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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형이 실력을 숨김 (332)화 (332/593)

연회장 밖, 이장수가 청우와 함께 커다란 바위 옆으로 갔다. 재빨리 밧줄 하나를 꺼내 청우의 코걸이에 묶었다.

청우가 미약하게 인간의 말을 토해냈다.

“장경 사형······ 사실······ 진짜 묶을 필요는 없어요.”

청우의 얼굴에는 온통 ‘답답함’이라는 말이 눈에 보일 정도로 쓰여있었다. 밧줄에 한 번 또 한 번 휘감긴 청우는 바위 옆에 엎어져 약간 무료하게 꼬리를 흔들었다.

정말로 묶다니.

장수, 오 아니지, 대법사께서 장경 사형이라고 불러야 한댔어.

장경 사형은 지나칠 정도로 안전을 추구하는군. 노군께서 대충 던진 말을 끝까지 지키는 것 좀 봐!

그렇다고 내가 영지가 안 트여서 말해도 못 알아듣는 짐승도 아니고, 연회장에 있는 놈들이 법술로 덤비면 나를 이길 수 있는 건 열 명도 채 넘지 않을 텐데?!

됐어. 탈 짐승이면 탈 짐승답게 굴어야지. 묶인 곳에서 쉬면 그만이야.

음메—

청우가 입을 벌리자 목구멍에 소용돌이가 나타났고, 소용돌이 속에서 선도 하나가 날아 나왔다.

청우는 입을 다물고 편안하게 선도를 씹기 시작했다.

이장수는 청우를 묶고 빠른 걸음으로 돌아왔다.

연회장에 이제 막 발을 들인 순간 내부의 분위기가······ 상당히 무거워졌음을 느꼈다.

느슨한 태도를 보였던 용들은 하나같이 의관을 바로 하고 단정하게 앉았으며 바짝 긴장한 얼굴이었다.

사해 용왕 또한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있던 모습에서 온화한 미소를 드리우고 퍽 연장자다운 면모를 보였다.

옥황상제와 왕모는 되레 조금 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옥황상제는 정중앙 보좌에 위풍당당하게 앉아있고 왕모는 단아한 모습으로 그 옆에 배석했다.

조 대인은 헐렁하게 앉은 자세를 거두었다. 조금 전 ‘이곳에서 누가 감히 건드리나’하는 호방함은 지금 ‘저는 절교 제자입니다’라는 엄숙하고 진지한 면모로 바뀌어 있었다.

천정 신선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다들 정신을 바짝 차렸다. 특히 바늘구멍이었던 월하노인의 눈은 부릅뜨면서 작은 방울 같아졌달까.

서방교에서 온 도사 여섯도 단정하게 앉아 미소를 드리웠다. 마치 조금 전의 일은 없던 일인 것처럼 말이다.

어째서 이런 분위기가 되었냐고?

태상노군이 이곳에 계시기 때문이다!

이장수는 네다섯 걸음을 걷는 동안 노군이 어째서 왔는지 명백히 분석했다.

일단 ‘구경하러 왔다’처럼 천박하고 기술성이 전혀 없는 선택지부터 제거했다!

조금 전 노군이 건넨 눈빛, 부축하도록 윤허해주었던 것, 그리고 청우를 묶으라 심부름을 시켰던 것 등을 결합하니 단서가 드러났다.

노군께선 내게 힘을 주기 위해 오셨다!

내친김에 서방교 성인이 기습 방문하는 상황을 예방하고, 용족이 오늘 천정에 귀순하도록 태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리라!

이 부분을 확인했으니 이제 어떻게 해야 만점에 가까운 답안을 제출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음······ 이때 노군이 연회석에 앉아계시면서 기존의 팽팽했던 국면은 크게 변해 아군의 우위가 무한대로 커졌다.

금기: 용족의 큰 우위

금기: 연환계(連環計)

적합: 적당한 밀고 당기기

적합: 기본 틀 옮기지 않기!

이럴 때일수록 <온자경>의 지도 정신을 고집하고 <수작론>의 가치를 완전히 발휘해내야 한다.

인교 이익을 첫 번째로, 천정의 이익을 두 번째로 견지하는 원칙은 한 원회가 지나도 흔들리지 않아야 해!

그러므로 이장수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기 전 걸음을 늦춰서 옥황상제에게 읍했다.

“폐하, 자칭 서방 성인의 제자들은 아직 신분을 증명하지 않았습니다.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니 이어서 계속하겠습니다.”

옥황상제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군께서 이곳에 계시는데, 서방 성인 제자를 사칭하는 잡귀가 온들 걱정할 필요가 있겠느냐.”

“정말로 성인 제자라면 지금 자기를 증명하기 급급하지 않겠습니까.”

이장수는 뒤돌아 낡은 옷을 입은 여섯 도사를 보며 온화하게 미소 지었다.

