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선문 산문 밖, 하얀 구름이 다섯 사람을 싣고 동쪽으로 날아갔다. 구름은 빠르고 안정적으로 날아 경치가 아름다우면서 흉악함이 없는 노선을 택했다. 구름을 모는 이는 딱 봐도 나이가 지긋한······ 금선이었다.
도선문 장문은 친히 구름을 몰아 지부로 가면서 쉬지 않고 지부에 관해 소개했다. 예를 들면, 어떻게 해야 빠르게 유명계로 갈 수 있는지, 유명계와 지부는 어떤 관계인지, 지부는 또 어떤 금기사항이 있는지 등이었다.
“지부는 육도 윤회를 관장하고, 음사는 모든 혼백의 귀착지로 평범한 장소는 아니다. 그러나 지부 또한 홍황의 세력 중 하나인지라 자연히 다른 세력의 체면을 봐주지. 웬만해선 누군가가 가서 부탁하면 살짝 빼는 척하다가 이익을 얻고 짐짓 인심 쓰듯 천도가 부여한 권한으로 생명의 윤회를 조종한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가 없어. 도선문은 인교 도승이니 체면을 당연히 봐줄 거다.”
계무우는 앞에서 뒷짐을 지고 서서 당당하면서도 차분 말했다. 장문님이 이토록 언변이 좋은지는 문에서 오랜 세월 수행해온 망정 상인도 처음 알았다. 다른 일은 지금 쓸데없이 말하기 곤란한 터라 그도 경청하는 자세만 취할 뿐이었다.
그리고 강림은 무거운 마음을 안고 망정 상인의 곁에 서 있었다. 미간에 근심이 담긴 것이 아까와 다를 바 없이 초조한 모양이었다.
슬슬 지부의 내력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던 계무우는 이내 유명계의 진화까지 뻗어나갔다.
“······.”
장문님, 천지개벽부터 말씀하는 건 어떠세요? 지부는 분명 상고의 일이 아닙니까.
“유명계가 어디에서 왔는지 이야기하려면, 피바다를 이야기해야 하고 그렇다면 천지개벽할 때부터 시작해야 한다······.”
“······.”
그럼 됐습니다.
이장수는 항렬이 가장 낮으므로 자연히 구름 제일 뒤편에 서 있었다. 점점 더 흥에 차오르는 장문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장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석 자 뒤, 그와 나란히 서 있는······ 유금현아를 쳐다보았다.
다른 건 다 알겠는데, 어째서 유독도 우리와 함께 유명계로 가는 거죠? 유금현아는 지부 음사의 어느 염라, 판관과 친척 관계라도 됩니까? 아니면 출중한 외모로 이번 일의 난도를 낮출 수 있답니까? 장문님,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어째서 이리도 아리송한 일을 하시는 거죠?
유금현아가 왔을 때, 폐관하고 깨달을 때의 기운이 약간 남아있었던 거로 보아 장문님께 즉흥적으로 불려 나온 게 분명해!
이장수의 시선을 느꼈는지,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고 있던 유금현아는 눈꺼풀을 잘게 떨더니 이내 두 눈을 번쩍 떴다. 새하얀 목덜미가 살짝 움직이고, 반짝 빛나는 눈동자에 막연함, 호기심, 온정, 맑음을 담고서 이장수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마치 크게 놀란 어린 사슴처럼 옆으로 시선을 피하면서 이내 민망함과 불안함, 자괴감, 기쁨을 남겼다······. 흠, 일부 증상이 폐관하면서 눈에 띄게 더 심해졌군!
이장수는 쓰게 웃었다. 장문님, 설마 유독 사매와 제게 중매를 서 줄 생각은 아니시죠?
‘금선겁이 올 뻔한 밤’ 목격자 중 하나인 유금현아는 이장수의 ‘진상’을 알게 되고, 종이 도인이 ‘바람이 빠지던’ 전 과정을 본 사람이었다. 하여 이장수도 유금현아를 완전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사실 이장수는 ‘귀식평기결’로 꾸며낸 영식으로 옆에 있는 사매를 쳐다보았다. 유금현아는 기질이 출중하고 외모가 빼어나지 겉모습에선 흠잡을 데가 전혀 없었다. 특히 선인이 된 후 선령 기식이 감돌고 자체적으로 부드러운 빛을 쏘는 특수효과까지 갖추게 되지 않았는가.
