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 일호는 몸을 이리저리 옮기며 검광을 가까스로 피했으면서 정작 공중을 가르고 날아오는 도장은 신경 쓰지 않았다.
도장이 적을 내려치려고 하자 천선 도사의 입가에 냉소가 걸렸다. 이때 몸 주위로 느닷없이 청록색 물결이 나타났다.
매복이다!
천선 도사는 살짝 당황했으나 미처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몸이 청록색 물결에 휩쓸려버렸다!
도사의 원신은 대진에 묶였고, 선체는 아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곤진: 벽수곤뢰(碧水困牢. 풀어 쓰면 ‘푸른 물결 감옥에 갇히다’라는 의미)]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소형 진기의 영력은 원래 많지 않았다!
백 장을 사이에 두고 법기 진반 두 개가 나뭇가지로 이동했고, 그 위에 흡착한 소형 진기가 곧장 흩어지면서 삽시간에 진세를 형성했다!
진법 세 개가 겹쳤지만, 서로 방해하지 않았다!
단시간 내에 한 번 사용할 수밖에 없고, 한 번 사용할 때마다 세세하게 백 번 이상 조정해야 하는 소형 살진을 이장수는 두 개나 사용했다.
수풀 속에서 섬뜩한 빛이 반짝이는 게 언뜻 보였다.
셀 수 없이 많은 검광이 있는 대로 그 도사를 향해 내리쳤다!
칠흑처럼 어두운 진흙이 뜬금없이 도사의 발아래에 나타났고, 정수리에 있던 초록 구슬이 빛을 크게 터뜨렸다!
천선 도사의 경직된 얼굴에 두려움과 초조함이 드러났다. 그는 온몸의 선력을 가까스로 불러일으켜 주변 공세를 막아낼 생각이었다.
하나 첫 번째 살진으로 도사는 크게 다쳤다.
도사의 선력 장벽과 입고 있는 법의는 호흡을 한 번 할 때까지 버티지 못하고 마구 내리치는 섬뜩한 빛에 찢어 발겨졌다.
한순간 핏빛이 사방으로 튀겼다.
섬뜩한 빛이 폭발한 후, 도사의 온몸에 상흔이 가득했고, 숨이 간들간들한 것이 이미 중상을 입은 모양이었다······.
돌연, 어렴풋한 기운이 도사의 미간에서 솟구쳐 나와 재빨리 온몸으로 퍼졌다!
도사의 두 눈은 순간 차갑고 악독하게 변했다.
곧바로 이 미세한 부분을 포착한 이장수는 속으로 당황했다.
모기 도인?!
십중팔구 그럴 터.
이런 상황은 이전에도 고려해보긴 했었기에 이장수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절차대로 종이 도인 셋을 나무줄기에서 빼내 곤진이 아직 유지된 틈에 중상을 입은 천선 도사에게 달려들게 조종했다.
네가 대라금선이건 홍황의 악한이건 상관없다.
지금 이곳에 신념(神念)이 하나밖에 없다는 건 이 도사를 죽이고 나면 당신이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대도 일을 성사시킬 수 없다는 소리겠지.
한편, 지하 깊은 곳.
깊은 잠에 빠진 남령아의 머리에서 주채(珠釵. 쪽을 진 머리 뒤에 꽂는 옥으로 된 장신구)가 빛을 가물거렸다. 마치 그 안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오려는 듯했다.
주채는 두 달 전, 이장수가 직접 정제한 간단한 법보로 령아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선물을 받은 령아는 몹시 마음에 들어 하며 잠을 잘 때도 이를 빼지 않았다.
수풀 안, 진법 세 개가 겹쳐진 곳. 천선 도사의 기운이 점점 더 선명해졌고 온몸에 솟구친 사납고 위압적인 피비린내를 스멀스멀 발산했다!
그러나······.
타악!
피로 물든 손바닥이 옆에서 엄습해왔다. 손바닥 한가운데 핏빛 주문 문양에서 빛이 터져 나와 그대로 도사의 정수리를 스쳐 방독 구슬을 쳐냈다!
방독 구슬은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구슬의 비호가 사라지자 아래 검은 물이 곧장 위력을 발휘해 눈 깜짝할 사이에 도사의 두 다리와 종아리를 녹였다.
같은 시각 멀리 서우하주, 침상 위에 비스듬히 누워있던 문정 도인이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이장수가 예상한 대로 그녀는 지금 너무 멀리 있는 터라 신념 한줄기만 내릴 뿐이었다.
하나 그렇다고 해도 그녀는······.
졌어?
문정 도인이 신념을 거두기도 전에 얼굴과 몸집이 각기 다른 세 인영이 도사 주위로 달려들어 삼각형 모양으로 섰다.
