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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형이 실력을 숨김 (192)화 (192/593)

이장수는 종이 도인을 해신 사당 대전으로 보낼 때, 무우 도인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감개에 젖었다.

자세히 생각해보면 장문님이 더 묻지 않고 관여하지 않는 것이 인교 교리 청정무위에 부합하긴 했다.

나는 염려되는 바가 너무나도 많고 미천한 목숨을 지켜내기 위해 부단히 인과를 피하고 끊어냈으니 장문님과 비교하면 평범한 경지로 전락할 수밖에.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나는 ‘대교파 간의 싸움’ ‘대부족의 운명’ ‘과도한 용맹함’ 등 감당하지 않아도 될 나이와 경지에 이렇듯 힘든 일들을 감당해야 하지 않았는가!

자칫 조금만 더 신중하고 위장을 약간 더 가미하고 비장의 패를 살짝 감추다 보면, 언젠가 좌선 중에 눈을 떴을 때, 인자한 인상의 민머리 영감이 내 앞에 서서······ ‘허허. 자네는 우리 서방교와 인연이 있는 듯하구나’ 하고 말할지도 모른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

서방교는 도문의 성인 제자도 꾀어서 팔아넘길 위인들인데, 단순히 성인의 눈에 든, 손가락 하나만 까닥해도 죽일 수 있는 존재인 날 손대지 못할 리가 무에 있겠는가?

실력을 충분히 갖추고 난 뒤에 무위, 그리고 청정과 자연을 추구하자. 그때가 되면 도솔궁 후원에 있는 나무 그늘에 숨어서 늦잠을 자고 아무것도 관여하지 않아도 될 테지.

진정한 청정무위가 있긴 할까. 사실 태청 성인은 워낙 강해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것뿐이다.

음, 금선이 되고 나면······.

아니지, 금선이라도 홍황에서는 몸을 사려야 해.

최소 대라의 경지에 올라 살해, 방어, 폭격, 도망 등 여러 능력을 두루 갖춘 선천 영보를 몇 개 얻고 공덕으로 응결된 몸으로 성인의 바짓가랑이를 꽉 붙들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마음 편히 푹 잘 수 있을 것이다.

쩝. 백날 공상해봤자 아무짝에도 소용없고, 실제로 이뤄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이장수는 종이 도인이 땅 아래에서 뚫고 나오기 전에 황급히 운소 선자에게 전음을 했다.

대전 안에서 종이 인형에게 끊임없이 선력을 주입하던 운소 선자가 하던 일을 멈추고 미안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녀는 족자를 정리하고 이장수의 두 번째 화신이 날아오자 문 어귀로 마중 나갔다.

“스승님께서 친히 그린 그림을 선물로 줄 생각이었지, 이 그림이 도우의 화신을 망가뜨릴 줄은 몰랐어요. 생각이 짧아 실수했습니다. 이를 어찌 보상해야 좋을까요.”

이장수는 한참 동안 입을 씰룩거렸다.

운소 낭랑은 너무나도 화통하시군요. 조금 전, 혼원무극 대도의 기운 때문에······ 가, 강제로 금선겁을 보낼 뻔했단 말입니다!

이장수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운소가 황급히 물어왔다.

“혹 도행을 다친 겁니까?”

“화신일 뿐입니다. 별일 아니니 걱정 마세요.”

“어찌 걱정을 안 합니까? 화신을 정제하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요.”

운소는 가볍게 숨을 내쉬고는 그 그림을 다시 꺼냈다.

“도우, 이 그림이 아무래도 도우와 인연이 있는 듯하니 부디 받아주세요. 거절하면 내 도심이 실로 안온하지 못할 거예요.”

운소는 말하면서 왼손을 살짝 뒤집었다. 손에서 보물 몇 가지가 반짝반짝 빛을 냈다.

“그리고 이 보물들도······ 받아주세요.”

뭐라고요? 기어코 나를 열 받게 만들어서 내가 성인께 따지고 드는 죽음의 고속열차를 태워야 속이 시원하겠습니까?

