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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형이 실력을 숨김 (97)화 (97/593)

많은 제자가 유금현아 앞에 이르러 남아서 함께 적을 막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금현아는 이장수가 당부한 대로 계속 거절하다가 마지막에 ‘소경봉 제자가 토둔술에 능통하다’는 이유를 대며 이장수와 령아만 남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로들이 힘을 합쳐 지혈 입구에 신속히 차폐 진법을 쳤고, 동시에 지혈 내부를 밖에서 정찰하는 것 또한 막았다.

강적이 언제 이곳에 이를지 모른다. 지금쯤 지맥을 따라 수색하느라 시간을 쓰고 있을 터.

‘혹은 상대에게 다른 계략이 있는 건가? 그건 막아야만 해.’

이장수는 속으로 계속 고민하더니 령아를 쳐다보면서 남몰래 유금현아에게 지시했다.

기왕 유금 사매를 도구로 쓰기로 마음먹은 이상, 그녀의 역할을 최대로 발휘해야지.

머리를 좀 굴려서 유금 사매가 이런 사항들을 노출하지 않도록 해야겠다.

진선경 외무 장로 둘은 세 사람을 데리고 산골짜기 옆 비교적 눈에 띄는 완만한 비탈에서 일부러 기식을 드러냈다.

강적을 유인하기 위함이었다.

이때, 한 장로가 고개를 들어 이장수와 령아에게 조심하라고 당부하려고 했으나 말이 입가에 올라왔을 때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너희 둘은 토둔술에 능하니 상황이 여의치 않거든 토둔술로 자신을 보호하라!”

이장수와 령아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가 이내 고개를 드리우고 대답했다.

이윽고 미진과 방어진 두 개가 산비탈에 그럴싸하게 세워졌다.

진선경 장로도 독단을 가지고 와서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확실히 만림균 장로가 정제한 단약이었다. 그들이 단약을 살필 때 영각도 움직였기에 범상치 않은 물건임을 알 수 있었다.

이건 사실 미약 ‘미심취혼산’이었다.

두 장로의 눈빛에 우려와 결연함이 줄고 희망이 드리웠다.

그들이 진법을 배치하는 틈에 이장수는 령아를 데리고 바위 뒤에 숨어서 정신을 산문 속 격전으로 치중했다.

······

거한 종이 도인이 두 번째로 나타났으나 효과는 생각보다 못했다.

함정임을 간파한 피모기 허수아비들이 더는 그를 추격하지 않고, 미친 듯이 파천봉에 공격을 퍼부었다.

이전에 그 ‘도우들’은 소리소문없이 산에서 소멸되었다. 심상치 않다는 건 발가락으로 생각해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대다수 도선문 선인들도 거한이 이토록 엉망이 된 몰골로 돌아왔으니 필시 혈전을 벌였을 것이라 예상했다. 다만, 그 많은 대요괴를 죽일 수 있다니 실로 존경스러웠다.

거한은 계속 욕지거리를 해댔으나 그에게 돌아온 건 신통력, 법보밖에 없어서 한순간 적을 유인할 수가 없었다.

‘됐어.’

너무 많은 적을 유인해서 소경봉에 가는 건, 한두 번은 우연이라지만 그 이상은 설명하기가 곤란해진다.

도선문 주봉의 전세는 이미 안정적으로 기울었고 피모기 허수아비의 기세도 한풀 꺾였다.

도선문은 아직 억눌린 상태긴 했으나 사상자가 증가하는 속도가 아주 더딘 데다 만림균 장로와 망정 상인 등 고수들의 역할도 갈수록 두드러졌다.

그렇다고 형세가 철저히 안정적이지는 않았다.

지금 위에서 금선들이 승부를 가리는 곳이야말로 가장 결정적인 장소였다.

인교 고수가 달려오기 전에 장문이나 기령 장로 중 어느 하나라도 패하면 도선문은 오늘 모든 걸 잃고 말 것이다.

‘금선급 대결을 도울 방법이 있을까?’

이장수는 가슴속에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이내 미간을 찡그린 채 자기반성을 했다.

내가 너무 광범위하게 관여하는 걸까?

지금부터는 명백히 내 현재 능력 범위를 초과한 데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해야 할 일도 아니었다.

설마 겁운 같은 무언가가 내 몸을 휘감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이토록 황당무계한 생각이 솟구칠 수 있지?

이장수는 더 고민하지 않고, 생각을 정리해서 계획대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잠시 후.

령아 곁에 있는 인자 삼호 종이 도인이 붕조의 요기를 감지했다. 상대는 길을 돌아오긴 했으나 그래도 ‘순조롭게’ 쫓아왔다.