정직한 성격이 성가시긴 하지만, 그건 사실 장점으로 칠 수도 있다. 남녀 사이의 일에선 빼어난 외모만 아니었어도 분명 호감이 있었을 것이다!
겉모습과 성격으로 타인을 비교하는 건 적절하지 않지만, 따지고 봤을 때 령아는 유금 사매보다 부족하지도 않았다. 두 사람을 중매서는 일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란 말인가?
‘중매쟁이’라는 길을 깊이 걸어가고 아는 게 많아질수록 더할 나위 없이 복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이 붉어지고 버들이 푸르를 때가 오니 사랑에 빠지지 않은 남자 여자 없구나. 봄날 달밤의 한때는 천금의 값어치가 있고, 천금은 다 써버려도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장수는 장문님의 뒷모습을 보며 은근히 탄식할 때, 유금현아의 전음이 귀를 파고들었다.
“장수 사형,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이장수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음으로 대답했다.
“안녕하였네. 수행은 어떠한가?”
“경지를 공고히 다진 후 조금 돌파했습니다.”
수행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유금현아는 순간 평소 엄격한 모습으로 돌아와서는 전음으로 상세히 이야기했다.
“지금은 진령 불멸의 이치를 깨닫고, 태청무위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백 년 정도 더 지나면 다음 경지를 돌파하여 진선경 중기에 도달할 수 있을 겁니다.”
이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마터면 ‘대단해!’라는 말을 입밖으로 툭 내뱉을 뻔했다.
유금현아는 입술을 살포시 말고 전음했다.
“사형은 경지를 돌파하셨습니까?”
이장수는 씩 웃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돌파를 할 뻔하긴 했는데, 내가······ 끊어버렸지.
경지에 관한 이야기를 끝내고 나니 순간 두 사람 사이에 대화 주제가 없어졌다.
이장수는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기로 했고, 유금현아는 시시각각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가만히 서서 일행의 얼굴마담이 되었다.
그나저나 현재 사해의 상황은 갈수록 나빠졌다. 구름이 동해 위를 빠르게 지났다. 몇만 리를 나는 사이 이장수의 선식이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몇 군데를 포착했다. 바닷물 속 전쟁의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눈에 들어오는 장면에선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용족과 해족이 서로 싸우고, 해족 내부에서도 입장이 다른 이들끼리 서로 죽이기도 했다. 가장 불운한 건 아무 걱정이 없고 영지도 없던 바닷속 생명이었다. 그 바람에 동해와 남해와 인접한 어촌에선 모처럼 풍년이었다.
예전 같으면, 그물을 한 번 던졌을 때 물고기 열몇 마리를 낚아도 수확이 좋은 편이었다면 지금은 그물을 한 번 던지면 자주는 아니고, 간혹 희귀한 모양의 녀석들을 낚기도 했다. 그 덕에 해신 사당의 향불은 더더욱 왕성해졌다.
‘지부로 향하는 도선문 일행’이 동해를 절반 이상 횡단했을 때쯤 마침내 망정 상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장문님, 근래 용족이 화를 당하여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사해 곳곳이 태평하지 못하다고요.”
계무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우리 도선문과 아무 관련이 없으니 걱정할 필요 없네.”
아무 관련이 없다고요?
이장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주구 사숙의 죄악보다 더 크게 관련이 있을걸요······.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를 보면서 고개를 들지 않았다면, 그들은 마치 정지된 그림처럼 보였을 것이다.
도선문 일행은 동해의 동쪽, 천주의 아래로 향했다. 그곳에 유명 지부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 있었다. 홍황 삼계는 전체적으로 고기 패티를 여러 장 놓은 것과 같았다. 오부주가 주요 부분이면, 구중천 천궐은 그 위쪽에 세워져 있고, 유명계는 오부주 아래에 붙어 있었다.
