생하게 했다고 혼날까 봐 두려웠다.
한참 기다렸으나 그녀가 입을 열지 않기에 이장수는 고개를 들고 앞에 있는 사매를 쳐다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냐?”
“사형.”
남령아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말했다.
“사부님께서 봉주 회의에 가셨습니다. 별일 없겠죠?”
이장수는 생각해보더니 고개를 살짝 저으며 전음으로 답했다.
“별일 없을 거다. 사부님의 연적은 봉주가 되지도 못했을 테니 안심해. 게다가 사부님께선 현재 구석에서 듣기만 하실걸? 그곳에선 항렬이 가장 낮아서 말도 못 하시거든. 예를 지키고 체면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성정이시니 지금 가시방석이 따로 없으실 거다.”
······
파천봉, 백범전에서 제일 구석진 자리.
제일 안쪽 방석에 앉아 고개를 아래로 드리운 도사는 살짝 엉덩이를 움직여 조금 더 단정하게 앉았다.
······
단방 안.
이장수는 약간 정신을 딴 데 팔고 있는 령아를 보며 웃었다.
“이번에는 제법이구나. 사부님을 염려하여 나와 상의하겠다고 찾아도 오고. 전에는 이런 세심함을 어디로 보냈었더냐? 됐다. 지난번 일은 더 따지지 않을 테니 이제부터 마음 놓고 수행에 전념해.”
령아는 살짝 눈을 깜빡거렸다.
“사형, 지금 칭찬하신 거예요?”
이장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매일 너를 꾸짖을 정도로 못돼먹었더냐?”
“평소엔 꾸짖기만 하셨잖아요······.”
령아는 혀를 쭉 내밀고 괴상한 표정을 지었지만, 기분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전에는 서리를 입은 가지 같았다면, 지금은 비 온 후 윤기가 반들반들한 토마토였다.
“사형, 이 단로는 엄청나 보여요.”
“함부로 만지지 마라. 문다.”
“사형, 전 이제 열두 살이 아니라고요······. 건드리면! 쓰읍! 아얏! 어찌 뇌법이 있습니까?!”
“함부로 단로를 열지 못하게 하려고 안전장치를 추가했다.”
이장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미소를 지은 채 문밖에 앉아서 계속 책을 읽었다.
령아는 단로 옆에서 벌게진 손가락을 움켜쥔 채 고개를 갸우뚱하며 위에 새겨진 양각을 살펴보았다.
그러다 단방 안을 반 바퀴 정도 돌아다니다가 이전에 절반 정도 읽다가 만 경문을 찾아내 방석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사형과 문 앞에 좌우로 각각 앉은 꼴이 되었다.
문신(門神)처럼 말이다.
오후의 햇볕은 따스하고, 수풀 사이에서 바람이 가볍게 불어왔다.
벌레가 울고, 시냇물이 흐르고, 나비가 장난을 치고 놀았으며 구름 속에도 선인 몇몇이 멀리 나부꼈다.
이장수는 간혹 깨달음이 찾아왔지만, 티가 나지 않게 깨달은 내용을 최대한 받아들이면서 조금의 기식 파동도 드러내지 않았다.
경지가 높아져서 오도 상태에 들 주도권은 제 손에 달려있게 되었다.
깨달음에 관해 가장 우려했던 건, 사실 타인과 법술 다툼을 하는 도중 깨달음이 찾아와 오도경 상태로 끌려가는 것이었다······.
“사형, 지금은 어떤 경지예요?”
“반허경 4단이다.”
“와. 대단하네요.”
남령아는 대충 대꾸하고는 책에 고개를 파묻고 읽는 데 열중했고, 읽은 내용을 마음속에 집어넣었다.
······
천정. 월로전은 현재 대진에 둘러싸여 있었다.
두 소년은 목패를 하나씩 들고 굳게 닫힌 전각의 문 앞에 앉아 있었다.
오른쪽에는 ‘월하노인은 안 계십니다.’, 왼쪽에는 ‘하늘이 이 땅을 지켜주십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어린 제자가 중얼거렸다.
