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늘 예측하기 힘든 고난을 맞닥뜨리기 마련이다.
길을 걷다가 무언가에 얻어맞고 단약을 정제하다가 천벌을 받기도 한다. 그것도 갈수록 강해지는 벼락을 한 번에 아홉 번이나 맞고 중상을 입는다.
그러나 인간은 강인함이라는 걸 배우기 마련이고, 고생 속에서 낙(樂)을 찾는 것 또한 성숙한 사내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능력이 아닐까.
그래, 천벌도 장점이 전혀 없는 건 아니잖아.
석양 아래, 령아가 지은 새 장포로 갈아입은 이장수가 단방 앞 흔들의자에 누워서는 재가 되어버린 ‘피 묻은 자루’를 응시하고 있다.
동시에 6품짜리 부상 치료 영단 두 알의 약효를 느끼면서 체내에서 천천히 퍼져나가는 개운함에 평온한 미소를 지었다.
벼락 저항력이 또 늘어났다. 나중에 또 벼락이 떨어지면 부상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뒤이어 근심이 찾아왔다.
‘금선경 종이 도인을 만들 때마다 천벌이 떨어지면 이걸 누가 버텨낸단 말인가?’
다른 해결 방법이 없는 문제라 완쾌하고 나서 다시 시도해봐야 한다. 정말로 ‘금선경 종이 도인을 완성할 때마다 제작자가 아홉 번의 천벌을 맞아야 한다’라면, 이 길을 포기하는 수밖에.
두 번째 금선경 종이 도인을 조립할 때도 천벌이 불러와 진다면 종이 도인을 그대로 재로 날려버리고 천벌을 물릴 수 있는지 확인하면 된다.
보재가 진귀하긴 하나 목숨값이 더 비싼 법.
천선경 종이 도인을 사용할 수 없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종이 인형 인해전술을 펼쳐서 숫자로 이기면 그만이다!
이장수는 살짝 숨을 토해내고 힘겹게 일어섰다. 삭신이 저리고 쑤신 것이 곧 파김치가 될 것만 같았다.
단방으로 걸어가는 도중 구석에 있는 책장에 가서 양손으로 법결을 맺고 개량한 둔갑술을 펼쳤다. 몸을 흔들어 조그마한 나비로 변해서 책장 구석에 있는 꽃병 뒤편의 비밀 공간으로 들어갔다.
발소리가 들려오고, ‘본체’ 종이 도인 3호가 출근하여 단로 앞으로 걸어가 좌선했다.
실제로 이장수의 정신은 이곳의 유일한 금선경 전투력 종이 도인에게 떨어뜨렸다. 종이 도인을 싣고 지하의 일방 지맥 이동진으로 향했다.
금선경 화신은 둔술까지도 이토록 매끄럽군.
바로 이때, 별안간 황당무계한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의도치 않게 엄청난 물건을 만들어낸 건가?
고개를 숙여 종이 도인을 쳐다보았다. 종이 도인 복부에 천천히 돌아가는 단약을 가만히 주시하고 있노라니 홍황에서 현재 유행하는 원신도 수행 방식이 연상되었다.
홍황 환경은 수행하기에 너무나도 적합했다. 남섬부주 밖 곳곳에서는 숨만 쉬어도 순수한 영기를 들이마시고, 아무 산이나 가도 영맥을 캐낼 수가 있으니 말이다. 이런 환경에서 인간족이 수행의 길에 오르는 건 결코 어렵지가 않다. 자질이 있고 공법이 있다면 수행의 길에 오를 수가 있었다. 각자 갈 수 있는 위치가 다를 뿐.
따라서 현재 수행 체계는 즉 연기, 원신, 비선이다.
가령 외부 환경이 이렇게 우수하지 않아서 수행자가 끊임없이 영기를 정화해야만 선인이 되는 요구 조건을 충족할 수 있다면······ 별도의 수행 체계가 필요하지 않을까?
금단(金丹) 대도?
