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야, 이게 무슨 일이냐? 어째서 나를 고정하는 것이야?”
소경봉 호숫가 제원의 초가집 안.
수행하다가 이제 막 깨어난 제원 도사의 소매에서 튀어나온 종이 인형이 그의 모습으로 변하더니 제원 도사의 온몸을 빛으로 덮어씌웠다.
제원은······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되었다.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일단 바르게 앉아 계세요. 사조께서 여우 요괴를 데리고 오고 있습니다! 그,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사부님, 그 여우 요괴한테······ 어떤 생각이 있습니까?”
제원 도사는 ‘멍~’이라고 쓰인 눈으로 이장수를 쳐다보았다.
한순간 무어라 입을 열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장수야,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이장수는 슬며시 한숨을 내쉬고는 양손을 빠르게 놀려 사부님의 몸을 가리키고 빠르게 설명을 덧붙였다.
간단하게 사부님이 윤허한 전제하에 사부님의 모습으로 변한 이장수는 ‘요괴를 제거할 최강의 선력을 주세요’하고 외치면서 재로 날려버릴 수 없는······ 예쁜 여우 요괴를 건드렸다고 말했다.
제원 도사는 잠시 침묵했다가 대충 상황을 파악하고는 흔쾌히 대답했다.
“정말 안 되겠거든 내가 대신 떠안으마!”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우 요괴를 단념시킬 방법이 있습니다!”
말을 멈추고 이장수는 ‘안전을 위해’라는 원칙에 따라 조용히 물었다.
“사부님, 그 요족 여인을 한 번 보시렵니까?”
“내가 봐서 무엇 하느냐!”
제원 도사는 눈을 부릅뜨고 다급하게 말했다.
“그런 말은 어디 가서 함부로 하지 말아라! 누가 듣기라도 하면 어떡하느냐? 순결한 내 명성을 망가뜨릴 작정이냐!”
“그럼 마음 놓겠습니다.”
이장수는 뒤로 물러나 사부에게 읍했다.
“이따가 초가집에서 절대 나오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그래, 가 보아라. 어휴!”
제원 도사는 손을 휘휘 저었다.
“이제 나는 네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온종일 밖에서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진정 모르겠구나.”
이장수는 빙그레 웃으며 손으로 거울을 응결해 종이 도인의 모습을 확인했다. 훌륭한 용모는 아니나 두 눈에 생기가 감돌고 백발마저도 기운이 넘치는 것이 주우시가 산으로 돌아온 후 사부님의 모습과 완벽하게 닮아있었다. 사부님의 불자를 빌려 불자에 깃든 기식을 종이 도인과 융합하고 꼼꼼하게 두 번이나 검사를 마친 후에야 불자를 든 채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제원 도사는 방석에 앉아서 초가집 문이 저절로 닫히고 한층 또 한층 진법이 가동되는 걸 바라보았다.
제자의 손에 이곳에 보호되었다.
거울을 가리켜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본 제원은 낯설면서······ 아름다운 미모의 여인을 보고······ 눈앞이 캄캄해지고 거의 혼절할 뻔했다.
······
소경봉.
‘인’자 종이 도인이 호숫가로 걸어가 버드나무 아래 고고히 서서 산문 어귀에서 날아드는 인영들을 쳐다보았다.
아무렴 요족 측에선 여우 요괴 혼자 온다지만, 문파 선인들은 어쩜 이리도 방심하는 걸까?
요족이란 말입니다!
아주아주 흉악하다고요!
즉, 산문 어귀에 남아 지키는 필요 전투력을 제외하고 장로들과 각 봉의 고수는 경지가 진선경 밖에 되지 않는 여우 요괴만을 단단히 주시하고 있다는 소리인데······.
흐음. 행여나 여우 요괴가 자폭해서 문파 금선의 도려인 강림이 다치는 일을 막고자 함이지 절대 무슨 가십거리를 위해서가 아닐 테다!
