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가 다시금 어두컴컴해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주위 천 리가 일시 정지 버튼이 눌러졌다!
수화태극도 한 장이 소리소문없이 공중에 나타났다. 천지 사이에 있는 물과 불의 힘이 끊임없이 음양의 두 기운으로 만들고 대도를 불러일으켜 천지사방을 완전히 봉쇄했다. 다만 이 광경을 금선자는 볼 수가 없었다!
수화귀원진!
아홉 면의 비석 허상이 천지 사이에 나타나고 경전을 읊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엇갈린 새까만 쇠사슬이 뜬금없이 나타났다.
쇠사슬 위에 붙어있는 음양의 기운이 허공에 잔뜩 퍼지더니 금선자의 온몸 곳곳을 휘감아 그를 완전히 묶어버린 후 함께 모습을 감추었다!
구령현기진!
현도 대법사가 배치한 대진이라 절대 금선자가 알아챌 수도, 깨뜨릴 수도 없었다.
이장수는 이 순간 한마디도 내뱉지 않고 조금도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손으로 종이 인형을 날렸다!
종이 인형들은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지 않고 그대로 금선자에게 달려들었다!
72개의 종이 인형이 손에 손잡고 어깨를 나란히 하고서 금선자에게 옷이라도 입힐 기세였다.
종이 인형은 천선경 절정, 반쪽짜리 금선의 실력을 지녔다. 이장수가 ‘금단의 선력을 고루 다지는 법’을 깨닫지 못했을 당시 부단히 시도하고 실패했던 영폭 종이 인형과 극히 비슷했다.
이 종이 인형 72개에 이장수는 진정 밑천을 다 썼다. 절반 가까이 저축해둔 소경봉 나무를 거의 다 꺼낸 것이었다!
마지막 비장의 패 중 하나, 지살영폭진(地煞靈爆陣)!
이장수가 현재 만들어낼 수 있는 최강의 순간적 공세였다!
말하는 게 더 느릴 정도로 이 광경은 전광석화 간에 발생했다. 이장수의 ‘종이 도인’이 발끝을 살짝 디뎌 뒤로 빠르게 물러날 때 양손으로 72개의 휘황찬란한 빛을 불러내 종이 도인들의 몸속에 주입했다!
이후, 정신을 강제로 그 위에 붙여서 종이 도인 72개의 체내 선력이 밖으로 세차게 흐르는 장단을 고르게 다지고 영폭의 한계치까지 밀어 올렸다!
금선자는 이 광경을 두 눈 멀뚱히 뜨고 지켜보다가 부리나케 대진의 족쇄를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하나, 둘······.
천지는 쥐 죽은 듯이 고요해지고 적막 속에서 72개의 가물거리는 빛이 나타났다.
이 순간 금선자는 돌연 상황 파악이 되었다.
계략. 계략이었어!
해신이 용궁에 갔던 건 내가 모습을 드러내게 유인하기 위해서였어!
제일 처음에 약한 모습을 보이고 느닷없이 둔술을 펼쳐서 내 경쟁심을 부추긴 거야!
심지어 해신의 계략은 정확하게 통했다. 나는 앞으로 달려들어 친히 그자의 화신을 끝내지 않았는가······.
그래. 해신은 이곳에 배치한 막강한 곤진을 예측했다. 그렇지만 일부러 내 앞에서 진법을 한 층 배치하고 외층 진법을 깨뜨리게 해서 내가 전체 상황을 주도하고 있다고 여기게 했어.
실제로 진정한 함정은 함정 아래에 숨어있었구나!
허허실실. 허와 실을 뒤섞은 것이다!
해신이 후퇴하는 모습을 가만히 주시하고 있노라니 문득 마음속에 두려움이 생겼다.
아니, 이러한 상황이 제일 두려운 것이 아니다.
이 인간족은 나와 몇 번밖에 접촉하지 않았으면서 내 성정의 약점을 잡아내지 않았는가!
‘해신!’
금선자는 속으로 외치면서 구원의 눈빛을 던졌다!
그러나 금선자가 지극히 빠르게 상황 파악을 했을 때, 그의 몸을 휘감은 72개의 종이 도인은 이미 부팅을 완료한 상태였다!
평화롭고 충만했던 선력이 돌연 극단까지 폭등했다. 종이 인형 72개의 몸에 새긴 겹겹의 부적은 선력을 촉진하고 가속하면서 격동했다!
천도가 윤허하지 않는다면, 존재할 수가 없다!
72개의 종이 인형!
이장수의 선력을 실은 72개의 종이 도인!
각각 선력을 합친 값은 금선경 초기로 이때는 갓 수생한 72명의 금선과도 같았다. 한 덩어리로 뭉쳐 자폭하는 종이 도인 72개에 동시에 불이 붙었다!