지부는 어디에서 왔냐고?
반고가 도끼로 암흑을 내리치면서 맑은 기운은 하늘이 되고, 탁한 기운은 땅이 되었다.
혼탁이 스스로 아홉 개의 더러운 샘을 낳았고, 넘실대는 피바다에 유명이 세워졌다.
명하(冥河) 조사가 두 개의 검을 낳으니 원도(元屠)와 아비(阿鼻)다.
여와를 흉내 내 생명을 창조하려 했으나 유감스럽게도 신통력이 미치지 못했다.
대덕 후토(大德后土)가 윤회를 말하고 명하는 방해하여 천벌을 받았다.
지부 음사는 여기서 시작되고 피바다가 반쯤 마르니 수라가 울었다.
대충······ 이런 이야기다.
······
일행을 데리고 빠르게 동해를 지난 장문 계무우는 웅장하고 끝이 없는 ‘천주’를 발견하고는 바로 그 밑으로 들어갔다.
유명계는 홍황 대지 깊은 곳에 파묻혀 있다. 대덕 후토가 육도 윤회를 만들어낸 후 유명계 전체를 억누르면서 유명계로 들어가는 통로 절대다수가 봉쇄되었다. 지부로 가장 빨리 가는 노선이자 가장 널리 알려진 지부 통로는 동서남북 사대 천주 근처에 있는 심해 열곡 안이다.
이 외에도 지부 귀차(鬼差)가 오부주와 삼천세계를 드나드는 길이 있으나 이 길은 천도의 힘이 지키고 있는 탓에 연기사가 함부로 난입할 수 없다.
도선문 일행은 웅장한 천주에 도착하기 전에 아래 해수면에 나타난 거대한 소용돌이를 보았다. 계무우는 기침을 하고 선광으로 다섯 명을 감싼 후 아래 소용돌이로 빠르게 내려갔다. 심해의 틈새를 통과하고 용암 호수를 뚫고 위험천만한 곳들을 지나 아래로 몇만 길이인지도 모를 만큼 가라앉았다.
참, 지부에서 돌아온 인간족 연기사를 만나기도 했다. 그들도 선물을 들고 ‘일 처리’를 부탁하러 간 것이리라.
이번 일정에 위험은 없었다. 무릇 진선경이라면 ‘관문’들을 넘고 회색 안개로 감싸진 꼬불꼬불한 오솔길인 유명로(幽冥路)에 도착할 수 있다.
이장수는 느닷없이 돈오할까 봐 두려운 나머지 오는 내내 아무것도 구경하지 않고 생각도 하지 않았고, 가는 길만 기억했다.
유금현아가 전음으로 물었다.
“사형은 이곳에 몇 번이나 와보셨습니까?”
“처음이다. 나도 수도한 지 몇백 년밖에 되지 않아서 아직 안 가본 곳이 상당히 많아.”
“그럼······.”
유금현아는 이장수를 응시하며 붉은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전음으로 물었다. 자연스럽기 그지없는 어조로.
“기회가 된다면 저와 함께 곳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하시겠어요?”
“······.”
이건 또 무슨 수작이지?
갑자기 고백한다고?
유금현아의 성격을 열 번 넘게 정리해본 이장수로선 ‘혹시 허수아비는 아닐까’하는 황당무계한 생각마저 들었다!
다행히 유금현아는 자신이 한 말이 실례가 되었다는 걸 즉시 깨달고 확 붉어진 얼굴로 입을 열고 허둥지둥하며 해명했다. 부드러운 목소리가 선광 안에서 맴돌았다.
“장수 사형······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결코 분수에 넘치는 생각을 품지 않았아요! 그저 사형과 곳곳을 유력하며 견식을 늘리고 깨달으며 수행하고 싶을 뿐입니다!”
이장수는 속으로 헛웃음을 쳤다.
그래. 이게 내가 아는 유독이지.
세 쌍의 눈이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두 사내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고, 마음을 졸이고 있던 강림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령아의 연적인가?
