령아가 구름을 몰고 남주 경계 지역 근처에 이르렀을 때였다.
“백 선생, 인간족과 요족이 공존할 수 있을까요?”
“어찌 갑자기 그리 물으십니까?‘
백택은 깃털이 달린 부채를 흔들며 대답했다.
“천지 사이에 인간족만 남지 않는 한, 요족의 대가 어찌 끊기겠습니까? 적대하더라도 공존은 하겠지요.”
“천도는 정말로 천지를 더욱더 안온하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건가요?”
“수신께서는 천도가 천지간 생명의 실력을 일부러 낮춘다고 여기시는 겁니까?”
“예. 근래 대도를 깨달을 때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만일 천도가 후천 생명을 분류한다면 순서를 어찌 정할까요?”
백택은 한참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인간, 요괴, 무족, 용, 영(靈)이 아닐까요?”
“틀렸습니다. 인간, 선(仙), 영, 요괴, 마, 귀(鬼)입니다.”
“예?”
백택은 고개를 드리운 채 손가락을 꼽아 추산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고 이마에도 점차 땀이 스몄다.
금세 백택은 일어서서 읍했다.
“상세히 말씀해주세요.”
“최근 2년 동안 도를 깨달을 때, 천도와 공명으로 얻어낸 결론입니다. 지금 천지 사이에는 인간족이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인간족은 단독으로 열거하고, 인간이 아닌 생명은 모두 영의 부류에 넣었지요.
예컨대, 용, 봉황, 요괴 등이 있지요. 인간과 영이 수행하여 득도하고 정도를 지키면 그건 선입니다. 선은 선인도 있고 여우선, 소선, 용선, 나무선 등 다양하지요. 인간의 심정이 바르지 않고 사악하고 악하다면 그건 마입니다. 영이 심보가 고약하고 무고한 생명을 함부로 죽이면 그건 요괴입니다. 귀는 더 열거할 것도 없지요. 인간과 영이 죽은 후이니 말입니다. 백 선생, 이 도를 어찌 생각합니까?”
백택은 생각에 깊이 잠긴 듯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이장수는 잠자코 기다리며 연못 속 사매가 달려가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방금 한 말은 실제로 오도할 때 깨달은 내용이었다. 어쩌면 천도가 천정 보통 권신인 그에게 천정을 어느 방향으로 열심히 이끌라고 준 힌트라고 할 수도 있다.
이로 인해 모 목공은 다시금 기분이 상한 느낌이 들었다.
령아를 진당 옛고을로 보낸 건 단순히 시련을 쉽게 보내라는 게 아니라 저를 대신하여 령아가 ‘현지답사’를 하길 바란 의도였다.
이장수가 방금 한 말은 사실 향후 천지의 규칙을 정한 것이다. 홍황에 대한 기준을 만들고 상고 시대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 작업을 하려면 선계와 범계를 분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진당 옛고을은 꽤 오랫동안 존재했다. 말이 옛고을이지, 실제로는 비교적 큰 성채였다.
어째서 령아를 그곳으로 보냈냐고?
풀어서 말하면 기니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요족은 몇 개의 부주 틈새에서 살아간다. 되게 가련해 보이나 홍황 대지가 워낙 광활하여 ‘틈새’라고 해도 커다란 산맥이 연이어 졌거나 끝없는 밀림을 뜻한다.
범인들에겐 넘기 힘든 험준한 산이나 요족에게는 번식하고 살아갈 낙원이기도 했다.
진당 옛고을은 요족과 충돌이 끊임없이 생겼던 ‘인간족 최전방’의 하나로 긴 시간 동안 고립무원의 상태에 처해 있었다.
우임금이 화운동으로 돌아오고 천하 통합 군주의 자리를 넘긴 지 불과 천 년 만에 황권은 실각하고 남주는 길면 수만 년의 혼란한 국면에 빠졌다.
도문이 흥성하고 ‘선문’ 세력이 궐기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족의 수는 미친 듯이 증가하고 수행 자질이 없는 인간족도 점점 늘어가 속세는 서서히 연기사가 수련하기 부적절해지면서 선계와 범계의 구별이 생겨났다.
중신주는 속세와 여전히 관계가 긴밀했다. 선종의 대다수 제자는 모두 속세 출신이지 않은가. 속세의 재물은 큰 선문에겐 그저 금상첨화일 뿐이나 중간 규모의 대다수 선문에게는 퍽 중요했다.
이러한 현상은 속세의 세력인 나라, 부락 배후에 선문의 그림자가 드리우도록 했다. 세력 다툼은 종종 선문 간의 싸움이기도 했다.