“사형, 사부님께 사실대로 말씀드리지 않았다가 일이 더 커지는 거 아닐까요?”
“쉿.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고 싶어?”
큰 제자가 눈을 흘기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원래 상사수 가지였다가 사부님 손에 점화되었잖니. 걱정 마라, 사부님께선 분명 방법이 있으실 거다.”
“예.”
어린 제자는 입을 앙다물고 마지못해 옆에 앉아 있었다.
그 후로 두 소년은 하루, 또 하루, 그렇게 꼬박 반년을 기다렸지만, 월하노인은 돌아오지 않았다.
월하노인은 어디로 갔을까?
사실 그는 인연전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조금 더 외진 곳에 있는 선전을 찾아갔다. 평소 할 일 없이 한가하게 보내는 선경의 어느 관원에게 선물을 주고,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수습할 참이었다.
월하노인은 지지 세력이 없고 뒤를 봐주는 이도 없는 터라 감히 누군가에게 미움을 살 수 없었다.
하나 바로 이런 이유로 옥황상제가 그를 월하노인이라는 직책에 앉혔다. 어느 세력에도 치우치지 않을 테니 말이다.
평소 신장과 선자들이 찾아와서 인연을 부탁하는 건 소소한 일이었다.
만일 월하노인이 하늘이 부여한 권력으로 인연을 좌지우지한다면, 그 죄업이 어떠한지는 둘째치고 큰일을 저지를 수 있었다.
그렇기에 하늘도 시시각각 월로전을 감시했다.
월하노인이 인연을 어지럽힐 마음이 들자마자 1차 경고, 2차 징계, 3차에는 자소신뢰가 곧장 떨어져 소멸하고 말 것이다······.
천정은 쇠미하고, 도문은 강성했다.
그랬기에 월하노인은 아무리 평범한 인교 제자라도 미움을 사고 싶지 않았다.
흙 인형에서 뜻밖에 사고가 생겼고, 이는 현도 대법사가 함부로 손을 댄 탓이었다. 그러나 현도는 성인의 비호를 받고 있으며 성인의 선천지보인 태극도(太極圖)가 억누르고 있어서 인과를 묻히지 않는 데다 자체 실력은 훨씬 더 강했다······.
하찮은 월하노인인 그가 어찌 현도 대법사에게 화를 전가할 수 있겠는가?
스스로 짊어지는 수밖에.
월하노인은 밤새도록 골머리를 앓았다.
오래 끌수록 일이 생기기 쉬운 법이니 최대한 빨리 처리해야 한다.
앞뒤 상황을 꼼꼼히 따져본 후, 인연전을 벗어나 ‘신위전(神威殿)’으로 향했다.
월하노인은 금갑(金甲)을 입은 이름 모를 신위전 관원과 함께 하늘의 보물인 ‘성라몽천의(星羅夢天儀)’ 앞에 서 있었다.
이 관원은 성라몽천의를 조작하면서 월하노인에게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월로, 걱정하지 마세요. 꿈에 나타나는 일은 말입니다. 대라금선은 속세를 초탈한 터라 불가능하지만, 금선이나 천선을 찾아가는 건 일도 아닙니다. 백 살이 조금 넘은 연기사라면 말할 것도 없죠. 하나 분명히 해 두셔야 할 건, 현몽(現夢)이란 꿈에서 말은 할 수 있지만 무슨 일은 못 합니다. 하늘이 신의 위엄을 제대로 보이라고 천정에 하사한 보물로 인간을 겁주는 용도일 뿐입니다. 하여 소선들이 이곳을 신위전이라 부르지요. 현몽할 대상이 한눈을 팔거나 정신을 놓고 있을 때, 혹은 술에 취했거나 기력이 빠진 상태, 피곤, 허약, 긴장을 풀고 있거나 폐관하여 깨달으면서 잠시 눈을 붙이고 있어야 꿈에 들라는 초대를 보낼 수 있고, 상대가 꿈에 들길 원치 않는다면 방법이 없습니다. 찾으려는 이가 도선문 제자 이장수지요? 염려 마세요. 젊은 제자는 잠깐이면 됩니다······. 어? 어찌 찾을 수가 없죠?”
