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형이 실력을 숨김 (184)화 (184/593)

“령아가 네가 남들 앞에서 여자와 접촉하면 긴장할 거라고 당부했었거든.”

주구는 커다란 표주박을 등에 메고 선박 난간에 앉아서 발을 흔들었다. 등 뒤에는 휘황찬란한 진법 광벽이 있고, 손에 주양영두단(酒釀靈豆丹) 몇 알을 쥐고 한 알을 던져서 고개를 쳐들고 입을 벌려서······ 하음, 하고 아작아작 씹어먹었다.

“내가 아무리 여인의 느낌은 없다고는 하나 그래도 여자는 여자가 아니냐. 하여 널 찾아가 장난치지 않고 참았지.”

옆에 있던 웅영리는 그 말을 듣고 온몸이 근육질인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가 묵묵히 고개를 내리깔고 두 손으로 자기 몸을 꽉 감싸 안았다.

구석에 앉아 좌선하던 이장수는 쓰게 웃었다.

사숙, 여인의 느낌이 난다는 게 뭔지 오해하시는 건 아니지요?

‘그나저나 령아가 미리 부탁을 했었다니.’

이장수는 속으로 감개무량해졌다.

사매를 예뻐한 보람이 있어.

좋았어! 지금부터 종이 도인으로 령아를 관찰하지 않고, 산으로 돌아가기 직전에 종이 도인으로 령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자.

예컨대 게으름을 피우고 멍 때리며 수행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상으로 금족령 10년을 내리고 폐관하여 경지를 높이게 할 것이다.

만약 공들여 꾸미고 목욕하여 옷을 갈아입고 있다면, <온자경> 오백 번을 상으로 내려서 그릇된 사상을 바로잡아줄 것이다.

영수 우리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있다면······ 문을 걸어 잠그고 때려줘야겠다.

흠, 만일 열심히 수행하고 차분하게 오도에 접어들었다면 원판 전지성인 신통력을 정식으로 전수하여 호신 능력을 길러줄 것이다.

이장수는 마음속으로 이러한 상황을 돌아가며 정리해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그해 청수하고 영리했던 꼬마 아가씨가 이제 늘씬한 미녀가 되었다. 심심하면 사형에게 나쁜 일을 저지를 생각을 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면에서는 제법 괜찮은 모습으로 성장했다.

특히 근래 십여 년 동안 령아는 ‘들떠서’ 사고를 치는 일이 많이 줄어들고 상당히 차분해졌다.

이것만으로도 이장수는 아주 흡족했다.

앞으로 령아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결코 사매를 박대하지 않을 것이다.

주구의 탄식이 들려왔다.

“어휴. 어째서 난 도겁할 때 비승하지 않았을까.”

“도장전 전적에서 비승 여부는 자질과 깨달음이 아니라 선인이 되기 전에 쌓은 것과 자신의 도가 천지와 상생하는지에 달렸다는 내용을 보았었습니다.”

“쳇.”

주구는 흰자위를 번뜩였다.

“귀도경 6단은 발언권이 없다!”

“예, 예. 제자, 말이 많았습니다.”

“음. 네 경지가 높지 않다는 말이 아니니 괜한 생각은 말아라.”

주구는 자신이 실수로 수도에 대한 이장수의 자신감을 건드리기라도 했을까 봐 일부러 늙은이 같은 말투로 지도했다.

“수행이란 건 말이다.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 오래 하느냐에 달려 있다. 일시적인 속도가 빠르다고 앞으로 네 성취가 아주 높으리라는 걸 뜻하지 않아. 자질이 출중하고 오도가 남다른 연기사들은 말이다. 백 년 만에 선인이 되고 천 년이면 진선이 된다. 그렇게 수행하고 또 수행하다 보면 어휴, 갑자기 턱 막혀서 천선이 되지 못하니 장생은 말할 것도 없어진다. 그러니 수행이란, 음······ 그래! 한순간의 의지로 얻어내는 게 아니라 멀리 내다봐야 한다!”

“고견 감사합니다!”

이장수는 웃으며 대답했다.

옆에서 웅영리는 감개에 젖은 듯 커다란 눈망울에 별빛이 반짝였고, 존경심이 역력한 얼굴로 사저를 바라보았다.

