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정거. 서른여 명의 도선문 연기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주우시가 망정 상인의 앞에 꿇어앉았다.
선인 앞에 세 번 고두하여 인간 세상과 작별했다.
망정 상인이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에 선광이 만들었다. 주우시의 머리 위에서 가볍게 세 번 두드려 혜근(慧根)을 깨우고 오성을 늘려주었다.
망정 상인은 엄숙한 표정을 유지한 채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너는 내 열 번째 제자다. 수행에 전념하여 일찍이 선인이 되어 도를 이루려무나. 선로가 안녕하고 장생하길 바란다. 이제부터 도선문 문규를 받들고 인교 선종 소속이 되었으니 문풍을 욕보이는 일은 하지 말아라.”
수차례 연습했었던 주우시는 다시 고두하고 낭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자, 삼가 사부님의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
“그래.”
망정 상인이 손짓하자 주의가 앞으로 다가왔다. 주의가 보의 한 벌과 선보 단검 두 자루, 수납 자루 세 개를 올렸다. 보의 위에는 도선문 제자의 입문 공법을 비롯해 도선문 문규가 기재된 옥패가 있었다.
주우시가 입문 선물을 받고 나자 아홉 명의 사형, 사저가 다가와 그녀와 서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각자 선물도 준비했다.
이장수는 이 광경을 지켜보며 감회가 새로웠다.
사형과 사저가 많으면 첫 대면 선물로도 소소하게 돈을 벌 수가 있군!
령아가 은근히 쳐다보는 시선을 느끼며 이장수는 입꼬리를 삐죽거렸다가 고개를 돌려 사부님의 표정을 관찰했다.
사부님은 현재······ 아주 감동한 상태였다. 단순한 그런 감동 말이다. 사부님은 반대편 구석에 서 있는데, 강림의 뒤를 따르며 남들이 관심을 주지 않는 틈에 손을 들어 눈가를 닦은 후 미소 띤 얼굴로 시끌벅적한 상황을 지켜봤다.
이장수는 조금 고민하긴 했으나 이런 일에서 사부님께 좋은 계책을 내주기란 쉽지가 않았다.
사부님을 설득할 때 했던 말처럼 사백의 환생은 순리에 맡길 수밖에.
지금에 이르러 사부님의 입장에선 큰 아쉬움은 사라진 셈이었다.
지선······.
마음속으로 읊조려본 이장수는 돌연 지삼선(地三鮮. 땅에서 나는 세 가지 재료로 만든 요리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 가지, 감자, 피망을 볶거나 튀기고 양념한 음식)의 식감이 그리워져서 령아에게 전음으로 주문을 넣었다. 이쪽의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주 씨 선인들은 소경봉에서 열리는 축하연에 참석할 예정으로 오늘의 주방장은 령아와 웅영리였다.
주우시의 입문 예식이 끝나고, 장문은 장로들을 데리고 다가가 망정 상인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천정과 용족 출정에 관한 일로 바쁜 이장수는 령아에게 전음으로 당부한 다음 조용히 망정거를 빠져나왔다. 그러나 이제 막 구름을 몰아 파천봉에서 날아 나왔을 때, 주오가 뒤에서 쫓아왔다.
“장수야! 잠깐만 기다려보아라!”
이장수는 구름을 멈춰 세우고 뒤돌아 인사를 건넸다.
“사백, 어찌 이리 급히 오십니까. 혹······ 단약이 또 모자랍니까?”
“단약은 충분하다, 넉넉해!”
주오는 멋쩍게 웃는가 싶더니 이장수의 구름 위로 뛰어올라서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너와 상의할 일이 있어서 그런다. 혹시 나랑 네······ 흠, 네 사부가 속세에서 잡아 온 여우 요괴를 기억하느냐? 매술로 우리를 적잖게 성가시게 했던 그 요괴 말이다.”
“기억합니다. 지금껏 지맥 아래에 억눌려있지 않습니까?”
