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대회가 가까워지자 이장수는 소경봉에 앉아서도 문파에 보이지 않는 기류가 들끓고 있다는 걸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갈 장로, 웅심단 여분이 좀 있소?”
“주오가 세 알을 주었네. 써보니 확실히 괜찮더이다. 마치 그해 설렘을 찾은 듯했다니깐······.”
“실로 좋은 물건이더군. 전에 영단이나 묘약을 이것저것 시도해봤지만, 이건 메말라버린 우리 도심에 한창때의 파란을 불러오더구먼.”
“그러니 말이야. 안에 든 약재는 필시 보기 드문 것일 걸세. 내 한참 연구해봤지만 여즉 무엇인지 알아내지를 못했거든.”
“아무래도 이 단약을 정제해낸 제자가 실로 인재로군.”
“이런 제자는 필시 문에 남겨서 중점적으로 키워야 할 텐데······.”
구름 위 천선경 장로들의 대화가 이장수의 풍어주에 우연히 포착되었다.
짚어낼 수 없는 그 약재란 아마 ‘부정한 경로’로 얻은 정석을 말하는 것이겠지······.
이장수가 단약 처방전을 보내면, 이 일과 그리 크게 얽히지 않아야 했다. 하나 웅심단은 단순히 노년 연기사에게 삶의 열정만 불러오는 게 아니다. 예컨대 누군가가 이를 가지고 나쁜 일에 쓴다면 그 또한 일말의 인과를 감당해야 했다.
이 단약은 독용주와 달랐다. 독용주는 육신에 원기와 양기를 보충해주고, 육신의 반응이 행동에 영향을 주지 않지만, 웅심단은 그대로 심경에 작용한다.
현재로선 주오 사백을 통해 단약의 발전 추세를 통제하는 게 제일 중요했다.
웅심단의 정제법은 그리 복잡하지 않고, 정제하는 문턱도 높은 편이 아니었다. 어렵다면 그 ‘정석’이 어려웠다.
이렇듯 이장수는 경지 방면에 관한 의심도 불러오지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이 제자가 퍽 약삭빨라서 진법과 단약 두 가지 모두 능통하다고 감탄하는 게 다일 것이다······.
선문 대회까지는 아직 보름이 남았고 제자 이장수도 얼마 후 있을 동문과 겨루기를 준비해야 했다. 준비하는 게 의미가 없긴 해도 그래야 적절했으니.
그런데 지금······.
“대회는 무슨 대회? 문파 대회가 네게 주는 이득이 많겠느냐, 아니면 웅심단을 정제했을 때 얻는 이득이 많겠느냐? 장수야, 단약을 내다 팔러 다니라는 게 아니라 우리 도선문의 화합과 안정을 위해 엄청난 공헌을 하는 것이다! 정고 맞지? 내가 108쌍을 구해올 테니 딱 기다리고 있거라!”
주오는 이 말을 남기고 정고의 행방을 수색하고자 부리나케 선문을 빠져나가 방진으로 갔다.
이장수는 웅심단이 소경봉에만 전해지는 비밀로 정고나 정석에 관한 일을 외부로 퍼뜨리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고, 주오도 그리하겠다고 약속했다. 애초에 대도 맹세가 있기에 주오도 가없이 긴 여생을 두고 농담을 하지 않았다.
주오는 밖으로 나간 지 6일 만에 정말로 정고 세 쌍을 구해와 이장수에게 슬쩍 넘겼다.
이장수도 대충대충 하지 않았다. 주오가 보는 앞에서 정고에게 고령독초를 먹여 정석으로 만들고, 웅심단을 정제하는데 필요한 비밀 약수를 제조한 다음 단방에 봉하여 보관했다.
하나 다음 웅심단은 최소 49일 후에나 정제해낼 수 있다. 기왕 새 정석이 생겼으니 이장수도 남은 재고품······ 3분의 2를 꺼내고, 불시의 필요에 대비하여 일부는 남겨두었다.