주구는 민망한 듯 웅영리를 보며 손을 휘휘 저었다가 이내 무언가 떠올랐는지 전음으로 이장수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영리는 어떻게 안배할 참이냐? 장문님의 기명 제자라 파천봉에서 수행하는 게 적절할 텐데, 아니면 내 거처로 데려갈까? 어차피 내 방도 비어있고, 난 곧 너희 소경봉에 입적해야 할 판이 아니냐!”

“소경봉이 그래도 조용합니다. 영리는 무인 혈통입니다. 벽곡을 하긴 했지만, 여전히 먹는 걸 좋아하여 소경봉에 머무는 게 낫지요. 돌아가면 영수 우리를 몇 배 더 넓히고 맛 좋은 영수들을 많이 기를 예정입니다. 그리고 영리에게 수행하고 남는 시간에 책임지고 그곳을 정돈하라고 할 거고요. 그러면 영리도 굳이 산문을 나가서 사냥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주구는 곧바로 눈을 반짝였고, 이내 웅영리를 바라보며 쩝쩝, 입맛을 다셨다.

그 말은 앞으로 곰처럼 듬직한 아우와 함께 광명정대하게 먹고 마실 수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웅영리는 목을 움츠리며 분명 체구는 아담하지만, 특정 부위의 근육이 유독 발달한 사저를 힘없이 바라보았다.

이런 눈빛은 배고플 때 자신의 표정과 꽤 비슷했다!

“가서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주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웅영리는 해신 오라버니와 주구 사저를 번갈아 보며 왠지 자신이 없어졌다.

도선문은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느닷없이 주구가 조그마한 손을 앞으로 내밀고는 외쳤다.

“신과의 전쟁이 하고 싶구나! 이번 대회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지루했다. 스무 번은 족히 자고 나니 끝나더구나!”

이장수는 웃으며 일찌감치 준비해둔 종이 패를 꺼냈다. 영리를 불러오고, 사숙더러 주변에 선력 결계를 쳐서 외부 정찰을 차단해달라고 부탁도 했다.

‘저는 바보라서 못할 거예요’ 어쩌고 운운했던 웅영리는 두 판을 하고 난 뒤에는 두 눈을 반짝이며 ‘천선 넷’ ‘금선 한 쌍’ ‘펑입니다, 펑’ ‘비선 연합’ 등 누구보다 살벌하게 외쳤다!

······

노는 건 노는 거고, 이장수는 해야 할 일을 고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조 대인 사단이 더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자해공갈 사기를 치지 않을까?

조공명과 경소가 한순간 흥미가 인 것이라 여겼는데, 문정 도인이 당한 것을 보고 나니 두 남매가 이미 홍황 자해공갈 사기 대하 드라마를 찍기 시작했다는 걸 깨달았다.

홍황에 경찰신고 핫라인이 없는 데다 조공명도 뒷배가 너무나 막강했다!

오늘 그들이 공교롭게도 문정 도인을 건드렸다면 내일은 자소궁의 기와를 뜯어낼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장수는 절로 울화가 치밀었다······.

당시 서방교의 곱사등이 도사를 상대하느라 대도 맹세를 너무 빈틈없이 설정한 탓에 지금 수습하기도 힘들어졌다.

이 일에 손을 떼고 신경 쓰지 않고 싶으나 이후 조 대인이 큰일을 벌여서 나도 연루될까 염려되었다. 즉시 관여라도 하고 싶으나 또 막상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며칠을 고민했고, 심지어 작은 뒷배 현도 대법사께 나서서 이 일을 처리해달라고 부탁할 생각까지 해보았다.

그러나 공연히 대법사를 움직인다면 나에 대한 대법사의 호감이 깎일지도 모른다.

배후의 든든한 산이라는 건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데다 이 일이 그렇게까지 급한 상황도 아니었다.

한참 속수무책에 빠져있을 때, 주구가 무심결에 던진 말이 이장수의 머릿속에 정채를 번뜩이게 했다.

“령아가 어째서 너를 그리 무서워하는지 모르겠구나. 사형이면 좀 다정하게 대해줄 수 없는 것이야?”

사형이면······ 사형······.

