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교 조공명을 선도 연회에 초대하자고?”
능소보전, 흰옷을 입은 옥황상제가 옥으로 만들어진 탁자 앞에 앉아서 아래 해신의 보고를 들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장경, 대체 무슨 일로 초대를 하는 건가? 그런 고수를 이용해 서방교에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함인가?”
아래에서 이장수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폐하, 공명 선배는 성정이 건드리······ 흐음, 활달한 편이라 소신과도 교분이 있습니다. 이번에 선도 연회에 오는 건······.”
“잠깐! 짐이 맞춰보겠다!”
흰옷을 입은 청년은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씩 웃으며 추측을 내놓았다.
“여섯 가지 목적이 있구나. 그렇지?”
“······.”
여, 여섯 가지요?
어찌 추측하셨길래 여섯이나 되죠?
흠······.
일단 들어나 봅시다.
“영명하십니다!”
흰옷을 입은 청년 고개를 끄덕이고는 크게 외쳤다.
“첫째, 천정의 위엄을 고려했다. 둘째, 용족에게 겁을 주기 위해서다. 셋째, 절교에 잘 보이기 위해서. 넷째, 도문 삼교 고수와 천정이 교제하는 포문을 연다. 다섯째, 서방교를 방비한다. 여섯째는 선도 연회에 도문의 배경을 더한다!”
차, 참 잘 끼워 맞추시는군요.
조공명이 천정에 오는 건 분명 월하노인을 찾아가 애정 문제를 물어보고 싶은 게 다입니다만.
그리고 조 대인을 낚아서 천정으로 부른 것도 조 대인이 미리 천정을 알게 되면 앞으로 계획을 실행할 때도 편해진다는 것에 불과했다.
이장수는 옥황상제가 드러낸 담담한 미소를 보며 읍하고 대답했다.
“폐하의 일언은 소신이 한참 준비한 것입니다.”
옥황상제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가로젓고는 가볍게 대화 주제를 옮겼다.
초대장은 애초에 원하는 만큼 얻어낼 수 있었다.
굳이 간언하지 않고 당일에 조공명을 데리고 천정에 온다고 해도 감히 가로막을 천장은 없을뿐더러 옥황상제도 절로 ‘여덟 가지 목적이 있다’라며 결론을 내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선도 연회가 임박한 터라 이장수는 옥황상제와 세세한 부분까지 논의를 마친 후에야 물러날 수 있었다.
능소전, 옥황상제는 일어서서 천천히 걸었다. 눈에는 생기가 넘쳐흘렀다.
······
요지의 규방 안, 젊은 나이의 절세 미녀이자 여선인의 수장이 침상에 기댄 채로 생각에 잠겼다.
몇 번이나 말을 꺼내고 싶었으나 염려되는 바가 있는지 입만 벙끗거릴 뿐이었다. 이윽고 그녀는 대전 밖에 있는 궁녀를 불렀다.
“폐하께 장경 경을 좀 빌려도 되겠느냐고 여쭙거라. 요지 선도 연회 배치에 대해 해신이 친히 와서 살펴보게 하고 싶구나.”
궁녀는 공손하게 대답하고는 일어서서 읍하고 대전을 빠져나갔다.
“정말 성가시군.”
여선인 수장은 콧방귀를 뀌었다. 평소 단정하고 우아한 그녀는 저도 모르게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가 순간적으로 분노를 터뜨렸다.
‘망할 호천. 맨날 말로만 괜찮다, 괜찮다고 하지, 지가 밴댕이 소갈딱지고 예민한 건 아나 몰라!’
그러나 대전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오자 곧장 자세를 고쳐 앉고 분위기도 바꾸었다. 눈을 가늘게 접은 채로 궁녀가 다가와 요지의 자질구레한 일을 아뢰길 기다렸다.
이윽고 천장 두 명이 요지 선자 하나를 호위하여 해신부에 이르렀다.
