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선옹!
천교의 숨겨진 대고수!
성인 원시천존과 함께 삼청의 뒤뜰에서 수행했던 영물의 실력이 어찌 약하겠는가?
선옹은 빙그레 웃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코앞까지 다가와 이장수, 조공명, 공선에게 읍했다.
“스승님의 명령을 받들어 연등 부교주를 옥허궁으로 데려가려고 왔네. 수신 장경, 이번 일은 자네가 알아서 마무리하게나.”
이장수는 또 한 번 곤륜산을 향해 일 배 했다.
“제자, 성인의 하해와 같은 아량에 감읍하옵니다.”
“장경 사제, 스승님께서 근래 자네를 자주 칭찬한다. 인교는 본디 제자가 얼마 없는데, 대사백의 시름을 들어줄 수 있는 것은 물론 천정을 보좌하고 천도의 질서를 지키는 건 아주 좋은 일이야. 도문을 떠받드는 인재라면서 말이다. 장경, 혹 여유가 생긴다면 옥허궁도 한 번 들렀다 가게나.”
이장수는 곧바로 화색을 띠며 남극선옹에게 읍했다.
“감사합니다, 선옹 사형. 여유가 생기면 곤륜산을 방문하겠습니다.”
음, 아무래도 평생 여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만.
“좋네.”
남극선옹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온몸이 만신창이인 연등을 바라보았다.
선옹의 성정이 온화하고 견식이 두터운데도 윤기가 흐르는 얼굴이 참지 못하고 파르르 떨렸다.
태고 대능이 어찌······.
“부교주, 오늘의 일은 오해였으니 일단 곤륜산으로 가서 쉬게나.”
연등은 자신의 처지가 어떤지를 알았기에 애써 태연함을 유지했다.
묵묵히 옆에 놓인 보재들을 갈무리하고 자신의 탑이 어디로 갔는지, 보재가 어째서 반이나 줄었는지 묻지 않고 곤륜산으로 날아가려고 했다.
“연등 부교주!”
이장수가 돌연 큰 소리로 불렀다. 공선의 손에 있던 약한 건곤척을 받아 선력으로 보냈다.
“자를 놓고 갔소!”
연등은 무의식중에 포권했다. 그저 고개를 숙여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하기만 했다.
“고맙소.”
연등은 건곤척을 갈무리하고는 돌아서서 옆에 있는 남극선옹과 함께 옥허궁으로 돌아갔다.
연등과 남극선옹이 멀리 날아가기 전에 이장수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천지 사이에서 끊임없이 감돌았다.
“어휴. 가지고 있는 것을 논하려니 선배나 고수님만 못하구나.”
연등은 손을 들어 가슴께를 붙들었다. 정말이지, 또 피를 토할 뻔했다.
백학에 올라탄 남극선옹은 연등과 함께 하늘 끝으로 사라졌다. 이장수는 아래 천교 선종을 보며 구름을 응결해 조공명, 공선과 함께 아래로 내려갔다.
도미선종 선인들은 아예 꼼짝도 하지 못했다. 너무 슬프게도 수신은 그들에게 아무렇게나 명령을 내려도 괜찮은 따름이었다.
옥허궁 도미자가 먼저 다가가 입가로 진심을 담은, 그러면서도 약간 두려움이 깔린 미소를 지었다.
······
이장수는 도미선종을 곤란하게 만들지 않았고, 홍림국 전쟁에 무리하게 간섭하지도 않았다.
홍림국은 기운이 무너졌고 국운의 기반도 이미 사라졌다.
이장수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도미선종이 이 순간부터 두 부락에 더는 살생하지 않고 홍림국 국왕 혈통을 살려두라고 명령하라고 당부하는 게 다였다.
이 외에 도미선종은 그들이 통제하는 중신주 왕국 한 곳을 도선문에 양보하겠다고 먼저 제안했다.
지금 이장수는 천정 수신 계정으로 활동하고 있었으니 도선문을 찾아가 이 일을 논하도록 했다. 두 선종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그는 더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일을 매듭짓고 두 선문의 선인 수백 명이 보는 앞에서 공선을 향해 손짓한 이장수는 공선과 함께 지면으로 내려갔다.
‘수신’과 ‘본체’를 구별하려는 행동이었다.
줄곧 유금현아의 곁을 지키던 본체는 종이 도인과 공선에게 읍하고 빠르게 옆으로 물러났다.
유금현아도 이장수의 전음을 듣고 일어서서 대검을 짚은 채 ‘수신’에게 읍했다.
“도선문 제자이자 홍림국 공주 유금현아, 수신을 뵈옵니다! 오늘 홍림국이 겁을 맞이했고, 실로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사오니 수신께서 도와주십시오!”