“사백,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장수는 망설였다가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웅심단은 앞으로 사백께서 많이 신경 써 주세요. 단약 한 알마다 어디로 유통되는지 필시 기록을 해두시고, 장로께서 가지고 가셨거나 선물로 줄 때도 반드시 행방을 물으셔야 합니다. 이 물건은 도심을 자극하는 용도이나 나쁜 용도로도 쓸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저 또한 사백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장로들께 얻은 이득을 사백과 반반 나누겠습니다. 어떠십니까?”
“이리 조심하면서 무엇을 겁내는지를 모르겠구나! 반반으로 나눌 것 없다. 네게 너무 불공평하지 않겠느냐.”
이장수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
“저는 웅심단을 제공하고, 사백께서는 각 장로께 가져가지요. 두 가지 과정은 똑같이 중요합니다. 웅심단 자본 또한 정고 몇 쌍에 있는데, 사백께서 연단에 필요한 보재를 제공하신 게 아닙니까. 사백이 이전에 말씀하셨던 것처럼 저희는 단약을 내다 파는 것이 아니라 인정을 베푸는 겁니다. 하니 장로님들께서 하사하신 게 많건 적건 반반으로 나누는 게 합리적입니다. 사양하지 마십시오.”
“하나······.”
주오는 잠시 고민했다가 진심이 담긴 이장수의 두 눈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장수는 몇 마디 당부를 덧붙이며 ‘단약을 바칠’ 때, 단약을 정제하는 이에 관한 정보를 많이 언급하지 말라면서 단약 처방전을 넘겼다.
주오는 사질에게 이런 식으로 돌봄을 받으니 마음이 썩 편치 않았다.
그렇긴 해도······.
‘웅심단 도선문 총 구매 대행’이라는 건 퍽 감동적이었다. 그리하여 웅심단 한 더미가 주오의 손에서 ‘살포되어’ 도려가 있는 장로들의 손에 흘러 들어갔다.
이는 약간의 이상 현상을 불러왔다.
며칠 후, 문파 대회가 열리고 문파 천선 장로와 진선 외무 장로들은 대개 구름 위에 모여 있었다.
백발이 성성하고 혈색이 좋으면서 범속을 초월한 느낌을 풍겨야 할 무수한 도인들이 오늘만큼은 청년 혹은 중년 얼굴의 남선인과 화용월태에 아리따운 여선인이 되어 나타난 것이 아니겠는가.
제자들이 이런 식으로 식견을 넓히는 사이, 잠시 후 나타난 도선문 장문은 자신이 산문을 잘못 찾아온 줄로만 알았다.
······
대회 정식 개막 반나절 전.
제원 도사는 마침내 초가집에서 걸어 나와 곧 ‘출정’할 두 제자를 바라보며 눈에 감개가 솟구쳤다.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두 제자를 곧 ‘파천봉 대회’에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속에 적잖게 파도가 일었다.
하나 제원은 자세히 쳐다보았다가 어딘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대제자 이장수는 평소처럼 평범한 장포를 입고 기질 또한 별로 특이한 점 없이 엉겁결에 등한시될 수도 있는 모습이었으나 막내 령아는 달랐다. 누르스름한 긴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양식은 평범하나 꽤 신경 써서 만든 듯, 한눈에 봐도 평범한 옷감은 아니었다. 그 위로 선광이 흐르는 거로 보아 선보인 듯했다. 치마뿐만이 아니라 머리 위에 단 주채, 팔에 찬 팔찌, 손에 쥔 단검, 심지어 귓불에 있는 독특한 모양의 귀걸이까지 죄다 선광을 머금은 선보였다.
사매가 좋은 서열을 차지할 수 있도록 이장수가 선보로 무장시킨 것이었고, 문파 장로들이 하사하여 주오가 가져온 것이었다. 널리 떠벌리는 건 좋지 않지만, 장로들도 어째서 소경봉에 이리 보물이 많은지 의아해하지 않았다.
“장수야.”
제원은 이장수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
“무슨 양심을 속이는 일을 했느냐?”
이장수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이내 자루 하나를 두 손으로 사부님께 바쳤다.
“사부님, 호신용으로 쓰십시오. 모두 장로님들이 하사하신 보물이니 안심하시고요.”
