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형이 실력을 숨김 (363)화 (363/593)

영산 도사들이 앞으로 달려들 자세를 취하자 도문 선인들도 전진했다.

위압이 더욱더 무거워지면서 도사들은 감히 더 전진할 수가 없었다.

대법사가 유유히 말했다.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어찌 자진을 할 수가 있나? 자초지종. 그러니까 퍼뜨린 헛소문을 상세히 말하고, 공범이 있는지 자백하라. 그럼 도문에서 징벌을 가할 것이다. 자진은 네 선택인데, 우리 도문이 그 인과와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이냐?”

그 중년 도인은 두 눈을 부릅떴다. 눈에는 슬픔과 분노가 역력했다.

영산 도사 중 하나가 목소리를 냈다.

“이곳은 서우하주, 우리 교주의 어전이오! 도문 제자가 서방 사람을 건드리는 건 성인의 체면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는 소리가 아닙니까!”

“도우, 성인의 체면을 함부로 운운하지 마시오.”

다보 도인이 냉담하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 성인의 제자고, 성인의 체면은 우리 제자들이 지켜야지, 뒤에서 몰래 더러운 짓을 하고 스스로 품행을 망치면 안 되네. 손쓸 길이 없다고 성인의 체면을 꺼내서 호신 보물로 삼다니. 그러면 도대체 우리가 성인의 체면을 떨어뜨리는 것인가 아니면 도우가 도우 성인의 체면을 끌고 우리 앞에 던진 것인가?”

그 도사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성을 냈다.

“생떼를 쓰는 경지가 실로 대단하구려!”

이번에는 광성자가 입을 열었다.

“도우의 말에 따르면 이번에 서방교에서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도문 절교를 욕보인 것은 통천 사숙의 체면을 떨어뜨린 일이 아닌가?”

“한낱 헛소문으로 어찌 성인의 체면까지 결부시킬 수 있소?”

또 다른 영산 도사가 용감하게 나섰다.

“오늘의 일은 사실 두 사람 사이에 생긴 개인적인 원한에 불과하오. 도문과 우리 서방교는 성인이 세운 것인데 이리 얼굴을 붉힐 것까지 있소? 차라리 조공명 도우가 스스로 결단을 내리는 편이 낫겠소이다.”

태을 진인이 유유히 말했다.

“쯧쯧. 서방교는 참으로 대단하군요. 우리가 도리를 논하면 체면을 얘기하고, 우리가 체면을 얘기하면 감정을 논하니 말이오. 좋은 말은 다 서방교가 하려는 것인가. 결국 우리 도문은 약자를 괴롭히는 것이로군?”

“그런 뜻이 아니었소만 도우가 그리 말하면······.”

태을 진인이 천천히 머리를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도사의 말허리를 잘랐다.

“맞소. 오늘 우리는 나약한 그대들을 잡으러 왔소. 불복하면 때리고, 승복하면 참을 것이오.”

여기까지 듣고 이장수는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태을 진인도 제법 재밌는 사람이었다.

양쪽의 말싸움에서 서방교는 당해내지 못하는 상태였다. 이장수도 퍽 감개무량했다.

평소 도문 선인은 단순해 보였던 건 도문의 평화가 너무 오래되어 굳이 암투를 벌이고자 마음을 쓸 필요가 없는 탓이렷다.

오늘은 언어의 날카로움을 시전하여 삼교 선인의 본색을 살짝 선보였다.

조공명은 어둡게 깔린 서방교 도사들의 얼굴은 아랑곳하지 않고 발치에 있는 이를 내려다보았다. 중년 도인이 말할 수 있게 정해신주 두 개를 거두었다.

“어떻게 소문을 퍼뜨렸는지 말해보라.”

중년 도인은 노기를 드러냈지만 금세 감추었다.

막 입을 열려는 찰나 조공명이 소매에서 낡은 족자 하나를 꺼내 중년 도인의 가슴 앞으로 던졌다.

“설명이 끝나면 맹세도 한 번 하시게.”

중년 도인의 안색이 또 변했다. 도문 고수에게 발목을 잡힌 그는 벗어날 기회조차 없었다.

이 맹세를 어찌한단 말인가?

맹세를 하면 정체가 탄로 나고 서방교의 명성은 곤두박질친다. 성인의 체면은 천 장 아래로 떨어질 터.

서방교 또한 홍황의 웃음거리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더구나 ‘그대는 우리 서방과 인연이 있소’라고 말하고 인간의 정신을 조종하는 주술에만 의존해야 한다!

영산 도사들은 모두 생각에 잠겼고, 도문 선인들은 차근차근 압박했다.

조공명은 귓가의 전음을 들었다. 물론 이장수가 조심스럽게 일깨우는 중이었다.

“형님, 조심하십시오. 성인이 등장할지도 모릅니다.”

이장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영산 하늘에 놀빛이 자욱이 깔렸다. 한숨 소리가 사방팔방에서 울리기 시작했고 이내 많은 삼교 선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로 서방교 성인까지 불러낼 수 있는 건가?