“그럼 그 요괴가 공덕의 힘을 지니고 있었던 것도 기억하느냐?”
이장수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오의 말을 끊지 않고 한 번에 다 말하라고 눈짓했다.
“최근 몇 달 사이에 동승신주와 중신주 곳곳에 있는 요족 세력이 그 여우 요괴를 찾고 있다. 외출한 집사들이 가져온 소식에 의하면 그 세력이 찾는 여우 요괴의 외모와 실종된 장소가 우리가 잡아 온 그것과······ 완전히 같더구나.”
주오의 말을 들으며 이장수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사백이 말씀하시는 세력은, 강합니까?”
“강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 세력의 배경이 이래저래 뒤엉켜서 복잡해. 중신주에서도 약간 이름이 있고 말이다. 세력의 배후는 여와궁에서 성인의 시중을 들던 시녀가 있고, 상고 인간족이 거의 멸족했을 때 좋은 마음으로 인간족 불씨를 거둬들인 요족 고수도 있다. 그리고······ 음······ 우리 인간족 선현 중에 삼천 명의 후궁을 누린 제군이 계신다. 그 부족 뒤에 두 인간족 선현이 총애하던 첩이 서 있다. 우리가 지난번에 잡은 여우 요괴가 그 선현과 친척이나 친우 관계가 있다더구나. 더군다나 요족과 인간족의 분쟁에 끼어든 적이 없고, 줄곧 세상을 피해 수행한 세력이라 대다수 선문들이 그들의 체면을 봐주고 있고.”
선현······ 후궁 삼천······ 헌원 황제?
주오의 말을 듣고서 이장수도 골이 아파왔다.
그나저나 헌원 선생님의 삼천 후궁은 구성 성분이 어째서 이리도 복잡하단 말인가?
각 부족의 미녀를 수집하지 않으면 수행에 속박이 가미되기라도 하는 것인가?
미지의 영역이다, 미지의 영역이야.
“그전에는 어찌 찾는 이가 없었을까요?”
“어디선가 수행한다고 여겼다가 근래에 실종됐다는 걸 깨닫고 연기사에게 붙잡혔다는 사실을 추산해낸 모양이다. 당시에 바로 죽이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지금 일이 얼마나 커졌겠느냐.”
“전에는 이런 세력이 있다는 걸 몰랐나요?”
이장수의 물음에 주오는 슬쩍 한숨을 내쉬며 설명해주었다.
“우리 도선문은 중신주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는 터라 전에는 이런 방면으로 확실히 고려하지 않았었다. 문파 내 장로님 몇 분이 이 일을 알고 계시는데 약간 진퇴양난이야. 그 여우 요괴를 바로 풀어준다면 괜히 인교 도승의 체면을 떨어뜨리게 되고, 남들은 우리 도선문이 요족 세력을 두려워한다고 느끼지 않겠어? 하나 풀어주지 않는다면, 상대의 자세를 봐야지. 여우 요괴가 부족 내에서 지위가 높은 편이라면 또 다른 겁을 불러올 수도 있다. 장수야, 너는 평소 계책이 많지 않으냐. 이 일에도 좋은 방법이 있을까?”
이장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속에 이미 계획이 떠오른 것이다.
“사백, 평온하게 처리할 수 있는 계책이 하나 있긴 합니다. 사백께서 문파 장로님들께 이 계책을 바치고, 이대로 처리하는 게 맞는지 장로님들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십시오.”
“오호! 어서 말해보아라!”
“귀 좀 빌려주십시오······.”
속닥속닥, 이러쿵저러쿵.
이장수는 주오의 귓가에 대고 한참 속삭였고, 주오의 짙은 눈썹 아래 커다란 두 눈에 점차 빛이 반짝였다.
“좋다. 내 지금 당장 장로님들께 아뢰러 가마!”
“미리 선수를 쳐두기만 하면 다른 건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쪽 부족의 배경이 복잡하기도 하고, 우리 도선문 또한 인교 도승이 아닙니까.”
