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우가 해신의 화신이오?”
많은 참배객이 영남성(零南城)에 있는 해신 사당을 둘러싸서 구경하고 있다.
이장수의 노신선 종이 도인은 후원에서 돌아 나오자마자 구름을 몰고 다가온 담황색 도포 차림의 도사에게 문 앞에서 가로막혔다. 도사는 상당히 다급한 표정으로 이장수를 보자마자 물어왔다.
이장수는 수많은 고수를 보았으나 이렇게 성질이 급한, 아니 이렇게 초조해하는 이는 거의 본 적이 없었다.
“도우, 어찌 부르면 되겠소이까?”
“옥허궁 황룡이오. 도우는 해신이 맞소?”
황룡?
이장수는 도심이 절로 떨렸다. 종이 도인을 통해 눈앞에 키가 크고 마른 도사를 응시하면서 삼교 발전 대회에서 느꼈던 기식과 자세히 대조해보고 나서야 마음을 가라앉혔다.
“황룡 선배님이시군요. 무례를 범했습니다! 이곳은 속세 사람이 많으니 자리를 옮겨서 이야기하는 게 좋겠군요.”
“어서요. 급합니다!”
황룡 진인은 앞장서라고 손짓하고 거의 이장수를 쫓아내다시피 해서 황급히 후당으로 갔다.
이곳 묘축과 곰 촌락 신사들이 사당에서 잡일을 하는 이들까지 대동하여 참배객들을 대전 앞으로 내보내고 후당으로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막았다.
후당 안, 이장수는 황룡 진인을 가까이서 살피며 속으로도 감탄이 절로 일었다.
봉신에 묶인 인물이자 성인에게 친히 가르침을 받은 유일한 용족이며 성인 아래 어떤 고수와 겨뤄도 가까스로 ‘4:6’인······ 용 혈통 계승자?
참고로 황룡이 4로 약세다.
얼마 전, 이장수는 황룡 진인을 찾아가서 결정적인 순간에 용족을 대신해 나서도록 설득해볼까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되면 용족의 적잖은 부담을 해소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찾아가기도 전에 제 발로 찾아올 줄이야.
이장수도 질질 끌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리 안절부절못하시는 걸 보니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아, 저는 남해 해신으로 이곳에서 향불을 거두고 있지요. 면목 없습니다.”
“향불 공덕은 좋은 것인데, 뭐가 면목이 없단 말입니까? 도우, 사실 나, 나는······ 음, 조공명 사제가 보내서 왔소!”
이장수는 입가를 파르르 떨었다.
“설마 공명 선배께선 또 다른 사람 앞에서······ 쓰러지신 겁니까?”
황룡 진인은 화들짝 놀랐다.
“그것까지 추산해내다니 과연 해신이로군! 맞소, 또 쓰러졌소!”
“피도 토하셨고요?”
“오, 그렇소······.”
“아놔!”
이장수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자해공갈 사기에 중독돼서 하루라도 자해공갈을 치지 않으면 온몸에 가시가 돋는 것이냐며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나 그가 무어라 말할 새도 없이 황룡 진인이 빠르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공명 사제는 나를 도와주려고 어쩔 수 없이 서방교 도우 두 명을 때렸소. 그런 다음에 쓰러졌고······.”
“예? 공명 선배님께선 의로운 일을 하고자 그런 방식을 쓰셨다는 겁니까?”
“그렇소!”
황룡 진인은 진지한 얼굴로 계속 말을 이어갔다.
“이제 생각해보니 서방교 사람들은 보물로 날 속이려고 했었소! 나는 본디 보물이 별로 없거든요. 저들의 의도가 얼마나 사악합니까! 도우, 공명 사제는 내게 묘책을 구해오라고 했소. 속히 묘책을 일러준다면, 나와 공명 사제는 평생 도우에게 고마워하겠소.”
어쩐지, 진인께선 약간······ 순진한 것 같지?
착각이겠지, 착각일 거야.
황룡 진인은 속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여기자. 홍황에 정말로 순진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홍운 도인(紅雲. 홍황 시대 천성이 선량하고 교우 관계도 넓었으나 동시에 곤붕에게 기습 공격으로 목숨을 잃은 불운한 인물)은 그저 홍황 태고 시기에 아름다운 사고일 뿐이리라.