그들의 행동은 획일적이었다. 오른손은 검지와 중지를 수직으로 세워 왼손 팔목에 괴고 왼손바닥을 앞으로 밀었다!
세 손바닥의 정중앙에는 화염과 같은 주문 문양이 있었는데, 세 개의 주문 문양은 동시에 불에 타올랐다.
삼매진화의 화력이 완전히 가동되어 도사의 몸을 화염에 집어삼켰다. 이미 중상을 입었던 천선경 도사는 순식간에 타서 사람의 형체를 잃어버렸다!
이장수는 돌연 움찔했다.
천선 도사의 정면에 중년 도사의 모습을 한 종이 도인이 입을 열고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훗! 네가 어느 쪽 요괴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늘 본좌에게 죽어줘야겠다!”
종이 도인 셋은 온몸의 선력을 모조리 삼매진화로 만들어 도사에게 미친 듯이 내보냈다.
모기 도인의 신념이 내려온 뒤로 이장수는 모든 절차를 생략했다. 삼매진화는 기어코 천선경 도사의 원신을 녹이고 선체를 재로 만들어 그 속에 있는 혈기를 순식간에 증발시켰다.
마침내 이장수의 오금을 저리게 했던 기운이 점차 사라졌다.
어둠 속에서 이장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나 방심하지 않고 곧장 재를 날리며 제도하는 후속 작업을 시작했다.
조금 전에 그가 했던 말은 그냥 아무렇게나 지껄인 게 아니었다.
‘네가 어느 쪽 요괴인지는 모르나’라는 건 모기 도인을 암시하며 나는 네 내력을 모르겠다는 소리였고, 일부러 ‘본좌’라는 단어를 써서 일부러 안개를 피운 것이었다.
이장수조차도 본인의 말이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나 어쨌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수풀에서 피어나오는 재를 쳐다보며 이장수는 약간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가 도겁한 지 고작 몇 년이 되었더라?
허수아비와 종이 인형을 통해 홍황의 흉수 모기 도인과 간접적으로 인사를 했다니.
홍황은 과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무시무시하군······.
땅 밑 깊은 곳 벽옥 비녀도 가볍게 떨리더니 령아의 새까만 머리카락 사이에 아주 안정적으로 꽂혔다.
······
서우하주 영산 부근의 어느 선부.
졌어······.
내가 졌단 말인가?!
내 신념을 친히 내렸거늘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타서 재가 되어버렸단 말인가?!
본좌? 누구냐?
침상에 비스듬히 누워있던 문정 도인은 별안간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다소 초조한 안색으로 손을 들어 휘휘 저었다.
“꺼지거라!”
옆에 꿇어 앉아있던 시녀들은 감히 숨도 못 쉬고 허둥지둥 일어나서 고개를 떨군 채로 물러났다.
문정 도인은 면사 치마를 움직여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마음속에서 층층이 파도가 일었다.
저자는 누구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도선문에서 벌어진 선인들의 난전을 즐기고 있었다.
문정 도인은 자기가 불러모은 허수아비들의 기력이 달리는 걸 눈치채고 불만을 품었었다.
원래 안정적으로 도선문을 억눌러야 했을 허수아비들이 뜬금없이 죽어버렸다. 심지어 이번 계략은 도선문에 사상자만 남겼을 뿐, 그들의 근본을 흔들지 못했다.
불만스럽긴 해도 개의치는 않았다.
어쨌거나 별로 공을 들이지 않았던 얕은 계략이었으니 말이다.
정면 전쟁이 패할 기세가 되면서 문정 도인도 계속 지켜볼 마음이 사라졌다.
그녀는 문득 도선문 제자를 죽이라고 보낸 천선의 상황이 궁금해졌다. 지금쯤이면 제자들을 다 죽이고도 남았으리라.
하여 문정 도인은 정신을 천선 도사에게로 옮겼다.
시선을 막 옮긴 그녀는 곤진에 갇힌 채 살진에 공격당하는 천선 도사를 발견했다······.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처참했다!
이번에 구한 허수아비들은 어쩜 하나같이 이리 못난 놈들뿐일까!
홧김에 문정 도인은 도사를 조종해서 직접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결과적으로 그녀가 위력을 채 발휘하기도 전에 허수아비에게 주입한 정신은 ‘진선경’ 도인 셋에 의해 불에 타고 재가 되어버렸다······.
그나저나 저건 진짜 생명이 아닌 것 같은데, 혹여 어떤 신통력으로 만들어진 것인가?
배후에 어쩌면 고수가 있을지도 모른다!
문정 도인의 눈앞에 어느샌가 화염 문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는 신념이 가져온 화면으로 한순간 눌러지지 않았다.
대체 누구냔 말인가?
‘설마 이 몸처럼 허수아비를 이용해 인교에 계략을 꾸미려는 자인가?’
