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형이 실력을 숨김 (130)화 (130/593)

소경봉을 빠져나와 문파 대회에 참석하러 돌아가는 도중, 이장수는 일부러 방향을 틀어 백범전으로 가서 인교 교주 초상화 앞에 향 세 개를 ‘높게’ 올렸다.

오늘의 향은 효과를 약간 발휘한 모양이다. 완만한 비탈 구석으로 돌아와 풍어주로 곳곳을 관찰하는데, 이장수에 관한 이야기가 얼마 들리지 않았다.

옥대 위 노신선들과 하곡 곳곳에 있는 제자들의 시선은 천강수 36명의 각축에 가 있었다.

이장수는 영보 백옥 피리를 손에 쥐고 천천히 정제하기 시작했다.

경기장 옆에 대기 중인 령아를 살펴보았다. 상태가 괜찮은 데다 옆에 주 사숙도 있어서 더 관여하지 않았다.

주오는 이미 이장수에게 삼백 년 치 월봉은 주었다. 게다가 전부 진기를 정제하는 보재였다.

‘소소한 횡재’ 덕에 소경봉 종합 대진 계획은 또······ 0.03% 앞당길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주오 사백의 ‘네가 이겼다고 해주겠다’라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기에 이장수는 이따가 보충 경기를 치러야 했다.

손에 든 백옥 피리를 내려다보며 이장수는 저도 모르게 생각에 빠졌다.

이 물건으로······ 얼마나 많은 보재로 바꿀 수 있을까?

농담이다, 농담. 진 천군이 하사한 영보를 내다 팔아버린다면, 금오도 연기사에게 고의로 치욕을 주는 것이나 다름없어서 매달려서 얻어맞을 일이리라.

대진은 나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고 독단 역시 마찬가지다. 호신할 영보가 있으면 나를 보호할 능력도 높일 수 있다. 더군다나 비승한 후로 지금까지 온전한 실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보물 하나도 없었다.

백옥 피리 정제를 끝마치면 끄트머리에 영수 털을 달아서 사경성법 신통력을 펼칠 때 ‘선필’을 우정 출연시킬 수도 있겠군.

이장수가 이런 생각을 하자 손에 있던 백옥 피리가 진동하면서 미약하게 저항의 의미를 전달했다. 괴상망측한 생각을 얼른 지워버리고 정신으로 백옥 피리의 영성을 계속 위로했다.

일단 피리부터 ‘길들이고’ 나서 선필 우정 출연에 관한 일을 생각해보지 뭐.

영보라는 건 자체적으로 영성을 만들어내는 보물을 일컬으며 가장 기본적인 영성을 지녔다. 하나 하늘이 제한하고 있어서 후천 영보는 생명이 될 수 없고 대도도 실을 수가 없어서 위력이 선천 영보만 못했다.

선천 영보, 선천 생명은 태고 때 많이 나타났었다. 그 당시 하늘은 완전하지 않았고, 선천적으로 생겨난 보물과 생명은 대도에 직접 닿을 수 있었다. 생명은 아무런 구애 없이 수행하고 강해졌으며 보물에도 대도의 위력을 각인했었다.

그때는 길을 걷다가 영보를 주울 수 있는 시대였고, 대충 산을 하나 찾아도 동천복지(洞天福地)였던 세월이었다. 그렇지만 동시에 아주 위험하고 어두컴컴한 시대기도 했다.

대부들은 모두 아둔했고, 염치라는 개념도 딱히 없어서 좋은 보물을 보면 자기와 인연이 있다고 말했고, 복지(福地. 신선이 사는 곳)를 발견하면 운명적으로 자신의 것이라 말했으며 상대가 동의하지 않으면 싸워서 주먹이 센 자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현재 태고 유습을 계승한 최고의 세력은 서방에 있는 두 성인이 세운 서방교일 것이다. 그들은 ‘당신은 우리 서방이 인연이 있군요’라는 한 마디로 인간을 제도하고 사라지게 만들 수 있었다······.

이장수는 마음속으로 쓸데없는 생각을 늘어놓으면서 계속 백옥 피리를 정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기소침해진 령아가 멀리서 날아왔다. 그녀는 낙담한 채로 이장수의 옆에 앉아서 슬며시 한숨을 토해냈다.

