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세차게 부는 깜깜한 밤에 이장수는 조용히 소경봉으로 돌아왔다.
곳곳을 돌아다니며 살펴보고 모두 여느 때와 같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 편히 단방으로 향했다.
태극도의 위력이 배가되어 있고, 본체 또한 밤새 숨어있었긴 하나 교란할 만한 실마리를 충분히 남겨두고 둔술을 펼쳐 산문으로 복귀했다.
산으로 돌아와 제일 먼저 한 일은 령아를 살피는 것이었다.
분명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미묘하게도 가슴이 켕겼다. 상대가 막상 들이대면 겁먹고 스팀을 내뿜는 선수일지라도 말이다.
지하 밀실로 돌아온 후에는 붓을 들고 초상화를 그렸다.
운소 선자가 도화 나무 아래에 서서 고개를 돌리던 순간을 담았다.
초상화를 책상 옆에 걸고······ 그 옆에 두 줄로 커다랗게 ‘온’이라고 적어둔 글씨도 걸었다.
고민 끝에 다시 붓을 들고 령아가 맨발로 호숫가에서 고기 잡을 때의 초상화를 그렸다.
수양버들이 한들거리고 그림 속 소녀는 소매를 접어 올리고 허리를 숙여 수면 아래서 헤엄치는 영어를 응시하고 있었다. 유독 진지한 얼굴에는 물방울까지 달고 있었고 긴 머리카락은 옆으로 드리워져 있었다.
령아가 열일곱 살 때의 일이다.
이장수는 그녀의 반응 능력을 단련한다면서 법력을 봉인하고 맨손으로 호수에 있는 영어를 백 번 잡게 했었다.
매일 보던 어린 사매가 처음으로 다 컸다고 느꼈던 때이기도 했다.
다만······ 이장수는 두 폭의 초상화를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단지 이 정도였다면 봉신대겁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령아의 초상화를 운소 옆에 걸어두고 뒷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했다.
곧바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다름이 아니라 운소 선자는 실력이 너무나도 강하고 지나치게 똑똑해서 령아를 속이는 것처럼 계획을 세우기가 쉽지 않았다.
령아는 이장수에게 너무 보호받아왔고 본성 자체도 활발하고 생각도 단순한 편이었다. 인심이 음흉하다고 부단히 이끌어도 여전히 경계심이 부족했다.
운소 선자는 순수하게 너무나도 강한 터라 남들이 감히 음해하지 못한다. 고로 단순한 편이었다.
초상화 속 운소가 온화하게 미소 짓는 모습을 보며 이장수는 그녀의 부드러움 속에 가장 많이 담긴 것이 담백함이라는 걸 깨달았다.
역시, 령아를 속이는 게 상대적으로 쉬우리라.
옥비녀를 꺼냈다.
잠시 고민했다가 령아가 폐관을 마치면 비녀로 부담을 좀 주기로 마음먹었다.
“인과······ 겁난······. 일은 끝이 없고 마음도 끝이 없구나.”
성인이 나섰다는 건 필시 깊은 뜻이 있을 터. 절대 한순간 흥이 올라서 안배할 리가 없어.
이장수는 둥근 의자에 앉아서 마음에 일어난 폭풍을 곰곰이 되짚어보고 분석해보았다.
오늘 일은 사실 ‘최악’의 상황까지는 아니었다. 바꿀 수 없는 틀 속에서도 나름 안정적인 상황에 속했다.
심지어 정신을 나누어 남섬부주에서 배를 몰고 용길과 용족 고수 세 명과 함께 돌아다니면서 두 가지 지류를 상세히 정리하기까지 했다.
절교 쪽도 천정의 중요성을 깨닫고 내게 영향을 주면서 봉신대겁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크다.
‘일단 우리 성인께서 봉신대겁을 어느 정도 추산해내셨다고 가설을 세워보자.’
아래로 선을 그었다.