서방교 성인이 먼저 나타난다면 그들은 오늘 원만하게 성공했다고 할 수 있으리라.

현재 홍황은 육성인의 시대로 성인이 한 번 얼굴을 나타내게 하는 것만으로도 대승을 거둔 게 아닐까!

놀빛 가운데 운무가 응결되어 수천 장 높이의 성인 법상(法相)을 만들어냈다.

법상이 서서히 손을 들자 운무 가운데 금빛이 쏟아져 나와 ‘천천히’ 조공명을 내리쳤다.

조공명이 즉시 반격하려는 찰나 앞에 느닷없이 한 인영이 나타났다. 대법사가 번쩍, 하고 나타나 조공명과 도문 사제, 사매들을 등 뒤로 막았다.

태극도와 현황탑이 나타났다!

현도 대법사는 일언반구도 없이 두 눈으로 신광을 번쩍 터뜨렸다. 온몸에 기운이 감돌고 머리 위 현황탑은 현황 기식을 쏟아냈으며 손바닥의 태극도는 바람을 맞으며 점점 몸을 불렸다.

금빛이 닿은 곳에는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높이가 몇 장인 나무는 끝이 많이 갈라지지도 않았으나 가지만큼은 무성했다. 그 위에서 일곱 빛깔의 영광이 가물거렸다. 선천 대도를 머금고 있었으며 성인 특유의 기운도 가미되어있었다!

칠보묘(七寶妙)라 불리는 이 나무는 혼원도(混元道)를 보인 적이 있었다.

삽시간에 가로질러 오는 칠보묘수(七寶妙樹)의 목표는 사실 조공명 앞에 있는 중년 도인이었다. 태극도가 도중에 저지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직경 석 장으로 변해서는 날아오는 칠보묘수를 공중에서 막은 것이다.

공격과 수비. 선천 보물 두 개가 접촉하는 순간, 대도의 떨림의 여운이 넘실대고 수직의 충격파가 위아래를 휩쓸었다. 둘레 십만 리 영기가 모조리 날뛰었다.

굉음이 들리고 운해가 부서졌으며 대지가 갈라졌다. 하늘에 남은 한 줄기 하얀색 인흔(印痕)이 몇만 리까지 퍼졌는지 모를 일이었다.

잠깐 팽팽하게 맞섰던 두 보물을 다시 보자!

태극도 음양이기가 천천히 돌아가고 칠보묘수는 한순간 지면을 바로 내리치려고 했다!

다행히 한 줄기 기운이 칠보묘수를 감싸고 있는 터라 칠보묘수는 번쩍, 하고 영산 위 운무 법상으로 돌아왔다.

대법사는 표정 변화가 없고 기운도 평온했다. 왼손을 펼치자 태극도가 돌아왔다.

“사숙, 어째서 공격하시는 겁니까? 저희가 성인의 체면을 건드리기라도 했는지요?”

운무 법상에서 일말의 기운이 전해졌다.

“오늘의 일은 나도 이미 알고 있다. 미천한 제자가 사달을 일으켰으니 서방교에서 알아서 징벌을 내릴 것이다.”

현도 대법사는 계속 말을 이어가려 했으나 소매에 있던 종이 인형이 팔뚝을 쿡쿡 찔러댔다.

적당히 물러나는 것도 중요합니다. 오늘은 이미 대승을 거뒀지 않습니까.

대법사는 티가 나지 않게 건곤척을 소매에 밀어 넣어 이장수가 붙들게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심념 교류를 했다.

이장수는 심념을 연결하자마자 탑 형님의 미친 듯한 영념을 느꼈다.

“태극도 형님, 진짜 쩐다, 쩔어! 저 나무놈을 꺾어뿌따! 칠보 분재를 와 꺼내 가지고 쪽을 파노!”

그러나 냉랭하면서 남녀 구분이 되지 않은 영념이 이어졌다.

“막내 제자가 왔으니 조심 좀 해. 자네도 선배야.”

탑 형님은 곧바로 조용해졌다. 마치 고요한 삶을 좋아하는 미남 탑처럼 말이다.

음, 일 얘기나 하자, 일 얘기.

대법사는 이제 어떻게 처리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준제 성인이 벌써 두 번이나 나타났다고 서방교에 야유를 보내고 싶었다.

지난번 경험으로 아군이 너무 약하면 화를 잔뜩 억누르는 수밖에 없을 터.

일찍이 대비한 것들을 여러 중보를 빌려 감추고 구절구절 심념 전음을 했다.

대법사는 금세 자신 있게 웃으며 고개를 들고 성인 법상을 주시했다. 사제, 사매들의 숭배 어린 눈빛을 느끼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숙, 유언비어를 날조한 일은 사소한 일이나 그로 인해 도문 두 교파의 내전이 일어날 뻔했습니다.”

운무 법상이 목소리를 냈다.

“내가 입을 열었으니 그사이에는 인과가 없어졌다. 어찌, 아직도 불만이 있는 것이냐.”