“이러지 마십시오, 받을 수 없습니다!”

이장수는 황급히 뒷걸음질 치며 일부러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운소도 이장수의 이런 반응이 우스운지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안 될 거 무어 있어요?”

“이, 이러지 마십시오.”

“두려워 마세요. 도우는 이미 그 기운을 깨달았으니 화신이 또 한 번 다치진 않을 겁니다.”

이장수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어째······ 큰누나가 막냇동생을 달래는 듯한 말투인데?

“성인의 그림을 함부로 받을 수 없습니다.”

“선천 보물이 아니라 스승님이 한가할 때 붓을 들고 그린 것에 지나지 않아요.”

이장수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의미가 다릅니다. 성인의 물건이라면 너무나도 비범하니 부디 거두어주십시오.”

“그럼······ 도우의 화신이 망가진 건 어떻게 배상하면 좋겠어요?”

“한낱 화신일 뿐입니다.”

이장수는 진심을 담은 눈빛으로 답했으나 운소는 되레 수려한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아니지······.

이장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지금 나는 운소가 주는 물건을 받고 싶지 않다고 명백히 의사를 표했다. 그런데 운소 낭랑이 신경 쓰는 부분은 화신의 값어치에 있어.

홍황 일반 상식―신외 화신은 몹시 진귀하다. 신외 화신은 진귀한 보재로 정제해내거나 엄청난 법력을 응결하여 만든다. 고로 화신 한 구를 잃는다는 건 연기사에겐 보통 적잖은 손실로 여겨질 터.

내 종이 도인이 너무나도 저렴해서 그렇지. 튜닝한 전지성인 신통력이나 대법사가 하사한 신외 화신 신통력을 몇 번 개량해서 얻어낸 종이 도인도······ 나무즙을 꽤 소모하지 않는가.

“선배님께선 제 화신이 무수한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이라 여기십니까?”

운소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두 눈은 얼음처럼 맑고 깨끗했다.

“아닌가요?”

“하하하!”

이장수가 호탕하게 웃자 노신선 얼굴에 붙은 수염도 함께 휘날렸다.

“제겐 현묘한 방법이 있는 터라 화신은 종이를 자르는 것과 비슷한 일입니다. 선배님께서 정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하시면 이 그림을 받겠습니다. 단, 보물들은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저를 너무 얕보시는 거 아니겠습니까.”

보물은 받아봤자 까발려질까 두려워서 본체에 쓰지도 못하고 종이 도인의 몸을 보호하는 데만 쓸 테니 큰 의미도 없다.

나무들도 일찍이 다 컸단 말입니다!

이장수는 족자를 말아 넣었다. 사당 후당에 걸어두고 해신 사당의 품격을 조금 높여야겠군.

운소는 그제야 옅은 미소를 드리우고 마음속 근심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다른 보물들을 거두고 이장수에게 사뿐히 묵례했다.

“간밤에 공연히 폐를 끼쳤군요. 은혜를 갚으러 온 것인데 뜻밖에도 도우의 화신을 망가뜨렸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되거든 삼선도로 오세요. 꼭 보상하겠습니다.”

이장수는 꼭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서로 읍을 주고받은 후, 운소는 이만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구름을 몰아 밤하늘로 날아간 그녀는 옅은 연기로 변하더니 이내 밤의 장막에 녹아든 것처럼 바람을 타고 가버렸다.

‘훌륭한 선자로다. 애석하게도 세 형제가 짐이 되는 것도 모자라 그녀도 과할 정도로 의리를 중히 여기는 성정이로구나.’

이장수는 삼소, 조 대인과 더 이상의 교분을 맺지 않고 봉신 대겁 때 겁운에 휘말리는 사태를 피하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내심 아주 조금은 미묘한 기대도 있었다.

“오늘은 실로 사건이 많았군.”

이장수는 기지개를 켜고 손에 들고 있던 족자를 내려다보며 천천히 후당으로 걸어갔다.

유금 사매는 조금 전 종이 도인의 진짜 경지를 보았겠지? 수습하기 까다롭겠군.

