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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형이 실력을 숨김 (202)화 (202/593)

가락으로 변신한 오을은 여시위로 변한 용족 고수를 이끌고 가짜 오을이 있는 곳으로 서슬이 시퍼렇게 돌진했다.

이곳은 홍황 오대주 천지에서 가장자리 지역이고 방진도 인간족 ‘전속’이 아닌지라 곳곳에서 요족, 정령족, 해족 등 여러 부족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인간족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말이다.

흉수가 둔갑하거나 죄업을 지닌 흉악한 생명도 간혹 출몰한다. 이곳의 규칙을 잘 따르고, 돌아다니다가 포위 공격을 받아 공덕을 벌어들이고 아이템이 터지는 상황이 두렵지 않다면 누구든 체류할 수 있다.

이장수가 사용 중인 할머니 종이 도인은 지팡이를 짚으며 쫓아가면서 뒤에서 쉴 새 없이 소리쳤다.

“아가씨, 충동적으로 행동하면 안 됩니다. 이곳은 홍황 오부주라 함부로 행동하면 큰일 나요! 불만이 있으면 그 친우분과 잘 의논하셔야 합니다······.”

앞에 있는 가락은 쉬지 않고 특별해 보이는 주루로 돌진했다.

기루는 속세에서 일컫는 명칭이다. 선인의 이런 행위를 어찌 향락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선인이 주루를 찾는 건 잠깐 정겁을 체험하고 대도의 깨달음과 이해를 높여서 나의 순수한 모습을 이해하고 자유롭게 수행하기 위해서다!

물론, 지나치게 긴 수행 생활에 지친 나머지 이전의 열정을 되찾고자 방문하는 손님도 있다.

각 부족의 수도자에겐 남존여비라는 속세 제도도 없다. 천애성에 차린 이런 주루는 전 방면으로 우수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남녀 모두가 들어가 마음 편히 즐길 수 있었다.

가락이 주루에 들어서자마자 두 사내가 다가왔다. 청수한 외모의 청년과 성숙한 기질을 자랑하는 중년 연기사로 두 사람은 똑같이 진선경이었다.

“선자, 그간 안녕하셨소이까? 오늘은 한잔하러 오신 건가요?”

“꺼져라!”

가락은 차갑게 소리쳤다. 소녀의 눈에는 분노가 이글이글 타올랐다.

두 사람은 불호령에도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한 사람은 그저 픽 웃으며 떠났고, 한 사람은 미소를 머금은 채 또 말을 걸었다.

“이곳은 천애각(天涯閣)이 지키는 곳이니 선자께선······.”

“꺼지라고 했지?!”

가락은 소리치며 단도를 뽑았다. 이장수가 연기 중인 할머니가 얼른 다가와 가락을 타일렀다.

“아가씨, 고정하세요. 예? 정 안 되겠으면 여길 사들이고 그다음에 망가뜨려도 늦지 않을 거예요.”

“내가 이 낡아빠진 주루를 망가뜨리러 온 줄 알아?”

가락은 벌컥 성을 내자 뒤에서 용왕 시위 하나가 다가와 영패를 던졌다. 위에는 ‘천애’라는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

중년 사내는 안색이 확 바뀌더니 곧바로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고, 귀객이셨군요. 무례를 범했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허!”

용2가 소매를 털고 언짢은 기색으로 영패를 거두었다.

천애각 배후에 용족의 지분이 있거나······ 용2가 이곳에서 돈을 심하게 많이 썼을 수도 있겠군······.

흐음. 모든 가능성을 쉽게 배제할 순 없지.

주루는 12층까지 있으나 조그마한 계단 하나 없고 가운데 ‘뜨락’에 꽃 모양의 분홍색 구름 송이 여섯 개가 위아래로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면서 손님을 날랐다.

이장수는 여장한 다섯 용과 구름을 타고 올라왔다. 이어질 극본도 그가 쓴 내용과 일말의 차이도 없이 진행되었다.

가락은 그 별실 앞에 서서 치맛자락을 들고 문을 발로 걷어찬 다음 반짝반짝한 보검을 들고 안으로 뛰쳐들어갔다.