이로써 천정이 속세의 일에 끼어들 이유를 제공했다.
“가족을 구하고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나섰던 걸 이미 보았다. 천정에 마침 너와 같은 인재가 부족한데, 혹 훗날 천정을 위해 충성할 마음이 있는가?”
유금현아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이 질문에 대해 이장수는 전음으로 당부한 적이 없었으나 답안은 이미 주었었다.
‘이따가 수신이 무엇을 묻든 간에 자네는 산으로 돌아가 사부님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답하면 되네.’
“산으로 돌아가 사부님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좋다.”
‘수신’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금현아에게 세워둔 임무를 계획대로 완수한 그는 그녀를 물리고 유금현아의 새언니에게로 걸어갔다.
오늘 밤 진정 중요한 인물이 아닐까.
“나는 천정 정신이오, 복중 태아를 느껴봐도 되겠소?”
“예.”
젊은 여인은 고개를 숙인 채 대답하고는 얼른 일어섰다.
이장수는 두 눈을 감고 오른손으로 여인의 배를 멀리서 가리켰다. 그러자 손바닥에 담담한 금빛이 드러났다.
그자로군.
이장수는 그 자리에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마음속에 온갖 깨달음이 솟구쳤다. 암암리에 어떤 지시가 존재하여 길을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이윽고 두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천정 수신입니다. 옥황상제와 왕모의 명을 받들어 동목공과 천정의 여러 사무를 대신 책임지고 있습니다! 하늘이시여, 청을 들어주십시오!”
꽈르릉—
금색 구름 한 송이가 하늘 끝에서 날아와 홍림국 상공을 천천히 선회했다. 구름이 머금은 짙은 천도의 힘으로 인해 연기사들은 약간 불편함을 느꼈다.
이장수는 고개를 숙여 젊은 부인과 그녀 옆에 있는 유금현아의 모친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했다.
“오늘 유금의 부탁으로 나와 그대들 사이에 기연이 생겼소. 나는 이 복중 태아에 천명을 부여하겠소. 그와 그의 후예는 홍림국 부족을 이끌고 다시 새로운 나라를 세울 것이며 홍림국보다 훨씬 더 흥성할 것이오. 다만 세 가지 조건이 있고 이를 따라야 하오.
첫째, 신국(新國)의 국왕은 천수를 다하고 죽을 것이오. 만일 천명을 거역한다면 혼비백산하고 윤회할 수 없소! 둘째, 신국은 천제를 존경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조상을 공경하고 예를 받들어야 하오. 셋째, 나라는 선사를 양성할 수 없소. 다만 천제가 그대들을 비호할 것이오. 이에 따를 것인가?”
젊은 부인은 얼른 옆에 있는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얼른 고개를 끄덕이자 젊은 부인도 이장수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간적(簡狄), 선인의 뜻에 따르겠사옵니다.”
“좋소.”
이장수는 부인을 향해 오른손을 가볍게 쓸었다. 공중에 금색 구름에서 금빛이 가물거리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부인의 복부에 모였다.
이마에 금색의 둥근 낙인이 생긴 부인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동쪽으로 가야 합니다.”
“공선 도우, 부탁합니다.”
이장수는 공선에게 손짓하고는 이번에는 십여 명의 부인에게 말했다.
“이쪽은 봉황족 신조 선인이오. 그대들을 데리고 이곳을 떠나 그대들이 세우는 신국을 백 년간 지킬 것이오. 하니 그대들은 신국의 상징에 은덕을 느끼길 바라오.”
젊은 부인이 고개를 드리운 채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공선은 담담한 미소를 드리웠다. 눈빛도 더없이 편안했다.
“이렇게 빨리 진행될 줄은 몰랐군.”
“이제 도우께 맡기겠습니다.”
“우리 봉황족이 도우에게 막대한 빚을 졌구려.”
바로 이때, 조공명이 공중에서 내려왔다.
“갑자기 이렇게 진지해지다니 적응이 안 되는구나. 오늘은 정말로 속이 시원~하다! 정무를 끝마치면 어디 가서 한잔하지 않겠나?”
이장수와 공선은 동의했다.
오색신광으로 홍림국 부인 십여 명을 보호한 공선은 그녀들에게 정비한 다음 만나기로 했다. 그런 다음 이장수, 조공명과 함께 구름을 몰고 떠났다.
구석에서 이장수와 유금현아는 서로 마주 보았다. 유금현아의 표정이 약간 이상했다.
“사형······.”
“음?”
“저는 능력이 미천합니다. 한데 천정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이장수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천정 수신의 깊은 뜻을 내가 어찌 알겠는가.”