이장수가 암암리에 각도를 계산했던 걸 수도, 아니면 정말 순수하게 공교로웠던 것일 수도 있는데, 여섯 도사가 이장수를 바라보았을 때, 마침 단상 구석에 앉아있는 태상노군이 시야에 들어왔다.

앞의 해신은 백발에 흰옷을 입고 인자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 뒤에 있는 도사는 말없이 눈꺼풀을 반쯤 내리고 있었다.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압박감에 여섯 도사는 도심이 불안정해졌다.

가장 말이 많았던 도사가 보기 흉한 웃음을 쥐어짰다.

“우리 형제가 증명을 못 할 게 무어가 있겠소. 지금 당장 대도 맹세를······.”

“잠깐!”

이장수가 여섯 도인의 말을 끊고는 ‘지금 안 꺼내면 언제 꺼내시려고요?’하고 말하는 듯한 눈빛으로 옆에 조공명을 쳐다봤다.

반면 조 대인은 조금 망설였다. 이맛살을 구긴 채 ‘노군 앞에서 그걸 꺼내란 말인가?’라고 눈짓했다.

이장수의 눈빛이 상당히 단호하게 변하자 조공명도 더는 망설이지 않고 소매에서······ 약간 낡은 족자를 꺼내 선력으로 이장수에게 건넸다.

까라면 까는 거지 뭐.

옥황상제의 윤허를 받은 이장수는 여섯 도사 앞으로 느긋하게 다가가 그들의 앞에 족자를 놓았다.

족자를 꺼내자마자 도사들은 서로 눈만 멀뚱히 쳐다보았다. 서로의 얼굴에서 ‘분노’를 엿본 그들은 각자 ‘충격’을 받았다. 뜻, 뜻밖에도 모두 조공명에게 자해공갈 사기를 당했었던 것이다!

이 족자는 범죄의 증거다!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죄증이라고!

여섯 도사는 오래 살아온 부부가 알고 보니 어린 시절 잃어버린 남매였을 때······의 느낌을 받았다.

아주 미묘한 그런 느낌 말이다.

“여러분.”

이장수는 살짝 읍하고 옆에서 불자를 들고 잠자코 서 있었다.

한 도사는 왼손을 살짝 떨면서 앉은뱅이책상 위에 족자를 펼쳤다.

익숙한 문구, 익숙한 양식, 그리고 새로 추가된 ‘신선한’ 서체를 보며 차마 돌이켜보기조차 싫은 세월이 떠올랐다.

불현듯 도사는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그 많은 동문 고수와 사문 형제들이 왜 한동안 안색이 어두침침하고 분노가 무거웠었는지, 어째서 일부 동문이 2백 년에서 5백 년 동안 폐관하겠다고 선포하고 잠깐 교파 사무를 묻지 않았는지를 말이다.

진상이 여기에 있었군!

이장수는 온화한 목소리로 인내심 있게 설명했다.

“도우, 여기서 여기까지 읽은 다음 여기서 마무리하면 되오. 자기 신분을 증명하는 것이니 중간에 있는 그 부분은 생략해도 괜찮소.”

주위에서 던져오는 눈빛과 선식에는 조공명이 꺼낸 ‘보패’가 무엇인지 하는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잠시 후, 무겁게 깔린 목소리로 서방교 도사가 입을 열자 천도의 힘이 들끓었다. 그는 <감념명세주>를 시작으로 장장 수천 자에 달하는 대도 맹세를 읊기 시작했다!

족히 한 시진 동안 여섯 도사가 맹세를 했다.

천도의 힘이 오가며 그들이 스스로 칭한 신분을 각각 한 번씩 검증했다.

대도 맹세를 여섯 번 반복했으니 연회장에 있는 신선, 용족, 옥황상제, 왕모, 그리고 나중에 달려온 용길 공주까지 모두 똑같은 말을 여섯 번이나 들었다.

딱히 할 말이랄 건 없었다. 그저 식견이 넓어지고 새로운 세계의 대문을 연 느낌이랄까.

교양 없는 일부 무장은 ‘대도 맹세라는 게 저렇게 중요한 것인가?’라고 말했고, 좀 배웠다고 하는 문신들은 고상하게 ‘빌어먹을, 저래도 돼?’라고 말했다.

여섯 번째 도사의 맹세가 끝나자 이장수는 족자를 거두고 중얼거렸다.

“사실 한 분만 자기 신분을 증명했으면 됐소. 성인 제자가 사칭한 자와 같은 물에서 놀 리가 있겠소? 뭐, 워낙 여러분이 열정적인 터라 나도 딱히 말하지 않았지만 말이오.”

조금 전에 피를 토했던 서방교 성인 제자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으나 이내 선혈을 꾹 삼켜냈다.