삽시간에 안에 있던 심해 대요괴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가짜 오을은 더더욱 영문을 알 수 없는 얼굴이었다.

가락이 진선경에 불과하다는 걸 확인한 가짜 오을은 이내 음흉하게 웃었다.

“신선한 매력이 있군. 그래, 너도 와서 내 시중을 들거라!”

순식간에 화가 치밀어 오른 오을(진짜)은 두 눈으로 불을 내뿜으며 검을 들고 오을(가짜)에게 달려들었다!

오을보다 더 빠른 건 네 명의 용왕 시위였다.

용들은 죽이 척척 맞았다. 용1은 오을의 곁에서 그림자처럼 바짝 붙어 수행했다.

오을이 검을 뽑기 직전, 용1은 몸을 고정하는 술법을 부려 천선경밖에 되지 않은 가짜 오을을 그대로 봉해버렸다. 이와 동시에 용2가 잔비늘로 잔뜩 꼰 노끈을 던졌고, 용3이 흉살스러운 기식을 내뿜는 자색 주머니를 꺼냈다. 그리고 용4는 옆으로 한 걸음 내디뎌 이장수의 종이 도인 화신을 보호했다.

노끈이 십여 개의 잔영을 만들어내며 천선경 대요괴 일고여덟을 동시에 휘감아 뒤로 확 던졌다.

주머니에서 엄청난 흡인력이 나와 대요괴들을 최대한 거두었다. 그러면서도 술 시중을 들던 여인들을 다치게 하지 않았을뿐더러 술잔과 그릇, 수저도 건드리지 않았다.

‘좋았어!’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비명과 성내는 소리가 끊임없이 귀에 들어왔다. 천선, 금선의 기식이 들끓고 주루 전체의 손님들이 모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것도 결정적인 순간에.

호응이라도 하듯 높은 누각 곳곳의 진법과 금제가 곧바로 가동되었다. 그러나 지붕은 강한 선력 파동 탓에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경지가 비교적 높고 눈치가 빠른 대요괴들은 노끈과 주머니가 등장했을 때, 이미 상황 파악을 하고 일어서서 적을 상대했다!

그러나 용2와 용3은 보물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보물을 꺼내는 순간, 이곳에서 가장 강한 심해 대요괴 둘을 찾아내 달려들었다.

그들은 뛰어난 신법과 정확한 공격을 펼쳐 심해 대요괴 둘을 잔영만 남겼다. 게다가 부적과 금제를 쓰고 선력을 집중하여 한 번에 훌륭한 술법을 폭발해내기까지 했다!

십여 명의 대요괴 중 늙은 요괴 둘은 상고 때 잔류한 요족의 잔당으로 경지가 높고 심오하며 장생도과가 있는, 심해에서도 엄청난 인물에 속했다. 그들은 노끈과 주머니를 피하고 달려드는 두 ‘여인’에게 크게 고함치며 보물을 꺼내 반격했다.

그러나 보물이 빛을 채 밝히기도 전에 그들은 두 여인의 손에 목덜미가 붙잡혔다.

홍황의 정식 버전 용 발톱이다.

용2와 용3의 손바닥에 용족의 비부(秘符)가 세차게 흐르면서 순식간에 늙은 요괴 둘의 원신과 요백을 봉해버렸다.

······

전체적인 싸움은 한쪽이 완전히 압도했다.

이곳은 홍황에서 유명한 방진이고 배경이 복잡했다. 금선경이 지키고 있고 타인과 싸우더라도 죽이지 않는다는 규칙만 아니었다면, 용2와 용3이 방에 있는 모든 대요괴를 찢어발겼을 것이다.

이장수는 즐겁게 싸움 구경을 했고, 강림은 혀를 내둘렀다.

달리는 토끼를 덮치는 매처럼, 격렬하게 내리치는 천둥처럼, 그의 빠른 손놀림은 용왕의 수행 호위로 손색없었다.

이런 걸 바로 진정한 격투기 고수라고 한다.