‘여섯 성인이 모두 태청 성인만큼의 추산 능력을 지녔다.’
‘나머지 성인의 추산 능력은 태청 성인만 못하다.’
이 둘로 나누었다.
습관적으로 종이 한 장을 꺼내 세밀하게 그려나갔고, 어느새 책상 앞에 앉은 지 수일이 지나 머리가 어지럽고 눈이 아픈 지경에 이르렀다.
······
그리고 몇 달 후.
땡—
도선문 곳곳에서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고, 각 봉에서 사람들이 나와 파천봉으로 집합하기 시작했다.
사부님의 부름을 받아 이장수도 제원을 따라 도선전으로 향했다.
오늘은 이번 기수 제자 대부분이 귀로(歸路)에 오르는 날이었다.
이장수는 고개를 아래로 드리운 채 속으로 끊임없이 생각했다.
‘통천 교주가 절교의 액운을 이미 알고 있을 가능성도 있어······.’
‘80%의 확률로 도문이 급속도로 쇠약해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태청 성인께서 봉신대겁의 시나리오를 바꿀 방법을 생각하고 계실지도 몰라. 그리고 나는 그 속의 밀정이 된 거고······.’
‘만일 성인께서도 천천히 계획해야 한다고 여기셨다면, 봉신대겁의 시나리오나 봉신대겁이 폭발하는 필요성은 어디에 있을까?’
“장수야······.”
제원 도사가 앞에서 부르자 이장수는 얼른 정신을 수습했다.
그 바람에 남섬부주에서 수리도(水利圖)를 그리고 있던 종이 도인은 손을 떨면서 천을 먹으로 적셔버렸다.
“예, 사부님.”
“무슨 고민이 있는 것이냐? 안색이 안 좋구나. 근래 수행에 문제라도 만난 것이냐?”
제원 도사는 걱정스럽게 이맛살을 구기고 묻더니 이내 전음으로 덧붙였다.
“수행에 어려움이 있거든 장문님이나 사공(師公)을 찾아뵙거라!”
“근래 마음을 너무 많이 써서 그럽니다. 수행의 일은 매우 순조로우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선인이 되기 전보다 좀 느려져서 그렇죠.”
사실이긴 했다. 전혀 효과 없는 정보들이겠지만 말이다.
제원 도사는 그제야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빙그레 웃었다.
“사사건건 너무 마음을 쓰는 것도 좋지 않아. 벗을 많이 사귀고 대단한 인물들을 많이 알아가면서 그들과 상의하다 보면 생각도 트일 것이다. 자만하지 말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우려하지도 말아라.”
“예. 명심하겠습니다.”
마음이 따스해졌다. 그러나 이내 좀 어처구니가 없었다.
현재 그가 고민하는 일은 태청 성인이 아니면 누굴 찾아가서 논의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무릇 봉신에 관한 일을 조금이라도 벙끗했다가는, 심지어 대겁의 대자라도 언급했다간 자소신뢰를 불러올지도 모른다.
경고가 아닌 정식 버전으로 말이다!
봉신대겁 전에 인과를 공모한다.
천정이 흥성하는데, 어떻게 판을 깨지?
이장수는 사부님 뒤를 따르면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대겁이 피한다고 피해지는 일이 아니라는 걸 운소 선자의 일이 증명했다.
만일 내가 사전에 천정으로 들어갔으니 안전하다고 느꼈다간 정말로 큰코다칠지도 모른다.
피한다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이장수는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는 기초 선상에서 성인을 도와 계략을 꾸미는 수밖에 없으리라.
다행히 현재 그는 아직 둔덕 위에 서 있으니 판을 깨는 방법으로 몇 가지를 선택할 수도 있다.
공덕 금신을 봉신대겁 전에 응결할 수 있다면 반드시 비장의 패 창고 속 왕폭탄이 될 것이다.