이장수가 말한 선계와 범계의 분리라는 건 이 관계를 끊는 것으로 이미 행동에 착수했다. 공선 누님이 남주에서 지키는 부락 ‘상(商)’이 바로 이 복잡한 현상을 바꿀 중요한 바둑알이다. ‘세 가지 조약’이 있으니 상이 남주 속세 번화한 지대를 통일하면 선계와 범계의 분리는 절반 이상 이룩해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일은 양면성을 지닌다. 선문과 속세 세력인 나라, 부락이 비밀리에 접촉하고 범인을 착취한다. 하나 이와 동시에 선문은 속세의 범인들이 요족의 위협에 시달리지 않도록 속세 세력을 지켜준다.」
선계와 범계를 분리해서 선문이 속세에 미치는 영향력이 낮아지면, 인간족 연기사는 어떻게 해야 속세를 더욱더 잘 지켜낼 수 있을까?
백택의 말대로 요괴는 말끔하게 죽일 수 없다. 만령이 해와 달의 정수를 흡수하여 수행하여 둔갑한 것이 요괴고, 범인에게 해를 가하는 악한 요괴는 늘 있기 마련이다.
여기서 진당 옛고을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진당 옛고을은 외진 곳에 위치하고 요족 세력도 강한 편이 아니라 인간족 고수의 눈에 띌 도리가 없다.
갖가지 요인으로 인해 고을은 나라와 부족와 동떨어졌고, 속세의 원조를 거의 얻지 못한다.
다만 그들은 자신을 비롯해 소수 인간족 연기사의 지원에 의지하며 수천 년 동안 요족의 침습을 막아냈다.
이정이 입문을 위해 도선문을 찾아왔던 건 사실상 진당 옛고을에서 자질이 있고 선인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젊은 자제라면 걸어야 할 길이었을 뿐이다.
그들은 고향을 등지고 떠나 일찍이 선법을 배운 다음 고을로 돌아와 요괴를 제거하길 소망했다.
이정의 토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진당 옛고을의 상황을 파악했고, 이곳에서 ‘선계와 범계를 분리한 후 어떻게 속세를 지키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이번 령아의 시련이 생겨난 것이다.
연못가. 구름을 몰고 날아가는 령아를 보며 이장수는 살짝 정신을 놓았다.
옆에서 백택은 손가락을 꼽아가며 추산하고 곰곰이 따지더니 마침내 마음을 정했다.
“수신, 아무래도 인간족의 지위를 좀 높게 둔 것 같군요.”
이장수가 그를 올려다보며 변론하려는 찰나 흑지봉에 별안간 작은 먹구름이 몰려왔다.
먹구름은 아무런 징조도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흑지봉 대진 안에 응결되더니 순식간에 연못 상공까지 나부껴왔다.
이장수는 천벌을 맞을 두려움이 떠올랐다. ‘근육에 남은 기억’이 다시금 그를 깨웠고, 원신은 휘황찬란한 빛을 반짝였다!
먹구름은 엄지손가락 굵기만 한 번개를 내리쳐서 백택의 머리를 때렸다!
번개가 스친 후, 먹구름 속 한 줄기 금빛이 이장수의 육신을 파고들었다.
공덕이었다!
공덕 금신의 새끼발가락을 응결해낼 수 있을 정도의 공덕이었다!
이장수는 정신이 번쩍 들어 자신을 살피고 고개를 들고 옆에 있는 백택을 쳐다보았다. 하마터면 웃음을 빵 터뜨릴 뻔했다.
백택은 긴 머리카락은 산발이 되었고 이마는 거멓게 그을렸다. 머리 위로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비통한 표정으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한마디밖에 안 했습니다!”
“백 선생, 말을 삼갑시다.”
이장수는 황급히 백택의 투덜거림을 저지했다. 곧 흩어질 먹구름에 대고 읍한 다음 목청을 높였다.
“제자, 천도의 뜻을 이해했습니다. 폐하께 조만간 진언을 올려 창생에게 복을 가져다주고 천지가 안온하게 유지되도록 하겠나이다!”
고개를 다시 들었을 땐, 먹구름은 이미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이장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웃으며 옆에 비분에 잠긴 백택을 바라보았다.
“백 선생, 이번 변론은 제가 이긴 거지요?”
백택은 뒤돌아 연못을 향해 유유히 한숨을 내쉬었다.
“신수라는 이름도 부질없군요. 이제 다른 이에게 물려줄 때가 왔나 봅니다.”
이장수는 말없이 웃었다. 도심에 ‘선계와 범계의 분리’에 관한 의심과 고민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령아에게도 공덕을 조금 벌어다 주면 좋을 텐데.
이장수는 웃음기를 거두고 연못가에서 생각에 잠겼다.