이장수는 어떻게 속여넘길지 아니, 어떻게 해명해야 유금현아가 비밀을 지켜주면서 허튼 생각을 하지 않을지 한차례 고민했다.

바로 이때, 령아가 구름을 타고 단방 외곽에 이르렀다. 웅영리도 자색 빛에 휘감긴 뇌신추를 짊어지고 헉헉거리며 대진 외곽으로 달려왔다. 아까 그 엄청난 위력에 놀란 것이 분명했다. 다만 지금은 진법 밖에 묶인 터라 가까이 다가오지는 못했다.

이장수는 고민 끝에 령아에게 전음으로 몇 가지 당부를 했고 령아도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웅영리와 친해진 령아가 웅영리에게 사형이 기공 수련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그녀를 호숫가 초가집으로 데리고 갔다.

이장수는 속으로 변명거리를 치밀하게 구상하면서 동시에 유금현아의 사고 회로를 분석했다. 만사 적당해졌다고 여겨지고 나서야 두 눈을 뜨고 달빛 아래 좌선 중인 유금현아를 바라다보았다.

······

이장수의 시선을 느낀 걸까. 유금현아도 눈을 떴다. 눈꼬리가 둥글게 휘고 보조개가 잔잔하게 팼다. 이장수를 당혹스럽게 만든 건······ 그녀의 두 눈은 처음 이곳으로 왔을 때보다 백 배는 더 환해졌다는 점이었다.

“유금 사매······.”

“사형, 말씀하지 마세요. 다 압니다!”

이장수는 순간 숨이 턱 막혀서 그대로 방석 위로 엎어질 뻔했다.

알아?

뭘 안다는 건데?

“아니, 사매는 몰라······.”

“아뇨, 압니다.”

“정말로 모를 거야. 사매,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는데, 지금껏 마음속에 담아두기만 하고 입 밖으로 꺼내지를 못했었어.”

유금현아는 입술을 살짝 다물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말씀하세요. 전부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직접 표현하고 솔직하게 교류해야 서로가 생각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는 일도 있어. 추측하기보다는 직접 묻고 답해야 하는 거야.”

유금현아는 이장수의 말을 들으며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습니다. 오늘은 사형을 솔직하게 대하겠습니다.”

이장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야지. 솔직하게 말하면 돼. 오해를 사기 쉬우니 다시 만나지 말자고 말이야.

이장수가 입을 열고 말하려는데 유금현아가 한발 빨랐다.

“사형, 삼교 발전 대회에서 돌아온 뒤로 한참 생각해보고 끊임없이 본심에 대고 물으며 마음속 환상을 깨뜨리려 노력했습니다. 지금 저는 도심이 견고하여 본심이 생각하는 바를 잘 압니다. 사형께서 솔직하게 터놓자고 하셨으니 말씀드리겠습니다.”

설마······.

일단 고백하게 둔 다음에 거절할까? 아니면 아예 말하지 말라고 입을 막을까?

이장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가 곧바로 적절한 선택지를 골라냈다. 유금현아가 살짝 숨을 들이마시자 이장수도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열심히 수행해서 사형의 경지를 따라잡겠습니다!”

“미안해. 난 대도만을 동경해서 도려에 관한 일은 조금도 생각지 않······.”

“예?”

두 사람의 눈이 맞부딪혔다. 이장수는 입꼬리를 달달 떨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유독 사매, 쓸데없이 숨은 어찌 그리 깊이 들이마신 거야?!

유금현아는 당황한 듯 눈을 깜빡거렸다. 청순한 얼굴이 살짝 발그레해지더니 시선을 비켜 달빛을 쳐다보며 얇은 입술 새로 미약한 책망의 소리를 흘렸다.

“무슨 생각을 하신 거예요······.”

“아, 오해야, 오해.”

이장수는 소매를 한번 탁 털고 평상시 표정으로 돌아와 태연하게 말했다.

“유금 사매, 마음에 담아두지 마. 난 사매가 그런 일을 이야기하는 줄로만 알았지 뭐야. 흐음. 내가 자신감이 지나쳤군그래.”