이장수는 산문에서 빠르게 질주하는 종이 도인 셋을 통제하여 거한과 도인 남녀가 모기 허수아비 주력 부대에 공격을 펼치도록 했다.

세 ‘사람’은 금세 곤경에 처해 무력하게 공중으로 돌아왔다.

하나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로 대요괴가 밀집해있는 곳을 향해 자폭했다!

이를 지켜보던 도선문 선인들이 큰소리로 ‘안 돼!’하고 외쳤고, 평소 폐관하던 많은 노선인들이 고개를 쳐들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양쪽 모두 이 장면을 어디선가 본 듯했다.

이장수도 퍽 가슴이 아팠다.

어쨌거나 종이 도인 셋은 그가 지금 만들어낼 수 있는 품질이 가장 높고, 종이를 가장 많이 소모하는 종이 도인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들은 기능을 한껏 다 발휘했고 많은 인과를 묻혔다.

특히 그 거한의 화신이 요족에게 시원하게 욕을 퍼부었으니 나중에 요족과 관련된 보스들이 가령 육압 도인 등이 과거의 잘못을 따지고자 든다면 그 또한 처치곤란이다.

지금 자폭해버리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요황이 욕을 입에 달고 사는 거한이나 인교의 스쳐가는 제자이자 소경봉 열성 유망주 이장수를 신경이나 쓰겠는가?

몸에 지닌 추산 방지용 자질구레한 물건을 살펴본 후, 이장수는 더는 이에 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요족은 일찌감치 홍황 대무대에서 퇴장했고, 요황은 당시 무족을 상대하고자 인간족을 대량 학살했으며 인간족 혼백으로 천명을 거스르는 보물을 만들어 인간족과 죽어도 그치지 않는 엄청난 인과를 맺었다.

다행히도 당시 일찍이 요황과 원수를 진 여와 성인과 도문 고수가 나서서 인간족 혈통을 지켜냈다. 고로 인간족으로서 욕을 해대며 이도 저도 아니게 요황을 조롱하는 건 고사하고, 요황의 무덤에서 디스코를 춰도 무례하다고 할 순 없었다. 물론, 정말로 이런 일이 있긴 했었다.

상고 말, 무족대전 제3차 결전이 끝난 후 요족은 원기를 크게 다쳤고, 인간족은 시기를 잘 잡아 요족에게 대승했다.

당시 인간족 맹주는 사람들에게 권위가 땅에 떨어진 요정(妖庭) 앞에서 수십 년간 음악을 연주하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축하하라고 명령했었다.

인간족이 크게 흥했던 건 하늘과 땅에 절을 올리고 삼교 교주를 모셔서 얻어낸 것이 아니었다.

사상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말로 인간족이 크게 흥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 수 있다.

나중에 사람들이 옛일을 이야기할 때, ‘무족과 요족의 천운이 좋지 않았다’고 하는 건 인간족이 ‘천지의 이치를 따라 흥하게 되었다’고 부각시키려는 것뿐이다.

이 전쟁은 지금까지도 이장수에게 퍽 감명이 깊었다.

배후에 있는 검은 마수는 도선문에 소소한 음해를 가하려다 이렇게 많은 진선과 천선의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

위장으로 인과를 피하고, 비장의 패로 인과를 끝내는 것. 두 가지는 모두 중요했다.

앞으로는 감춘다고 감출 수 있는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깊이 감출 수 있다면 깊이 감춰야 한다.

한편, 천자 이호 종이 도인은 파천봉 지하에 잠복해 있었고, 천자 팔호는 사부 제원의 모습이 되어 단방에 조용히 앉아서 몰래 소경봉 대진을 통제했다.

이장수는 인자 삼호 종이 도인에 대부분 정신을 투입하여 사매와 사부님의 곁을 지키며 이따가 습격해올 천선 도사를 죽이고 도선문의 ‘자손’을 보호할 준비를 했다.

파천봉 주변 전세는 이제 이장수가 손을 쓸 필요가 없어졌다.

이번 전쟁이 시작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사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장수는 자신이 한 일이 실로 많았다고 생각했다.

만사 과유불급이다.

현재 도선문 선인들은 조금 전 포위 공격을 받고 자폭해서 ‘혼이 소멸된’, ‘인정이 두텁고 의협심이 넘치는 도우’ 셋에게 대부분 미안한 마음을 가지면서 동시에 감동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물론 이장수는 태상장로가 나중에 종이 도인 셋을 위해 비석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주는 그런 황당한 일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도선문에서 동쪽으로 일만육천 리 떨어진 곳. 하늘을 가로지르고 온 푸른 붕조가 공중에서 한차례 선회했고, 두 개의 선식이 아래에 있는 몇 사람을 고정했다.