그래!

이장수는 이마를 ‘탁’ 쳤다. 어떻게 그 고수를 잊어버릴 수가 있지?!

주구는 눈을 끔뻑거렸다.

“이마는 왜 때리는 것이야? 네 행동을 후회한다는 걸 보여주려고 이리 과장된 행동을 한 것이냐?”

“그게 아니라 제자 문득······ 수행의 소소한 묘리가 떠올랐습니다.”

이장수는 웃으며 덧붙였다.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숙. 앞으로 령아를 다정하게 대하겠습니다. 그럼 영리와 마저 놀고 계세요. 저는 폐관 수행하겠습니다!”

“음? 어찌 이렇게 갑자기? 평소에는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걸 못 봤는데······.”

주구는 약간 불만스러운 듯 투덜거렸다.

“문파 고수들 앞이라 일부러 그러는 것이군!”

이장수도 딱히 반박하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뜨고 웃기만 했다.

사숙, 당신은 진정 구세주십니다.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어 절반 이상의 정신을 해신교 사당 지하에 있는 종이 도인에게 두었다.

‘선력을 완충한’ 종이 도인으로 바꾸어 표표히 대사당으로 이르러 종이 도인 전용으로 마련한 방으로 들어갔다.

대충 나아갈 방향이 생겼다.

절교 내부에서 성인을 제외하고 누군가가 조공명과 경소를 통제한다면 그건 절교 대사형 다보 도인은 절대로 아니다.

바로 삼소 낭랑 중 맏언니이자 조공명의 둘째 동생 운소 선자였다!

삼소 선자들은 전생의 이장수에게도 친숙한 인물이었다.

그녀들이 악인으로 불렸던 주요 원인은 봉신대겁에서 첫째 조공명을 위해 복수하느라 구곡황하대진(九曲黃河大陣)을 배치하고 혼원금두로 십이금선 과반수 이상의 머리에 있는 꽃 세 송이를 빼앗은 탓이었다. 이는 사실 그녀들 전적에서 작은 부분일 뿐이었다.

가장 대단한 건 성인이 직접 나서서 그녀들을 굴복시키려 하자, 삼소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정말로 성인께 손을 대려고 했던 점이었다.

물론 이 일로 인해 그녀들의 말로는 몹시 처참했다. 맏언니 운소는 노자께 수거되어 옥허궁 뒤편 기린애(麒麟厓)에 억눌러졌고, 둘째 경소와 셋째 벽소는 맞아 죽어서 잔혼이 봉신방에 올라 천도의 허수아비가 되었고, 몸은 천도 신위에 갇혀 자유를 잃은 몸이 되었다.

그녀들의 신위도 아주 작아서 속세에선 ‘산파’라 불렸다.

언뜻 보면 한결같이 생명의 탄생을 관여하므로 몹시 중요한 신직인 것 같다. 하나 자세히 생각해본다면 세 사람이 지위도 월하전의 월하노인과 견줄 만했다.

위풍당당한 절교 외문 대제자는······.

탄식만 나올 따름이었다.

그러나 이장수가 이러한 사실을 미리 안다고 해도 나중에 일어날 일에 관여할 수가 없었다.

봉신대겁에서 그는 뛰쳐나올 것이고, 절대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현재 이장수가 해야 할 일이란 조공명과 경소가 바깥에서 아무렇게나 자해공갈 사기를 치고 다닌다는 사실을 운소에게 넌지시 알리고, 운소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다.

이장수에게 운소는 상당히 낯설었다. 신화 이야기에도 그녀가 도대체 어떤 성정인지 나오지 않았다.

만일 동생들을 지나치게 예뻐해서 자해공갈 사기단에 가입하기라도 한다면······ 정말로 시끄러워지지 않겠는가.

따라서 확실하게 하려면 운소에게 알리되 이 일이 조공명과 경소에게 끝도 없는 인과를 불러오리라는 걸 인식시켜줘야 한다.

‘어떻게 손을 보면 좋을까?’

이장수는 의자에 앉아 무의식중에 손가락으로 탁자 위를 두드렸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많건 적건 악취미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예컨대 령아는 툭하면 목욕을 즐기는데, 가끔 아침, 점심, 저녁 세 번 목욕하고 물속에 꽃잎을 뿌려서 꽃잎으로 도안을 만드는 걸 좋아했다.