귀도경 1단인 유망주에게 패하면서 36강에 드는 길이 끊어진 것이다.

“사형······.”

령아가 세상 서럽다는 듯이 그를 부르자 이장수는 전음으로 말했다.

“다른 봉 제자에게 체면을 살려주는 것도 좋아. 넌 수도의 길에 접어든 지 얼마 안 되지 않았느냐. 이곳에서 나이가 가장 어리면서 이미 많은 사형과 사저를 진땀을 빼게 만들었니 그걸로 충분하다.”

반 장 떨어진 채로 전음을 하는 건 소경봉의 큰 특색 중 하나였다.

령아는 눈을 깜빡이더니 곧바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사형, 지금 위로해주신 건가요?”

“약법삼장.”

“알겠다고요!”

령아는 쌩긋 웃으며 방석 위에 책상다리로 앉았다.

찔끔찔끔 옆으로 움직여 사형에게 가까이 갈 작정이었다. 이러다 잔디가 곧 민머리가 될 지경이었다······.

이장수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전음으로 말했다.

“벌써 4,050번이다.”

령아는 움직임을 뚝 멈추었다. 커다란 눈망울에는 가련함을 한껏 담아 두 손을 들고 조용히 말했다.

“사형, 정말 잔인하십니다. 사매의 손을 좀 보십시오······. 이대로 손을 못 쓰게 만들 작정이세요?”

“아무렴.”

“쳇. 알겠어요. 쓰면 되잖아요.”

령아는 고개를 홱 돌려 멀지 않은 곳을 바라보았다.

이장수는 담담하게 웃으며 경기장에 올라갈 시기를 기다렸다.

또 하루가 지나고 문파 대회는 최고 하이라이트 천강수 수석 겨루기에 이르렀다. 이번 문파 대회의 대단원이기도 했다.

장내 이목은 이 순간 유금현아를 비롯한 10위 안에 든 유망주들에게 쏠려 있었다.

옥대 위 외빈과 장로들도 아래에 있는 제자 중 미래의 ‘고수’가 나타날는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봤다.

유금현아는 자질이 출중하긴 하나 성장하는 길에 앞에는 여전히 너무나도 많은 불확실함이 존재했다. 그녀가 천선경에 이를 수 있을지는 이 순간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우선 힘을 아끼지 말고 맞붙자. 정상에 오르는 이가 영웅이다!

천강수 경쟁이 시작되자마자 ‘귀도경 1단’ 이장수는 약간 버거워졌다. 그는 토둔술로 ‘혼신의 힘을 다 기울여’ 세 경기에서 이겼지만, 네 번째 경기에서 유금현아를 맞닥뜨렸다.

다만 그 누구에도 랑아봉으로 수석 제자와 대결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을 하지 못했다.

옥책이 진동하기가 무섭게······.

“제가 졌습니다!”

경기장 옆에 있던 유금현아는 당황했다가 이장수에게 다소 미안한 눈빛을 던졌다.

“······.”

지금의 미안함은 또 무엇 때문이란 말인가? 됐다. 유독 사매의 사고 회로는 늘 종잡을 수가 없었지.

그리하여 이장수는 18등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전에 계획한 순위와 별반 차이는 없었다.

소경봉의 두 제자는 18위와 39위로 마무리 지었고, 제원 도사는 이따가 이미 세상을 하직한 소경봉 사조들에게 향을 올리고 인사를 올릴 듯하다.

뒤에 이어진 겨루기는 갈수록 격렬해졌고, 덕분에 문파 대회에도 ‘하이라이트’ 순간이 더더욱 많이 생겼다. 다만 랑아봉이 얼음을 깨뜨렸던 그 장면은 처음부터 끝까지 뒤에 등장한 이들이 넘어설 수 없는 산이 되었다.

결국 유금현아는 상대를 하나하나 물리치고 수석으로서의 진면모를 보여주었다.

이장수는 마지막 대결까지 다 지켜보고 난 후 오을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는 핑계를 대고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과연 예상대로······ 유금현아는 승리 소감을 말할 때, 매우 진지하게 한마디를 더했다.

