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사는 웃는 얼굴을 점차 거두고 고개를 들어 구름 끝 노을빛이 머무는 곳을 주시했다. 몸은 여전히 꼿꼿하게 세운 채로.
공중의 구름은 산악과도 같았고 아래의 인간은 큰 호수 같았다!
“그리 말씀하신다면, 저도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사숙, 오늘의 인과는 어떻게 끊어내는 게 좋겠습니까?”
“내가 왔으니 인과는 없앨 수 있다.”
“매미가 우리 인교 사람을 다시 공격한다면 그땐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인연이 시작되고 끝나는 것은 자연히 인연법이 있기 때문이다. 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생기는 것이 아니겠느냐.”
현도 대법사는 두 눈을 살짝 가늘게 뜨기 시작했다.
대법사의 소매에 숨어있던 이장수는 감탄에 마지않았다.
이게 바로 성인인가?
어떤 실질적인 의미를 완전히 생각하지 않고 순전히 ‘오늘 이 매미는 나 준제가 보호할 것이니 하고 싶은 대로 하려무나!’라고 선포했다.
대법사께서 나선 일이기에 망정이지, 이장수였더라면 입을 열 기회도 없이 준제 도인은 칠보묘수(七寶妙樹)의 공격을 퍼부었으리라.
상황이 이렇게 되니 대법사도 퇴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계속 말한다고 해도 준제 도인은 ‘거짓말, 허풍, 빈말’ 따위를 해대며 보냈을 것이다.
이장수는 대법사의 팔을 끌며 전음했다.
“대법사님, 담대하게도 청이 있습니다. ‘서방교는 매미로 무엇을 하려는 생각인지 모르겠군요. 이러한 홍몽 흉수는 죄업을 깨끗하게 씻는대도 성인의 혜안에는 들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라고 한마디만 해주십시오.”
금선자를 죽일 수 없다면, 성인 제자가 되는 기연을 망가뜨리는 것이 앞으로 일어날 성가실 정도를 최저로 낮추는 것이다.
대법사는 눈을 반짝이더니 이장수의 말에 따랐다.
과연, 준제 성인은 대응책을 바꾸었다.
“이 매미는 일찍이 내 사형의 금신을 공격하면서 우리 서방교에 인과를 빚졌다. 앞으로 인연법이 그에게 있을 터. 서방교가 크게 흥하는 데 몸을 바치도록 할 것이다. 오늘 내가 친히 이곳으로 왔는데, 사질은 내 체면으로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인가?”
대법사는 웃으며 대답했다.
“어찌 그리 말씀하십니까. 사숙께서 귀하신 입을 열었으니 저는 그 매미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을 겁니다. 다만, 그 매미는 홍몽 흉수고 악과가 쌓여 있습니다. 존귀한 성인이신 사숙께서 친히 나서서 매미를 데리고 가셨다가 서방교의 명성을 해칠까 염려될 뿐이지요.”
준제는 한참 말이 없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이 매미는 흉한 성정을 찾기가 어렵다. 영산으로 데리고 가서 공덕 연못에 가두고 혼을 제도할 것이다. 사질, 괜한 걱정 말고 이만 돌아가게나.”
이 말을 듣고 현도 대법사는 공수했다. 더 무어라 대꾸하지 않고 뒤돌아서서 걸음을 조금 내디디자 천지 사이에서 자취를 감추고 해신 사당 후당으로 돌아왔다.
이게 바로 성인이로군.
어떤 도리를 언급할 필요 없이 귀한 입을 열면 대법사도 일단 후퇴하고 집에 와서 남몰래 화를 내는 수밖에 없었다.
해신 사당 안. 이장수의 가슴팍에 있던 천지영롱현황탑이 천천히 떠올라 대법사와 이장수에게 영념을 전달했다.
영념이 대법사의 마음속에선 어떤 목소리와 억양으로 나올지 이장수는 알지 못했지만, 이장수의 마음속에선 다음과 같이 울려 퍼졌다.
“죽여야지! 대제자, 뭘 걱정하노? 준제 점마는 짝퉁이라고. 진짜 공격해도 적수가 안 된다니까! 칠보묘수가 진짜로 내한테 되는 줄 아나. 상고 때 해봤는데, 아예 비교할 거리도 안 돼. 중보가 없는 준성인이나 시시한 선천 영보를 괴롭히는 정도라고. 태극도 형님을 불러와서 정면에서 공격하면 된다. 절대 질 수가 없다니까!”
대법사는 잠깐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내 도는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지만, 예의는 지켜야 한다. 내가 준제 성인을 공격하는 건 사실 스승님의 체면을 깎는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성인의 신통력은 헤아릴 수 없고 천도와 융합되고 천지와 연결되어 있으니 중보가 많더라도 싸워서 이길 수가 없다.”
현황탑은 부르르 떨더니 놀빛을 거두었다. 울화가 치미는 듯 보였다.