선자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뢰자 이장수는 폐하께 아뢴 후 요지에 가서 왕모를 뵙겠다고 대답했다.
상당히 필수적인 과정이라 어쩔 도리가 없다.
옥황상제가 이런 일을 신경 쓸지는 모르나 어쨌거나 뭐든 기록으로 남겨두는 게 적절하다.
그리하여 ‘왕모가 해신을 요지로 부른’ 사소한 일이 두 번이나 능소보전을 거쳤다.
왕모와 해신이 각각 옥황상제에게 한 번씩 아뢴 것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의기양양했던 옥황상제는 절로 깊은 생각에 빠졌다.
이게······ 무슨 일이지?
사매이자 도려, 그리고 내가 제일 신임하는 신하가 내 앞에서 이렇게 조심스럽게 굴 일이던가?
당당한 옥황상제인 내가 이런 사소한 일로 불만을 가지는 인물이던가? 더군다나 장경은 어떤 사람인가? 요지에 간다고 어떤 실례되는 행동도 하지 않을 터.
“응?”
옥황상제는 별안간 눈썹을 치켜들고는 마음속에서 화신이 전하는 정보를 받아들였다.
서천문에서 천장 두 명이 용길의 혼인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흥. 천정을 수비하는 큰일을 하면서 감히 한담이나 주고받으며 시간을 때우다니. 둘 다 6백 년치 공덕을 깎아야겠다!’
그나저나 어디까지 생각했더라?
그래. 장경은 실례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거야.
······
천정에 있는 종이 도인이 요지로 달려갈 때 또 다른 종이 도인은 하던 붓질을 멈추었다.
“전하, 왕모 낭랑께서 싫어하시는 일이 있습니까?”
선미에서 좌선 수행 중이던 용길이 눈을 번쩍 떴다. 대답하기 전에 해신 대인이 질문한 의도를 먼저 분석해보았다.
“어마마마는 평소 온화하시고 매우 너그러우세요. 해신, 어마마마를 뵈러 가시나요?”
“예, 낭랑께서 부르셨습니다.”
이장수는 선식으로 아래 대천을 훑고 곧 완성할 마지막 수문도(水文圖)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선도 연회 배치를 맡기신다는데, 탁자를 옮기고 접시를 닦는 일을 시키려나 봅니다.”
용길은 푸흡, 하고 웃음을 터뜨렸고 작은 배 주위에 숨어있던 용머리 도사 셋도 크게 웃었다.
웃음소리는 아주 명랑했지만, 눈에 보이는 화면은 확실히······ 조금 이상했다.
이장수는 용길에게 시선을 잠깐 주었다가 몸을 일으키고는 다시 표정을 굳혔다.
“전하도 옆에서 10여 년을 보셨겠지만, 이곳이 마지막 대천입니다. 선도 연회까지 아직 11일이 남았으니 제가 전에 했던 대로 이 대천의 수문을 정리해보세요. 그러면 이번 일정이 전하께도 헛되지 않은 셈이겠지요.”
“제, 제가요?”
용길은 바로 어안이 벙벙해졌다.
“해보세요. 참여한 느낌이 있을 겁니다.”
이장수가 선필을 용길에게 바쳤다.
“고맙습니다, 해신!”
용길은 조그마한 얼굴에 흥분을 담은 채로 재게 걸어왔다.
해신이 공덕을 나눠주고 천정 공로 명단에 그녀의 이름을 남기게 해주려고 한다는 걸 용길이 어찌 모르겠는가.
용길은 숨죽이고, 붓을 댈 때마다 깊이 고민해서 아담한 글씨를 천 위에 옮겼다.
······
한편, 이장수는 선실 밖에 서서 하늘과 땅 사이를 바라보며 평온한 눈으로 절반 이상의 정신을 천정으로 돌렸다. 천정에 있는 종이 도인은 어느새 요지 부근에 이르렀다.
요지란 사실 16개의 선산(仙山)이 모여서 만들어진 곳이었다. 천정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선산은 대부분 황량했다. 신선이 많아지면 그들의 관저로 개척될 예정이다.
