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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형이 실력을 숨김 (96)화 (96/593)

별안간 가느다란 모깃소리가 수풀에서 들려왔다.

이장수는 일찍이 대비를 해두었다. 종이 도인의 몸 주위로 곧바로 미미한 불꽃이 나타났다!

하나 피모기가 이장수 곁으로 채 가까이 다가오기도 전에 나뭇가지 위에서 기다란 혀가 뻗어 나오더니 피모기를 휘감고 옆으로 옮겨버렸다.

개굴개굴.

나뭇가지에 엎드려 있는 수령식 옥개구리는 이장수를 보며 울었다. 마치 공을 가로채고 우쭐하는 모양새였다.

삽시간에 수풀 곳곳에 유쾌한 개구리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기 모기장’이 효과가 있었는지 시험해보고 싶었던 이장수는 은근히 아쉬웠다.

공을 가로채다니······.

싸움이 끝나면 전골로 해 먹어버릴 테다!

이장수는 뒤돌아 나뭇가지에서 뛰어내려 진화를 더 가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시신들은 불에 타서 재만 남게 되었고, 이내 공손하게 손뼉을 쳐서 재를 곳곳으로 흩날렸다.

기분이 좋아졌다······.

“또 공덕을 벌었군.”

‘엉겁결에’ 쌓은 향불 공덕에 비해 죄업을 없앤 공덕은 아주 미미하긴 했지만 말이다······.

차가운 얼굴을 한 도사 셋은 전쟁터를 신속하게 수습하고, 종이 인형으로 되돌아가 거한 종이 도인 소매 속으로 뛰쳐 들어갔다.

이장수는 훼손된 숲속 나무들을 보며 내심 가슴이 아팠다.

대부분 그가 산에 온 후 직접 심은 것들이었다.

됐다. 산문을 지켜내려면 희생이 따르는 건 불가피하다.

도선문이 이번에 버텨낸다면 전투가 끝난 후 다른 봉에 가서 몰래 영목(靈木)과 영근(靈根)을 옮겨와서 문파에서 주는 포상으로 여기면 그만이다······.

픽, 웃고는 외곽 미진으로 달려가 [길을 잃었는가?] 목패를 새로 걸었다.

뒤이어 거한은 얼굴을 두드리며 영수들의 피를 제 몸에 뿌렸다.

옷깃이 찢기고 긴 머리카락도 헝클어졌으며 온몸의 기식도 어지러워져서 마치 중상을 입어서 겉보기는 강하나 정작 실속이 없는 모습이 되었다······.

조금 전에 횡포하게 굴 때의 성깔로 돌아온 그는 도끼를 들쳐메고 공중으로 뛰어올라 파천봉 쪽으로 돌진하면서 계속 크게 소리쳤다.

“아하하하! 요괴 새끼들! 어르신이 또 돌아왔다! 자신 있으면 덤벼라! 아까 그 쓸모없는 놈들은 이 몸의 법보에 맞아 죽었단다! 하하하!”

소경봉.

조금 전 부서진 외곽 미진은 저절로 회복했다.

깊은 곳에 숨겨둔 진기들이 다시 빛을 내뿜으며 심층 진법의 촉진을 받고 서서히 정확한 위치로 돌아왔다.

진정한 연환진은 서로 고리 고리로 맞물리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았고, 표층 대진 아래에 표층 대진을 유지하고 회복하게 해주는 심층 진법이 있었다.

거한 종이 도인이 어느 정도 거닐었을 때, 온 수풀이 이전처럼 회복했고, 밖에서 보면 처음과 다른 점이 하나도 없었다······.

신통력 파급으로 내부 일부 장소에 흔적이 약간 남은 건 어쩔 수 없었다.

잠시 후, 두 인영이 다른 방향에서 소경봉으로 돌진했다. 적을 유인하는 또 다른 종이 도인이었다.

똑같은 연극이 다시 상연되었다.

여자 종이 도인은 일부러 뒤에서 날아오는 법보를 맞고 아래로 떨어졌다.

칼을 들쳐 멘 종이 도인이 황급히 도망가자 뒤에 있던 십여 개 인영이 곧장 아래로 추격했다.

똑같이 진법 언저리에 몇 사람이 위험을 감지하면서 십여 개 인영이 멀리서 멈춰 섰다.

하나 남자 종이 도인의 움직임이 금세 그들의 신경을 빼앗았다.

남자 종이 도인은 자신의 ‘사매’를 수풀로 밀어 넣은 후 뒤돌아 적들을 바라보며 오른손으로 등에 있는 칼자루를 쥐었다.

“이놈들, 내가 검을 뽑게 하지 마라!”

추격병들은 참지 않고 한 사람을 앞장세워 우르르 움직였다.

······

좁고 어두침침한 어느 구석.

이장수는 문득 누군가가 자신의 표정을 본다면 미쳤다고 여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따금 정색하면서 정의감을 드러냈고, 이따금 실실대고 말끝마다 욕을 달았으며 또 이따금 가만히 냉소하며 눈으로 경멸을 가득 드러내기도 했다.