순간 흩뜨린 정신을 거두자 본체는 허탈 상태에 이른 것처럼 변했다. 노신선의 얼굴을 한 종이 도인이 뒤돌아 땅으로 숨도록 조종했다!
등 뒤에 마치 하늘로 솟구치는 72개의 태양성이 있는 듯했다!
세찬 영력이 이제 막 용솟음치기 시작하고 건곤의 주름을 한층 한층 찢어냈다.
천지가 덜덜 떨리고 대진이 진동하며 울부짖었다!
이장수가 불과 백 장을 이동했을 때, 금선자의 몸은 어느새 빛에 집어 삼켜졌다.
금선자는 소리 없이 울부짖었으나 사나운 영력은 눈 깜짝할 사이에 가루로 부서졌다!
서해 해안선에 거대한 빛다발이 하늘로 솟구쳤다!
빛다발은 수십, 수백 다발로 분열하고 거대한 광구가 되어 대낮의 천지를 밝게 비추었다.
대영폭!
지살대영폭!
줄곧 고공에 숨어있던 대법사는 이맛살을 구긴 채 아래에서 일어난 장면을 보더니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파르르 떨었다. 말문이 막혔다.
영폭은 호흡을 몇 번 할 동안 지속되었다. 모든 영력이 최단 시간에 쏟아져 나왔다.
수만 리 범위 내에서 영기 폭동이 일어나고 광풍이 천 리 범위의 해수면에 불어닥치면서 얕은 바다의 밑바닥이 드러나고 무수한 해산물이 처참하게 가루가 되었다.
황폐해진 섬은 사라지고 직경 백 리의 구렁텅이가 되었다. 이곳을 원점으로 열곡이 대지에서 천 리, 수천 리로 뻗어나갔다.
대지의 진동이 먼 곳을 향해 끊임없이 전달되었다.
서해가 역방향으로 거대한 ‘해일’을 일으키려는 찰나 선력이 내려오면서 바닷물은 빠르게 되돌아 흐르고 바닷속 생명의 사상자를 최저로 낮추었다.
이 짧은 순간 현황탑, 이장수의 몸속에 있는 현황탑만이 유일하게 이장수 본체가 어두컴컴한 곳에 숨어서 고개를 파묻고 죽간에 무언가를 새기는 걸 보았다.
「······선력 전송 속도는 높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72개 종이 도인은 진정한 한계가 아니고 원신의 힘이 강해짐에 따라 자릿수를 108로 높일 수 있다. 직접 발동 조건은 너무나도 까다로워서 반드시 강력한 진법이 도와주지 않으면 예기치 않은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제2방안을 선택하면, 갑 종이 도인의 몸에 지살영폭진을 매달고 강적이 접근할 때 다시 일으킬 수 있다······.」
천지영롱현황탑: “······.”
이장수는 붓질을 멈추고 정신을 분산하여 종이 도인을 천 리 밖에서 돌아와 빠르게 금선자가 있는 곳으로 이동시켰다.
그곳에 금빛 덩이가 있었다.
이장수는 눈썹을 꿈틀하고는 속으로도 한참 감탄했다.
과연 홍몽 흉수로다. 이렇게 해서도 제거할 수 없구나!
그리고 이때, 이장수는 이미 금선자를 죽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멀리 내다보니 아까 그 금빛은 금선의 유충으로 아직 날개가 자라지 않은 상태였다. 이장수는 금빛이 머금은 현묘한 기운을 자세히 느껴보았다.
매미가 허물을 벗는 건가?
금선자의 타고난 신통력 중 하나이리라. 죽어가는 자신을 옛 허물에 숨기고 경지와 기억을 절반 이상 포기하면 변태하기 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신통력을 날개가 여섯인 매미는 딱 한 번 사용할 수 있다. 옛 허물 또한 하나밖에 없으므로 그에게 한 번만 목숨을 지켜줄 수 있을 터.
이건 잘못 계산하고 나발이고도 없다. 홍몽 흉수 비장의 신통력으로 남들은 애초에 알지도 못할 것이니 말이다.
전에 이장수는 많은 계산 끝에 매미가 허물을 벗을 가능성도 추측했었지만, 허물로 목숨을 구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지식이 얕은 탓이다.
이장수는 여전히 시험해보자는 마음을 안고 소매를 열고 종이 도인들을······.
“그만. 이 영은 우리 서방과 인연이 있다.”
탄식이 섞인 목소리가 구름 끝에서 다가왔다. 어렴풋하고 불분명한 기운이 천지 사이에서 서서히 퍼져서 금선자의 매미 허물을 겹겹이 감쌌다.
이장수는 돌연 몸을 부르르 떨더니 흩뿌린 종이 도인을 모조리 버렸다. 노신선 종이 도인은 순간 화광에 집어 삼켜져 재가 되었다!