주오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총망히 상벌전으로 향했다.
이장수는 구름을 높지도 낮지도 않은 고도로 몰아 소경봉으로 돌아왔다. 그와중에 속으로는 조금 전에 내놓았던 계책을 앞뒤로 몇 번이나 추산해보았다.
아마 무슨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그들도 여우 요족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고 가둬두기만 했으니 말이다.
당시 심화소 선식 독단을 연구하고자 이장수는 여우 요괴가 힘을 좀 발휘하여 매술을 몇 번 쓰게 했다. 곰곰이 따져봤으나 무슨 문제가 생기지는 않으리라.
하물며 지금의 도선문은 예전에 문정 도인이 허수아비를 부려 괴롭힐 정도의 도선문이 아니었다. 다른 건 고사하고 이장수가 근래 연구한 ‘영기 폭발’ 종이 도인만 하더라도 실전에 사용할 수 있을 수준이다.
최신형 반제품 종이 도인에게 금선경 법력을 주입하면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평범한 종이 도인이 ‘영기 폭발’ 종이 도인을 지닌 채 적군 집거지에 잠복하고, 평범한 종이 도인이 ‘영기 폭발’ 종이 도인에 계속 선력을 주입해서 ‘금선경 임계치’를 건드리면 반쪽짜리 금선 연기사가 자폭하는 것 못지 않은 폭발을 일으킬 수 있다.
이게 바로 수행의 예술이라고 한다.
이장수는 진정 이 수를 쓰고 싶진 않았다. 어쨌든 종이 도인들은 소경봉 나무들이 힘겹게 내놓은 산물이 아닌가. 그가 한 대부분의 준비는 만일의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에 불과했다.
“여우 요괴, 배경이 복잡한 요족 세력······.”
마음속에 뜬금없이 한 이름이 튀어나왔다.
달기?
정확하게 말하면, 꼬리 아홉 개 여우 요괴일 것이다. 달기는 여우 요괴가 들러붙은 평범한 여인에 불과하고.
‘달기는 진압된 여우 요괴와는 무관할 것이다. 다만 이 세력이 어쩌면 달기의 출신일 수도 있겠군. 어차피 성인에게 선발될 수 있다면, 꼬리 아홉 달린 여우 요괴는 마냥 평범한 요족, 그렇게 단순하진 않을 것이다.’
됐다. 생각해도 아무런 쓸모가 없다. 봉신의 일은 이제 나와 관련이 없어졌으니 말이다.
내일 저녁의 전쟁이나 생각해야지. 그 김에 부족하거나 빠진 부분을 찾아서 보완하고 내가 타인에게 이용될 빈틈이 남아있는지를 보자.
단방으로 돌아와 흔들의자에 누워있는 사이 1박 2일이 총망히 지나갔다.
종이 도인이 위풍당당한 천병과 함께 남천문에서 날아 나왔을 때, 이장수도 정신을 나누어 선식으로 소경봉 호숫가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주 씨 아홉 선인, 령아, 유금현아, 웅영리, 그리고 유안, 왕기 등 몇 사람이 함께 모여서 술을 마시며 축하했다.
이제 막 입문한 주우시는 상당히 낯을 가렸지만, 주구의 종용 아래 벌게진 얼굴을 하고 패검을 든 채로 령아 종이 인형 악단의 연주 소리를 들으며 검을 들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시끌벅적한 곳의 가장자리, 제원 도사는 평소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그는 책상다리로 호숫가 초가집에 앉아 조용히 좌선했다. 주위에 기운이 감돌자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려 미소를 지었다.
이장수는 저도 모르게 방긋 웃으며 흔들의자에 누워 조용히 정신을 가다듬고 온몸과 마음을 다하여 천정의 전쟁을 신경 썼다.
······
그렇게 반나절 후.