생각이 복잡해지니 절로 하품이 새어 나왔다.
제원 도사는 돌아가서 쉬라고 했지만, 이장수는 웃으며 거절하고 사부님을 따라 도선문 제자의 ‘졸업식’에 참가했다.
도선전 앞 공터에 각양각색의 도포를 입은 7백여 명의 제자가 서 있었다. 절반 이상이 짝을 이루고 있었는데, 다들 짐을 꾸리고 아쉬움과 동경을 담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각자의 길에 오르게 된다.
대부분 삼천세계로 돌아가고, 절반가량은 오부주로 가거나 수도 세력에 가입하거나 집으로 돌아가 가업을 계승하기도 하고 어느 지역의 산수가 되기도 할 것이다.
선인이 된 이들만 도선문의 <무위경> 상권을 소유할 수 있다. 다만 외부로 전수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해야만 했다. <무위경> 외에 대부분 경문이나 술법은 외부로 전해도 괜찮다.
<무위경> 하권은 진선이나 서열이 맨 앞인 유망주들에게만 전해진다. 제자 서열이 앞쪽이며 자질이 괜찮은 이들은 대부분 각 산봉에 남아 계속 수행을 이어간다.
감동도 없고 별로 힘도 안 나는 장문, 부장문, 태상장로의 연설이 끝나고, 제자들은 잇달아 산문을 나서서 구름이나 학을 타고 가야 할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 모습이 마치 흩어진 하늘의 별 같았다.
배웅하는 이들이 산문 어귀에 모였다. 수많은 ‘사부’는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개중 감성적인 선인들은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도선문 규칙에 따라 지난 주기인 2백 년 안에 제자를 거둔 진선은 다음 주기에 제자를 거둘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데, 이는 문파에서 안배한 수도 임무기도 했다.
오늘 도선문 개산대전이 열리는 날짜를 발표했다. 고로 졸업한 제자는 이 소식을 가지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게 된다.
더불어 문에서도 각 집사를 우수한 ‘신입 자원 지대’에 보내 선전하고 괜찮은 유망주를 물색하라고 했다.
개산대전이 언제 거행되냐고?
18년 후, 봄에서 여름으로 교체하는 달에 열린다.
개산대전을 앞당길 예정이었으나 외부요인―많은 선문이 선택한 개산대전의 시기가 집중된 편이었다―으로 인해 마지막에 시기를 뒤로 미뤄서 제자를 거두는 절정기를 피하기로 했다.
이미 한 번 구경해서 그런가, 이장수는 개산대전에 별 감흥이 없었다.
소경봉은 제자를 거두지 않아야 이상한 인과를 더하지 않는다. 이 부분은 사조와 사부님께 누차 당부했으니 이치대로라면 큰 이변은 없을 것이다.
확실하게 하고자 이따가 백범전으로 가서 장로들께 소경봉에는 인원을 주지 말라고 말씀드려야겠다. 안 되면 장문님을 찾아가서 해결하는 수밖에.
······
잘 모르는 동문을 배웅하고 사부님을 따라 소경봉으로 돌아온 이장수는 길고 긴 폐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령아의 폐관이 지나치게 길어지니 혹시 수행에 무슨 성가신 일이 생긴 건 아닌지 염려되는 터라 아예 초가집으로 돌아와 두문불출하고 빈 족자를 꺼내 봉신의 일을 계획하기로 했다.
이러한 천지 대겁은 연루된 생명이 너무나도 많아서 일의 대소를 가려선 안 된다.
핵심 인물과 몇몇 성인의 의사를 비롯해 천정, 서방교가 봉신에 미치는 영향을 둘러싸고 각기 다른 각도에서 분석해봐야 했다.
그리고 ‘예컨대 내가 옥황상제라면’ ‘내가 난초라면’ ‘뻔뻔한 탄궁이라면’ 등 주요 고수의 위치에 대입해 끊임없이 추산했고, 특별히 봉인해둔 기억을 열어서 살펴보기까지 했다.
