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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형이 실력을 숨김 (470)화 (470/593)

이장수는 두 손을 소매에 넣고는 뒤돌아 서원으로 돌아갔다.

화유명은 불을 켜고 얼른 따라 들어갔고, 이에 옆에 있는 하응상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냈다.

그가 안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아래에서 열댓 명의 소년, 소녀가 밀려들었다.

서원 안으로 20명이 들어가고 문이 저절로 닫혔다.

한 시진이 지나고, 서원 문이 다시 열렸고, 열세 사람이 의기소침한 채로 걸어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현인이 제자를 고르는 기준이 대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도태되었지만 말이다.

남은 일곱 명은 남자 넷, 여자 셋이었다. 한 쌍은 혼약을 맺은 죽마고우였고, 한 쌍은 인연전에 인연이 있었으며 한 쌍은 옥황상제와 왕모였다. 그리고 하나는 머릿수만 채운 녀석이다.

서원 정중앙, 사면이 뻥 뚫린 대나무집 안에 일곱 명의 소년, 소녀가 책상다리로 앉아있었다.

바람이 솔솔 불고 대나무 잎이 사락사락 소리를 냈다. 대나무집 양편에 드리운 휘장도 살짝 들썩였다. 흔들의자에 앉은 선생은 다기를 들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일찍이 준비해둔 대화 주제를 얘기했고, 일곱 소년, 소녀는 흥미진진하게 들었다.

선생의 등 뒤에는 석가산이 있고 물이 흘렀다. 방울이 딸랑딸랑 소리를 내고, 새가 지저귀고 개구리가 우는 소리도 어물어물 들렸다.

좋은 시절이니 아름다운 시간을 저버려선 안 된다.

이장수는 천지에 관하여 논하고, 암암리에 나머지 다섯 사람에게 영근을 깨워줘서 ‘확 깨닫는’ 느낌이 들도록 했다.

현인의 명성을 유지하려는 잔기술 정도랄까.

해가 서쪽으로 저물 무렵, 이장수가 몸을 일으켰다.

“시간이 벌써 이리 지났군. 자, 이제 돌아가거라. 문밖에 보따리 일곱 개가 있다. 안에는 서원의 옷가지를 비롯해 앞으로 쓸 경문이 들었다. 내일부터 매달 홀수 일에 서원에 와서 수업을 듣는다. 동이 틀 때 와서 해가 저물 때 돌아간다.

식사를 준비해오는 것도 잊지 말고. 나는 3년만 너희를 가르칠 것이다. 3년 동안 얼마나 해내는지는 너희 자신에게 달렸다. 배우고 싶은 걸 가르쳐줄 것이다. 하나 내가 가르치는 건 너희도 배워야 한다. 알겠느냐?”

“선생의 말씀은 저희가 각자 배우고 싶은 공부를 배울 수 있지만, 다 같이 배워야 한다는 말씀인 거죠?”

“응상은 참으로 총명하군.”

하응상 옆자리에 앉은 화유명이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중얼거렸다.

“뭐, 좀 영악한 거지.”

하응상은 곧바로 표정이 굳었다. 손가락으로 화유명을 가리키며 살벌하게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다음 수업 때 너희 셋은 서원에 들어올 때 너울로 얼굴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

세 명의 소녀는 고개를 드리운 채 대답했다.

“예.”

“돌아가거라. 내일 보자.”

이장수는 손을 흔들고는 뒷짐을 지고 제일 먼저 대나무집을 벗어났다. 일곱 명의 소년과 소녀의 목소리에는 감탄이 흘러나왔다.

“선생!”

화유명이 대나무집 가장자리로 뛰어가 휘장을 들추고 외쳤다.

“선생님, 성함이 무엇입니까!”

나머지 여섯 명의 아이들은 당황했다. 자세히 생각해보니 이 현인의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현인, 고수 정도로만 알았지.

“나 말이냐.”

이장수가 고개를 돌려 담담한 미소를 짓는 옆모습을 보이며 대답했다.

“목청화. 이 서원은 앞으로 목화서원이라 불러라.”

“목청화······.”

하응상은 중얼거리며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같은 시각, 천정 통명전. 상주서 한 장을 들고 꼼꼼하게 들여다보던 동목공이 별안간 목덜미가 서늘하고 도심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왜 그러지?

폐하 쪽은 수신이 이미 제대로 조사했고, 인도를 시작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목공은 영문을 모른 채 따뜻한 차를 마시고 계속해서 공무를 집행했다.

······

한편, 중신주 어느 방진의 ‘객잔’.

“오장관. 진원 대선. 지선의 조상······ 그렇구나.”

방진의 객방 안. 령아는 영석 수십 개를 써서 사들인 옥패를 쥐고 안에 적힌 정보를 열람했다.