예컨대 옥황상제에게 현재 어떤 심경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몹시 후회 중이라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옥황상제가 생각했었던 군대를 인솔하고 출정하는 것이란 이렇다. 천검을 손에 쥐고 금색 갑옷을 입고 새하얀 천마에 올라탄 총사령관이 무수한 마기에 휩싸인 요괴를 마주해서 천검을 높이 쳐들고 ‘천정을 위하여’라고 외쳐대며 군대를 이끌고 적진에 깊숙이 들어가서 적을 함락하고 피로 목욕을 하며 천지의 정기를 선양하는 것!
그러나 실제로 군대를 이끌고 출정하는 상황이란······.
“보고— 사령관님, 각 부대는 이미 매복 지대로 들어갔습니다!”
“보고— 심해 요족 삼천오백여 명을 사로잡아 조사해보니 9할이 몸에 죄업을 묻히고 있었습니다!”
“보고~ 적군이 매복 지대에 들어왔습니다. 용족 각 부대도 준비 완료하고 사령관님의 명령에 대기 중입니다!”
고공 위, 층층의 흰 구름이 모여든 자리에 천병 수천 명이 자리를 빽빽이 둘러쌌다.
천정 요괴 소탕 총사령관 화일천, 독군 동목공, 총괄 지도 이장수는 용족의 실권이 있는 장로와 함께 앉아있었다.
전령병이 미친 듯이 달려와서는 접수한 소식을 크게 외치며 보고했다.
“사령관님, 일을 지체하면 안 되니 명을 내려주십시오.”
이장수의 말에 옥황상제의 화신이 약간의 의구심을 담은 눈길로 이장수를 쳐다보았다. 마치 ‘사령관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라고 묻는 듯했다.
이장수가 눈을 깜짝이면서 옥황상제 화신에게 긍정의 신호를 주었다.
옥황상제 화신은 입꼬리를 삐죽이더니 목을 가다듬고는 입을 열었다.
“각 부대는 출격해서 요괴를 섬멸하라.”
듣고 있자니 맥이 빠진 목소리였다.
“예!”
전령병은 대답과 동시에 뒤돌아 십 장 너머로 뛰어나갔고, 법보 영기(令旗)를 꺼내 흔들자 군령이 휘황찬란한 빛으로 변해 남해 곳곳에 떨어졌다.
남해의 영력이 들끓고 해수면에 엄청난 파도가 일었다!
요수가 포효하는 소리, 창룡의 노호성, ‘죽여라’하고 외치는 천정 장병의 목소리가 하늘을 뒤흔들었다!
동목공과 이장수, 그리고 용족 장로는 차분하고 느긋하게 기다렸다.
반면 사령관 옥황상제 화신은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서서 손에 패검을 쥐고 단호하게 말했다.
“총사령관으로서 장병들과 함께 분전하겠다. 어찌 이곳에서 비겁하게 꽁무니를 뺄 수 있겠는가!”
“사령관님, 장군과 사령관은 차이가 있습니다. 삼군의 총사령관은 전체적인 상황을 살펴보셔야 합니다. 만일 적진 깊숙이 들어가 버리면, 대군은 우두머리가 없으니 그 또한 위기가 아니겠습니까.”
이장수가 설득하고, 동목공도 거들었다.
“그렇습니다. 일천 사령관, 초조해하지 맙시다! 적진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건 장군의 일이고, 총사령관은 대국을 봐야 합니다!”
화일천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제자리로 되돌아가 조용히 기다렸다. 그러니까 그가 자신의 화신을 총사령관으로 책봉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은 그가 상상했던 것처럼 바닷속에서 군대를 이끌고 바닷속 요괴와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옥황상제 화신은 이장수를 쳐다보며 전음했다.
“해신, 해신······ 장경!”
이장수가 고개를 돌려 쳐다보며 전음으로 물었다.
“폐하, 부르셨습니까?”
