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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형이 실력을 숨김 (75)화 (75/593)

옥패가 가볍게 돌아가면서 수풀 곳곳에 미풍이 불어왔다.

그리고 이장수는 구름을 몰고 단방 앞에서 서서히 공중으로 올라 반허경 7단의 경지를 드러냈다!

물론, 경지를 돌파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양 약간 불안정해 보이도록 조절하였다······.

공중과 수풀 속에서 장로들과 절교 선인, 주오, 오을, 절교 선자 둘, 그리고 나이 지긋한 천선이 동시에 그를 바라보았다······.

선문 곳곳에도 눈이 달린 것처럼 시선이 이장수에게 떨어졌다.

이장수는 약간 괴로웠지만, 최대한 이번 난관을 버텨야만 했다.

곧바로 주오가 다급하게 전음으로 그를 일깨워주었다.

“경지를 감추지 않았다!”

이장수는 멈칫했다가 주오를 향해 읍하고 말했다.

“소경봉 제자 이장수, 장로님들, 사백, 사숙, 선배님들께 인사 올립니다.”

“사부님, 어찌 여기에 계십니까?”

“그게······ 너희를 찾으러 온 것이 아니냐? 자, 올라가자! 예서 사부님 체면을 더 깎지 말고!”

오을의 시선 끄트머리에 두 소녀를 이끌고 부랴부랴 하늘로 올라가는 원택 도사가 걸렸다. 그들은 빠르게 날아가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인파 속에 섞였다······.

그리고 이장수가 공중에 올라와 이쪽으로 예를 갖추었다.

“소경봉 제자 이장수, 인사 올립니다······.”

익숙한 목소리가 밤하늘 속에서 천천히 울려 퍼지자 오을은 두 다리를 떨고, 휘청이며 앞으로 걸어갔다.

졌다······.

또 졌다고 하는 게 맞겠지.

열 살 때는 지고 싶었으나 한 수 차이로 먼저 패배를 인정하는 바람에 졌었다면······.

오늘은······.

어머니가 주신 수응영주(水凝靈珠)를 들고도 간단한 곤진을 깨지 못했다.

사부님이 하사한 빙리검(氷璃劍)을 들고 얼마 되지도 않는 땅의 미진을 끊어내지도 못했다.

이젠 검을 들고 겨루기하자고 할 낯짝이 어디에 있겠는가?

허. 어떻게 해야 속이 후련할까?

어렵사리 생각해낸 명성을 떨칠 계획이란 곳곳에서 논도하는 금오도 연기사들의 풍조를 빌려 인간족 준걸에게 하나씩 도전하려고 했다······.

어째서, 이곳에서, 계획의 시작부터, 이런 식으로······.

오을은 눈에 초점을 잃었다. 본심을 따라 이장수에게 읍하고 ‘당신보다 못했군요’라고 말한 뒤 뒤돌아 떠나야 할지, 아니면 계획에 따라 체면 불고하고 계속 인교 제자인 그와 겨루기를 이어나가야 할지를 몰랐다······.

오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죽자 살자 억지를 부리는 일을 하고 싶진 않았다.

구슬을 정리하고 영검을 칼집에 넣은 후, 앞으로 다가가 단방 앞에 있는 이장수를 향해 멀리서 읍했다.

“도우, 진법의 훌륭함을 잘 배웠소이다.”

오을은 말을 끝내고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

하나 공중에 있는 한 절교 천선이 인상을 쓰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기왕 장수라는 친구가 나왔으니 진법은 됐고 직접 겨루는 건 어떻겠습니까. 승패를 가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어차피 오늘 우리 금오도는 졌고, 순전히 오을 사제가 마음속 마장을 털길 바라는 의도입니다.”

오을은 고개를 들고 무어라 말하려다가 이내 그만뒀다.

도선문 장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장수야, 용궁 태자와 다시 겨뤄보겠느냐? 태자는 경지를 반허경 7단인 네 경지와 비슷하게 봉할 것이다.”

양측의 반응이란 이미 예상한 바였으니 이장수는 망설이지 않았다.

이번 겨루기는 피할 수 없다. 진법과 체면이 달린 문제라 양측은 이미 흥이 오른 상태였기에.

그는 고개를 숙이고 답했다.

“제자, 문파의 안배에 따르겠습니다.”

순간, 공중에 있던 장로들의 웃음기가 더욱더 찬란해졌다.

장로들은 약속이라도 한 양, 금오도 일행이 돌아가고 나면 의외의 제자인 이장수에게 상을 내릴 생각이었다.

사람들은 즉시 파천봉으로 돌아갔다.

파천봉에서 소경봉으로 올 땐, 대여섯 명이었다면 다시 돌아갈 땐, 구름이 하늘을 가득 메워 별이 총총히 박힌 하늘은 새까만 모양이 되었다······.