<연기력 평가>

동시에 여러 종이 도인을 다룬 탓이다.

모든 종이 인형의 기질과 표정 등 자잘한 부분을 다 신경 써야 하지 않겠는가······.

종이 도인 셋은 파천봉 외곽에서 돌아가며 적을 유인하면서 소경봉 대진에 결정적인 작용을 발휘했고 적을 끊임없이 진법 속으로 이끌어 외부 정찰을 차단하고 살진과 독진으로 그들을 없애버렸다.

본체는 도선문에 없었지만, 이장수는 현재 진정으로 할 수 있는 바를 다하였다.

만림균 장로와 일전에 습격했던 전적을 합산하지 않고.

독진, 독화살, 종이 인형 자폭, 종이 도인으로 유인하기 등 일련의 작업을 통해 지금까지 적군의 전력 3분의 1이 이장수 손에 파멸되면서 도선문의 압력을 상당히 줄여주었다!

심지어 그대로 승리 저울대의······ 저울추도 바꾼 셈이었다!

흠··· 그러고 보니, 홍황은 아직 저울이라는 물건이 없군.

만림균 장로가 약간 추측해낸 것 외에 다른 선인들은 ‘원군’에 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같은 시각, 이장수는 일부 정신을 사매 곁에 두었다.

천선경 도사 하나가 진선경 붕조와 함께 동쪽으로 날아가 지맥 이동진으로 재해를 피하려는 도선문 제자들을 기습하여 죽이려고 한다는 소식을 태상장로가 제자들을 지키는 외무 장로에게 통지했다. 하나 그곳에 있는 수많은 제자와 문인이 짧은 시간에 어찌 무사히 이동할 수 있겠는가?

그림 같은 경치의 산골짜기는 곧장 인심이 흉흉해졌고, 많은 제자가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다.

천선 하나가 돌진해오는 건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유금현아가 또 나섰다!

“장로님들, 제가 강적을 떼어놓겠습니다!”

“안 된다!”

진선경 외무 장로가 소리쳤다.

“어찌 젊은 제자들을 희생시키면서 구차하게 살아가겠느냐! 전 장로, 우리가 가서 저 흉적과 맞서 싸웁시다!”

“좋습니다!”

또 한 명의 장로가 나서면서 두 사람은 곧장 공중으로 떠올랐다.

바로 이때, 인파 속에서 미심쩍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째서, 지맥 이동진을 통해서는 문파의 천선경 고수를 모셔올 수 없는 건가요?”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를 따라 모여들었다. 말을 꺼낸 이는 바로 남령아였다.

많은 이가 문득 무슨 말인지 이해한 얼굴을 했다. 령아가 한 말은 확실히 괜찮은 생각이었다.

하나 일부 문인과 제자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쓴웃음을 짓는 이들은 마지막으로 지맥 이동진을 사용한 제자들이었다.

사실 원선경 문인 수백 명이 함께 이동해왔어야 했으나 선인이 된 문인들은 마지막 순간에 문파에 남아 선문과 생사를 함께 하기로 했다.

그들은 제자들이 노출되는 걸 막기 위해 지맥 이동진도 친히 망가뜨려 자신들의 퇴로도 끊어버렸다.

몇몇이 작은 목소리로 설명하자 제자들은 모두 감정이 격양되었다!

“이곳에서 저들과 사력을 다해 싸우겠습니다!”

“맞습니다! 스승님은 문에서 침략자들과 맞서 싸우고 있는데 저희만 비겁하게 도망갈 순 없습니다!”

“기껏해야 죽기밖에 더하겠습니까? 죽음이 두려웠다면 천겁을 보내지 못했을 겁니다!”

이장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형세는 그에게 몹시 불리했다.

유금현아가 이곳에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장수’는 사매를 끌고 조용히 무어라 말했고, 이어 두 사람이 유금현아에게 다가갔다.

다음 계획이란 수석 제자라는 유금현아의 신분과 위신을 이용해야 한다.

종잇조각 같은 도구가 아니라 진짜 사람을.

소곤소곤, 사락사락.

‘이장수’와 남령아는 유금현아 앞에 섰다. 령아가 유금현아에게 작은 소리로 쉴 새 없이 무어라 이야기하면, 이장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저었다.

실제로는 ‘이장수’가 몰래 전음하면서 티가 나지 않게 자기 병 하나를 유금현아에게 전달했다.

“장수 사형은 어째서 직접 나서지 않으십니까?”

유금현아는 전음으로 대답했다.

“사형께서 속된 명성을 쌓길 원치 않는다는 건 알지만, 본디 사형에게 돌아가야 할 명성이 아닙니까.”

‘이장수’는 웃고는 또 전음으로 말했다.

“사매가 만약 내가 보는 걸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면 자연히 이런 질문은 하지 않았겠지.”