멀리서 요지를 본다면 16개의 선산이 이어져 둘러싼 완전한 원이었다. 그 안에 호수가 하나 있는데, 그곳이 바로 ‘요지 본지’였다.
호수는 한 면의 거울처럼 하얀 구름 송이와 푸른 하늘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무수한 섬이 떠 있는데, 섬의 경치는 유달리 아름답고 구성도 모두 달랐다. 소수의 누각은 더할 나위 없이 고상했다.
요지 옆 선산에는 호화로운 저택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었다. 돌아다니는 인영이 보였고, 정답게 웃으며 이야기 나누는 소리는 마치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같았다.
조금 멀리 떨어진 궁전에서는 선자들이 웃으며 장난치고 있었다. 아마 요지 선자들이 휴식을 취하는 곳일 터.
호수와 가까운 궁전에서는 무리를 이룬 선자들이 영기가 자욱이 깔린 곳에서 좌선 수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분위기는 장엄하기 그지없었다.
호수 위에 있는 섬은 대부분 음악 소리, 새 소리, 물이 흐르는 소리였고, 사람들의 말소리는 드물었다.
이장수는 선자의 안내를 받아 한가운데 있는 섬으로 이동했다.
그 덕에 이번 선도 연회가 개최되는 장소를 조금 가까이에서 보게 되었다.
호숫가 한편의 어느 선산이었다.
옥황상제와 왕모가 앉을 보좌, 연회에 참석할 손님들을 위한 앉은뱅이책상 수백 개가 배치되어 있었고 선자들이 날아다니면서 정교하게 만들어진 장식물을 걸었다.
이 정도면 다 끝난 거 아닌가?
이미 다 된 마당에 왕모 낭랑이 그를 불러서 구체적으로 무얼 시키려는지 의문이 들었으나 일단 정신을 바짝 차리기로 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소경봉에 있는 본체는 최신 역작 <백미 강철 노후도>를 꺼내 자세히 감상하면서 ‘명예와 이익에 무관심’ 모드로 전환했다.
어느 대전으로 안내된 그는 앞으로 다가가 왕모 낭랑께 인사를 올렸다. 보좌 위에 단정하게 앉은, 푸른색 긴 치마를 입은 절세 미인에게 시선이 닿았다.
흐음, 강철 해골이로군.
“소신, 왕모 낭랑을 뵈옵니다!”
“폐하께서 이번 선도 연회에서 용족의 항복을 받아내라 명하셨다지? 오늘 경을 부른 건 이곳의 배치가 잘 되었는지 보고 상을 줄지, 벌을 내릴지 함께 결정하자는 의미였다.”
“소신, 명 받들겠습니다.”
이만 물러나겠다고 아뢰고 돌아서려는 찰나 왕모가 계속 말을 이었다.
“이 사람은 요지에 오래 머물며 수행에 바쁜 터라 폐하의 걱정거리를 나누지 못함을 자책하고 있었다. 다행히 장경 경이 천정에 들어와 힘쓰면서 천정의 각 사무가 점점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더구나. 천정이 오늘의 골격을 갖춘 것에 경의 공을 뺄 수가 없지.”
“천부당만부당하옵니다. 모든 것은 폐하께서 적절히 통제하셨기에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폐하야말로 출중한 재능과 원대한 지략을 품고 힘을 다하여 천정을 다스리시지요. 삼계 중생을 생각하는 마음에 소신은 실로 탄복하였나이다.”
왕모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는 많은 생명이 노래하는 것처럼 감미로워 감동이 물씬 일었다.
음. 강철 해골이 뼈마디가 부딪히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있군.
“이따가 경의 관저로 상을 보낼 것이니 사양하지 말아라. 경, 나는 천지 대세를 잘 이해하지 못하여 궁금한 점이 있다. 혹 해답을 줄 수 있겠는가?”