바로 이때, 현도 대법사가 이장수가 원래 서 있었던 위치에서 나타났다. 소매가 나부끼고 잿가루가 대법사의 소매로 파고 들어갔다.
역시 오셨군!
높은 하늘, 흰 구름이 흩어지고 온 하늘의 놀 빛이 감돌았다. 낡은 도포를 입은 도사가 구름 위에 책상다리로 앉아있다. 진짜 얼굴은 혼돈에 감추어진 채 날카로운 눈빛으로 아래를 훑었다.
대법사는 담담하게 웃으며 구름 위를 향해 읍했다.
“성인께 인사 올립니다.”
이장수가 전음으로 중얼거렸다.
“대법사님께서 지금 한 번 더 손을 대시면 금선자는 틀림없이 죽을 겁니다.”
대법사는 입가를 씰룩거리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현황탑이 이장수의 마음속에서 조용히 감탄했다.
“니가 우리 인교에서 제일 사악한 인물이라는 소리가 이제 와닿네. 니 진짜 삼백 살밖에 안 된 거 맞나?”
······
안수성 후당.
수화태극도 한 장이 허공에 나타나 물과 불의 힘을 적재하고 서서히 선회했다.
가운데서 튀어나온 대법사의 안색은 약간 차가웠다.
수화태극도가 사라지고 대법사가 소매를 가볍게 털었다. 약간의 형광을 동반한 재가 한 줌 날아 나오더니 이내 이장수의 몸이 되었다.
여느 때와 같은 노신선의 모습이었고, 가슴에는 탑의 허상이 더해졌을 뿐이다.
대법사는 숨을 토해내고는 동그란 의자에 앉았다.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가 탄식하듯이 말했다.
“사숙은 참······.”
이장수는 옆에서 불자를 들고 조용히 물었다.
“대법사님, 정말로 성인이시라면······.”
대법사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알고 있다. 그때 네 말을 들었어야 했어. 사숙이 보는 앞에서 매미의 허물을 베어버리는 것인데. 이 일이 자칫 서방교와 도문의 충돌을 불러오리라고 여겼었다. 한데 지금 보니 서방교에 체면을 생각해 줄 필요가 없었구나. 애초에 체면이라는 두 글자를 마음에 담아두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대법사께선 화를 내시는 데도 우아하고 부드러우니 이장수는 옆에서 어떻게 말려야 할지 몰랐다.
아까 그 성인은 정말······ 한 마디로 다 설명할 수 없었다.
조금 전, 대영폭의 흔적이 남은 곳.
얼굴이 흐릿하고 놀 빛에 몸이 가려진 서방교 2교주 준제 도인이 등장해서는 금선자가 서방교와 인연이 있으니 두 사람에게 손을 거두라고 했었다.
당시 이장수는 대법사께 막타를 날리라고 전음으로 몰래 제안했었다. 그러나 대법사는 눈에 띄게 주저하면서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대법사께서 감히 성인에게 덤비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필요하다면 대법사께선 덤볐으리라.
그러나 오늘의 일은 이장수가 금선자를 향한 반격이었다. 원인과 결과가 있고 이유와 근거가 있었다.
대법사께서 금선자를 죽이는 일을 강행했더라면, 서방교가 중흥할 기운을 인교가 망가뜨리려 한다는 사실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인교에 불필요한 인과를 더하게 된다.
이건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
인교는 다 더해봤자 2명만으로 끽해야 태청 성인이 나서서 서방교 성인 두 분과 한판 벌이는 것이다.
두려울 리가 없다. 아마 서방교가 두려워할 정도로 때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하나 이렇게 되면 사태는 수습할 수가 없게 되어버린다. 홍황 천지는 동요할 것이고 도문의 기운이 영향을 받을 것이다. 대법사는 태청 성인께 태청관으로 끌려가 몇 원회 간 금족에 처해질 테지. 그건 너무나도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더욱더 중요한 건 대법사께서 오늘 이장수가 한 행동을 보고서 금선자가······ 향후 인교에 어떤 위협을 만들어내긴 어려우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금선자가 다시 성장하기 시작한다지만, 이장수도 제자리에 머물지고 있지는 않을 터. 그때가 돼서 금선자를 상대하는 건 그저 머리를 좀 굴리고 손가락 마디를 살짝 움직이는 수준의 일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하여 대법사는 금선자를 죽이지 않고 인과만 끊어내기로 마음먹었다.
“준제 사숙, 이 홍황 흉수가 우리 인교 제자를 해하려고 했으니 우리 인교 제자의 손에 죽는 게 적합하지 않겠습니까.”
대법사의 말에 구름 위에 있던 도사가 담담하게 말했다.
“어찌, 내 체면으로는 부족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