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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형이 실력을 숨김 (109)화 (109/593)

수풀 사이, 차단 진법 아래.

황적색 불더미가 하늘 높이 치솟고, 화염 속 대요괴 시신 여섯이 빠르게 용해되었다.

화염이 십 장 넘게 높이 솟구치면서 더운 열기가 흘러나오고 영기가 뿜어져 나와······ 이장수의 얼빠진 눈을 비췄다.

그는 두 손을 들고, 진화의 온도를 느끼는 듯했다.

반면, 마음은 차갑디차가웠다.

종이 인형은 노인, 청년, 소년으로 각각 변해 불더미 옆에 삼각형 모양으로 서서 경문을 읊조렸다. 읊는 건 여전히 왕생주, 도인경, 소재기복주였고, 손에 있는 목탁과 경탁을 두드리고 혼을 잠재우는 구리방울을 흔들었다.

이곳은 안수성 서북에서 칠백 리 떨어진 황폐한 골짜기 깊은 곳이었다.

대요괴 여섯을 막고 ‘혈전’을 벌이며 독단을 낭비했고, 이곳에서 그들을 독살했다.

이장수는 안수성 땅 밑에 숨어있는 종이 도인이 흩뜨린 선식으로 저쪽에서 발생한 장면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곰 촌락 사람이 무인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이장수를 상당히 골치 아프게 했다.

그렇다고 이 이을 해결할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한데 느닷없이 용족 일행이 나타나 싸울 기세를 보였다. 특히 오을이 이곳에 있다······.

이장수는 진심으로 아무것도 돌아보지 않고 인과들을 모조리 없애버리고 싶어졌다.

충동은 마장이니 함부로 흥분하면 안 된다.

속으로 <온자경>을 읊으며 이장수는 빠르게 대책을 고민했다.

지금으로선 제일 까다로운 문제는 오을이 나를 알아보고 남해 해신과 도선문 열성 유망주 이장수를 함께 연상하는 것이다.

최고로 간단한 방법은 전부 죽여버리면 그만이다. 하나 이는 가장 난폭하고 신중하지 않으며 인과를 제일 많이 묻히는 방법인 데다 지나치게 무식한 방법이기도 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일수록 조급해하면 안 되고, 필시 완벽한 대응책을 생각해내야 한다.

가만히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는 건 애초에 이장수의 성격과 맞지 않고, 거칠게 이기는 건 주구 사숙의 방식이라 그녀도 대개 ‘정의’라는 후광의 비호가 있었다.

실력이 부족하면서 일부러 꾀를 부리는 건 칼산과 불바다에서 강철선으로 만든 줄 위를 걷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장수는 늘 ‘안정 속에서 장생을 취하고, 안정 속에서 부귀해지자’라는 원칙을 고수해왔고, 이 원칙이 어느덧 그의 사상을 단단히 옭아맨 터라 어떤 위험도 무릅쓰고 싶지 않았다.

지금의 문제는 이번 위험이 그가 무릅쓴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가만히 서 있었는데, 위험이 불고리처럼 한층 한층 그에게 올가미를 씌운 것이다.

사실 이장수는 문제점을 즉시 발견해서 다행이라고 여기긴 했다.

용궁 일행은 해신 축제에 이끌려왔을 테니 이장수가 이곳에 왔느냐는 무관할 것이다.

만일 이장수가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죽어도 어째서 죽었는지 모르겠지!

“사숙의 진법을 손볼 때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길 것처럼 마음이 흔들리더니 맞아떨어졌군.”

마음속에 대책이 생긴 이장수는 정신 세 가닥을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본체는 단방에서 날아 나와, 호숫가로 갔고. 이곳의 신자 종이 도인은 계속 시신을 처리했다. 그리고 안수성 밑에 숨어있는 천자 종이 도인은 언제든 미약으로 용궁 일행을 쓰러뜨릴 준비를 했다.

안수성은 아직 철저한 전쟁이 벌어지지 않았지만, 양쪽은 이미 일촉즉발의 형세였다.