문정 도인은 콧방귀를 뀌고는 억지로 화면을 지우고, 입가에 다시금 매혹적인 미소를 드리웠다.
도선문은 어찌 갈수록 재미있어지는구나······.
“엥? 그대였소?”
별안간 문정 도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의 마음속에 한 남자의 목소리가 기이하게 울려 퍼졌다.
그 사람의 말이 이어졌다.
“누가 그대의 천기를 감춘 것이오? 어쩐지, 추산하려고 해도 누군지 모르겠더라니.”
누구야?!
누가 말하는 거야!
문정 도인은 몸을 흠칫 떨었다. 두 손으로 도장을 잡지도 못해서 이내 온몸에 피비린내를 불러일으켜 목소리를 그대로 꺼버렸다.
하나 어떻게 된 일인지 추산하기도 전에 눈앞이 약간 아찔해지더니 극도로 현묘한 기운이 그녀의 주위를 휘감았다.
순간, 문정 도인은 불현듯 기나긴 세월 동안 나타난 적 없던 감정을 느꼈다.
두려움.
원신 깊은 곳에서 비롯된 가장 순수한 두려움이었다!
그녀는 어렴풋하게 안개를 본 것 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폭포가 눈앞에 나타나더니 그녀의 몸을 가리기 시작했다.
문정 도인은 이것이 대도의 이상 현상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폭포는 그녀를 위해 천기를 가린 성인의 술법이었다.
그리고 이 안개는······.
문정 도인은 완전히 꿰뚫어 볼 수가 없었다.
폭포 너머 안개 사이로 폭포에 왜곡된 윤곽이 천천히 걸어왔다.
그가 왼손바닥을 들고 있는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손바닥 가운데에는 담담한 흑백 기식 두 줄기가 있었다. 두 기식은 서로 쫓고 쫓기며 끝도 없이 현묘하고 지극한 도리를 품었다.
“후후.”
문정 도인은 또 그 목소리를 들었다. 상대는 줄곧 웃음기를 머금고 있었다.
“사부님의 태극도에 있는 위력을 조금 빌리고도 그대가 누구인지 추산해내지 못한 걸 보니 성인 문하에 있는 듯하구려.”
폭포를 사이에 두고 그 사람의 몸은 끊임없이 왜곡되고 흔들렸다.
문정 도인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지금 그녀는 어떤 기운에 붙들려 몽환의 경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의 온화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태청 도덕천존의 대제자 현도라고 하오. 도우는 까닭 없이 우리 인교 도승을 음해하려 했소. 마음이 음험하고 수단이 비열했지만, 이번에는 배후에 있는 그 성인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 그냥 넘어가겠소. 훗날 또 우리 인교를 건드린다면, 그게 변변치 않은 도선문이라 할지라도······ 배후에 있는 사숙 또한 그대를 보호하지 못할 것이야.”
폭포 너머에 있는 인영은 픽 웃더니 주변 안개와 함께 서서히 사라졌다.
문정 도인은 눈앞이 어지러웠다. 순간 선부의 내부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두 손을 내려다보며 자신의 대도를 살폈다. 그녀의 대도는 멈추지 못하고 마구 떨렸다······.
······
도선문 북서쪽으로 만 리 떨어진 곳.
구름 위에 서서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은 현도가 천천히 두 눈을 떴다.
“대사형, 어떻게 됐습니까?”
옆에 있던 도사가 황급히 물었다.
“과연 뒤에서 누가 일을 꾸몄더군요. 조금 전에 기운을 발견해서 쫓아가 봤지요. 하나 성인이 그자의 천기를 감춘 탓에 저도 태극도의 위엄을 빌려 가까스로 겁주는 것밖에는 못 했습니다······.”
구름 위, 현도가 간단히 설명하자 옆에 있던 도사가 인상을 쓴 채 한숨을 내쉬었다.
대충 단장하고 편안한 느낌을 자아내는 현도에 비해 이 도사는 입고 있는 도포부터 도고(道箍. 이마에 씌우는 특수한 테), 신발, 손에 들고 있는 불자까지 퍽 신경 써서 속세를 벗어난 고수의 풍모를 물씬 풍겼다.
그러나 이 도사는 현도에게 더할 나위 없이 공손했고 말할 때는 입가에 미소를 드리웠으며 몸도 약간 앞으로 숙였다.
“대사형,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도형은 일단 도선문으로 가서 화를 평정하세요!”
현도는 웃으며 덧붙였다.
“조금만 더 늦었다간 그들이 외적을 평정해서 개산조사인 도형이 할 일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도선문 일을 잘 마무리 짓거든 금오도 연기사들의 시신을 가지고 이곳으로 돌아오는 걸 잊지 마세요. 이따가 금오도로 한 번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