이장수가 옆에서 황급히 입을 열었다.
“대법사님, 제가 사려 깊지 못했습니다. 그저 어떻게 매미의 허물을 벗길지만 고려하고 목숨을 부지하는 신통력이 이러하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일부 종이 도인을 곁에 감추어두었더라면 영폭이 말미에 한 번 더 이어져도 뒷일이 없었을 겁니다.”
“네 잘못이 아니다. 이미 훌륭했어. 네 경지에 이러한 일을 내게 시켰다고 한다면, 이토록 깔끔하게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이 일을 통해 장수 너 또한 마음을 놓아라. 서방교 사람들이 다시 네게 직접적으로 공격하진 못할 것이니 말이다.”
대법사는 소매에서 옥패 하나를 꺼내 살짝 밀어서 이장수에게 건넸다.
“오늘 네가 수둔술로 그 매미를 따돌리는 걸 보고 네 천부적인 자질이 가장 뛰어난 것이 둔도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걸 가지거라. 본디 수행에 전념하고, 술법 신통력에 마음을 분산하지 말라고 할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이장수는 두 손으로 옥패를 받아들고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감정이 한껏 격앙되고 손이 떨린다!
이제부터 내게 없는 둔술이 무엇이던가!
건곤 둔술이라니!
이 둔술은 이름도 아주 단순했다. <건곤둔(乾坤遁)>. ‘말이 짧을수록 큰 놈’이라는 법칙에 따라 이 평범한 세 글자는 절대 어마어마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대법사님.”
이장수는 옥패를 거두었다. 대법사님이 있는 앞에서 깨달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오늘 너도 성인을 뵈었다. 소감이 어떠냐?”
대법사가 빙그레 웃으며 묻자 이장수는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사실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성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는 게 조금 아쉬웠고요. 대법사님, 그나저나 이 일은 계속해야 하고 이대로 끝마치면 안 되리라 생각합니다.”
“어찌하고 싶은 것이냐? 말해보아라.”
“용족의 힘을 빌려 소식을 퍼뜨리고자 합니다.”
이장수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천천히 운을 뗐다.
“예컨대······ 태고에 날개가 여섯 개인 매미 흉수가 있습니다. 성정이 잔악하여 무수한 학살을 했지요. 신통력도 어마어마하고 지극히 빠르며 건곤 술법에 능통합니다. 그 흉수를 잡을 수 있다면 때려죽일 수는 없을지라도 매미 허물을 영단으로 정제할 수는 있지요. 그 영단을 먹은 이는 장생하지 못하는 이는 장생할 수가 있고, 금선은 자신의 도경을 원만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를 빌려 서방교에 압박을 가하고 매미가 몸을 빼는 날이 없게 하는 겁니다.”
현도 대법사는 눈을 반짝였다가 감탄 어린 눈길로 이장수를 바라보았다.
울분에 찼던 천지영롱현황탑도 살짝 떨더니 놀빛을 다시금 드러내고 현황 기식을 끊임없이 떨어뜨렸다. 영념 두 줄기가 이장수와 대법사의 마음속에 전해졌다.
“도대체 어느 구석에서 주워온 보물이고? 속이 검은 것이 어르신을 따라잡을 지경이구먼!”
이장수와 대법사는 절로 서로 멀뚱히 쳐다보기만 했다. 진심으로 감히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물론, 너무나도 놀라서.
······
현황탑은 떠날 때 못내 아쉬워하며 입으로 계속 욕을 퍼부었다.
진정 눌러앉아서 이장수가 곳곳과 사해를 떠돌아다닐 때 보호하고 싶다고 했다. 이장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고 싶었으나 자신의 담력에 맞게 거듭 감격하고 목숨을 구해준 은혜에 감사 인사만 했다.
이전의 싸움에서 현황탑은 위력을 조금도 발휘하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보험이자 안심이요, 꿈에도 그리던 안정감이 아닌가!
더군다나 대법사가 곁에 없고, 이장수의 본체도 산에서 수행하고 있는 터라 그 자신도 별다른 낙이 없었으니 현황탑도 금세 질리고 말 것이다.
대법사는 이장수를 도선문으로 돌려보내주었고, 이장수는 다시 천정 도솔궁으로 돌아가는 대법사를 눈으로 배웅했다.
지하 밀실 안. 이장수는 세워둔 계획을 밀어내고 새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탄궁’의 안면 두께와 일 처리 스타일은 전에 생각했던 것과 조금 달랐다.
안면이 정말로 두꺼웠다.
과연 ‘홍황은 우리 서방교와 인연이 있군’이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다웠다.
이러한 성인이 친히 공격해서 한낱 인교 제자를 죽인다고 해도 이장수는 전혀 놀랍지 않을 터. 특히나 오늘은 준제 성인 앞에 잠시 얼굴을 내밀기도 했으니 앞으로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음. 산에서 10만 년은 동요하지 않고 계속 ‘온건’을 고수해야겠어!