용궁 일행이 처음 등장했을 때, 촌장이 겁먹은 표정을 드러낸 거로 보아 용궁 일행에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이때, 촌장은 열 명 남짓한 이무기 병사가 아래로 달려들어 해신상을 망가뜨리려는 걸 보았다.

속세 인간들에게 돈줄을 끊어버리는 건 부모를 살해하는 것과 같은 감정이었다.

촌장은 순간 마음이 다급해져서 크게 소리쳤다.

“저들을 다 잡아라!”

옆에 있던 부족민 이십여 명이 입을 크게 벌렸고, 입에서 뿜어져 나온 흙색 빛이 팔, 허벅지, 흉신 머리를 이루어 저마다 신통력을 보이며 이무기 병사들의 혼을 쏙 빼놓았다······.

이무기 병사 몇몇은 바닥에 쓰러졌고, 일고여덟 명은 격퇴됐고 저마다 부상을 입었다.

거한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어 남아 있는 이무기 병사들을 누르고 손발을 써서 치고받고 싸우며 순식간에 엄청난 충돌이 벌어졌다.

무족은 용을 사로잡고 봉황을 붙잡을 힘이 있었다. 이는 타고난 신통력이었다.

이곳은 여전히 수많은 범인이 있었고, 온 산이 해신교 신도들로 가득했다. 신사가 신의 위력을 한껏 발산하는 걸 보고 모두 사기가 진작되었다.

한순간 상황이 아주 어수선해졌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눈을 가리고 함부로 보지 말라고 일렀다······.

하나 다행히 대규모 혼란이 벌어지지는 않았고, 발이 밟히는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구름 위에 있는 오모도 곰 촌락 무인의 포악함에 경악하여 어느새 오을의 뒤로 물러났다.

다행히 촌장은 일말의 이성이 남아 있는 터라 다시 소리쳤다.

“죽이지는 마라!”

그러면서 산 채로 찢어 발겨질 뻔한 이무기 병사들이 목숨을 부지했다.

수풀 안, 이장수는 계속 불을 쬈다. 아니, 계속 여섯 대요괴 시신을 처리했다.

경문을 어느 정도 읊고 나니 불씨도 약해졌다. 옆에 거한이 된 종이 인형이 쇄납을 꺼내 고개를 쳐들고 비애에 찬 곡조를 연주했다. 또 여인으로 변한 종이 인형은 시사를 읊으며 밖을 떠도는 외로운 넋을 위로하는 황색 종이를 태웠다······.

심혈을 기울여 설계한 장례 서비스를 보며 이장수는 헛웃음을 쳤다.

이 정도 작은 인과를 매듭짓는다고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제 더할 나위 없이 거대한 인과를 불러왔기 때문에 잘 처리하지 못하면 죽어서 육신과 원신이 다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하나 그는 아직 막다른 길까지 몰리진 않았다.

대도 오십, 천연(天衍) 사십구, 일말의 생존 기회가 남았기에 계속 안정을 추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세를 안정시킬 가능성도 생겼다.

두 눈을 살짝 가늘게 뜨고 손을 들어 앞에 있는 뼛가루 더미를 불어 흩뜨리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이런 편안함 때문에 그도 발상이 더 많이 생겼다.

뒷짐을 지고 마음을 여러 개로 나누었다.

선식으로 저쪽 상황을 주시해보니 이무기 병사들이 공중에서 아래로 돌진하려는 찰나 오을의 ‘멈춰라!’ 하는 소리에 멈춰 섰다.

곰 촌락 촌장도 크게 외쳤다.

“저들을 놓아줘라!”

곰 촌락 거한들은 그제야 포기했고, 붙잡혀서 있던 흠씬 두들겨 맞았던 이무기 병사들은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채 구름 위로 돌아왔다.

오을은 무언가를 발견하기라도 한 듯 구름을 몰아 신상 정면에 이르러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청수한 얼굴에 금세 충격받은 표정이 드러났다.

이장수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그럼 먼저 나서는 게 좋겠어.”

이장수는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눈에도 단호함만 남기고 마음을 여러 개로 나눠 세 가지 상황을 동시에 움직였다!