이장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문파 선인들이 지켜보건 말건 사실 별반 차이는 없다. 현재 그의 종이 도인 신통력 조예는 금선을 제외한 다른 연기사를 속일 수 있을 정도니 말이다.
아울러 그는 천정 해신부에 보관 중이던 예비용 ‘해신’ 종이 도인을 움직였다.
인과를 끊어내려면 여러 가지 방법을 병행해야 한다.
······
천정 해신부 밖. 인자한 인상의 해신이 불자를 손에 든 채 구름을 몰고 관저에서 빠져나와 인연전으로 달려갔다!
이장수가 떠나기가 무섭게 관저 앞을 지키던 장군들은 어리둥절해서 물끄러미 쳐다만보았다.
“해신은 언제 돌아오셨지?”
“모르겠어. 조금 전까지 못 봤던 것 같은데, 어찌 이리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거지?”
“말조심해. 우리가 다 알 수 있을 정도라면 어디 해신이겠냐?”
장군들은 일리가 있다고 여기며 이장수가 떠나가는 방향을 멀리서 내다보았다.
‘해신’ 종이 도인이 반 정도 움직였을 때, 소경봉에는 어느새 문파 선인들로 벅적벅적해졌다.
“동문들은 밖에서 보기만 하게. 많은 이가 가까이서 지켜보는 것도 적절치 않아.”
강림은 그 말을 남기고 여우 요괴를 비롯해 주오, 주시, 주구를 데리고 호숫가로 내려갔다.
한편, 여우 요괴 소란은 버드나무 아래 서 있는 도사를 보고 흠칫했다가 어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겁에 질린 마음을 눈에 드러낸 그녀는 저도 모르게 도톰한 입술을 깨물어 애처롭고 가련한 느낌을 자아냈다.
주 씨 선인들을 데리고 백 장 너머에서 멈춰선 강림이 나무 아래에 있는 도사에게 전음했다.
“제원이냐, 장수냐?”
이장수는 내심 감탄했다. 강림의 눈을 속일 수 없을 줄 알았다. 사조는 사부에 대해 너무나 잘 알기도 했고, 워낙 어렸을 때부터 세상을 두루 돌아다녀서 경험도 풍부하지 않은가.
“장수입니다. 사부님과 무관한 일이고 당시에 제가 손쉽게 일을 처리하고자 사부님의 몸을 빌렸었습니다.”
이장수의 전음에 강림은 바로 풉,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는 나무 아래에 있는 도사에게 눈짓을 보냈다. 마치 ‘그럼 네가 알아서 해결하려무나.’라고 말하는 듯했다.
강림이 나무 아래에 있는 ‘제원’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 있지 않으냐? 가 보아라.”
“예.”
여우 요괴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하고 천천히 다가갔다. 요사스러운 몸에 요염함이 깃들어 몸짓이 마치 한들거리는 수양버들이나 호수에 인 잔잔한 물결 같았다.
마음에 품은 도사와 십 장 남짓한 거리를 두고 있을 무렵, 여우 요괴는 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이장수는 굳은 표정으로 말을 입을 열었다.
“도우, 어째서 나를 만나겠다고 한 거요?”
여우 요괴는 하고 싶은 말이 수도 없이 많았으나 목구멍까지 올라왔을 때는 목이 막혀서 고작 한마디를 꺼내는 게 다였다.
“저를 기억하십니까?”
이장수는 이맛살을 구겼다. 현재 표정의 변화를 잘 조절하여 눈에 의아함을 드러냈다.
“도우와 깊게 얽힌 적은 없던 걸로 기억하오. 도우를 잡아들인 건 인도를 수호하기 위함이었고, 산 아래로 가서 도우와 만났을 때는 공법을 연구하기 위해서였지. 그래서 사례로 도우에게 영단과 묘약를 주지 않았소? 오늘 이런 기세로 찾아온 건 대체 어떤 목적인지 모르겠구려. 일부러 나를 몰아갈 생각인가?”