이장수는 웅심단에 관한 일을 사부님에게 보고했고 제원 도사는 이를 듣고 한참을 황당해하였다.
“당당한 인교 도승에 어째서 도려 기풍이 이리도······. 어휴, 됐다. 장수야, 단약을 바치는 건 바치는 거고 장로님들의 하사품을 탐내지 말아라. 우리 도선문은 장로님들이 지키고 문인들이 힘을 다하여 지금처럼 안온하게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장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그럭저럭 대충 넘기긴 했지만, 그가 공으로 단약을 보낸다는 건 가능성이 없는 일이었다.
웅심단이 뒷받침해준다면, 소경봉 개조 계획은 못 해도 몇백 년은 앞당겨 완성할 수 있단 말입니다.
파천봉에 종소리가 울리자 두 사람도 사부님께 가보겠다고 말한 뒤 구름을 몰고 파천봉으로 날아갔다. 가는 내내 각 봉에서 나온 수많은 구름을 볼 수 있었다. 고도가 높건, 낮건 모두 문파 대회가 치러질 장소로 길을 재촉했다.
대회 장소는 파천봉 산기슭으로 완만한 비탈과 하곡(河谷)은 지금 간단한 꾸며져 있었다.
경기 규칙도 복잡하지 않았다. 모든 제자가 제비를 뽑으며 각자 12번의 1차전 기회가 주어진다. 12번 겨루기의 승수로 2차전에 진출할 제자를 가리는데, 주천의 수를 일컫는 360명이다. 이런 식으로 360명 중 108명, 108명 중 72명, 다시 72명 중 36명이 다음 차전에 진출하는 방식이다.
제자 수가 워낙 많고, 대회도 시간제한이 없어서 낮에는 법술 겨루기를 하고, 밤에는 문파 장로의 강론을 듣는다. 이렇게 보면, 확실히 이백 년에 한 번 열리는 문파 대행사는 개산대전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이장수와 령아는 이곳에 도착한 후, 아주 자연스럽게 눈에 띄지 않는 구석을 찾아 대기했다.
평소에 이목을 끄는 산봉, 예컨대 단정봉, 선림봉 등은 ‘단’, ‘림’이라고 쓴 깃발을 만들었고, 산봉의 제자들도 한곳에 모여 있었다.
반면, 비교적 자유로운 곳도 있었다. 제자들은 평소 친한 벗들과 함께 있고 마음 가는 대로 이곳저곳 드나들었다.
종이 유유히 아홉 번 울리자 곳곳에 흰 구름이 내려왔고 산비탈과 하곡은 어느새 사람들로 가득찼다.
최근에 제자가 이렇게 많이 모인 적은 지난번 도선문이 재난을 당했을 때였다. 그때 제자들은 목숨을 부지하려는 목적을 안고서 몰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었다면, 오늘은 의기양양하고 선문의 패기를 한껏 발산하고자 몸이 근질근질한 모양새였다.
이장수는 이런 광경을 보고 있나니 머릿속에 시상이 떠올라 속으로 읊어보았다.
‘온 산에 꽃미남이고, 눈에 들어오는 건 꽃미녀들이로구나. 눈을 들어 구름 끝을 바라보니 나이 든 도사들도 예사롭지 않구나.’
노쇠한 이미지에서 탈바꿈한 장로들을 보며 이장수는 맥없이 투덜거렸다.
별안간 주위에서 감탄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파천봉에서 수십 개의 구름이 날아왔다.
제일 앞에 있는 이는 붉은색 긴 치마를 입고 까만 머리카락을 질끈 묶고 있었다. 서릿발이 날릴 듯한 차가운 얼굴은 월궁항아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등에 그녀만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대검을 메고 자신을 위해 준비된, 가장 눈에 띄는 자리로 착석했다.
당대 수석 제자, 유금현아였다.
유금현아는 아래로 내려오기 전에 인파 속에서 무언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렸다가 이장수와 남령아를 발견하고 입가로 올려 살짝 미소 짓고는 인사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순식간에 시선들이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유금현아가 등장할 때, 이장수는 티가 나지 않게 반보 뒤로 물러나면서 눈빛들은 죄다 령아에게 쏠리게 되었다.