이 순간, 천정 중신들과 연회장 주위에 있는 천장들 그리고 사해 용왕, 용족은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이장수를 바라보는 신선들의 눈빛에는 대개 경외심이 깃들어 있었다. 그들은 이장수에게 ‘절대 미움을 사면 안 될 사람’이라고 꼬리표를 달아주었다.

누가 봐도 서방교에서 온 여섯 도사는 해신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해신이 오자마자 돌연 냉정하게 대하기까지. 일련의 흐름은 해신의 손아귀에서 가볍게 통제되었고, 여섯 도사는 점차 벗어날 수 없게 제압되어 몇 마디 만에 체면을 모조리 잃고 말았다.

심지어 노군이 온 것도 해신 대인이 무언가 진행하는데 전혀 영향이 미치지 않았다!

서방교에서 온 이들은 결코 무능하지 않았다. 성인 제자가 될 자질도 충분했다. 애초에 용족을 그토록 몰아붙이고 압박했던 건 능력이 있다는 게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그들은 미리 준비해두었던 말들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흐음, ‘계략이 유명무실해서 나설 기회를 찾지를 못했다.’라는 게 더 맞을 것이다.

이제 막 첫걸음을 내디뎠거늘 맞은편의 해신은 어느새 다섯 번째 걸음을 걸어갔고, 심지어 그들의 앞에 네 개의 구덩이를 파내기까지 했다.

어찌 싸운단 말인가?

확실히 이번 싸움은 이장수에게도 별로 이득이랄 게 없었다.

그저 여섯 도사의 체면을 깎는 것뿐인지라 더 많은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각도를 바꿔서 생각했을 때, 노군이 오지 않았더라면 이장수와 옥황상제는 서방교에 공격을 해야 했으리라.

이렇듯 이장수에게 정리된 서방교 여섯 도사는 기세가 꺾이고 예기를 잃었다.

이제 그들은 무슨 말을 하거나 논쟁을 하건 효과는 크게 깎일 것이고, 더욱이 용족의 판단에는 영향을 줄 수도 없으리라!

오늘 해신의 계획은 모두 뒤에 있을 계략을 위한 밑밥이었다!

분홍색 치마로 갈아입고 손목에 끈 두 개를 묶고서 돌아온 용길 공주는 앞쪽 자리에 배치되었다. 그녀는 12년 동안 따라다닌 해신을 보며 조금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눈치채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우, 무서워라.’

이장수는 뒤돌아 옥황상제에게 신분을 분명히 조사한 결과 서방교의 여섯 고수가 확실하다고 아뢰었다. 옥황상제는 그에게 칭찬의 말을 건넨 후, 여섯 도사에게 술잔을 들어 올리며 없던 일로 치부했다.

드디어 이장수가 선도 연회장에 마련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반면 그의 양편에 앉은 동목공과 조공명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서방교에서 진정으로 준비한 일은 아직 뒤편에 있었으니 말이다.

재밌는 연극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

이장수가 자리에 앉자마자 조공명이 앉은뱅이책상 아래로 이장수의 팔을 잡았다.

노군이 보는 앞에서 일반적인 전음을 하면 노군이 들을 수도 있기에 직접 접촉으로 전음하는 편이 가장 안전했다.

“장수, 언제 정식으로 거두어졌어?”

이장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었다.

“저는 본디 인교 제자입니다만.”

조공명은 무슨 생각에 잠긴 듯했고, 그 사이 이장수가 옆에 있는 동목공에게 전음했다.

“목공, 이제 폐하와 낭랑을 모시고 노군께 술을 올리셔야지요.”

동목공은 꿈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벌떡 일어서서 분위기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연주가 다시 시작되고 서른여섯 명의 월궁 상아가 춤을 한 자락 선보였다.

명성이 자자한 ‘항아’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지만, 천정의 가무는 가히 최고 수준이었다.

참고로 상아는 태음성(太陰星)에서 수행하는 여선인으로 전공 분야가 춤과 음악이고, 항아는 상고 신화 속 대낮에 비승했다던 그분이다.

신화는 편향적인 면이 있고, 실제 이야기는 더더욱 우여곡절이 많았다. 태음성 성군(星君)에 봉해져 상아들을 관리하고 광한궁(廣寒宮)에서 기거하며 평소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노군은 아무리 가무 감상을 즐기지 않는다고 한들 천정에서 예의는 갖추어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선들은 다시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선도는 아직 두 시진은 더 있어야 익는다고 하고 분위기는 점차 열띠기 시작했다. 거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연회가 정식으로 시작되기 반 시진 전, 동해 용왕이 이장수에게 눈빛을 던졌다.

이장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술잔을 내려놓고 책상다리에서 일어선 자세로 고쳤다.

그러자 삽시간에 시선들이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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