금갑을 입은 관원이 목을 앞으로 쭉 빼고 아무런 변화가 없는 ‘성라몽천의’를 응시했다.
옆에 있는 월하노인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계속 기다렸다.
“월로, 이 도호가 확실합니까? 혹 사주팔자 같은 건 있습니까?”
“있네. 인연전에 사주팔자가 있어.”
월하노인은 웃으면서 소매에서 종잇조각 한 장을 꺼냈다.
금갑 선관이 고개를 숙인 채 한참 주무르자 거대한 몽천의가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 시진 후, 선관은 길게 한숨을 토해내며 이마에서 더운 땀을 훔쳤다······.
“휴. 몽천의가 찾아냈습니다. 지금 도선문 산문에 있군요. 역시 선천지보가 기운을 보호하는 인교 제자인지라 찾기가 어려웠나 봅니다! 월로, 이쪽을 보십시오. 별빛이 밝아지면 그자가 잠을 자거나 마음이 분산되었다는 것을 뜻하니 그때 꿈속에 들어오라고 부르면 됩니다······.”
“그럼 끝인가?”
“그럼요. 잠시만 기다려보십시오. 보통 반나절 안에 정신을 놓을 겁니다.”
월하노인은 옆에서 연신 감사하다고 말했고, 선관은 손을 흔들며 똑같이 관리로 일하는데 그런 말은 말라는 형식적인 말을 했다.
그러나 반나절 후······.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어찌, 아직 밝아지지 않지?”
현몽을 담당하는 선관이 인상을 쓴 채 중얼거렸다.
“아이고, 늙은이가 할 일도 없이 찾아와 괜히 도우를 번거롭게 했구려.”
“아닙니다. 어차피 이곳도 몇 년 동안 아무도 안 찾아옵니다. 저 제자도 한 달이면 정신을 놓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한 달 후.
월하노인과 선관은 성라몽천의 앞에 책상다리로 앉았고, 네 개의 눈이 어두컴컴한 별을 바짝 응시했다.
두 달 후.
어느새 두 눈이 핏줄로 가득해진 선관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어디가 고장 난 거 아닙니까? 선문의 제자가 자기네 선문에서 지내는데 어찌 이토록 오래 긴장을 풀지 않을 수가 있죠? 금선에게 현몽할 때도 이렇게 오래 기다리진 않았는데······.”
“그냥······ 아무래도 관두는 게 좋겠소.”
월하노인의 말에 선관이 손을 크게 휘휘 저었다.
“안 됩니다! 전 한 번 시작한 일은 끝장을 봐야 합니다! 월로, 일단 인연을 맺는 일을 돌보러 가 계십시오. 저는 예서 기다리고 있다가 무슨 변화가 생기면 바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인연이란 하늘이 주관하는 것으로 늙은이는 옆에서 평소 인연을 구하는 이들을 상대하는 게 전부요. 차라리 이곳에 숨어있는 게 홀가분하네. 내 괜히 도우에게 폐를 끼쳐서 그렇소이다.”
그가 인연을 자르거나 끌어당겨야 할 일이 있다면, 절로 감응이 생기는 터라 이곳에 있다고 한들 일을 그르칠 일은 없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석 달 후······.
선관은 고개를 돌려 월하노인을 쳐다보았다. 장시간 눈을 깜빡이지 않느라 눈알이 밖으로 튀어나왔고, 눈두덩이는 움푹 들어가 있었으며 마음도 약간 초조했다.
정말 맛탱이가 갔나 보군!
하늘에서 내린 보배가 맛이 간 건가?
이리 오래 기척이 없어서 월로 앞에서 망신을 주다니!