“제가 어찌 도사를 몰아가겠어요?”
여우 요괴는 다급한 마음에 앞으로 다가왔다.
이장수는 불자를 털자 탁기가 섞인 선력이 여우 요괴의 발치에서 나타났다.
“자중하길 바라오. 천 년을 몸을 정갈히 하고 수행해왔기에 도우가 내 명성을 망가뜨리길 바라지 않소!”
“저, 저는······.”
여우 요괴는 호흡이 급박해지고 새하얀 피부가 붉게 물들었으나 곧바로 가라앉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그저 도우를 한 번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럼 보았으니 되었겠지. 배웅하지 않으리다.”
소란은 당황했고, 소경봉 밖에 있던 많은 도선문 문인도 전음이나 마음속으로 감탄을 내질렀다.
제원 사제(사형, 사질)이 이토록 강직하고 깨끗한 사람이었다니. 탁선으로 수행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군.
여우 요괴가 처연하게 말했다.
“잔인하십니다. 입도 벙끗할 기회도 주지 않고 이리 보내다니요?”
“도우는 지금까지 나에게 69자를 말했소. 그런데 무슨 입도 벙끗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거지?”
이장수는 미간을 한껏 구긴 채로 너른 소매를 탁 털었다. 그러자 바닥에 앉은뱅이책상과 의자 두 개가 생겨났다.
“앉으시오. 입을 벙끗할 기회가 아니라 제대로 말할 기회를 주겠소. 하나 대화가 잘 통하지 않으면 말을 그만두고. 오늘 확실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앞으로 그 어떤 오해도 불러오지 않길 바라오.”
이장수가 자리에 앉고, 여우 요괴는 한참 주저하다가 시집살이에 시달리는 며느리처럼 맥없이 맞은편에 앉았다.
······
같은 시각, 천정의 해신 종이 도인의 시야에 월하노인의 인연전이 들어왔다. 이에 이장수는 버드나무 아래에서 조급하게 말을 꺼내지 않았다.
아직 때가 오지 않았다.
령아가 주전자와 찻잔을 들고 다가와 ‘사부님’하고 부르면서 두 사람 앞에 차를 올렸다.
물론 이 또한 이장수가 전음으로 안배한 것으로 그는 령아를 향해 자애롭고 인자한 미소를 보였다.
“고생했다. 가서 수행하려무나.”
령아는 눈앞의 사부님이 사형이 변장한 모습이라는 걸 몰랐다. 평소 사부님도 자신에게 이리 자상했으니 바로 허리를 숙여 예를 갖추고는 돌아섰다.
······
이장수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선을 여우 요괴에게 옮겼다. 안색은 삽시간에 엄숙하게 변했다.
“도우,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보시오. 저렇게 많은 동문이 지켜보고 있는 터라 나는 진심으로 도우와 단둘이 오래 있고 싶지 않소.”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혼자 헛물켰다는 걸 깨달은 여우 요괴는 가슴이 쓰라렸다.
“곁에 시중드는 이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그저 도사의 곁에 머무르고 싶습니다.”
이번에는 이장수가 침묵했다. 그는 찻잔에 든 차를 마시지도 않고 한참 인상만 써댔다.
마치 그녀의 제안에 마음이 움직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이장수가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니 도선문 도처의 선인들도 흥미가 생겨서 이야기를 엿들으려고 온 신경을 집중했다. 엄청난 순간을 놓치기라도 하면 안 되는 것처럼.
그러나 사실 이장수는 월하노인과 대화를 나누는 데 집중하고 있는 터라 소경봉 종이 도인의 말을 멈춘 것뿐이었다.
만일 혼선이라도 생기면 그야말로 골치가 아파진다!
······
천정, 월로전.
이장수의 해신 종이 도인은 월하노인에게 마중할 기회도 주지 않고 다급하게 달려와서는 도착하기가 무섭게 월하노인의 팔을 덥석 붙잡았다.