황폐한 골짜기 깊은 곳의 수풀, 종이 도인은 땅 아래로 파고 들어가 안수성 방향으로 길을 재촉했고, 안수성 밑에 있는 종이 도인은 스멀스멀 신상 아래에 이르러 언제든지 선력을 끓어오르게 할 준비를 마쳤다.

같은 시각, 도선문 소경봉 호숫가에 있는 초가집.

이장수는 사매 남령아와 수행하다가 저도 모르게 잠이 든 사부님을 불러 깨웠다. 그런 다음 초가집에 진법을 치고 도포 아랫자락을 말아 올려 사부님 앞에 꿇어앉아 령아와 제원 도사를 당혹스럽게 했다.

“사형, 왜 그래요?”

령아는 순간 안절부절못했다.

그녀는 사형이 이토록 엄숙한 표정을 짓는 건 처음 봤다. 얼마 전 문파에 재난이 일어났을 때도 사형은 줄곧 여유롭고 담담했었다.

제원 도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장수야, 할 말이 있거든 말하려무나.”

“사부님, 불초한 제자를 용서하세요.”

이장수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이어갔다.

“오늘 어마어마한 인과를 불러 나중에 자칫 사부님과 령아도 인과에 휩쓸릴지도 모릅니다. 이 일이 들통나면 고수가 저를 사지로 몰고 갈 수도 있으니 사부님, 령아······ 둘 다 저를 모르는 체하세요.”

제원이 다급하게 물었다.

“이리 놀라게 하지 말고.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무슨 일이냐?”

“그래요. 사형, 무슨 일인데요?”

령아도 황급히 다가와 이장수 옆에 꿇어앉고 그의 팔을 끌었다. 어느새 눈가도 벌겠다.

“그런 말 마세요. 다 같이 멀리 도망가면 안 됩니까?”

“이번에는 숨을 곳이 없다.”

이장수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부님, 사매. 시간이 많이 없으니 약속해주세요.”

제원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미간에는 온화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제자가 화를 당하는데, 사부가 어찌 모르는 체할 수가 있겠어?”

이장수는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만일 이번 일을 잘못 처리했다간 대라나 대교를 끌어올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무수한 인, 무수한 악과(惡果)를 끌어올 수도 있고요.”

“난 보잘것없는 탁선인데 무서울 게 뭐가 있겠어?”

“사부님!”

이장수는 마음이 따스해졌고 눈에도 빛이 반짝였다.

“아이고, 장수야!”

제원은 손을 들어 이장수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한순간 초가집의 공기도 훈훈해졌다.

반면, 옆에 있던 령아는 눈만 깜빡였다.

만일? 어쩌면?

령아가 나직이 물었다.

“사형, 이번 일은······ 아직 시작하지 않은 건가요?”

이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려고 준비하는 중이다.”

“콜록. 너 이 녀석!”

제원 도사는 사레에 걸렸다가 이내 불자를 들고 때리려고 했다.

“아직 하지도 않았으면서! 부르긴 왜 부른 거냐!”

이장수는 몸을 뒤로 쌩 피하고는 빙그레 웃었다.

“안전을 위해 이 일을 하기 전에 미리 사부님과 사매에게 알리러 온 겁니다. 나중에 정말로 일이 터지면,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사부님은 저를 문하에서 쫓아내고 관계를 끊어버리세요. 사부님, 그러면 약속한 것으로 알고 먼저 가보겠습니다. 이제부터는 정신을 나누질 못할 겁니다.”

말을 마치고 이장수는 뒤돌아 단방으로 날아가려고 했다.

제원 도사는 무어라 말하려다가 끝내 그만두었고, 령아가 황급히 초가집 밖으로 쫓아 나왔다.

“사형! 이번에는 얼마나 확신하는데요?!”

이장수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전음으로 말했다.

“크지 않다.”

“구체적으로 얼만데요!”

“대략, 8할 정도?”

이장수는 천천히 한숨을 내쉬더니 이미 수풀로 사라져버렸다.

령아도 수려한 미간을 찌푸렸다. 8할이라면 그리 큰 편은 아니었다.

“응?”