앞으로 월로에게 혼인의 연을 성사해달라 도움을 요청할 참이었는데, 이 보배가 일을 그르치면 어찌 되겠어!
선관은 혼자 끙끙 앓다가 맥이 빠진 투로 중얼거렸다.
“천의는 천정과 일체가 아닌가? 어찌 고장이 날 수가 있지?”
월하노인은 미간을 찡그렸다.
“도우, 아니면······.”
“기다립시다! 계속 기다릴 겁니다! 급하면 먼저 돌아가십시오. 저는 정말이지 이 녀석과 끝장을 낼 겁니다! 안 되면 내려가서 직접 만나라도 봐야겠어요!”
월하노인은 연신 괜찮다고 말하면서 옆에서 인내심 있게 기다렸고, 선식으로 인연전을 관찰했다. 혹여 대선인이 나타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반년이 지났다.
바닥에 엎어진 선관은 유유히 한숨을 내쉬며 나직이 말했다.
“방법을 바꿔봅시다. 일단 도선문에 있는 다른 이를 찾아가 현몽한 다음 그자를 통해 꿈에 들어와서 월로와 만나도록 통지하는 건 어떻습니까?”
잠이 쏟아지던 월하노인은 이 말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좋은 생각이네!”
“뭔가 저 녀석에게 농락당한 것 같군요. 신선의 위엄이 없어졌어요······.”
“그건······.”
“어휴······ 대체 어떻게 된 게 반년 동안 기회도 주지 않는 거죠?!”
그렇게 반나절 후······.
이장수는 <무위경>을 연구하고 있을 무렵, 령아가 수풀 너머에서 다급히 날아온 터라 하는 수 없이 수행을 멈추고 외부 진법을 꺼뜨렸다.
“사형! 금갑을 입은 천신께서 조금 전 꿈에 나타나서는 사형의 꿈에 나타날 예정이니 긴장을 풀라고 하셨어요. 천정의 신이자 인연전에 계신 월하노인께서 사형에게 할 말이 있나 봐요!”
꿈에 나타난다고? 월하노인이?
이장수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일이 예사롭지 않음을 눈치챘다.
뜬금없이 찾아올 리가 없다. 그 속에 도사리는 음모를 발견하지 못했을 뿐!
이전에 뜬금없이 마음이 혼란스러워지고, 잡념이 마구 생겨서 하는 수 없이 비밀리에 간직한 보물 <백미노후도>를 사용해야 했었다.
그리고 겨드랑이가 이유 없이 간지럽더라니······.
여기에 문제가 있었던 게 분명해!
도선문 문풍이 약간 이상한 원인을 분석했을 당시, 월하노인과 인연을 뜻하는 홍실일 가능성을 고려해본 적이 있었다.
설마, 정말 월하노인이 농간을 부린 건가?
그러나 월하노인이 어찌 인교 도승에 손을 댈 수가 있지······.
남령아가 황급히 말했다.
“사형, 어서 꿈에 드세요.”
이장수는 시선을 집중한 채 담담하게 말했다.
“일단은 안 들어간다.”
“일단은 안 들어간다니······. 이것도 거절할 수가 있어요?”
“그분들이 내 꿈에 들어올 수 있었다면, 어째서 네게 이런 부탁을 했겠니?”
이장수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월하노인이 내게 부탁할 일이 있으신 모양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잘 헤아려봐야겠어. 령아 너는 누울 수 있는 의자에 가서 잠시 누워라. 잠깐 넋을 놓아도 좋고,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돼. 그 천신이 다시 현몽하거든 구체적으로 무슨 일인지 묻고, 나는 지금 단약을 정제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꿈에 들기 어렵다고 하라.”
“음······. 알겠어요.”
령아는 눈을 끔뻑거리더니 영리하게 대답하고는 사뿐한 발걸음으로 문밖에 있는 흔들의자로 다가갔다.
‘어휴, 또 사형한테 이용당하는군.’
속으로 한숨을 내쉬긴 했으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갔다.
그래도 사형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니 기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