“월로, 부탁이 있소이다!”
“해신, 고정하시게.”
해신이 누구던가?
폐하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이였다. 미모의 선자들을 처로 맞아들이고 싶다고 한다면, 백 년 치 공덕을 깎아서라도 안배해주어야 마땅한 것을!
“무슨 일인지 말해보시오!”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한 월하노인은 이장수가 이어서 한 말을 듣고서 안색이 더더욱 무거워졌다.
“사실 저는 해신 외에 또 하나의 신분이 있는데, 인교 사람이라오. 대법사의 명을 받들어 인교의 소소한 사무들을 처리하고 있기도 하지요.”
월하노인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소이다.”
“지금은 해신이 아니라 인교 선인으로서 월로에게 부탁하러 왔소이다. 월로, 전에 추산해본 바로 인교 도승 도선문에 작은 겁이 만들어지고 있기에 화신을 보내 살펴보았소. 한 요족 여인이 도선문의 한 문인에게 마음을 품고 있더이다. 그 요족 여인은 청구족이고, 현재 무수한 청구족이 도선문에 모여 있소. 이대로 뒀다간 도선문 문인에게 무력이라도 행사할까 걱정이 됩니다!”
“예?!”
월하노인은 이장수의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일이 있단 말이오?!”
이장수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해결할 방법이 없더군요. 사내가 여인에게 연심을 품고 부족 사람을 불러서 억지로 여인을 취하려 한다면 그건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니 욕먹고 맞을 일이요. 하나 반대로 여인이 사내에게 적극적이라면 대다수 사람은 일단 저 사내에게 처음에 당신이 꾀어낸 게 아니냐고 물을 겁니다. 직접 처리하기가 곤란하여 월로를 찾아온 겁니다. 월로가 가위로 저 악연을 끊어주시오!”
“좋소! 당장 하겠소이다!”
“서두릅시다. 곧 싸움이 일어날 것 같단 말이오!
“자자, 어서 후전으로 갑시다!”
월하노인은 소매를 털고는 손에 금전도를 쥐고 부리나케 후전으로 달려갔고 이장수도 뒤따라갔다.
월하노인은 망설임 없이 흙 인형 두 무리를 눈앞으로 불러왔다.
좌측 무리는 청구족으로 흙 인형의 수가 상당히 많았다. 대다수 인간의 얼굴과 인간의 체형에 뾰족한 여우 귀가 달려 있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청구족의 홍실은 ‘산발형’으로 홍실이 사방팔방으로 뻗어있었다. 그리고 홍실 한 가닥이 오른쪽에 있는 인교 도선문 인연 흙 인형으로 뻗어 들었다. 홍실을 따라가 보니 제원 도사와 비슷한 흙 인형이 있었다.
홍실이 제원 도사를 휘감고 있었으나 제원 도사의 흙 인형에는 상응하는 홍실이 없었다. 심지어 실오라기조차도 없었다.
“요놈이로군!”
월하노인은 수염을 휘날릴 기세로 아주 잽싸게 앞으로 다가갔다!
싹둑. 하는 소리와 함께 홍실이 끊어졌다!
그러나 홍실은 살짝 떨리더니 스스로 길어져서는 단호하게 제원 도사의 흙 인형으로 또 뻗었다.
“또 이따위 치정인가?”
월하노인은 콧방귀를 뀌고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해신 앞에선 절대 체면을 잃어선 안 된다. 이건 월하노인이라는 본업이 아닌가!
“흥! 치정은 자고로 무정만 못한 법이지!”
금전도가 계속 싹둑, 싹둑, 소리를 냈다.
이 광경을 보며 이장수는 여러모로 따져보고는 정면 공세를 펼치기로 했다!
······
소경봉 호숫가 버드나무 아래.
줄곧 말이 없던 ‘제원’이 느닷없이 픽,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홍실이 끊어지면서 뜬금없이 마음이 어지러워졌던 소란이 물었다.