“아닙니다. 오해가 아니에요.”

유금현아는 다시금 이장수를 똑바로 응시했다.

“사실 사형을 몹시 흠모하고 있어요. 다만······ 오늘 밤에 비로소 사형과 제가 얼마나 큰 차이가 나는지 깨달았어요. 사형, 조금 전에 그 종이 인형의 선력은 현재 제 선력보다 백 배는 더 고명했습니다! 사형의 진짜 경지를 알지는 못하나 망가진 종이 인형 옆에 서 있으면서 제가 아주 미미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사형이야말로 진정한 고수세요!”

“그건 내가······.”

“제 말을 끝까지 들어주세요.”

“오, 미안. 계속 말해.”

유금현아의 미소가 한결 부드럽게 풀어졌다.

“이제 저는 십 년 정도 폐관하여 도심을 안정시킬 계획입니다. 지금은 마음이 좀 어지럽거든요. 조금 전에 사형과 장문님이 나눈 말씀도 어느 정도 이해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사형과 처음 만났던 북주부터 지금까지 사형께 너무나도 많은 보살핌을 받아왔어요. 사형은 그간 경지를 감춰왔다는 사실을 문에서 알지 않길 바라실 테니 이 자리에서 대도 맹세를 하겠습니다. 만일 다른 사람에게 이 사실을 발설한다면 천벌을 받겠습니다!”

꽈르릉, 하고 번개가 구름 너머에서 터졌다. 이대로 맹세가 맺어졌다.

유금현아는 슬며시 숨을 토해내며 일어섰다.

이장수는 왠지 모르게 뜨끔하여 따라서 일어섰다.

“사형, 두 가지만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말해.”

“지난번 도선문이 습격을 받았을 때, 위기에서 구해줬던 세 의사가 사형의 종이 인형이었는지요?”

이장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비밀을 지킬 것이니 염려 마세요······. 그리고 그날 지맥 이동진으로 이동한 후 천선이 공격하러 왔을 때, 사형은 일부러 저희를 기절시키고 홀로 적과 맞서 싸운 것인지요?”

이장수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유금현아는 곧바로 포권하여 힘있게 말했다.

“구해주신 은혜에 문파 제자들을 대신해 현아가 감사 인사 올립니다!”

이장수는 허공에 대고 손사래를 쳤다.

“나 또한 도선문 제자이지 않나.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있어서 진짜 경지는 보여줄 수가 없지만······.”

“이해합니다.”

유금현아의 두 눈에 그윽한 감정이 담기고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으며 긴 머리카락이 살짝 나부꼈다.

달빛을 받고 선 그녀는 속세를 초탈한, 티끌 하나 묻지 않은 완전무결한 신녀상 같았다.

“선인이 되어 비승한 후 앞에서 사형을 기다리는 것이라 여겨왔습니다. 그런데 사실 사형은 줄곧 앞에 계셨고 제가 사형의 뒷모습을 보지 못했던 것이더군요. 사형은 여전히 제게 길을 제시하는 등불이며 수행의 본보기이십니다. 속에 있는 말을 다 하였으니 이만 돌아가서 폐관 수행을 하겠습니다.”

이장수는 미소를 머금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수행에 어려운 점이 있다면 언제든 찾아와. 열심히 해답을 찾아줄게.”

“네. 그렇지만 전 제 힘만으로 사형의 뒷모습을 쫓고 싶어요. 사형, 그럼 정말 가보겠습니다.”

이장수가 읍하자 유금현아도 주먹을 모아 화답했다. 그녀는 뒤돌아 사뿐히 걸음을 내디디고 이내 구름을 타고 단방을 벗어났다.

이장수는 뒷짐을 지고 단방 문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서는 유금현아가 떠난 뒷모습을 한참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참으로 똑똑해.”

굳이 낚을 필요도 없이 스스로 대도 맹세까지 해버리지 않았는가.

장문 맥은 역시 대단하군. 한데······.

“사매, 다시 돌아와서 대도 맹세에 관한 세부적인 내용을 좀 의논하는 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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