이장수는 고개를 아래로 드리우고 공수했다.
“하문하십시오. 숙고하고 답을 드리겠습니다.”
“제일 먼저 용족을 사로잡으려 계략을 꾀했던 건 서방교라지. 그런데 경이 폐하께 상소를 올려 이해득실을 논한 후 용족을 천정에 거두는 일을 윤허해달라 주청했다고 들었다. 짧은 시간 만에 현재 형세가 되었고 서방교는 패전했어. 대체 어떻게 해낸 것인가?”
금선자가 해신 사당에서 맹세를 한 순간부터 이야기해야 할까요.
“낭랑, 서방교는 천지간에 손꼽히는 대교파입니다. 더욱이 성인도 두 분 계시지요. 그들이 용족을 얻고자 했던 건 첫째, 용족을 수중의 예리한 칼날로 만들기 위해서였고, 둘째는 용족이 무수한 세월 쌓아온 재산 때문입니다. 용족의 재산을 얻는다면 서방교가 크게 흥성하는데 더더욱 큰 저력이 되니까요. 대교파는 용족을 무시했습니다. 용족의 충성을 얻고자 하면서도 정작 그들에게 이익을 줄 생각이 없는 터라 매서운 수단을 쓰고 흉수를 보냈지요. 이에 용족은 사상자가 상당히 많고 고통이 끊이질 않습니다. 반면 천정이 용족을 거두어들이려는 건 하늘의 위엄을 바로 잡고 다시 세우며 천정의 세력을 더하기 위해서입니다. 동시에 용족에게 무수한 이득을 주고 그들의 죄업도 풀어주었지요. 대세만 잡고 있다면, 사실 과도한 계략을 꾸미지 않아도 용족은 절로 심복할 겁니다.”
이장수의 말을 들으며 왕모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경이 말은 쉽게 한다만, 그 속의 어려움을 타인이 알기란 힘들 터. 다만 서방교가 그냥 내버려 두겠느냐? 이번 선도 연회에 서방교의 계략이 숨어있다면 어떡하나?”
“있을 겁니다. 소신이 추산한 바에 따르면 서방교 성인 제자들은 제 발로 찾아올 겁니다. 소신이 폐하께 이미 간언을 올렸고 폐하께서도 대응책을 마련하셨습니다.”
“그럼 되었다. 폐하께서 미리 대비하셨다면 나도 안심이구나.”
왕모는 이 일에 관해 더 묻지 않고 이내 별로 관계없는 문제 몇 가지를 물었다.
예컨대 지금 도려가 있는지, 현재 천정 법도에 어떤 의견이 있는지 등이었다.
이장수는 심사숙고 후 대답하고 조심스럽게 대응했다. 왕모와 있는 내내 무슨 실수라도 할까 봐 신중하게 행동하고 먼저 고개를 들고 왕모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왕모전을 나와 선도 연회가 열릴 장소로 가서 관련 업무를 지휘할 때까지 이장수는 무리를 이루어 다니는 아름다운 인영들을 보면서 마음속에서 자동으로······ 강철 해골을 입혔다.
쓰읍. 최신 작품은 뒷심이 장난이 아니구먼!
······
순식간에 열흘이 지나갔다. 이장수는 정신을 셋으로 나누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매우 바쁘게 보냈다.
선도 연회까지 반나절 남은 시점, 이장수의 종이 도인이 동해 용궁에서 나타나 동해 용왕, 동해 용궁 대태자, 공주 두 명, 십여 명의 용족 장로, 장군과 함께 중천문(中天門)으로 향했다.
바람을 타고 유영하는 내내 이장수는 용족 고수들에게 반복해서 디테일한 부분을 당부했다.
용족도 이번에 천정에 가는 건 신하가 되기 위함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동해 용왕도 금포로 갈아입었다.
막 중천문에 도착했을 무렵 서해, 남해, 북해 용궁에서도 십여 마리의 창룡이 구름을 뚫고 홍황 대지에서 날아왔다. 그들 또한 중천문 앞에 내려와서는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다.