령아는 도리어 대범하게 허리를 숙여 화답했고, 뽀얀 아래턱을 살짝 쳐들고 입가로 부드러운 미소를 드리웠다. 자신감이 상당히 넘쳐 보였다.
이때, 전음 소리가 그녀의 귀를 파고들었다.
“온자경 백 번.”
령아는 곧바로 고개를 내리깔고 ‘망했다’하고 속으로 되뇌었다.
어째서 조금 전에 참지 못하고 유금 사저와 비교하려는 마음이 일었을까.
제자들이 산비탈 하곡으로 모여듦과 동시에 주위에도 흰 구름이 나부껴왔다. 도선문 선인들도 대다수 이곳에 모여든 것이었다.
잠깐 사이에 또 종소리가 울리면서 도선전 옥대(玉臺)가 올라가기 시작했고, 그 위에는 수십 명의 인영이 앉아있었다.
장문 공허······ 흐음, 무우 도사, 부장문 중우 상인, 그리고 망정 상인을 비롯한 천선경 장로들은 며칠 전에 도착한 수십 명의 귀빈을 데리고 옥대에 앉아 천천히 다가왔다.
몰래 옥대 위의 기식을 느껴본 이장수는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금오도 연기사들이 또 온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금선경 ‘고수’ 두 명이라 금선경의 위압을 약간 내뿜었다. 어쩌면 십천군(十天君) 중 어느 두 분일 수도 있겠군.
본 적이 없으니 이리 추측할 뿐이었다.
이전에 도선문을 습격했던 모기 허수아비 중에 금오도 연기사가 세 명 있었고, 나중에 현도 대법사가 나서서 세 사람이 정신을 지배당했었다고 밝혀냈다. 오늘 금오도 연기사가 와서 참관하는 건 아무래도 인교 도승과 ‘옛 우정을 회복’하면서 사죄의 의미도 어느 정도 담겨 있으리라.
물론, 이건 한낱 제자인 그와는 무관했다.
다만, 금오도 연기사 좌석 뒤편에 젊은 제자 몇몇이 서 있었는데, 그중 한 소년은 이장수에게 상당히 익숙한 인물이었다.
그 소년도 이장수를 발견했다. 그는 절교 금선의 귓가에 무어라 말하더니 옥대에서 내려와 이장수와 령아를 향해 날아왔다.
평범한 용이 아니라 절교 제자이자 동해 용궁의 태자이면서 남해 해신교 부교주 겸 청룡 호법신 오을이었다!
“장수 형님!”
“오, 오을 형, 그간 무탈하셨습니까?”
“장수 형님 덕분에 근래 평안했습니다.”
두 사람은 눈을 맞췄다. 침묵 속에 모든 말이 담겨 있었다.
남해 해신교 규칙에 따라 조금 전 간단한 대화에 담긴 진짜 의미란, ‘교주께 인사 올립니다! 부교주, 보는 눈이 많으니 예를 거두시게. 근래 해신교는 아주 평안하니 교주님께선 염려 마시고 편히 수행하십시오······.’ 뭐 이런 식이었다.
두 사람은 짐작하기 어려운 말을 하면서 아무런 티도 내지 않았다. 오을은 이전에 도선문에 방문했었기에 이장수와 잘 지내는 건 비밀도 아니었고.
하나 이장수는 이 순간 약간 괴로웠다.
왼쪽에는 꽃 같고 옥 같은 외모로 문파 선자방에서 근래 무서운 기세로 순위가 급등하는 사매가 서 있어서 이따금 남제자들이 쳐다보았고, 오른쪽에는 키가 작고 소년의 몸집과 얼굴인 데다 외모도 퍽 출중하고, 한 쌍의 뿔 때문에 다소 귀여운 용의 아들이 서 있는 터라 여제자들이 흘끔거리곤 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껴 있는 이장수.
“······.”
왠지 모르게 입문한 지 팔구십 년이 되었을 때의 편안하고 차분하고 조용했던 수도 생활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