이장수는 착실하게 선인들의 뒤를 따랐다. 이때 주오가 옆에서 바짝 쫓아와 그의 팔을 끌고 뒤로 살짝 당겼다······.

“이걸 받아두어라.”

주오가 이장수의 소매에 손을 쑤셔 넣어 자루를 놓고는 전음으로 말했다.

“용궁 태자는 후천 영보 두 개를 지니고 있다. 그 검은 보통이 아니니 위험하다 싶으면 이 자루에 있는 물건을 꺼내 공격해라. 널 위해 특별히 사부님께 빌려온 자릉인(紫菱印)으로 역시 영보다. 허나, 명심해라. 이 영보는 빌려준 거다! 주는 게 아니다!”

이장수는 순간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러나 다시 자루를 꺼내 주오의 소매로 돌려주었다.

응? 사백의 소매에는 대체 자루를 몇 개나 꿰매고 있는 거지?

안에 좋은 물건을 많이 모아 놓았나 보군.

이장수는 전음으로 답했다.

“사백, 걱정하지 마세요. 자연히 대응할 방법이 있습니다. 이번 싸움에선 태자가 이기도록 두지 않을 겁니다······. 때리지 못 하게 하고, 용으로 돌아가게 만들면 됩니다.”

주오는 순간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이었지만, 이장수는 전음으로 몇 마디 더 중얼거렸다.

키 작은 도인은 순간 미간을 찌푸리며 풉, 하고 웃었다.

“그러면, 좋지 않을 듯한데.”

이장수는 웃으며 말했다.

“잘 활용해야죠. 사부님이 자주 일러주신 도리입니다.”

“참, 네 사부는 어디에 있느냐? 네가 겨루기를 하는데 와서 구경해야지.”

“그게······.”

이장수는 선식으로 산문 밖에서 몇백 리 떨어진 곳을 살펴보았다. 밀림에 숨어서 잠든 나무 그루터기를 보며 입가를 씰룩거리고는 일말의 선식을 남겨 주위를 둘러쌌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요새 사부님께선 번민이 자주 찾아오신다더니 잠시 외출하셨나 봅니다.”

주오는 슬쩍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네 사부는 탁선이 되었으니 선로가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게다. 일단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잘 싸워라. 이기든 지든 상관없으나 너무 비참하지만 않으면 돼.”

이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에서 한 장로가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보자, 주오도 더 말하지 못하고 구름을 몰아 이장수를 데리고 쫓아갔다.

······

잠시 후, 파천봉 도선전 앞의 평지 광장.

장로가 수십 개의 야광 구슬을 던져 이곳을 대낮처럼 환히 밝혔다.

백여 명이 전각 앞에 서 있었고, 도선문 내 절반 이상 연기사의 영식과 선식이 이 땅을 주시하고 있었다.

금오도 일행도 더 말을 하지 않았다.

주오는 장로들과 한차례 논의하더니 먼저 일어서서 목소리를 높이고 말했다.

“겨루기는 각자의 도를 검증하고, 자신의 도리를 깨닫는 데 의미를 두는 것이지 용맹하게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양쪽은 가볍게 건드리는 것으로 끝내고, 상대를 다치게 할 마음은 먹지 마십시오. 도선전 앞 공터가 경계선으로 그날 용궁에서 정한 규칙대로 선을 넘으면 패하며 살상 보물은 사용해선 안 됩니다.”

오을과 이장수가 동시에 대답했다.

뒤이어 오을은 허리춤에 있는 영보 장검을 거두고, 품에서 은백색 장갑을 꺼내 여유롭게 꼈다. 그리고 뒤돌아 금오도 다섯 천선에게 공수했다.

“사형, 제 경지를 반허경 7단으로 봉하여 주십시오.”

“알겠다.”

중년 도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왼손으로 허공에 부적을 그려 오을의 몸을 때리자, 오을의 기식이 순식간에 떨어졌다.

“이 부적은 한 시진 동안 봉할 수 있다.”

“감사합니다, 사형.”

오을과 이장수는 각자 경기장 안으로 걸어가 십오 장을 사이에 둔 채 기운이 뒤얽혔다.

“장수 사형!”

별안간 누군가가 소리쳤다.

이장수가 곁눈질로 보니 붉은 치마를 입은 유금현아가 도선전 앞에서 저를 응시하고 있었다. 두 눈에는 우려가 다소 섞여 있었다.

“무리하지 마십시오.”

“알겠다.”

이장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순전히 예의로 한 행동이었다.

이장수는 오을을 보며 입을 열었다.

“오을 태자, 오늘은 요괴 소탕대회와 다르게 저는 싸우지 않고 승리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소년 같은 오을의 얼굴에 멋쩍은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청아한 목소리로 화답했다.