진원 대선과 삼청은 같은 항렬로 천지 사이에 일찍이 이름을 날린 대능이었다. 하나 명성의 절반은······ 친우 홍운 노조의 죽음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진원 대선이 워낙 몸을 사렸고, 홍황에서 돌아다니는 일이 극히 드문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오장관의 위치는 비밀은 아니었다. 서우하주 동쪽에 있는 만수산(萬壽山)에 있었다. 하나 사시사철 대진에 뒤덮인 터라 장생 금선도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옥패에 적힌 문자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침상에 책상다리로 앉은 령아는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어떻게 해야 이 대능을 뵐 수 있을까?”

진원 대선은 상당히 뛰어난 보물 두 개를 지녔다. 하나는 극히 보기 드문 선천 영근 ‘인삼과수(人蔘果樹)’였고, 또 하나는 방어 지보로 쓸 수 있는 특수한 보물, 지서(地書)였다.

홍황은 상고부터 천지인 삼서(三書)가 전해진다는 전설이 있다. 천서(天書)는 천도로 돌아가 자세한 상황을 알 수가 없고, 지서는 진원 대선과 동반하는 것으로 천지 태막(胎膜)이 변한 것이라 세상을 개척하고 만물을 조종하는 능력이 있다. 인서(人書)는 바로 생사부로 삼생명서(三生冥書)라고도 불리며 생명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

지서를 관장할 수 있다는 건 진원 대선의 능력이 남다르다는 뜻이다. 건곤 대도에 능통하여 무수한 건곤 신통력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선배를 만나서 약빠르게 행동하는 건 절대 안 되고, 반드시 솔직하게 아뢔야 한다.

사형이 안배해준 이번 시련은 단순히 서신을 전달하는 것이고, ‘인삼과’를 만들어 사부님이 연명할 생각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령아는 자신의 ‘토대’를 자세히 계산해보았다. 사형의 사매라는 걸 제외하고 대부분 평범했다.

하필이면 사형의 신분은 또 까발릴 수도 없다.

“아아악, 너무 어려워.”

한탄이 절로 나왔다. 맥없이 침상에 드러누워서는 사형의 초상화를 붙인 베개를 껴안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한바탕 굴렀다. 머리가 헝클어지고 나서야 유유히 한숨을 내쉬었다.

만수산에 가서 운에 기대볼까?

만일 단번에 내가 천정 수신의 사매라는 걸 꿰뚫어 보시고 안으로 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야. 그 사실을 믿고 말고를 떠나서 무턱대고 가는 건 성공할 가능성이 너무 낮아. 게다가 성가신 일을 맞닥뜨릴 수도 있고 말이야.

령아는 꼬박 두 달 남짓 조사했다. 그러나 진원 대선이 어떤 기호가 있는지 전혀 알아내지 못했다.

진원 대선을 언급하면 모두 ‘지서’ ‘인삼과’ ‘홍운 노조는 너무 처참했지’라는 말뿐이었고, 다른 유용한 정보는 없었다.

아, 너무 어렵잖아요!

‘급하게 하지 말고, 천천히 해보자.’

령아는 벌떡 일어서서 작은 주먹을 쥐고 살짝 휘둘렀다.

계속 조사하자!

마지막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내 능력 범위에서 만반의 준비를 해야 실패해도 후회가 없지.

사부님이 몇만 년 더 오래 살 수 있게 해야지!

사형이 내 걱정을 하지 않고, 나를 일찌감치 사형의 부담을 덜어주는 조수로 이용할 수 있게 할 거야!

진원 대선은 여제자 같은 건 없나?

령아는 눈을 끔뻑거리며 창가로 다가갔다. 틈새를 살짝 벌려 창밖의 방진을 바라보았다.

만수산까지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았다.

흑지봉의 연못가. 본체로 돌아온 백택은 정수리에 난 긴 날개로 연못 속 화면을 가리켜 령아의 길흉을 감응했다.

금세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와서는 옆에 서 있는 이장수에게 말했다.

“수신, 안심하세요. 령아는 화는 없고, 괘상이 보이는 것과 동일합니다.”

이장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백 선생, 고생했어요.”

“이 정도로 뭘요.”

백택은 앉으라고 손짓한 다음 남주의 일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장수가 백택을 찾아와 대화를 나누는 건 사실상 내일 있을 정식 수업의 내용을 대신 ‘준비’ 시키는 것이었다.

한참 담론을 나눈 뒤, 백택이 빙그레 웃었다.

“수신, 옥황상제와 왕모의 스승이 된 기분이 어떻소?”

“그리 말씀하지 마세요. 저는 그저 호위하는 것뿐입니다. 그것도 옥황상제와 왕모가 환생한 몸을 호위하는 것이지, 옥황상제와 왕모의 스승이 아닙니다!”

“예, 예. 수신의 말이 맞습니다. 그럼 옥황상제와 왕모를 호위하는 기분은 어떻습니까?”