“도사, 어찌 그러세요?”
“도우가 말할 때까지 기다린 것인데, 어찌 한마디도 하지 않소이까?”
소란은 당황스러웠다.
“저는 도사께서 고민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도우를 남길까 고민한단 말입니까? 도가 지나치군요.”
이장수는 월하노인의 가위가 서걱서걱하는 소리를 들으며 여우 요괴를 마주 보고 한결 누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도우는 내게 마음이 동한 게 아닙니다.”
여우 요괴의 표정이 상당히 절박해졌다.
“제 마음엔 온통 도사뿐입니다!”
“그게 마음이 동한 겁니까?”
이장수는 사람을 벼랑으로 내몰 듯한 눈빛으로 여우 요괴를 주시했다. 마치 여우 요괴의 마음을 꿰뚫어 볼 것만 같았다.
“어째서 그런 마음이 생겼는지 스스로 물어본 적은 있소? 정말로 도우의 마음을 잘 압니까?”
“스스로 몇 번이나 자문해 보았습니다······.”
여우 요괴의 목소리에 힘이 빠졌다. 자신의 도심을 돌이켜보는데 뜻밖에도 담담하게 변한 것이 아닌가!
“아니, 도우는 그런 적이 없소. 간단하게 그때 지하 감옥에서 도우가 본 이가 내가 아니라 도선문에 있는 다른 이로 바꿔 생각해봅시다. 도우의 매술에 대처하는 방법을 미리 알고 있어서 도우에게 좌절감을 느끼게 했다면 도우는 상대가 누구라도 그자의 그림자를 마음에 담아두었을 것이오. 그렇게 무수한 세월을 거치며 발효하면 그 사람을 마음 깊이 새긴 듯한 착각이 들겠지. 그렇지 않소?”
“그건······.”
여우 요괴는 붉은 입술을 달싹였으나 끝내 말을 내뱉지 못하고 황급히 일어났다. 당황스러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눈치였다.
“도우, 나를 다른 사람으로 바꿔보면 결국 도우도 다른 이에게 마음이 동할 텐데, 어찌 내게 마음이 동했다고 하겠소? 남녀 간의 정, 도려 사이의 은애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소중한 것은 ‘서로가 아니면 안 된다’라는 마음이오. 마음에 품은 사람이란 단순히 한 사람을 마음에 품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대체 불가한 사람을 말하오. 도우는 그렇지 않소.”
여우 요괴는 어안이 벙벙해진 눈을 하고 중얼거렸다.
“그렇지 않습니다······.”
“지맥 감옥은 어두컴컴하고 홀로 안에 있었지. 곁에서 알랑거리는 요괴도 없고, 번화한 속세의 그림자도 없었으니 그저 의지할 대상을 찾은 것뿐이오. 도우도 진선경이니 깨달은 바가 있을 테지. 도우가 마음이 동한 상대는 내가 아니요.”
여우 요괴는 초점이 흐려진 눈을 하고 뒷걸음질을 쳤다.
“내가 마음이 동한 건 제원 도사가 아니야. 내가 마음이 동한 건······.”
“외로움이오.”
소란은 다리에 힘이 풀려 풀밭에 털썩 주저앉았다.
“더는 외로움 때문에 진심을 다른 곳에 주지 마시오. 도우가 청구족이기에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오. 도우, 그럼 이만 돌아가시오.”
이장수는 소매를 털고는 령아의 초가집을 향해 가버렸고, 이에 멍한 표정의 여우 요괴와 곳곳에서 생각에 잠긴 도선문 선인들만 남겨두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도선문 산문 어귀. 강림을 따라 소경봉으로 오지 않은 ‘본체’ 종이 도인이 구름을 몰아 청구족 내 지체 높아 보이는 할머니를 향해 날아갔다.
내부 요인을 해결했으니 외압도 즉시 풀어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