종이 도인 기법에 단약을 응결하고 자신을 늘린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완전히 새롭고, ‘영기가 미약한’ 환경에 적합한 수행 체계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금단 한 알을 삼키면 내 목숨······ 아니 머리 꼭대기에는 여전히 저 하늘이 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찰나 마음속에 경보가 울렸다. 한 쌍의 눈이 남몰래 나를 주시하고 있는 듯했다. 본체나 종이 도인 화신이 아니라 원신과 진령을 주시하고 있었다. 경고의 의미를 지닌 채로.
이장수는 순간 조금 전의 생각을 잘게 조각내버리고 허공을 향해 절하며 마음속으로 부단히 일깨웠다.
연상하지 마. 연상해선 안 돼!
매번 이렇게 의미 없는 일을 생각해서 무엇해?!
주목받는 느낌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이장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금선경 종이 도인은 더욱더 깊이 숨어들어 ‘무수산’ 근처로 향했다.
보름 넘게 조사하면서 그곳의 정체를 확실하게 짚어냈다.
무수산의 요족 성지는 ‘자철성(呲鐵城)’이라 불리며 요족의 요충지라고 할 수 있었다.
인간족과 요족은 상고부터 큰 전쟁을 치러왔다. 그러나 인간족은 요족을 멸망시킬 도리가 없었고, 요족 또한 다시 부흥하지 못하면서 양쪽은 교착상태에 접어들었다.
대립 관계 밖에서 요족과 인간족은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 마을을 일부 개방하여 유무상통(有無相通)을 실행했다.
북구로주 경계에 인간과 요괴가 함께 뒤섞인 방진이 있다는 것이 그 예다. 괴사 도인이 재로 날리기 전에 갔던 방진이 바로 이 중 하나였다.
자철은 상고 시기 요정의 10대 ‘요성(妖聖)’ 중 하나로 자철이라는 성지는 요족이 같은 이름의 요족 고수를 기념하고자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자철성의 관리자는 우요족(牛妖族. 소 요괴)으로 현재 요족 중에서도 큰 부족에 해당한다.
중요한 건 한참 알아봤지만, 우요족 중에 상고 때 살아남은 고수가 있는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로 인해 이장수도 감히 방심할 수가 없었다.
우두와 마면이 수라족 고수를 손봐주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우두와 마면은 상고 대전에서 후토 낭랑을 따라 지부로 들어간 무족 고수로 ‘명성이 없기로 유명한’ 그런 류에 속했다.
우두와 마면으로 ‘상고 시대 보통 금선’ 전투력의 표준을 따진다면, 이곳에 있는 우요족 중에 상대하기 어려운 인물이 몇 명 존재할지도 모른다. 복희가 점쳐서 보여준 영보가 있는 산골짜기는 우요족의 ‘토지’라서······ 자칫 전반적인 상황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지금까지 정리해낸 유효한 정보란, 다음과 같다.
[자철성은 순금 보재가 많이 나서 예리한 칼을 단조하기에 적합하다. 우요족은 인간족을 적대시하지 않고 수만 년의 역사를 지닌 만큼 법도를 잘 지키고 인간족과 요족이 충돌해도 군대를 움직이거나 끼어들지 않았다. 인간족 연기사는 이곳을 간과해온 것인지 요족을 멸살하려고 주도해서 조직을 꾸리는 선문은 없었다.]
다만 자철성은 어쨌든 요족의 땅이라 죄업이 깊은 요족 고수들이 많이 있어서 간혹 인간족 연기사가 성 밖으로 나간 뒤 기습을 당하는 일이 생기도 했다. 그리하여 이곳으로 가려는 인간족 연기사는 실력이 대단한 이들로 경지가 최소 진선경 후기였다.
이장수는 어떻게 이러한 정보를 알아냈을까?
정보를 수집할 때는 한쪽 방면에서만 손을 대면 안 되고 약간의 기술이 필요하다.
우선 ‘도사’ 종이 도인을 이용해 현금(玄金)을 구매한다는 이유를 대고 자철성으로 들어갔다. 며칠 후 소녀, 할머니의 모습으로 자철성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선문과 방진으로 가서 자철성 우요족에 관한 정보를 수소문했다.