이장수는 령아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가까이 와라. 나를 방패막이 삼아도 괜찮아.”

“예?”

령아가 눈을 깜빡거리며 황급히 사형의 뒤로 움츠리자 ‘이장수’는 그녀를 철저히 보호했다.

유금현아와 외무 장로 둘은 경계태세였고, 주변 진법도 언제든지 나설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한껏 궁금증이 인 령아는 발그레해진 볼을 한 채 조용히 물었다.

“사형, 오늘은 어찌······.”

“많이 보고, 말은 적게 하며 부지런히 배우거라.”

‘이장수’의 말에 령아는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다소 긴장한 모습이었다.

위에서 갑자기 무수한 빛이 떨어지자 두 장로가 합심하여 나섰다. 주변 진세는 저절로 가동되어 가까스로 빛을 받아냈다.

이어서 붕조가 두 날개를 모으고 하늘에서 급강하했다. 속도는 더할 나위 없이 빨랐다!

하나 붕조 등에 있는 인영은 공중에 멈춰 섰다.

피모기 신통력에 조종당하는 천선 도사가 ‘독’선문에 갖는 인상이란 극히 깊었다······.

······

붕조가 급강하할 때, 아래 있던 다섯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진선경 장로 둘은 선력을 일으켜 진법을 강화함과 동시에 전력을 다하여 격투할 준비를 했고, 유금현아는 즉시 이장수와 령아의 곁으로 돌진해왔고, 등에 멘 칼집에서 비검이 나와 세 사람을 안정적으로 보호했다.

그리고 령아와 ‘이장수’는······.

발밑에 수면처럼 약간의 파흔이 일렁이더니 두 사람의 발바닥이 반 치 정도 땅 아래로 들어가 언제든지······.

토둔술로 꽁무니를 뺄 준비를 했다.

구우—

백 장 위에 떠 있는 붕조가 돌연 울부짖더니 두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러자 수 장 길이의 날개 아래에서 수십 개의 대못이 날아 나와 아래 진법을 공습했다!

이장수는 즉시 전음으로 유금현아를 진정시켰다.

유금현아는 왼손에 ‘그들의 운명이 달린’ 자기 병을 쥐고, 오른손으로 검결(劍訣)을 만들었다. 대충 묶은 긴 머리카락을 가볍게 나부끼며 고개를 들어 붕조를 응시했다.

그녀는 붕조 뒤에 더 끔찍한 존재가 있음을 감지했다.

아직 선인이 되지 않은 귀도경이었지만, 유금현아의 눈에는 일말의 두려운 기색도 없었다.

과감하게 승부를 걸어야만 한다!

령아는 감탄을 잔뜩 실은 눈빛이었다. 눈으로 ‘유금 사저, 너무 멋있네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이장수’는 침착하게 미소를 지을 뿐, 대꾸하지 않고 공중에 있는 천선에게 시선을 떨어뜨렸다.

이 녀석, 의외로 성가시게 구는군.

대못이 조밀하게 모여 떨어지자 진선 장로 두 사람이 나서서 진법 광벽을 마구 흔들었고, 이내 대못은 몇 번이나 살짝 뚫린 가장자리에 떨어졌다.

어쨌거나 임시로 만든 방호진이 아닌가.

붕조는 아래 진법의 세기를 확인하더니 주둥이로 ‘구우’하고 비웃었다. 고개를 쳐들어 공중에 있는 천선 도사를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숙여 아래로 미친 듯이 돌진했다!

이때, 이장수의 전음이 유금현아의 귀에 파고들었다.

“사매, 준비해.”

유금현아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형세를 관찰하는 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

붕조가 돌진해오자 그녀는 낮게 소리쳤다.

“장로님들 진을 걷어주세요!”

두 진선경 장로가 동시에 선력을 거두자 공중의 진법 광벽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앞에 방해물이 없어지자 붕조는 무지막지하게 달려들었다. 요력이 용솟음치는 가운데, 본디 부상이 있었던 외무 장로 둘을 그대로 공격했다!

장로 둘은 이 순간 실로 손에 땀을 쥐었다······.

유금현아는 여전히 침착했다. 그녀는 진선경 대요괴의 강렬한 위압을 마주하면서 때를 정확히 짚어 자기 병의 나무 마개를 뽑은 후 법력으로 자기 병을 감쌌다.

이런 상황에서 귀도경에 불과한 그녀는 손도 떨지 않았다.

붕조가 진선경 장로들 앞에 돌진했을 때, 유금현아는 이장수가 일전에 전음으로 당부했던 대로 가볍게 소리치면서 손에 있는 자기 병을 그대로 던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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