령아는 살짝 눈을 깜빡였다.

제 생각이 어딘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았지만, 한순간 문제가 어딘지 짚어내질 못했다.

······

단방으로 돌아온 이장수는 곳곳에 미진, 곤진, 차폐진, 경보진을 치고, 측감석을 걸었다.

단로에 불을 붙이고, 종이 인형이 단로를 지키도록 배치했다. 마음속에 안수성의 상황이 떠올랐다.

저쪽은 인간과 용의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이었다.

이때 해신상을 완전히 알아본 오을은 다소 주저하는 표정이었고, 눈에도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연둔술(烟遁術)을 펼쳐 땅 아래로 파고 들어간 이장수는 바위 통로를 지나 나무문을 열고 지하 밀실 책상 뒤에 있는 동그란 의자에 앉았다.

자, 결판을 내보자!

한순간 결심을 내리고 나니 생각이 확 트였다. 이장수는 이제부터 일어날 수 있는 각종 상황을 온 정신을 다 하여 분석했다.

지금은 남해 해신의 신분이 곧 폭로될 위기 상태였다.

오을을 죽일 수는 없다. 죽이는 순간 용족이 미친 듯이 보복하려 들 테니······.

이 외에도 남해 해신교 신사들은 무인이었고, 서방교 고수도 이미 남해 해신교에 맞서려고 했다.

이장수는 눈앞에 흔들리는 밧줄들이 나타난 듯했다. 이 밧줄 중 하나만 안전해서 장생로를 향해 계속 붙잡고 기어오를 수 있고, 다른 밧줄은 힘껏 당기면 칼과 극독이 된다······.

밧줄들은 흔들흔들했지만, 이장수의 마음은 편안한지라 이내 입가로 살짝 미소를 드러냈다.

이미 그중 하나를 붙잡은 듯했다.

“이전에 했던 구상을 못 쓰게 되었다면, 무너뜨리고 다시 새로운 구상으로 바꾸면 돼.”

이장수는 속으로 먼저 감응하여 향불을 따르면서 금세 정신 한줄기를 남해지빈의 안수성 밖, 대량의 향불 공덕을 모으는 신상에 떨어뜨렸다.

한편, 안수성 밖.

지금까지 신상의 얼굴을 바라본 오을은 조금 전에야 ‘장수 형님’이라는 걸 알아보고 내심 충격에 휩싸였다. 속으로 온갖 생각이 무수히도 떠올랐다.

장수 형님은 어째서 남해 해신이 되었지?

이건······ 인교의 계략인가?

하나 어째서 장수 형님처럼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제자를?

아무리 장수 형님이 우수하고 온화하고 학문이 깊다지만, 아무래도······.

별안간, 오을은 또 한 번 당황했다.

오을이 느끼기에 이 신상은 살아난 것처럼 약간의 영성(靈性)이 생겨난 것이다.

아래에 이미 논의를 끝낸 곰 촌락의 거한들은 구름 위를 향해 눈을 부라리며 해신의 명예를 지키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오모는 이 순간에도 모질게 마음먹고 이무기 병사에게 남해 해신교를 제대로 혼쭐내주라고 했다.

그런데 돌연 변고가 발생했다!

지면에서 전해오는 진동 소리에 이 장 높이의 석상이 흔들리더니 서서히 공중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 위로 선광이 피어오르고 신상의 이마에서 빛이 번쩍였다!

신상에서 담담하게 경전을 읊는 소리가 전해져왔다. 물론 이 이상한 현상은 자연히 땅 밑에 있는 종이 도인이 수작을 부리는 중이었다.

삽시간에 공중에 있던 용궁 사람들은 서로 멀뚱히 얼굴만 쳐다봤다.

온 산천에 가득한 신도들은 일제히 머리를 조아렸다. 많게는 팔십 노인부터 십 대 소녀까지 모두 더할 나위 없이 흥분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오을이 막 입을 열려는 찰나 그의 귓가로 전음이 흘러들어왔다.

“오을 형님, 용족의 현재 곤경에 관해 얼마나 아십니까?”

오을은 구름 위에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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