‘소녀’는 만 리 너머에 있는 선문으로 가서 산을 지키는 어르신께 자신의 할아버지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할아버지가 자철성이라는 땅으로 갔는데, 자철성이 어디에 있는지 도통 모르겠다면서 말이다.
‘할머니’는 방진으로 가서 자신의 남편을 본 적이 없느냐고 수소문하면서 자철성에 관한 소문을 수집했다.
이렇게 하면 다방면의 정보를 서로 검증할 수 있으면서 역으로 정찰을 당할 염려도 없었다.
여기에는 디테일도 숨어있다. 예를 들면 소녀의 모습으로 산을 지키는 어르신에게 접근한 일이다. 보통 나이 많은 선인들은 감히 소녀를 쫓아내지 못한다. 이장수는 도선문을 관찰할 때 이런 상황을 많이 보았었다.
흐음, 다시 보물찾기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
행동에 옮기기 전에 반드시 계획을 세우고 예비 방안도 몇 가지 준비해둬야 한다.
금선경 종이 도인은 자철성에 도착한 후 바로 행동을 개시하지 않고 성 안팎과 산골짜기 바깥에 은폐된 초소를 설치해서 다각도에서 자철성을······ 반년 동안 관찰했다.
반년 동안 이장수는 같은 고수에게서 세 번의 금선경 위압을 포착했었다. 자철성에 주둔하는 요족 고수였는데, 상당히 활동적인 빈도였다.
이장수는 겸사겸사 자철성 진법의 결함을 파악하고 내부에서 대진을 허무는 취약점을 찾아냈으며 병력 배치, 방어 임무 교대 규칙, 곳곳의 지원을 배치하는 속도도 읽어냈다.
이 외에도 성주 부인의 여동생이 북성문(北城門)을 지키는 요족 장군과 황량한 산에서 밀회하는 장면을 보았고, 성주 부인이 제부와 남몰래 추파를 던지고 탁자 아래에서 발로 툭툭 건드리는 장면도 목격했다.
성주는 천선경 후기의 소 요괴로 매일 요족 고수들과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었다. 머리에 난 푸른 털은 상당히 독특했다.
‘찾으려는 보물은 우요족의 보물일 확률이 높겠군.’
이장수는 그렇게 추측했다.
그가 정한 전략 계획은 복잡하지 않았다. 바로 유인책으로 자철성에 위기감을 퍼뜨려서 산골짜기에 있는 요족 고수들을 이동시키고 그 틈에 안으로 들어가서 보물을 찾는 방법이었다.
현재 유일하게 불확실한 건 우요족 중에 최강자의 경지였다. 대라금선이 있다면 이장수의 종이 도인은 이곳에서 폐기되고 말 것이다.
고로 안전을 위해 이제 막 만든 ‘금(金)’자 종이 도인 2, 3, 4, 5, 6호를 모조리 배치했다.
금선 종이 도인 셋을 정면 공격에 투입하고, 하나는 산골짜기로 들어가 수색하고, 나머지 둘은 수시로 둔술을 펼쳐 지원할 준비를 했다!
총 여섯 개의 금선경 종이 도인은 이장수에게 보물을 찾을 자신감을 더해주었다.
물론 가장 위안이 되었던 건 금선경 종이 도인의 일이었다. 부상에서 완쾌한 이장수는 시험 삼아 두 번째 금선경 종이 인형을 만들어냈었고, 천도의 자애로운 관심을 받지는 않았다.
다만 종이 도인을 부단히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이장수는 동시에 존재하는 금선경 종이 도인의 수가 아홉이 넘으면 천벌이 떨어지는 데다 지난번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할 것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만해야지, 무섭단 말이야.
금선 화신 여섯은 현 단계에서 ‘6명의 인간족 금선이 자철성을 포위 공격했다’라는 레퍼토리를 만들어내기엔 충분했다.
이장수는 양동작전의 호각을 사흘 후에 불었다!
반 시진 내 자철성 대진을 허물고 요족 원군을 저지하고, 성 안에 죄업을 휘감은 대요괴들을 죽인 후 산골짜기 안으로 들어가 보물을 찾는다!