대요괴들도 진정 겁을 상실한 것인지 정체불명의 강적이 난리를 치는데 도망갈 생각은 않고 반격부터 했다.

요족들도 참, 일찍이 대요괴들의 실력을 간파했으니 그들 일행이 정면으로 싸운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걸까? 물론 용 사형제가 조금이라도 압박을 받았다면 이장수가 분명 계책을 바쳤겠지만 말이다.

반대편에선 가락이 짝퉁 오을의 어깨에 검을 찔러넣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배신자! 사아 언니가 그렇게 잘해줬건만 어찌 이곳에서 저급스러운 놈들과 즐길 수가 있어?!”

짝퉁 오을은 울고 싶었으나 목구멍까지 봉해진 터라 한마디도 내뱉을 수 없고 손가락 하나 꿈틀하지도 못하여 눈빛으로만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곁에서 눈웃음치던 여인들은 죄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곳곳에 풀썩 주저앉아있었다. 그녀들은 본디 경지가 높지 않은 터라 금선의 기식과 위압이 폭발할 때 놀라서 다리에 힘이 풀렸었고 지금은 숨도 제대로 쉬질 못했다.

이장수가 전음으로 오을을 진정시켰다. 드디어 이장수의 할머니가 등장할 순간이 왔다.

“아가씨, 진정하세요! 어쩌시려고 동해 용궁 2태자 전하를 다치게 하셨어요!”

“사아 언니 대신 앙갚음해준 것뿐이야! 인어족 공주가 어찌 저딴 인간을 마음에 둔 건지!”

그때, 이장수가 변장한 할머니가 갑자기 ‘엥?’하더니 인상을 썼다.

“아가씨, 전하의 기식이 어딘가 이상합니다. 어찌, 요기가 느껴지죠?”

“요기가 느껴진다고?”

가락은 시선을 고정했다. 옆에 있던 용1이 빠르게 짝퉁 오을의 장안법을 벗겨내자 요괴의 진짜 얼굴이 드러났다. 창백한 얼굴의 요족 청년이었고, 경지는 천선경이었다.

“가짜였어?”

용1도 연기에 가담하여 약간 과장되게 소리쳤다.

“어라?! 오을 전하가 아닙니다!”

짝퉁 오을은 연신 눈을 끔뻑이느라 눈물마저 흘러내렸다.

가락이 벌컥 성을 냈다.

“감히 형부인 척하다니! 정말 살려둬선 안 되겠구나!”

이 순간, 셀 수 없이 많은 선식이 이곳의 상황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가락이 검을 들고 요괴를 죽이려고 하자 누각 밖에서 별안간 누군가가 소리쳤다.

“멈춰요! 이곳은 규칙이 있습니다. 싸우면 안 됩니다!”

광채가 번쩍이더니 갑옷을 입은 수백 명의 호위병이 높은 누각을 둘러쌌고, 금선경 도사 두 명이 나타나 위압을 내뿜었다. 이 방진의 질서를 유지하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용 사형제가 함께 폭발시킨 위세가 바깥의 두 금선을 가볍게 뒤덮었다. 도사들은 곧바로 태도를 바꾸어 사죄하고는 다가와 자초지종을 상세히 물었다.

해명은 자연히 이장수의 몫이었다. 일행은 초대를 받고 동해 용궁에서 열리는 혼례에 참석하는 하객이라며 ‘공백’인 청첩장을 꺼내 증명했다. 그런 다음 자신들은 정체를 밝히기는 곤란하다고 에두르면서 이곳에 가짜 동해 용궁 2태자 오을이 있다고 말했다.

몇 마디 말로 천애성 호위들은 성 밖에 나가서 해결하는 건 어떻겠냐고 의견을 내놓았다.

이장수는 손쉽게 목적에 도달하긴 했으나 감회가 뭉클 솟았다.

‘소위 규칙이라는 건 약자를 구속하는 것에 불과하고 홍황은 주먹이 센 놈이 형님인 땅이야. 그래서 홍황에서 안정감을 찾고 싶다면 어느 정도의 실력과 세력을 갖춰야만 해······.’