또 세 시진이 지났을 때, 령아가 진당 옛고을 인근에 도착했다. 인간족 병사와 요족의 소규모 ‘싸움’ 현장을 목격하고 남몰래 독을 조금 풀었다.
금세 후방에 숨은 진선경 요족 ‘고수’들을 발견했다. 이 고을에서 진선경은 고수의 대열에 속했다.
고민 끝에 나서지 않고 종이 도인을 보내서 암암리에 요족 세력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고을에 적잖은 부상병이 있는 걸 보았다. 구름처럼 떠도는 인간족 연기사라는 신분을 내세워 옛고을에 들어가서는 적극적으로 부상병들을 치료해주었다.
진당 옛고을에서의 시련 난도는 낮은 편이라 령아가 대응하기에도 상당히 수월했다.
령아가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는 장면을 보고 이장수는 마음 편히 웃었다. 이어서 옥패에 숨겨둔 후속 임무 두 가지가 떠올랐다.
시련 임무 2.
동해 어느 섬으로 가서 동문 유금현아를 구한다.
시련 임무 3.
지도에 표시된 대로 오장관으로 가서 옥패를 오장관 주인에게 친히 건넨다.
모처럼 하산했으니 제대로 괴롭······ 흐음, 모처럼 하산했으니 충분한 경험을 쌓아야 훌륭한 인물로 성장할 테지.
······
이게 사형이 준 시련 임무인가?
‘피곤하군.’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 ‘약(藥)’이라는 글자가 걸린 약방 앞. 푸른색의 무명옷을 입고 얼굴을 위장한 령아가 석양 아래에서 나른하게 기지개를 켰다. 이끼가 낀 돌길 위로 그녀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지나가던 행인이 호의를 담은 시선을 던졌고, 대바구니를 팔에 건 중년 부인이 령아를 불러 세웠다.
“남 양, 저녁에 우리집에서 밥 먹어요!”
령아는 웃으며 완곡하게 거절했다.
“죄송해요. 내일 쓸 약재를 준비하려면 시간이 안 될 것 같아요.”
중년 부인도 딱히 더 보채지 않고 몸조심하고,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당부한 다음 슬슬 자리를 떴다.
돌집으로 돌아온 령아는 나무문을 닫고 금제를 가동한 다음 하품을 했다.
집안 구석과 탁자, 나무 장롱에는 종이로 지은 약봉지가 가득했고, 그 위에는 세심하게 분류와 용량이 표기돼 있었다.
이곳에서 령아의 이름은 남행, 신분은 ‘약사’로 이 고을에서 살아간 지 어느덧 반년이 되었다.
반년 전, 진선경 대요괴를 99마리 사냥했고, 그중에는 천선경 요괴도 몇 마리 있었다.
령아는 보통 어둠이 내리깔린 간밤에 움직였다. 종이 도인이 멀리서 독을 투척하고 시신을 불로 태워 흔적을 감춘다. 그런 다음 슬그머니 돌아오면서 이곳의 요족 세력을 공포에 질리게 했다.
제 손으로 99마리의 대요괴를 죽인 게 전부였으나 절반에 가까운 요족을 겁에 질려 도망가게 하면서 진당 고을의 부담을 크게 덜어주었다.
오늘 밤, 마지막 목표를 제거하면 조용히 진당 고을을 떠날 예정이다.
떠날 때, 양쪽으로 줄을 서서 환송하는 ‘민망한’ 상황은 원치 않았으니 말없이 떠나기로 했다.
힘닿는 일을 하기도 했고, 사형이 파견한 임무를 수행한 것이라 감사 인사를 받을 일도 아니었다.
진당 고을에 오기 전에 령아는 이곳에 부상을 치료하는 약이 부족하리라는 걸 예측하고, 방진에서 범인들이 쓸 수 있는 약을 대량으로 사들인 것이었다. 물론 한 달도 되지 않아 전부 다 써버렸다.
물건을 보충하려고 다시 방진으로 갔으나 문득 진당 고을에서 오래 머물지 않으리라는 걸 고려했다. 잠깐 도울 순 있지만, 평생 돕지는 못한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방법’을 찾아냈다!
종이 도인을 이용해 속세와 방진에서 무수한 약재와 처방전을 수집한 다음 이 약방을 진당 고을에 남기기로 했다.
오늘 오후, 령아는 오을이 준 영석들을 꺼내 진당 고을에서 믿을만한 어른들에게 맡겼다.
영석을 전부 남기지 않은 건, 이 영석이 진당 고을에 쓸데없는 화를 불러올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일을 고려할 때 령아는 할 수 있는 한 최대치로 주도면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