성미가 급한 절교 선인들은 당장 입을 열고 반박하고 싶었으나 다보 도인이 기식으로 암암리에 붙잡았다.

“성인이 나타나셨으니 이치대로 저희는 물러나야지요. 성인 앞에서 무례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일은 도문이 발붙이고 사는 토대와 관련이 있습니다. 저희가 이대로 가버리고, 또 누군가가 유언비어를 퍼뜨려 사달을 일으키는 날엔 어찌 처분하실 겁니까?”

준제 성인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영산은 천 년간 봉한다. 내 명령 없이는 그 누구도 함부로 외출할 수 없다.”

영산의 도사들은 일제히 고개를 드리우고 대답했다.

많은 도문 선인들은 찬찬히 그 말을 곱씹어보고 금세 문제점을 발견했다.

성인의 명령이 있으면 마음대로 외출할 수 있다는 소리 아닌가?

다보 도인은 옥패 하나를 꺼내 선인들이 보는 앞에서 살짝 누르고 옥패에 대고 물었다.

“영아(靈牙), 궁에 사존이 계시냐? 오, 계시는군. 일단 부르지는 말고. 이쪽에서 무슨 일이 터지거든 그때 사존께 말씀드려라. 그래······ 그래. 어. 영산이야. 내 제자랑 공명 사제가 괴롭힘을 당했잖니. 서방 성인께서 나타나셨으니 못 돌아갈 수도 있어······.”

옥패가 가볍게 떨리더니 대답이 전해졌다.

이어서 다보 도인은 옥패를 집어넣고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대법사와 함께 서서 하늘가에 성인 법상을 내다보았다.

“현도 사형, 오늘 서방교와 싸울 겁니까?”

대법사는 표정을 굳히고 꾸짖었다.

“성인께 무례해선 안 되네. 서방 성인을 존경하는 것은 세 분의 스승님을 존경하는 일이다. 성인은 속세를 초탈하고 불능한 것이 없으니 체면이 전부일 정도로 크다.”

“사형, 오해하셨습니다. 저는 도우들과 겨뤄보려고 한 것이지요. 어찌 성인께 손을 대겠습니까? 서방은 본디 청정한 복지(福地)인데, 어쩌다가 더러운 것들이 많아져서 성인의 체면까지 끌어들이는지 모르겠군요. 우리가 도우들과 겨루면 성인께서 감격하실지도 모릅니다.”

절교 대사형의 말이 떨어지자 절교 선인들이 일제히 준제 성인의 법신을 바라보았다.

서방교 도사들의 안색은 침울해졌다.

또 탄식 소리가 울려 퍼졌다.

준제 성인이 느릿느릿 말했다.

“도문은 본디 흥성한데, 무엇 하러 우리 서방을 헐뜯는가? 오늘의 인과는 저 하찮은 제자가 사라지면서 끊어질 터. 조공명과 우리 서방의 인과는 일소하리라.”

성인의 목소리가 내려오자 조공명 앞에 있던 중년 도인이 진귀한 ‘족자’와 함께 동시에 가루로 변해 와르르 무너져 흩어졌다!

이장수는 도심이 흔들렸다.

준제 성인은 뜻밖에도 인과 대도에 직접 영향을 주었다!

“어떤가?”

준제의 물음에 대법사는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가 금세 성인 법상에 대고 읍을 했다.

“그렇다면 저희도 사숙의 뜻에 따르겠나이다.”

다보 도인은 영산 도사들을 바라보며 탄성을 질렀다.

“성인께서 친히 내려오게 하다니. 진정 소란을 못 피워서 안달이 난 것인가?”

다보 또한 준제 성인의 법상에 대고 읍했다.

“인과가 사라졌다면 저희도 더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광성자가 적절한 때에 나서서 목소리를 드높였다.

“사숙, 굽어살펴주십시오. 저희 스승님께선 제자를 거둘 때는 반드시 품성과 토대를 보아야 한다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흔히 도는 쉽게 전하지 않고 법은 쉽게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마음이 올바르지 않은 몇몇 제자들로 인해 서방교의 명성을 더럽히지 말아주십시오. 오늘 인과는 갈무리 지었으니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천교와 절교 선인들은 성인 법상에 대고 읍한 다음 뒤돌아 당당하게 구름을 타고 갔다.

대법사, 다보, 광성자는 조금 더 머물렀다가 조공명을 비롯한 이들도 별 탈 없이 떠나는 걸 보고 준제 성인의 법상에 대고 또 한 번 읍한 뒤 번쩍, 하고 몸을 날려 떠났다.

떠나기 전, 감개무량에 젖은 다보 도인의 목소리가 천지 곳곳에 널리 퍼졌다.

“성인의 체면은 제자들이 목숨을 버려서라도 지켜야 하는 보물이다. 서방교 제자들은 하나같이 말도 못 하고 있었으니 성인께선 저들을 거두어서 어디에 쓰시려는지 모르겠구나.”

“말을 삼가게, 삼가.”

광성자가 충고했다.

마지막에 전해지는 음절은 대법사의 코웃음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