이장수가 일어서서 천천히 거닐자 묶은 백발이 가볍게 나부꼈다.
조금 망설여졌다. 본능적으로 이 인과를 피하고 삼선도에 가서 도움을 요청하라고 황룡 진인을 내보내고 싶었다. 그러나 성인의 명령을 받들어 용족상천 임무를 꾀하고 있는 터라 황룡 진인과 이 기회에 교분을 맺어두면 적잖은 효과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 공연히 조공명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닐 테고. 그렇다고 조공명에게 호감을 사는 것 또한 좋은 결과는 아닐 터.
그리고······.
됐어. 서방교와 조공명에게 자해공갈 사기를 어떻게 푸는지, 이 수법의 치명적 결함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줄 때가 온 거야. 이 기회를 빌려 조 대인이 앞으로 이 수법을 철저히 포기한다면 나도 이 일의 인과를 완전히 끊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장수는 앞뒤 상황을 고려해보고는 이를 악물고 모처럼 본심을 위배한 선택을 했다.
“황룡 선배, 일단 같이 갑시다. 가는 길에 이 일을 자세히 얘기해주세요!”
“아니······.”
황룡 진인은 한참 머뭇거렸다. 이장수가 함께 간다면 괜히 이장수를 인과에 끌어들이는 게 아니겠는가.
“도우, 그냥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주기만 하면 되오.”
“워낙 복잡하게 얽힌 일입니다. 이따가 제가 선배님 소매에 숨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테니 선배님께선 저를 가려주세요. 조용히 공명 선배와 전음을 나누겠습니다.”
“알겠소!”
황룡 진인은 한 치의 의심도, 우려도 없이 이장수의 제안에 동의했다.
이장수는 몸을 한 번 흔들고 두툼한 종이 도인으로 변해 황룡 진인의 소매 안으로 들어갔다. 황룡 진인은 당황했다가 이내 감탄했다.
“도우는 이렇게 현묘한 화신까지 해내는군요. 처음 봅니다.”
“부끄럽습니다.”
황룡 진인은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선력으로 이장수의 종이 도인 주위를 보호한 다음 번쩍, 하고 후당을 빠져나와 하늘로 돌진했다. 담황색 빛으로 변한 그는 남해 깊은 곳으로 질주했다.
구름과 안개를 넘어 눈 깜짝할 사이에 만 리를 지나쳤다.
황룡 진인은 가는 길에 자신이 겪었던 일을 빠르게 해신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이장수는 말없이 들으며 내심 감탄했다. 서방교는 황룡 진인을 용족 분쟁에서 벗어나게 하고, 천교를 이곳에 끌어들이는 일을 피하고자 계략을 꾸민 것일지도 모른다.
역시, 서방교는 오을의 혼례가 있는 날 용족에 심한 타격을 입히기로 마음먹은 것이군.
문정 도인이 알고 있는 계획은 서방교 전체 계획에서 한 부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아무래도 새로 술책을 세워야 안심할 수 있을 듯하다.
황룡 진인의 실전 전투력이 어떤지와 관계없이 봉신대겁에서 고수 실력의 계량 단위가 되었다는 건, 황룡 진인의 경지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높고 깊다는 걸 의미한다.
말하는 사이 두 사람은 어느새 눈에 잘 띄지 않는 남해 대진에 이르렀다. 황룡 진인은 대진을 깨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장수는 이곳의 상황을 눈으로 훑어보며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성인 제자 셋이 해수면 위에 쓰러져 있었다. 하나는 피를 토해내고, 두 사람은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이루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기이하고 묘하게 잘 어울리는 화면이었다.
조 대인은 혼자 두 명의 적을 상대하면서도 여전히 우위를 점하여 겉보기에 두 사람보다 얼마나 더 ‘처참’한 지 모를 몰골을 하고 있었다.
‘나, 장경 도인은 그대를 홍황의 자해공갈 대부로 인정하겠소!’
흐음, 본론으로 들어가자, 본론.