유금현아는 눈에 띄게 움찔했다.

그녀는 이장수를 응시했다가 늘 온화하게 웃는 동문 사형에게 살포시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를 깨달은 듯했다.

비록 그녀가 대체 무엇을 깨달았는지 이장수도 알 수 없었지만······.

무언갈 깨닫긴 했을 것이다.

이장수는 자신이 점점 유금 사매를 다루는 잔기술을 익혀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에서 많은 제자가 이 장면을 목격했으나 정작 세 사람이 무어라 중얼거리는지는 알지 못했다.

“저 동문은 누구지?”

“남령아 사매의 사형이야. 그 왜, 전에 금오도 연기사이자 용궁 태자와 겨루기를 했던 사람 있잖는가?”

“아아, 랑아봉! 내 어찌 잊을 수가 있지······. 기억력 좀 보게.”

이장수는 전음으로 말했다.

“유금 사매, 일을 질질 끌면 안 돼. 상대가 이곳을 금방 찾아낼 수도 있다고.”

유금현아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검을 등에 멘 채 구름을 몰아 공중으로 오른 후, 대혼란이 일어난 인파들을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여러분, 시간이 없으니 제 말 좀 들어주십시오! 제게 강적을 물리칠 방법이 있습니다. 적은 붕조를 타고서 지맥을 찾아 기습해오는 터라 이곳을 벗어나는 건 불가능해졌습니다!”

아래에 있는 제자들은 고개를 들고 그녀를 가만히 응시했다.

다행히 유금현아는 다른 이들은 절대 꿰뚫어 볼 수 없는 흰 구름을 밟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 병 하나를 꺼내 다시 소리쳤다.

“이건 만림균 장로님께서 하사하신, 천선을 물리칠 수 있는 독단입니다! 저는 사형, 사저 몇 분과 함께 이 독단을 진법에 배치해서 적에게 중상을 입힐 수 있는지 확인할 겁니다! 여러분은 지혈(地穴)로 물러나 지맥 근처에서 기다리십시오. 그리고 장로님들! 사형, 사저들과 제가 실패하면, 그때 목숨을 걸고 싸워서 제자들을 지켜주십시오!”

유금현아의 어조는 억양이 실리고 격양되어 진정한 감정이 흐른다고 할 수 있었다.

이장수가 이어질 작전 계획을 짜놓아서 다행이었다. 더욱이 조금 전 산문의 대전에서 기습해온 천선경 도사들의 실력을 파악한 순간 그는 침략해올 적을 멸할 수 있다고 99.9% 확신했다.

이장수는 유금현아가 한 말에 감동할 뻔했다.

참고로 말하자면, 0.1%의 실패할 확률은 하늘이 가끔 정상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시시각각 하느님께 존경을 보여야만 한다!

몇몇 장로들은 곧장 앞으로 나가 유금현아 대신 독단을 사용하려고 했다.

전 장로가 말했다.

“현아야, 천선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장로님!”

유금현아는 별빛이 터지는 것 같은 눈빛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믿어주십시오!”

“아니······.”

“현아야, 나는 전 장로와 남을 테니 너도 이곳에서 전투를 원조하는 건 어떠냐?”

또 다른 진선경 외무 장로도 말했다.

“그럼 우리 두 사람이 제자들을 호위하고, 지혈에 또 다른 진법을 배치해서 두 번째 매복으로 쓰마.”

유금현아는 조금 고민하더니 이장수의 전음을 듣고는 바로 동의했다.

장로들은 이런저런 지시를 내려 이제 막 땅 아래에서 날아 나온 제자들을 다시 산골짜기 깊은 곳의 지혈로 날아가도록 했다.

오늘 선인이 되지 않은 제자들은 꼴이 말이 아니었다.

한쪽 구석에서 령아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래도 됩니까?”

‘이장수’는 뒷짐을 지고 서서 전음으로 말했다.

“때론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과 일도 있는 법이지.”

령아는 생각에 잠긴 얼굴을 한 채 고개를 들어 사형을 쳐다보며 전음으로 말했다.

“그럼 사형은요?”

“진지하게 임해. 이따가 처리해야 할 일들이 아직 많아.”

이장수는 전음으로 그리 말하고는 뒤로 조금 물러나 지혈 방향의 시선을 피했다.

“이따가 반드시 내 곁을 따르고 함부로 돌아다니지 마.”

“예!”

령아는 손을 내밀어 조심스럽게 이장수의 장포 뒷자락을 꽉 쥐었다.

위험한 상황임에도 그녀의 얼굴에 느닷없이 홍조가 살짝 끼얹어졌다.

이장수는 무뚝뚝하게 전음했다.

“약법삼장.”

“흥.”

령아는 옆으로 걸음을 옮겨서 뒷짐을 지고 사형과 별로 친하지 않은 척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용모가 아름답지만, 경지는 조금 부족한 여제자를 눈여겨보는 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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