이번에는 다시 봉인하지도 않았다.
아아, 패를 깠습니다!
기왕 태백금성이 될 운명이라면, 차라리 내가 알고 있는 태백금성과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버리자!
음, 안전을 위해 ‘태백금성’에 관해서는 계속 의심 상태를 유지한다.
일단 내가 알고 있는 사건을 종합했다. 현 상태에서 봉신대겁을 추산하고 내가 아는 서유겁난 때 천정의 상황으로 봉신대겁을 역추산했다.
짙은 안개에서 서서히 실마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제원은 이장수가 초가집에 돌아와 폐관한 후로 초가집에 법보 등잔이 켜져 있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밤낮을 가리지 않았고 해와 달이 지나도 끊이질 않았다.
걱정은 된다만, 정말로······ 아무것도 도울 일이 없었다.
족자가 초가집에 쌓여갈수록 이장수는 야위어갔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마침내 가장 안정적인 노선을 도출해냈다!
이 노선에서 봉신대겁이 발생하는 약간의 필연성과 서방교가 기회를 틈타 보일 움직임, 그리고 천정이 하는 역할을 엿보았다.
보이지 않는 안배가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나 봉신의 참극을 풀 하나의 열쇠가 지금 이장수의 곁에 있었다.
용길 공주였다.
용길 공주의 특수한 지위, 탁월한 자질, 그리고 봉신대겁에서 그녀의 상징적인 의미는 그녀에게 깊은 뜻을 부여했다.
봉신대겁을 확신할 수 없는 바탕에서는 절대 쉽사리 나서지 않겠지만 나서게 된다면 어떤 방안을 쓰건 용길을 피할 수가 없었다.
······
11년 반이 이렇게 총망히 흘러갔다.
운소 선자와 다음 만남까지 488년 정도 남았다.
금선겁의 덕을 입은 후 실력이 높아졌다.
11년 반 동안에 봉신을 계획하는 데는 정신을 절반만 사용했다.
남섬부주의 수로 조사도 중단할 수가 없고 사해 용족에 관한 일에도 종종 정신을 나눠야만 했으니 말이다.
동해 용궁이 천정에 충성한 뒤로 용족에 관한 일에서는 압박이 크게 줄었다고는 하나 용족 내부 갈등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욱 두드러졌다.
해신 사당에서 된통 당한 서방교는 그 뒤로 아무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우두와 마면도 일찌감치 전무를 데리고 지부로 돌아갔다. 전무의 전법은 확실히 남다른 구석이 있었는지 해신교 신사들의 실력이 일제히 급등하면서 해신교 자체 보호 능력이 몇 할 높아졌다. 물론 고수를 만난다면 여전히 도살되겠지만.
눈을 감으면 열어야 할 커다란 대문이 앞에 끊임없이 펼쳐지는 듯했다.
용궁을 천정으로 거두고, 지부를 바라보고, 삼천세계를 꾀하고, 천정을 돕고, 요족을 제거하고, 남주를 선인 세계와 인간 세계로 분리해야 한다.
삼교 선인을 전부 다 구할 수 없고, 삼교 고수가 전부 없어질 수도 없다. 서방교 흥성은 뒤로 미뤄야 할 터. 천정이 궐기하는 건 막아낼 수가 없으니!
이장수의 일 처리 스타일이 ‘피하기’만 있는 건 아니었다.
피하기는 단순히 위험도가 가장 낮아서 썼던 거고, 예컨대 피하려야 피할 수가 없고 위험한 상황에 전환이 나타나리라 예측된다면 그는 자신의 안위에 더 부합하는 계획을 세울 것이다.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나니 자신감이 확 오르는 것 같군.”
이웃 초가집에 아직도 입정 상태에 든 령아를 슬쩍 쳐다보고는 입가를 부르르 떨었다.