이장수는 서해 용왕을 비롯해 뒤에 안색이 제각각인 용족 장로, 장군을 보며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선도 연회가 열리는 시간과 용족을 초대하는 내용에서는 서방교를 속일 수가 없었다. 어차피 조금만 추산해도 알 수 있는 내용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장수는 십여 년 동안 치밀함을 유지해왔다. 일단 서해 용궁을 방치하고 끊임없이 진짜와 가짜를 섞은 소식을 방출했다.
어제가 되어서야 동해 용왕이 서해 용왕에게 친필 서신을 써서 가장 믿을 만한 인물을 뽑아 오늘 이곳에서 만나자고 말하게 했다.
서해에는 반역자가 적잖게 있을 터. 그들이 선도 연회에서 일을 꾸민다면, 이장수는 비상용 계획을 가동하면 그만이다.
선도 연회에서 용족을 신하로 맞이하는 건 공공연한 계획이었다. 실제로 서해 용궁이 서방교에 조종당하고 있더라도 대외적으로는 반드시 천정에 귀순해야 했다.
그게 대세였다.
“여러분, 이쪽으로.”
이장수가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사해 용왕이 구름을 몰고 제일 앞에서 날았고, 이장수가 그 옆에서, 용족 장군, 태자와 공주, 장로가 그 뒤를 따랐다. 대부분 동경과 기대를 안고 있었고, 나머지는······ 속이 불편했다.
중천문 어귀에는 천정 정예병 6만 명과 천정 금선경 장군 아홉 명이 조용히 대기 중이었다.
같은 시각, 남해 해신교 대사당.
이장수가 술에 취한 조공명을 깨우자 옆에서 한참 기다린 오을이 얼른 다가가 예를 갖추었다.
“천정 선도 연회가 곧 시작될 겁니다. 제 화신은 중천문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형님과 오을도 함께 올라오세요. 중천문에서 만납시다.”
“오냐!”
조공명은 하품을 하며 또 물었다.
“월로에게 줄 선물이라도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냐?”
이장수는 소매에서 술 단지 하나를 꺼냈다.
“월로가 제일 좋아하는 과실주로 준비했습니다. 귀한 선물은 아니지만, 우의를 표하기에 딱 좋지요.”
“좋다!”
조공명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껄껄 웃고는 오을을 데리고 구름을 몰았다.
······
남섬부주 서북점의 작은 배 위.
용길이 이마에 스민 땀을 닦아내고 일어섰다.
완성한 수문도를 바라보며 12년 동안 해신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해냈는지 깨달았다. 그녀였더라면 백 년을 준대도 완성하지 못했으리라.
이장수가 웃으며 소매에서 자루 두 개를 꺼내 용길에게 건넸다.
“또 다른 화신이 중천문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수문도를 가지고 오세요. 거기서 만납시다.”
주위에 있던 용족 태고 장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해신, 저랑 같이 안 가세요?”
“예. 화신과 화신이 만나면 어차피 똑같은 백발에 흰 수염을 지닌 얼굴이라 저는 별 느낌이 없겠지만, 그곳을 지키는 천정 병장들은 충격에 휩싸일 겁니다.”
용길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이장수가 12년 동안 힘들게 그린 수문도를 담은 자루를 품에 안고 구름을 몰아 중천문으로 향했다.
나무배 법보도 이장수의 손에 시꺼멓게 탔다.
“휴······.”
종이 도인은 나무배에 서서 아래 대천의 격류가 솟구치는 소리를 들으며 천지간에 충만한 물의 영기를 느껴보았다.
아무 느낌도 없었다.
막이 열리고 나면 절대 돌아보지 않으리.
이 천지는······.
“응?”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감동을 중단하고, 소경봉 호숫가 초가집에 있던 본체가 고개를 돌려 이웃집을 쳐다보았다.
깨어나는 건가? 타이밍도 참으로 잘 고르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