“피곤합니다. 무언가 함부로 가르칠 수도 없고, 말할 때도 옥황상제와 왕모 낭랑의 마음속에 새겨질 테니 미지의 영향을 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뭐 하나 할 때마다 고민합니다. 특히 두 분의 인연을 부추길 때는 더더욱요. 지금은 폐하께서 천정에 돌아오셨을 때, 이번 생의 인연이 어째서 여전히 왕모 낭랑인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도 벌써 걱정입니다.”

“녹록지 않군요. 수신······.”

백택은 말을 하다 말고 인상을 쓰고 이장수를 바라보았다.

눈으로 볼 수 없고 선식으로 감지할 수 없지만, 지금 이장수는 하늘에서 떨어진 어느 기운에 감싸진 듯했다.

자세히 감응해본 백택은 한없이 혼돈한 천지에 난입했고, 본인은 한낱 모래 알갱이인 것만 같았다. 이 천지는 무수한 진리와 끝없는 현묘함을 머금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성인의 기운이었다!

백택은 평온한 눈빛을 보였다. 태청 성인이 이장수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분명했고, 부러워도 부러워할 수가 없으며 그저 이장수의 곁에서 나날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잠시 후, 이장수가 두 눈을 뜨고 슬며시 숨을 토해냈다.

“백 선생, 역외 천마가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 아십니까?”

“예?”

백택은 당혹스러웠다.

바로 이때, 소경봉에 미세하게 건곤이 흔들리면서 두 개의 선천 보물 기운이 드러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역외 천마는 홍황 생명이 아니고 대부분 천지가 개벽하기 전 선천 신마의 후예입니다. 그들은 변덕이 심해서 홍황 천지와 홍황 생명에겐 간사하고 잔인합니다. 파괴하고, 홍황 천지를 혼돈으로 돌리려고만 하죠. 천지가 개벽한 후, 태고 때 홍황 생명과 역외 천마 사이에 전쟁이 발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외 천마는 일격에 무너졌지요. 수신, 현도성의 상황이 심각한 겁니까? 우리가 지원하러 가야 하나요?”

“현도성은 대사형이 대응할 수 있습니다.”

이장수가 왼손을 펼치자 운무가 서서히 응결되고 모호한 화면이 드러났다.

허공에 떠오른 오래된 성으로 주위는 온통 짙은 회색 안개였다.

셀 수 없이 많은 검은 인영이 안개에서 튀어나왔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이 끝도 없이 이 오래된 성 외곽으로 돌진했다.

성 곳곳은 휘황찬란한 빛을 반짝였고, 무수한 대진이 돌아갔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검은 인영들이 대진 광벽에 충격을 가했다.

성 중앙은 다채로운 빛깔의 소용돌이였는데, 바로 홍황 천지의 입구였다.

대진 안. 곳곳을 날아다니는 인영들이 대진의 허점을 부단히 보완하고 바깥으로 빛을 내보내는 걸 볼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평온한 편이었다.

별안간 외곽의 검은 구름이 뒤흔들리고,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새까맣고 거대한 짐승들이 혼돈해에서 날아 나와 대진을 들이받고 성 좌측에 구멍을 냈다.

곧바로 무수한 검은 인영이 구멍으로 한꺼번에 밀려 들어갔다.

성은 휘황찬란한 빛을 터뜨리고 수비병들이 성안에서 날아 나와 검은 인영들을 절반 이상 섬멸했다.

그러나 난전 속에서 수십 개의 검은 인영은 여전히 하나로 뭉쳐서 다채로운 빛깔의 소용돌이로 돌진했다.

소용돌이 안에 번개가 번쩍했다!

더욱더 많은 검은 인영이 대진의 구멍으로 돌진하자 두 줄기 흑백 기식이 슬그머니 나타나 대진 구멍 앞 검은 인영들을 녹였다.

선천 지보 태극도가 순식간에 오래된 성을 완전히 감쌌다!

음양의 힘, 역행과 순행 사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새까맣고 검은 짐승들이 터져버렸다.

대법사의 육신이 성 앞에 고고하게 서자 성안에 있던 이들은 모두 가슴을 쓸어내렸다.

도망가던 검은 인영들을 쫓아가려는 찰나 사방팔방의 회색 기식에서 다채로운 빛깔의 더듬이가 뻗어 나왔다.

“쫓아갈 것 없다. 저들을 수습할 이가 있으니 어서 대진을 복구해.”

화면 전환.

검은 인영들이 허공에서 다가와 좁아터진 소천지로 돌진했다. 그 뒤를 바짝 쫓아온 건 자색의 신뢰였다!

신뢰는 소천 세계를 그대로 가루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벼락은 가볍게 울리더니 더없이 장관인 뇌막으로 변해 소천 세계를 감옥처럼 꽁꽁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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