“이번 문파 대회에서 제일 겨루고 싶었던 사형과 함께 무대에 오르지 못했던 점이 다소 아쉽긴 합니다.”

그 시각, 멀리 있는 구름 위. 오을에게 작별을 고하던 이장수는 불현듯 감개가 솟구쳤다.

드디어 유독의 속내를 조금이나마 예측할 수 있게 되었군.

“장수 형님, 문에서 마음 편히 수행하십시오. 다른 건······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장수는 자루 하나를 꺼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안에 내 회심작 몇 폭이 있습니다. 비단 주머니도 있는데, 을 형이 고민하는 일에 도움이 될지도 몰라서 준비했어요. 단, 절대 사람들 앞에서 열지 마세요.”

오을은 웃으며 품에서 전서 옥패 두 개를 꺼내 이장수에게 건넸다.

“옥패 두 개로 저와 직접 연락할 수 있습니다. 무슨 지시······ 아니 하실 말씀이 있다면 이것으로 전하십시오.”

이장수는 전서 옥패를 받아들었다.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웃으며 구름 위에서 서로 읍하였다.

“구름과 안개가 무성하고, 높은 산과 깊은 물이 가로막아 을 형과 오늘 헤어지나 곧 다시 만날 겁니다.”

“평안하시고 일찌감치 선로에 오르시길 빕니다. 금오도는 남해와 동해의 구름이 모여드는 심부에 있으니 한가하시거든 놀러 오십시오. 술을 마시며 담화를 나눕시다.”

둘은 또 마주 보고 웃었다. 오을은 뒤돌아 자신을 기다리는 금오도 일행이 있는 곳으로 구름을 몰았다. 이장수가 멀리서 또 한 번 읍하자, 함지 등 ‘손아랫사람’들도 저마다 읍으로 화답했다.

이때 금오도 일행을 배웅하는 장문 계무우도 웃음을 함박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장문 대인은 멀찍이 있는, 이번에 도선문에 상당한 체면을 세워준 제자를 보며 어떻게 해야 그가 안정적으로 선인겁을 보내도록 도울지 고민했다.

‘드디어······.’

이장수는 구름을 몰아 소경봉으로 향했다. 그가 소경봉에 막 내려왔을 무렵, 파천봉 산 아래 하곡에서 구름들이 날아 나오더니 제자들이 각자 산봉으로 돌아갔다.

누군가는 웃고 있었고, 자연히 괴로운 얼굴을 하는 이도 있었다. 이장수는 령아와 랑아봉을 손에서 놓지 않는 주구가 함께 날아오는 걸 보면서 함께 찾아가 사부님께 ‘기쁜 소식’을 알려드려야겠다고 결론지었다.

그렇게 많은 대부가 소경봉을 방문했었는데 이토록 태평할 수 있다니! 사부님이 침상 위에서 쿨쿨 잠들어 있는 걸 못 봤더라면 이장수는 분명 사부님을 ‘새로운 눈으로’ 대했을지도 모른다.

하나 아직 령아가 돌아오지도 않았는데, 이장수는 마음이 움찔하더니 곧바로 감응이 생겨났다.

전에 백의(白衣) 소객을 접대했었던 해신 사당에 ‘귀객’이 또 방문한 듯했다.

그리하여 이장수는 풍어주로 십여 리 너머에 있는 령아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내 갑자기 깨달음이 찾아와 폐관 수행할 것이니 그간 주구 사숙을 잘 모셔라.”

령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걸 듣고, 이장수는 뒤돌아 단방으로 날아갔다.

해신 사당에는 많은 참배객이 있었다. 옥황상제를 따라 속세로 내려왔던 회색 복장의 노인이 신상 옆에 뒷짐을 지고 서 있고, 뒤에는 천선경 ‘시위대’ 두 명을 대동하고 있었다.

이장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귀객이 이따가 제게 무슨 말을 할지 몇 번이나 추론해보고 나서야 해신 사당 지하에 숨어있는 종이 도인에게 조용히 시동을 걸었다.

······

한편, 도선문 남쪽에서 삼천 리 떨어진 곳, 금오도 일행을 등에 지운 흰 구름 위.