“경이 대국을 맡아라. 짐은 내려가서 장병들과 함께 싸우겠다. 출동부터 매복 배치까지 모두 경과 목공이 하고, 짐의 역할은 설마 명령을 내리는 것이 다인가?”
“폐하께선 삼계의 주재자입니다······.”
“옥황상제가 된 후로 짐이 하루하루 얼마나 지루했는지 아느냐?! 이렇게 전쟁을 치르는 날만을 기다려왔단 말이다!”
“······.”
옥황상제가 불만을 털어놓으려는 걸 보고 이장수가 전음으로 말했다.
“폐하, 남해 전쟁이 평온해지면 서해로 가서 요괴를 소탕할 때 소신이 동목공을 붙잡을 테니 그때 폐하께서 친히 대군을 이끌고 요괴를 제거하십시오. 다만, 폐하께선 스스로 잘 돌보셔야 합니다. 서해로 이동해서 싸울 때 서방교도 눈치채고 중간에서 훼방을 놓을 수도 있습니다.”
“알겠다!”
옥황상제 화신은 곧바로 기운을 차리고 좌석에 단정히 앉아서 승전보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래 해수면에 상흔으로 가득한 거대한 시신들이 늘어났다.
수만 천병이 힘을 합쳐서 대진을 펼치고 주변 삼천 리 해역을 뒤덮어서 이곳의 격동으로 수많은 바닷속 생명에게 파급이 미치지 않도록 했다.
두 시진 후, 남해 대전이 막을 내렸다. 천정 군대와 용족 군대는 합병하여 바닷속 대요괴 집거지를 기습하러 갔다.
전쟁을 개시하기 전 이장수와 동목공이 논의한 규칙에 따라 죄업이 있는 요족은 그대로 요혼을 멸해버려서 후환을 남기지 않았다. 아직 죄업이 없는 요족이라면 천정 쇄요탑(鎖妖塔)에 넣고 수명이 다하거든 저절로 윤회하여 환생하도록 했다.
밤새 전투를 벌였고 새벽녘이 되었다.
천정과 용족 군대는 남해 가장자리로 모였다가 잠시도 쉬지 않고 위풍당당하게 서해 대전이 벌어지는 곳으로 내달렸다.
남해 요족이 정벌될 때, 서해 심해 요족은 연일 밤 철수할 준비를 해서 서해 천애해각에서 오부주로 떠났다. 그러다 도중에 용족이 보낸 군대에 차단되어 대부분 서해 가장자리에서 가로막혔다.
이번에 이장수도 옥황상제 화신과 약속한 대로 동목공을 말리고 천정 요괴 소탕 총사령관 화일천이 친히 군대를 이끌고 만 리를 내달려 서해 요괴를 습격하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화일천이 최전방으로 돌진하는 뒷모습을 보며 동목공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 청년은 어찌 이리도 감정을 억누르지를 못하는 것이지? 어휴, 돌아가면 폐하께 꼭 아뢔야겠군! 해신, 함께 상소를 쓰는 건 어떻겠소이까?”
“저는 됐으니 목공 혼자 하십시오.”
이장수는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화 장군이 기왕 병사를 이끌고 전진했으니 대국은 목공이 통제하세요.”
동목공은 살짝 고개를 가로저으며 화일천의 뒷모습을 안타깝게 쳐다보았다.
바로 이때, 서해 깊은 곳에서 흰 구름 하나가 급속도로 날아와 천정의 군대를 가로막았다. 이장수가 선식으로 살펴보았으나 거리가 멀리 떨어진 터라 흐릿하게만 보였다.
커다란 표주박을 등에 멘 무명옷을 입은 도사가 홀로 천정과 용족의 대군이 돌진하는 구름길을 가로막았는데, 온몸으로 강렬한 위압을 내뿜고 있었다.
도사는 싸늘하게 입을 열고, 등에 메고 있던 보라색 표주박을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최전방에 있는 천정 장군 화일천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천정은 무슨 의도인가? 기어코 요정 고아를 죄다 죽여야 속이 시원하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