전쟁이 곧······ 시작된······.
“교주 형님~”
뜬금없이 찾아온 일렁임이 이장수를 당황스럽게 했다.
이장수는 곧바로 정신을 다잡고, 신념 한 줄기를 일찌감치 복원이 끝난 안수성 해신 사당으로 보내 신념을 연결하고 오을을 꿈결로 초대했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이장수는 용족을 간과한 적이 없었다. 근래 용족은 전체적으로 평온했다. 큰일이 일어나지 않았었지만, 시달릴 일은 여전히 시달려야 했다.
“교주 형님!”
꿈속, 금박을 두른 하얀 비단옷 차림의 한결 더 청수해진 오을이 껑충 이장수의 앞으로 뛰어와서는 읍했다.
“이리 화색이 만면한 걸 보니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헤헤. 형님, 요새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있습니까?”
오을이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되레 반문하자 이장수는 잠깐 고민했다가 대답했다.
“자질구레한 일을 처리하느라 보름 정도 바빠질 예정이다. 혹 내가 나서야 할 중요한 일이라도 있는 것이냐?”
오을은 저도 모르게 멈칫하고 인상을 썼다.
“일이 있으시면서 어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오을은 형님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괜찮다. 그냥 어떤 물건을 찾는 것뿐이다.”
이장수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가 이내 물었다.
“용족에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고?”
“중요한 일은 아닙니다. 금오도 진완 사숙께서 형님을 금오도 연회에 초청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사흘 후에 금선 사숙 한 분이 도려를 맺는데 다들 구경하고 싶어 하거든요.”
“그런 일이라면 가지 않겠다. 선물을 준비할 테니 이따가 안수성에 사람을 보내 대신 전해주려무나.”
오을은 다정한 눈길로 이장수를 쳐다보았다.
“네. 형님, 시키실 일이 있다면 꼭 말씀하십시오!”
“알겠다.”
이장수는 손을 들어 오을의 어깨를 토닥였다.
오을은 도선문 제자라는 이장수의 토대를 알고 있었다. 오을과 용족 고수의 손을 빌려 자철성의 일을 성사하는 방법도 고려했었다. 그러나 용족은 근래 우환을 너무나도 많이 겪은 터라 그들에게 부담을 가중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속에 이러한 생각이 스치고 이장수가 빙그레 웃었다.
“난 원래 네게 체면을 차리지 않았다.”
오을은 이장수의 뜻을 이해하고는 입을 가로로 벌려 샐쭉 웃으며 빠르게 멀어졌다.
금오도에 경사가 있군.
이리저리 생각해보니 그 경사는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 내가 하려는 대사에도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을 터.
계속 전쟁 준비나 하자!
그렇게 사흘 후, 이장수는 전쟁을 시작하기 전 반 시진을 준비할 무렵 금오도 대전 안팎에 무수한 인영이 모여 있었다.
대전 안 어느 구석, 금관을 머리에 쓴 화령 성모가 이맛살을 구긴 채 대전 중앙에 비어있는 주인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짧은 치마를 입은 금광 성모가 옆에서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조용히 물었다.
“대사형은요? 어찌 아직도 오지 않았을까요? 같이 오는 거 아니었어요?”
화령 성모는 절로 이마를 탁, 쳤다.
“조금 전에 무슨 보물이 나타날 냄새를 맡았다며 구경하러 간다고 했어. 어디로 갔는지는 정말로 모르겠고.”
“다보 대사형이 두 사람의 증인이 되어주겠다고 전에 다 말을 해두었는데······. 이를 어쩌면 좋죠?”
“대제자 한 분을 더 모셔올까 봐.”
“벽유궁은 우리가 못 가니까······. 음, 제가 의형 두 분을 모시러 가면서 제일 가까운 삼선도로 가서 사저 셋 중에 어느 분을 모셔올 수 있는지 볼게요.”
화령 성모는 죄책감 어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도 같이 가. 정말이지······.”
“어휴.”
두 성모는 서로 쳐다보았으나 헛웃음을 치며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