······
이장수가 조공명에게 제공한 자해공갈 사기 수법에는 중대한 결함이 존재해왔다. 이 결함은 한 가지가 아니었다. 따라서 조공명과 경소가 누차 이길 수 있었던 건 두 사람이 강해서였지,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진작에 재가 되었을 것이다.
서방교의 두 고수가 자해공갈 사기 방법으로 황룡 진인에게 손해를 입히리라 여겼던 것도 두 사람이 합심하면 황룡 진인을 억누를 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조공명이 등장하고 나서는 사실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황룡 진인이 증인이 된다면 상대는 자연히 포기하고 물러났을 것이다.
그러나 조공명은 도문 사람이 손해를 보는 꼴을 가만히 지켜보지 못하고 홧김에 두 사람을 때리면서 상황은 수습하기 힘들 지경으로 변질했다.
저쪽은 격분한 나머지 이대로 일을 마무리 짓길 원치 않으면서 또 도행이 깎이고 진정한 피해자가 되어버렸고 어느 틈에 난도가 상승했다.
하필이면 성인 제자는 때려죽일 수도 없고 세력에 의지할 수도 없다.
오는 내내 이장수는 몇 가지 수법을 계획했는데, 모두 자해공갈 사기와 반대되는 방법이었다. 이곳에 도착하고 나서는 가장 안전한 방법을 선택하여 황룡 진인과 조공명에게 몰래 전음했다.
이 계획의 이름은 ‘대들보를 훔쳐 기둥으로 바꾸고 솥 밑에 타고 있는 장작을 꺼내 끓어오르는 것을 막듯, 개념을 슬쩍 바꿔치기 해서 천도에 밝힌 맹세를 터드리는 방법’이었다!
속닥속닥, 중얼중얼.
이장수는 황룡 진인이 망설이는 걸 보고 한 번 더 전음했다.
“정말로 이번 일을 처리하지 못하면 선배님과 공명 선배가 곤란해질 수도 있습니다. 서방교는 결코 만만치 않은 이들입니다.”
황룡 진인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서방교 두 사람에게 계략을 꾸미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난 공명 사제를 곤경에 빠뜨릴 수 없소!”
황룡 진인은 이장수의 말대로 분개한 표정을 지으며 선뜻 앞으로 다가가······ 조공명을 부축했다.
조공명은 약간 답답한 상태였다. 조금 전 해신이 전음으로 입을 열지 말고 황룡 진인이 해결하도록 믿고 조용히 상태 변화를 지켜보라고 말했다.
하여 그도 아무렇지 않게 일어서서 황룡 형님이 어떤 연기를 펼치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어휴!”
황룡 진인은 물결을 밟으며 서방교 고수들 앞으로 다가가 고개를 쳐들고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언제 두 분께 잘못을 한 적이 있소?”
두 사람은 눈을 깜빡이기만 할 뿐, 미동도 할 수가 없었다.
“공명 사제, 정해신주를 거두시게.”
“예?”
조공명은 영 탐탁치 않았으나 이장수가 전음으로 한 말이 있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정해신주를 거두었다.
서방교 고수들은 벌떡 일어서더니 노기 어린 눈으로 조공명을 노려봤다.
“조공명! 감히 내 도행을 망가뜨리다니. 오늘 일은 필시 제대로 짚고 넘어갈 것이다! 벽유궁으로 가자!”
“이리 힘 뺄 필요 없소이다. 두 분과 공명 사제는 나와 함께 옥허궁으로 가면 되오. 사부님께 이 일을 처리해달라고 부탁하겠소.”
두 사람은 당황스러웠다.
어, 어찌······ 공식대로 이어지지 않는 거지? 서로 누가 더 처참한지 겨룰 때가 아닌가?
황룡 진인은 흰 구름을 만들었다.
“다들 오르시오. 스승님의 옥 조각상 앞에서 오래 꿇어앉아 왔으니 오늘도 스승님을 모셔서 이 일의 결단을 내려달라 부탁할 것이오. 이곳에서 나는 대도 맹세를 하겠소. 공명 사제가 두 사람을 다치게 한 일은 나 혼자 감당할 것이고, 스승님께서 날 때려죽인다고 해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우르릉. 천둥소리가 울렸다. 천도가 제멋대로 감응한 것이다.