음. 성인의 바짓가랑이를 꽉 붙드는 것을 비롯해 네 가지 기본 수칙을 한시도 잊지 말자!

사태는 아주 빠르게 수습되었다.

가락으로 변장한 오을은 거리에서 가짜 오을을 질질 끌고 성 대진 밖으로 향했다. 용족 고수들이 호송하고 수백 명의 호위병도 근처에서 따라붙었다.

지금부터는 극악무도한 사조가 역할을 발휘할 시간이었다.

그녀는 인파에 숨어서 ‘행인’의 시각으로 ‘눈꼴사납더라고요’ ‘내가 객관적으로 평가하자면’ ‘제가 원래 눈팅만 하는데요’ 등의 평을 하는 거리의 논객처럼 가짜 오을의 일을 거리와 골목에 퍼뜨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리와 골목의 각 부족의 수도자들이 성 동부에 모여들었다.

사람이 많은 만큼 온갖 이야기가 다 오갔으나 이장수와 강림이 여론의 추세를 은근히 통제하여 대부분 동해 용궁 2태자 오을과 인어족 공주 강사아의 ‘혼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성 밖에선 가락이 짝퉁 오을을 십 장 너머로 던졌다.

“사아 언니는 전서에 형부와 서로 의지하고 공경하고, 얼마나 사이가 좋은지도 말했었어! 그런데 네놈이 감히 우리 형부의 명성을 더럽히다니 용서할 수 없어!”

용1이 옆에서 법술을 불러와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키자 요족 청년은 대형 메기로 변해 온몸을 달달 떨었다. 가락은 검날이 아래로 향하도록 쥐었다. 단도에 선광이 감돌고 그녀는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메기의 머리를 베어버렸다.

이장수의 전음을 듣고 용1은 메기 요족의 시신을 선력으로 감싸 공중에 던진 뒤 잔해를 손바닥으로 터뜨려 큰 바다로 날렸다.

인파 속에 숨어있던 강림이 큰소리로 외쳤다.

“잘한다!”

참견하기 좋아하는 이들도 주위에서 소리치면서 장면은 다소 어수선해졌다.

이장수는 한 번 더 ‘가락’에게 전음으로 신신당부했다.

“상황이 끝날 때까지 긴장 풀지 말고, 도도하고 새침한 태도로 계속 대사를 이어나가세요.”

가락은 바로 뒤돌아 천상천하에 있는 수많은 사람 앞에 꼿꼿하게 섰다. ‘아리따운 얼굴’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오을은 아까 고정해둔 여인의 목소리로 외쳤다.

“난 이곳에서 친우 강사아를 대신해 명성을 바로 잡을 것입니다! 강사아는 내 형부가 될 동해 용궁 2태자 오을과 첫눈에 반하여 삼생(三生)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고 이제 사방의 친우와 귀빈을 초대하여 육례를 행합니다! 하나 오늘 요족이 형부의 명성을 더럽히고자 형부를 사칭하여 이곳에서 음주가무를 즐기면서 감추지도 않았으니 그 심보가 얼마나 악독한지 여기 계신 도우들도 함께 보시오! 전 형부의 명성을 더럽힌 이 요족을 죽여 용궁에 혼례 선물로 바칠 생각입니다!”

가락은 허리를 숙여 읍하고 뒤돌아 바닷속으로 뛰어들려고 자세를 취했고 여시위 넷도 뒤따랐다. 바로 이때, 뜬금없이 성 안에서 우물쭈물하며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락 선자! 잠깐만요!”

가락이 고개를 돌려보니 청년으로 보이는 인간족 청년이 성 안에서 뛰쳐나왔다. 그는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한참 쭈뼛거리다 이내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더듬더듬 말을 꺼냈다.

“가, 가락 선자는 이름이 어찌 되시오? 오늘 선자의 풍모를 보고 빈도 아, 아니 내, 내 진심으로 감동했소. 그······ 선자, 도려는 있으시오······?”

뭐?

가락, 아니, 오을은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인파 틈에 섞여 있던 강림은 웃음이 터지기 직전 얼른 입을 막고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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