오을은 말없이 이리저리 생각해보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장수 형님이 선물한 자루를 꺼냈다.

장수 형님의 회심작에 흥미가 인 것이지, ‘비단 주머니 속 계책’이 궁금해서가 아니었다!

그리하여 오을은 조용히 구름을 몰면서 제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금오도 금선과 천선들이 곧바로 한줄기 선식을 던져왔으나 미소를 머금을 뿐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냥 그림만 보는 거야······.’

오을은 헛기침을 하고 족자 두 개를 꺼냈다. 겉면에 주석이 두 줄로 달려있었다.

[감정이 고조되고 더운 피가 솟구쳐서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없을 때, 이걸 보시오.]

[의기소침하고 기운이 나지 않고 이번 생에 더는 희망이 없다고 느껴지고, 더는 사랑하는 이가 생기지 않을 것만 같을 때, 이것을 보시오.]

오을은 고민 끝에 우선 후자를 꺼내 상단에 적힌 시를 보았다······.

「봄꽃 가을 달도 언제인가는 끝나겠죠, 남은 꿈 얼마나 알고 계시는지요.」

족자를 펼치고 시선을 옮겼다가 소년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는 무의식중에 눈을 감았다가 다시 실눈을 떠서 조심스럽게 그림 속 제각기 다른 미인 십여 명을 쳐다봤다.

이게 인간족이 그토록 빠르게 번식하는 원인이란 말인가?

인간족 연기사는 과연 남다른 구석이 있었군.

하나 완전히 성장하지 않은 그에게 이건 너무나······.

이때, 뒤에서 별안간 감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섬세하군.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고 신비로우면서 고아한 운치도 있구먼.”

“훌륭해. 정말로 훌륭해.”

“고아하면서도 속된 맛까지 두 가지를 고루 겸비하고 있어. 교태를 부리지도 않는데, 이토록 많은 생각이 일어나게 하니 말이야. 이리 오래 사는 동안 이 정도 품질의 추수도(秋水圖)는 많이 못 봤어.”

오을의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사숙들은 소리소문없이 등 뒤에 달라붙어서 그림 품평에 한창이었다. 우물쭈물하는 오을을 보며 순간 무어라 설명해야 할지 난감해하는 이들도 있었고, 몇몇은 일부러 놀리려고 껄껄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앞쪽 구름 위, 진 천군도 미소를 지은 채로 그들을 응시했다. 어린 후배들도 호기심이 생겨 가보고 싶었으나 선배 연기사들처럼 감히 자유로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오을 사제, 다른 것도 펼쳐봅시다.”

“좋은 건 함께 즐겨야지 않겠나.”

“어서······.”

오을이 미처 저지하기도 전에, 아니 어떻게 저지해야 할지도 모르는 새 천선경 도사가 또 다른 그림을 확 낚아챘다. 몇 사람이 다가갔고, 도사는 손을 흔들어 족자를 빠르게 펼쳤다.

한창 시끌벅적했던 구름 위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앞에 있던 진 천군도 입꼬리를 살짝 씰룩거렸다.

한 도사는 묵묵히 족자 두 개를 말아서 오을에게 건넸다. 다른 이들도 얼굴이 착 가라앉았고, 메마른 나무같이 기운 없이 앞쪽 구름으로 돌아갔다. 하나같이 두 눈에 생기가 없었다.

오을은 호기심이 일어 그림을 쳐다보았다가 ‘백미노후’라는 네 글자를 보고 아연실소하고는 차마 더 보지 못했다.

‘장수 형님처럼 훌륭한 사람만이 상상을 초월하는 생각을 해내는군!’

오을은 곧바로 비단 주머니를 꺼냈다. 안에는 목패 하나가 있었는데, 위에 뜬금없이 ‘무리하게 구하면 안 되니 상대를 바꾸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오을은 잠시 생각했다가 뒷짐을 지고 가볍게 한숨을 토해냈다. 다시 기운을 차리고 족자 두 개와 비단 주머니를 정리한 다음 앞쪽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함지 사질을 쳐다보았을 때, 그의 눈빛은 맑고 투명하면서 냉담하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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