선도의 유통기한이 천 년이기에 망정이지!
녀석, 정말로 하늘에 올라가고 싶은 거냐? 안정적으로 천선이 되면 그만이지, 도기를 9번이나 끊어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장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계속 붓을 휘갈겼다. 그때, 마음속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
“아우? ······해신 아우?”
신념을 보내니 남해 해신교에 낯익은 손님이 찾아왔다.
조 대인 조공명이었다.
종이 도인이 지하에서 나와 조공명을 후당으로 안내했다. 그는 이맛살을 한껏 구기고 있는 조공명을 보며 먼저 물었다.
“형님, 표정이 어찌 그러십니까?”
“어휴, 이 일을 어찌 해결하면 좋겠나?”
조공명은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푹 쉬고는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지난번에 아우가 운소와 만나서 했던 말이 근 십 년 사이 절교에 미친 듯이 퍼지고 있어! 지금 하나같이 자기들이 지금 호감경인지, 또 설렘경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가열경로 갈 수 있는지 따지고 있다고. 아주 개판이 따로 없다네!”
이장수는 애써 인상을 쓰고 웃음을 터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인과란 대다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법.
절교 선인들이 칼을 겨눴을 때는 인교의 소법사도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생각했어야지요.
물론 이 말은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지만.
“다들 수도하느라 너무 적적했나 봅니다. 그렇다고 선배님이 이리 걱정할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조공명은 수염을 쓰다듬었다가 엉겁결에 대전 바깥을 흘끗하고는 이내 목소리를 낮추었다.
“금광을 아느냐?”
“금광 성모 말씀입니까? 당연히 알지요.”
“집착을 끊어낼 방법이 없느냐? 진정 난감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 강적을 만나면 바닥에 드러누우면 해결될 일이라만, 이 일은 뭔가······ 드러누우면 금광이 내 옆에 누우려고 할 것만 같단 말이지.”
이장수는 조 대인 때문에 웃음이 새어 나와 이내 고개를 가로 절레절레 흔들었다.
“감정에 관한 일을 누가 분명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선배님이 금광 성모께 마음이 없다면 대놓고 거절하면 될 텐데요.”
“다 같은 동문인데 금광의 체면도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
조공명은 여러모로 마음이 답답하고 괴로웠다.
조공명에게 괜찮은 계책을 내어주려는 찰나 마음속에 영광이 번쩍 스쳤다.
“형님, 제게 벗이 하나 있습니다. 이쪽 문제로는 전문가지요.”
“호오? 그게 누군가?”
“천정 인연전의 월하노인입니다. 중생의 인연을 관장하고 있으니 그에게 묻는 건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하지요. 아니면 저와 천정에 같이 가겠습니까?”
조공명은 눈에 곧바로 불을 켰다.
“좋다. 언제 가면 되겠느냐?”
“천정 신선이 아니면 함부로 천정에 들어갈 수 없다는 규칙이 있습니다. 강제로 들이닥친다고 말리진 않겠지만, 그렇게 하면 형님의 명성이 깎이겠지요.”
이장수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저도 변변찮은 해신인 터라 더 말할 것도 없고요. 아니면 이렇게 합시다. 보름만 더 있으면 천정에서 선도 연회를 엽니다. 그때 제가 초대장을 구해올 테니 그때 요지에 가서 선도를 먹고 겸사겸사 인연전에 가서 방법을 묻는 겁니다. 어떠십니까?”
“절묘하구나!”
조공명은 다리를 탁, 치며 웃었다.
“당장 동생들을 부르러 가겠다!”
“아니, 형님 잠깐만요. 이 일이 알려지는 건 좋지 않습니다. 특히······ 천정에서는 이번에 큰일을 치를 거라 절교에서 너무 많이 가면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기가 쉽습니다.”
조공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해신 아우의 말이 아주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어딘가 해신의 손에 조종당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응, 착각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