“하하하! 연등이 애먹는 걸 보는데 어째서 내 도심이 이토록 시원할꼬!”
“연등은 대단한 신통력은 없지만, 그 관등만큼은 실로 비범하더이다.”
동승신주의 한 방진에 있는 객잔 안.
조공명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껄껄 웃었다. 입고 있던 갑옷도 끊임없이 떨렸다.
세 사람은 널찍한 별실에 마련된 원형 탁자에 앉았는데, 그림체는 셋 다 확 달랐다.
속세의 때가 묻지 않은 고고한 공선은 혼돈이 열리지 않고 홍몽이 정해지지 않았을 때, 혼돈해에서 걸어 나온 생명처럼 성스럽고 담담한 느낌이 있었다.
용맹스럽고 기개가 넘치는 조 대인은 이 순간 마음마저 편안한지 입가에 웃음이 멈추질 않았고 그게 기분 좋은 느낌을 선사했다.
이장수의 종이 도인은 옆에 앉아서 하얀 도포와 백발로 담담한 백광을 내뿜고 있었다.
누군가가 그를 본다면 천정 보통 권신의 ‘전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또 망망대해처럼 깊이를 종잡을 수가 없으리라.
세 사람은 이곳에서 술을 마시고 담화를 나누었다. 누군가가 엿들을 수도 있으니 신통력으로 천기를 가린 채로.
“연등은 도문에서 그다지 호감을 받지 못하는 것인가?”
공선의 물음에 조공명이 혀끝을 끌끌 찼다.
“뭐 비슷하네. 본디 절교와 천교는 사존과 둘째 사백이 거두는 이념 차이가 있었고, 또 대제자들이 일찍이 미움이 쌓이면서 종종 마찰을 빚었지. 매번 소소한 일이 생기면 연등이 뒤에서 부채질을 해대면서 말을 과장하는 바람에 우리 절교가 꽤 애를 먹었지.”
“연등의 행동은 본디 절교를 압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천교와 절교 사이의 갈등을 부추긴 겁니다. 삼교에서 누군가가 나서 중신주 선종의 알력 다툼을 방지한다는 이유를 대며 삼교 발전대회를 개최하기 전까진 그랬죠. 삼교 발전대회를 열어 천교와 절교 사이의 균열을 회복하려고 했거든요. 애석하게도 이념에서 충돌하니 결국 뿌리까지 해결하진 못했지만 말이죠.”
“일찍이 누군가가 천교와 절교 사이에는 크게 한 번 싸울 것이라 단언했는데, 어떻게 해야 이를 메울 수 있을지 모르겠네.”
“수신이 있지 않은가?”
공선이 아래턱으로 이장수를 가볍게 가리키자 조공명이 껄껄 웃었다.
“저도 최선을 다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인교는 본디 청정 무위를 받들고 인과를 많이 묻히면 안 되거든요.”
“오늘 연등을 혼내줬고, 천교 내에도 오늘 상황에 대해 비판하는 사형, 사제가 있을 것이다. 인교와 절교가 손을 잡고 천교를 배척한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 아우, 이를 어찌하면 좋겠는가?”
“사실 그렇게 심각하진 않을 겁니다. 제가 절교의 편에 섰다는 건 천교 전체가 알 거예요. 이따가 현도 사형께서 산에서 나오시면 옥허궁으로 가 광성자 사형을 만나라고 부탁드릴 겁니다. 그럼 자연히 해결되겠지요.”
공선에 옆에서 별안간 질문을 던졌다.
“언제 가는가?”
“현도 사형이 알아서 안배하시겠지요······?”
“아니다. 그냥 물어본 것뿐이야.”
공선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대꾸하고는 전에는 쳐다도 보지 않던 술로 입술을 적셨다.
이를 보고 이장수는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를 조공명에게 옮겼다.
“그나저나 형님께서는 한동안 외출하신다더니 어찌 이리 빨리 돌아오셨습니까?”
그 말을 듣은 조공명의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이내 입꼬리를 죽 늘어뜨렸다. 애써 웃으려고 했으나 웃음은 결국 기나긴 탄식으로 바뀌었다.
“남녀 사이의 일은 수행보다 천 배는 더 성가시더구나. 어휴······.”
절로 흥미가 생긴 공선은 귀를 기울여 듣기 시작했다.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이장수는 속으로 ‘그럴 줄 알았다’라고 말했지만, 겉으로는 사색에 잠긴 표정을 하고 관심 어린 투로 물었다.
“어찌 그러십니까? 고민이 있다면 말씀해보십시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조공명은 이장수가 꺼낸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