몸에 지닌 추론 방지 물품을 점검하고 현황탑이 남긴 기운을 자세히 느꼈다. 현황탑과 다소 비슷한 기운을 어렴풋하게 감지했다.
그건, 토대를 감추고 추산을 끊어내는 인교 교운 중보 태극도의 위력이었다!
이장수는 씩 웃었다.
현황탑과 같은 영보가 놀랍게도 그러한 성정이었지. 태극도, 풍화포단 등의 중보는 또 어떠한 성질머리를 지녔는지 궁금하군.
모두 성질이 거친 형님들이라면, 참으로 대단히 시끌시끌하겠군.
“성······.”
이장수는 한숨을 푹 내쉬고 소매에서 동전 두 개를 꺼내 앞에 놓았다.
해신 사당에서 대법사가 계신 틈에 남몰래 공덕으로 동전 두 개를 품어보았지만, 아무런 이상 현상도 나타나지 않았었다.
동전은 ‘광택’이 절반 이상 벗겨져서 전체적으로 밝은 금색을 띠고 있었다.
양손으로 동전 두 개를 쥐고 몸속에서 천도 공덕을 살짝 차출해 동전에 주입했다.
짤랑~
동전이 살짝 떨리면서 맑은 울림을 내고 미약한 영념이 이장수의 마음속에 전달되었다.
그러나 보물과 보물 사이의 격차는 즉시 직관적으로 드러났다.
천지영롱현황탑의 경우 주인과 적극적으로 교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농담, 흐음, 생명과 친근하게 지낼 수도 있고 성인의 명도 알았으며 활발하기란 백만 년이 지나도 다 말할 수 없는 수다쟁이 같았다.
이장수가 오래도록 기대했던 동전 두 개는 친근함과 기쁨의 의미만 전달했고, 온 힘을 다 끌어모은다고 해도 마음속에 깨달음을 주는 것이 전부였다.
가장 간단한 사용 설명서기도 했다.
이장수는 자세히 깨달아보고는 살짝 인상을 썼다.
이 보물도 내가 생각한 것처럼 신기하진 않군.
동전이 머금고 있는 대도는 인간 처세의 ‘매매, 환매’였다.
즉, 모든 보물을 값이 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팔 수 있고, 이 동전으로 사들일 수 있다.
전쟁이 무역 시장을 망칠 수 있기 때문에 낙보동전은 ‘무기’류 법보에선 작용할 수가 없었다.
매매인만큼 낙보동전을 가지고 있는 쪽이 자연히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동전이 일종의 화폐로 부여받은 가치라면, 동전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공덕의 힘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낙보동전으로 영보를 얻으려면 공덕을 소비해야 한다.
얻으려는 보물의 등급이 높을수록 공덕을 많이 소모해야 한다. 심지어 천도는 마이너스 공덕도 윤허했다.
이는 공덕과 죄업은 서로 상쇄할 수 있다는 이장수가 전에 했던 추측을 증명했다. 그러나 공덕과 죄업은 그렇게 간단하게 제거할 수 없다.
절로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내 공덕은 공덕 금신을 응집해야 하니 이런 식으로 낭비할 수가 없다.
지금 봤을 때, 내가 낙보동전을 가진 주요 역할은 조 대인의 화를 막고 운소 선자가 겁에 드는 인과를 낮추는 것이다.
“됐어.”
이장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동전 두 개에 대고 상냥하게 격려의 말을 하고는 비단 상자에 넣어서 비장의 패 창고에 들였다.
이어서 천 한 장을 꺼내 금선자를 음해할 후속 작업을 꼼꼼하게 도모하기 시작했다.
여론전을 펼쳐서 서방교 성인이 금선자를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금선자가 단순히 취경 법보인에 불과하다면, 내가 후속으로 작업할 공간 또한 더더욱 커질 것이다.
오늘은 사실 서방교가 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준제 성인이 친히 나타나 매미를 지켰지만, 이는 스스로 체면을 떨어뜨린 일이니 말이다.
다만, 성인의 안면이 이토록 두껍다 못해 대법사와 이장수가 스스로 아무것도 얻어낸 게 없다고 여기게 할 줄은 전혀 몰랐다.
영폭 종이 도인을 72개나 썼단 말이다······.
잔고가 또 쪼들리겠군.
이장수는 선식으로 소경봉 뒷산을 훑었다. 가서 천년을 수행하는 나무들을 옮겨와야겠군.
“음?”
이장수는 눈을 끔뻑거렸다. 뒤늦게 생각났다.
삼장법사를 먹으면 불로장생할 수 있다는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설마······ 여기서 퍼져나간 건가?
미묘한 신화 역사에 참여한 느낌이란······.
그렇게 더욱더 열의가 생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