령아를 위협하는 수준이 주구보다 훨씬 큰 것 같군!
‘소경봉 이번 세대는 관계가 어찌 이리도 복잡한 거야······.’
강림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으로선 다른 일에 신경 쓸 심사가 없는 터라 계속 환강우의 일을 걱정했다.
계무우는 지부에 몇 번이나 왔다고 하더니 정말로 길을 잘 알았다.
꼬불꼬불한 오솔길에 들어선 계무우가 왼손으로 아래를 누르자 순수하면서 차가운 안개가 빠르게 모여들어 회색 구름을 만들어냈다.
회색 구름은 다섯 사람을 아래서 받쳐 올리고는 오솔길을 따라 미친 듯이 질주했다. 불과 잠깐 사이에 끊임없이 펼쳐진 짙은 안개에서 날아 나온 이들의 시야는 거대하고 시꺼먼 산으로 가득 채워졌다.
산의 모양은 돌비석과도 같았다. 견고한 흑석 위에 핏빛 붉은색으로 복잡한 글씨가 크게 쓰여 있었다.
“유명동에 도착했다. 내리자.”
문득 전생에 버스에 올라탔다가 목적지에 도착한 기분이 들었다.
장문님께서 ‘하차 시 태그하세요’라고 말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정말로 ‘삑’하고 소리가 날지도 모를 일이다.
······
이장수의 종이 도인이 유명계에 도착했을 무렵, 천정 동천문(東天門) 앞.
천문을 지키는 천병 수천 명이 저마다 긴 창을 들고 서 있었고, 그들의 시선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구름 길에 모여있었다. 그곳에는 도사 몇 명이 영준한 청년 도인 하나를 둘러싼 채 끊임없이 무어라 말하고 있었는데, 청년 도인은 아주 단호한 눈빛을 한 채로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 나갔다.
“소각주, 천애각을 돌봐야 하실 분이 어찌 천정의 장병이 되겠다는 겁니까?!”
“부인께서 아시면 얼마나 속상하시겠어요!”
“천정이 뭐가 좋습니까? 앞으로 차근차근 수행하시면 소각주께선 장생도과를 얻고 가업을 계승할 수 있습니다!”
“그만하라!”
변장은 빽 소리치고는 고개를 들어 무수한 상운을 조각한 천문의 백옥 기둥을 응시하며 눈을 반짝였다.
“판에 박힌 수도 인생은 필요 없다! 정해진 도는 나의 도가 아니야. 나의 도는 내 발아래에 있으니 한 걸음씩 걸어가며 이뤄낼 것이다! 천정, 이곳에 내 꿈이 있어!”
이 말에 말문이 막힌 도사들은 순간 무어라 설득하면 좋을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변장은 걸음을 옮겨 어느새 천문 앞에 이르렀다.
그리고 변장의 말을 듣은 천병들은 벌써 감동 어린 표정을 지었다!
이 청년 도인은 얼마나 패기롭고 고결한 선인의 삶을 추구하는가!
천문 안에 있던 장군들은 서로 마주 보며 눈에 불을 켰다.
천정에 인재가 찾아온 것인가?
바로 이때, 한 도사가 참지 못하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소각주! 그게 무슨 꿈입니까!”
변장의 두 눈은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선자가 내 꿈이다! 이곳에서만 내 꿈을 찾을 수 있어!”
“대체 소각주의 꿈은 몇 년에 한 번 바뀌는 겁니까! 천애각에 여인이 차고 넘치는데, 소각주께선 한 번도 꿈을 이루지 않으셨습니다!”
“소각주의 한 마디면 얼마든지 꿈은 이룰 수 있어요! 그것도 종류별로 다양하게, 절대 중복되지도 않게 말입니다!”
헐······. 천병과 장군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한 장군이 흰자위를 번뜩이며 천문 앞에 있는 병사들에게 전음으로 몰래 명령을 내렸다.
변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동천문 앞으로 가서는 공수하며 소리쳤다.
“연기사 변장, 특별히 천정에 의탁하러 왔습니다!”
“꺼져!”
천병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높여 분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