음.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지는 마시길. 그건 지금 중요하지 않으니깐!

이장수는 ‘자신의 작은 습관’도 매우 주시했다. 그는 온 신경을 쏟아 생각할 때,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리듬을 타는데, 이제는 별 동작을 하지 않도록 조절했다.

‘피해자 모기 도인더러 삼선도를 찾아가 운소 앞에서 울고불고하라고 할까?’

현재 문정 도인은 토대를 드러내지 않아서 삼선도에 갈 수 있었다. 다만, 그렇게 한다면 서방교 성인들의 의심을 불러오진 않을까.

서신을 써서 오을 편에 주고 삼선도로 보낼까?

이장수는 생각에 잠겼다.

현재 오을은 신혼을 보내느라 바쁜데, 매번 파견을 보내는 것도 좋지 않을 터.

‘차라리 남해 해신이라는 신분으로 이 일을 있는 그대로 운소 선자에게 알리는 편이 낫겠어. 일을 너무 많이 꾸미면 혹 떼려다 혹 붙여오는 꼴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야.’

때론, ‘온’은 복잡함이 아니라 단순함에 있었다.

이장수는 서서히 생각을 멈추고 붓과 먹, 비단을 꺼내 배첩을 쓰기 시작했다.

삼선도가 어디에 있는지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오을에게 금오도에서 알아보라고 하면 대략적 위치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일의 난점은 어떻게 운소 선자를 만나느냐에 있었다.

석양빛이 창호지를 투과하여 책상 위에 흩뿌려졌다. 이장수는 붙을 들고 휘갈겼다. 운소 선자를 만나기 위해, 배첩일지라도 적잖게 심혈을 기울이고 단어를 반복해서 따져보았다.

배첩을 완성하자 마음속에 돌연 깨달음이 생겼다.

다행히 지금 그는 삼선도로 가서 운소를 찾아가 이 일을 설명하기로 마음먹었다.

이후 조공명 일행이 또 큰일을 벌인다면 그건 운소가 먼저 찾아와 화근을 그에게 뒤집어씌울 가능성도 있으니 말이다!

“홍황은 한 걸음 한 걸음이 안온하질 않구나.”

이장수의 종이 도인은 기지개를 켜고 배첩을 챙겨두고 불자를 들고 토둔술을 펼쳐 남해로 향했다.

바닷물 속에서 수둔술로 길을 달리는 건 토둔술보다 적잖은 선력을 아낄 수 있었다.

같은 시각, 남해 깊은 곳의 어느 황량한 섬.

세 인영이 수풀 공터에 앉아서 수납 법보를 하나씩 나누는 중이다.

경소는 두 손을 왔다 갔다 하면서 진지하게 세었다.

“오라버니 하나, 나 하나. 함지 하나, 나 하나. 나 하나, 나 하나. 오라버니 하나, 나 하나······.”

조공명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이런 사소한 일로 동생에게 따지고 싶진 않았다.

반면 함지는 쩔쩔맸다. 자신은 이익을 챙길 수 없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경소 선자에게 혼나는 것이 두려웠다.

이윽고 분배가 끝났는지 경소가 손을 탁탁 털고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공으로 얻은 느낌은 상당히 좋군요. 오라버니, 서해를 돌아다녀 볼까요?”

“그래, 좋다.”

조공명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앞으로 물건은 챙기지 말자. 마치 약탈하는 도적들 같구나. 보물이 부족한 것도 아니지 않으냐?”

“부족하진 않죠.”

경소는 눈을 깜빡이며 말을 덧붙였다.

“그렇지만 오라버니. 물건을 챙기지 않으면 우리가 하는 행동에 무슨 의미가 있어요? 기왕 하기로 한 거 계속해야죠! 수행할 때 필요한 재물들을 수행이 마음처럼 되지 않는 교파 선인들을 찾아가 나눠주면 되잖아요.”

조공명은 망설이더니 저도 모르게 함지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런 뜻이냐?”

함지의 정의감이 고개를 가로저으라고 했으나 경소가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는 바람에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굴복하는구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