서방교 고수들은 바로 이맛살을 한껏 구겼다. 언제부턴가 주도권을 잃은 것이다.
황룡은 지독하게 눈치가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째, 조금 전이랑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지?
한편 황룡 진인의 소매에 숨어서 이장수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자해공갈 사기를 막을 최고의 방법이란 바로 경찰에 신고를, 흐음, 성인을 찾는 것이다.
자해공갈 공식은 적을 때려도 이기지 못하고, 말을 꺼내도 창피를 당할 것 같고, 괜히 일을 크게 만들어서 남들이 모두 알도록 떠벌리고 싶지 않은 미묘한 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이 공식을 깨고 싶다면 자해공갈 사기를 당하는 사람이 자폭하면 자폭하지, 억울함을 당하고 싶지 않다는 성정이라는 걸 사기를 치는 이가 믿게 만들면 된다.
오늘은 서방교 고수 두 명이 계략을 꾸민 것이고, 그들이 어떻게 성인 앞에 가서 성인을 속일 수 있겠는가?
그때 가서 살짝 흐름을 타고 이 일을 서방교 고수 두 명이 자해공갈 사기를 쳤으나 기술이 부족해서 피해자의 친우에게 맞고 다쳤다고 규정하기만 하면 된다.
그래봤자 떨어지는 건 서방교 성인의 체면이리라!
그리고 서방교 두 성인은 말발에서 밀리므로 문을 걸어 닫고 제 문인 제자를 혼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루한 차림의 두 도사는 눈이 마주쳤다. 저마다 눈에 두려움이 깃들어있었다. 그들도 이 부분까지 생각한 것이 분명했다.
황룡 진인은 이장수의 당부대로 한 마디를 더했다.
“두 분도 함께 갑시다. 아니면 서방 영산과 바다 밖 벽유궁, 심지어 천정 도솔궁에 가도 좋소. 그렇게 하는 게 성가시다고 여겨진다면 우리 셋이 대도 맹세를 하는 건 어떻소? 내가 먼저 하겠소······.”
황룡 진인은 목을 가다듬고 하늘을 향해 멀리 절을 올렸다.
“제자 황룡, 하늘에 청하노니 오늘 제자가 두 명의 도우를 일부러 다치게 했거나 전에 계략을 꾸민 일이 있다면 자소신뢰를 내려 벌하여주십시오!”
천지간은 고요했다.
결정적인 단어는 ‘전’이었다.
황룡 진인은 고개를 돌려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도우들 차례요.”
“우리가 언제 맹세를 하겠다고 했소?”
“황룡 도우, 우린 그저······. 됐소, 급한 일이 있어서 오늘 일은 없던 일로 합시다. 이만 가겠소!”
서방교 고수들은 곧장 패배하여 물러났다.
“기다리시오!”
조공명은 이장수의 전음을 듣지 않고도 어떻게 황룡 진인의 연기에 보조를 맞춰주어야 할지 깨닫고 바로 일어섰다!
“오늘 맹세를 하지 않고 간다는 건 혹 마음속에 꿍꿍이가 있는 것이오?”
두 사람은 안색이 확 변하여 둔술을 펼쳐 도망가려고 했다. 하나 건곤은 이미 완전히 봉쇄되었고 정해신주 24개가 곳곳에서 나타나 빠르게 진압해왔다.
황룡 진인은 이를 보며 살짝 어안이 벙벙해졌으나 이장수가 다시 한번 귀에 전음했다.
“선배님, 이제 공명 선배님께서 어떻게 처리하는지 구경만 하면 됩니다.”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인 그는 옆에서 잠자코 관찰하며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다.
반 시진 후, 서방교 고수 두 명은 실의에 빠져 한숨을 내쉬고 각자 새로운 버전의 대도 맹세를 읊었다. 오늘 일은 비밀에 부치고 앞으로 오백 년 동안 밖을 돌아다니지 않기로 약속하는 내용이었다.
오늘 남해에 드리운 천도의 기운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