“도우, 최선을 다하시게.”

이장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 손으로 도포 앞섶을 말아 올려 뒤로 가져가고는 덤벼보라는 손짓을 했다.

막이 오르자마자 기세가 폭발했다!

그러나 이장수는 이미 계책을 세워두었다.

이어지는 전투 방식은 그가 심사숙고한 것이었다.

안정하게 도망······ 흐음, 승리하기!

오을은 짧게 숨을 들이켰다. 얼굴이 진지해졌고, 몸 주위로 두꺼운 얼음 화염이 나타났다.

이장수가 소매에서 황색 부적들을 날리자 눈 깜짝할 사이에 백 장 남짓한 부적이 흩뿌려졌다!

오을은 전에 이런 초식을 체험했었다. 다만, 지금은 이런 황색 부적의 위력이 지난번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걸음을 멈칫한 오을은 몸을 땅에 닿을 듯이 붙인 채로 앞으로 돌진했고, 얼음 화염들이 용의 그림자가 되어 그의 몸 주위를 맴돌면서 한꺼번에 이장수를 향해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었다!

이장수는 보법을 펼쳐 피하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입으로 빠르게 주문을 읊었다. 음절이 알아듣지 못할 만큼 빠르고 모호해서 마치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 같았다.

오을이 어느덧 달려들었다!

산을 폭파하고 바위를 깨뜨릴 정도의 위력이 담긴 주먹이 이장수의 가슴에 그대로 꽂혔다. 그런데 이때 오을은 미간을 한껏 찌푸리며 언제든 주먹을 거둘 준비를 하였다.

하나······.

슈욱!

이장수의 몸이 작아지더니 순식간에 출렁거리는 땅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토둔술!

이장수는 북주에서 토둔술로 유금현아를 두 번이나 구한 전적이 있었다. 문에서는 그가 토둔술을 사용할 줄 안다는 사실은 일찌감치 이를 알고 있었기에 이렇듯 대놓고 사용한 것이다.

오을은 주먹에 아무것도 닿지 못한 채 떨어졌고, 전방으로 십여 걸음을 더 돌진했다······.

용궁 태자가 고개를 돌리자 뒤에서 황색 종이가 이미 진을 이뤘고, 화광이 연이어 터졌다!

평범한 화술(火術)이었지만, 이장수가 꾸며낸 반허경 7단의 법력이 가세한 것치곤 제법 괜찮은 위력을 발휘했다.

오을은 두 팔로 얼굴을 보호하고, 몸을 이리저리 돌려 밀집한 화술의 끊임없는 공격을 피했다······.

이장수는 땅 밑에서 소리소문없이 돌아다니며 기습할 기회를 찾고 있었다.

그는 이겨도 되고, 져도 된다. 두 가지를 비교해봐도 그에겐 사실 별반 차이가 없었다.

어떻게 지고, 이기느냐가 관건이었다.

오을과 정면 대결을 펼쳐서 크게 승리하면 아주 본새 날 것이고, 이기건 지건 문인 제자들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러나 토둔술에 부적을 더하여 정면 대결을 펼치지 않으면 싸움이 없는 터라 승리하든 지든 아쉬울 게 없었다. 그저 대다수가 이장수는 그런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

진법과 토둔술에 능한 열성 유망주로 순식간에 이미지가 풍족해질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이기면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도 그저 요령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그를 어떤 ‘영웅’적인 인물로 만들진 않을 것이다.

음, 유독은 잘 모르겠다. 그녀는 허점이라 고려 범위에 있지 않았다.

설령 이로 인해 좋지 않은 명성을 얻는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이장수가 필요한 건 사건을 빨리 마무리 짓고, 수도 생활이 다시 원래의 평온한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미안하다, 꼬꼬마 용!

부적진은 끊임없이 화광을 터뜨리며 오을을 낭패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심한 부상을 주진 못했다.

약간 초조해진 오을은 이장수의 인영을 계속해서 수색했다.

땅은 고요하지만, 일말의 잔류한 기식이 있는 듯했다······.

저기다!

오을은 곧바로 달려들어 주먹을 메다꽂았다. 지면에 쿵, 하고 구덩이가 팼으나 아래에 이장수의 인영은 없었다.

바로 이때, 오을의 뒤쪽 지면에서 슬그머니 커다란 손이 내뻗어왔다. 선식으로 찾을 수 없더라니 손에 부적 한 장이 붙어있었다. 커다란 손은 날카로운 법보 비수를 움켜쥔 채 오을의 발목에 대고······.

찔렀다!

피가 순식간에 솟구쳐 나왔다. 오을이 펄쩍 뛰어올라 뒤를 돌아봤을 때, 그 커다란 손은 금세 지면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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